무지개 링크 플러그인

그동안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 무지개 링크가 동작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용에 불편함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쨌든 그것에 대해 그동안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뭔가 스킨에 문제가 있겠거니 싶어서 신경 안 썼는데, 오늘 필자와 같은 스킨임에도 무지개링크가 작동하는 블로그를 발견해서 구글링해본 결과 다음의 결과가 나왔다.

아쉬운 1%, 귀찮은 버그, 복잡한 동선을 알려주세요 :: Tistory 업데이트 후기

본문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찾아보기 했더니..

woong 2006/07/18 10:2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Firefox 1.5.0.4 사용시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생략:이 글의 주제와 상관 없는 문제, 이미 해결됨

2. Firefox에서 스킨을 수정하면 디자인이 깨지거나 Plug-in의 기능이 동작하지 않습니다. 스킨마다 증상이 다르긴 한데… 전혀 수정하지 않고 ‘저장하기’버튼만 눌러도 이상해집니다. 역시 IE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저 부분, IE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보고,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익스플로러로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를 접속하여 스킨 수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저장하기만 눌렀다.

(털썩) 어이 없이 바로 되버린다.

공인의 이미지?

이효리와 옥주현이 원만한 대화를 통해 소속사를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이와 유사한 류의 기사들을 접할 때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잘된일이라는 것진정 원만한 대화를 통한것인가라는 것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대부분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에 대한 것들은 그 당시에는 원만한 관계로 보이지만 실상 후에 재조명 되어졌을 때에는 원만하지 않은 트러블이 원인이 되어 그랬던 것으로 판명되었던 몇몇의 사례덕이다. 이효리와 옥주현의 소속사 이탈 경우도 그런 경우에 속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다. 소속사와 이탈하는 공인의 입장에서 그 자신들의 이미지를 고려한 기사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굳이 소속사 이탈이나 변경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인들과 관련된 기사들은 그들의 이미지가 고려된 기사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성격차이라는 모호한 이혼 사유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관련기사 : 이효리, 옥주현 8년간 몸담은 소속사 떠나>

과일이라는게 씨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들어 모기불 통신에 자주 가는 편이다. 이슈화 되는 것들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검색을 통해 학습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을 작성해 나간다.
쨌든 오늘은 수입 바나나는 위험한가? 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트랙백으로 달려 있는 미국 바나나? 라는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원래 바나나는 씨가 많지만 현재 주로 재배되는 것은 씨없는 바나나라고.

사실 어떤 식물이든지 그것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씨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다. 이건 어쩌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씨 많은 바나나를 먹기 힘들기 때문에 씨를 없앤 종을 재배하여 먹고 있듯이 수박 역시 씨없는 수박의 개량종이 맛이 탁월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바나나만큼 흔히 먹게 된다면, 수박은 원래 씨가 없는 것이라고 인식해버리거나 씨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쓸데 없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익숙함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위험성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안전 불감증도 그런 익숙함에서 안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고에 대해 둔감하고 그로인해서 발생되어질 사고들에 피해를 입는 것은 둔감한 그 자신이다. 또한 익숙함이란 자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해서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는 자만함은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리더의 눈을 가리우는 검열!

<관련 기사 : 신도시 투기 잡은 나라가 어딨나 – 홍종학 교수 기고>

사실 리더의 자리는 소규모 집단에서조차도 아랫것들의 사정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규모가 작은 그들 가운데서도 그러한데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은 어떠할까.

홍종학 교수의 기고문에서 언급되었던 사전 검열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가장 크게 생각된 것이 군대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업에 대한 것이다.

군대의 머리되시는 분들이 끝 없이 그들의 군에 대한 변화 노력을 내비추고 있음에도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 가리워진 진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그 아래의 하급자들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왜곡된 보고를 받는다. 점차 올라갈 수록 그것은 더욱 심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쳐지지 않으면 안될 것에 대해 희생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에 의해 제제된다. 이 말들은 자신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 숨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죽지 않기 위해 방치 묵과 은닉해 버리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사 진행에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은닉하기는 군대와 매 한가지다.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기업 내부의 비리들을 듣고있노라면 적잖이 씁쓸할 뿐이다.

쨌든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리더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래 상황에 대해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잭 웰치의 경영 비법



잭 웰치의 경영 비법되시겠다. 제네럴 일렉트릭(GE)의 CEO이며,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운답니다.

줄여봅시다

잭 웰치의 경영 비법
·10% 실적 미달성자들을 위해 사서 고생 말라
·협상할 때는 자신의 카드를 전부 꺼내고 시작하라
·젊을 때 찾아오는 위기는 두려워 말고, 즐겨라
·경제 잡지는 비즈니스에서 언어와도 같은 존재다
·모두가 어느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의사결정 땐 생각은 길게 하고 관리는 짧게 하라
·기업은 가치가 있어야, 도덕성을 실추시키지 말라
·리더십을 키우려면 대중 연설을 많이 하라

-당신의 책을 보면 슬로언경영대학원에서 쓰는 경영 교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슬로언경영대학원의 교재에서는 whatto do strategy, analysis, mechanism, system 을 중요시 하는데비해, 잭 웰치는 에서 howto make it, connected to people를 강조했던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GE같은 큰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CEO가 모든 직원들의 업무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 큰 회사일수록 그런것보다는 사람을관리하는 게중요하게 된다. 인재는 CEO가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전세계에 있는 종업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일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CEO의 역할이다. 물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에 대한 평가 방식이 중요하다. 하지만상당수 사람들이 평가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나, 실제로 (인력 평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뛰어난 사람을 찾아서최상의 팀을 꾸린 후 새로운 일을 그들에게 줘서 즐겁게 일을 하고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CEO가 할일이다.

– CEO가 되기를 원하는 비즈니스 스쿨의 학생들이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CEO가 되고자 하는 자신이 전세계의 뛰어난 인재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정확한평가를 내리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그러기위해선 생각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고, 일과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인간적인요소가 충분히 갖춰져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GE가 택한 혁신적인 급여 체계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급 여, 보상 등은 회사와 종업원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을 선정하는 것은매우어렵다. GE 같은 경우 얼마나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의 예년 실적을 토대로 급여를 책정한다.예산에의해서 급여의 상한선을 제한하여 놓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급여, 보상 등의 지급은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모두가어느정도의 급여와 상여를 받는지 알아야 한다.

– 당신은 상위 20%는 인상을, 중위 70%와는 협상을, 하위 10%는 회사를 떠나라고 통고했다. 혹시 이로 인해 발생했던 부작용은 없었나.

모든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직에서 일할 때 구성원들에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의무가 있다. 그건 남들처럼열심히일하고 남들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이 (아무리 슬럼프에빠져도)매년 어느 정도 수준의 성적은 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없는 직원은)과감히 자를 수 있어야 한다. 10%를 차지하는 실적 미달성자의 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서 고생하지 말라는얘기다. 그리고 상위20%의 급여를 인상해 줄 때는 객관적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투명성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 중위 70%와 협상할 때는 어떻게 임했나.

협상을 할 때는 테이블에앉는 순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전부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협상이 한결 빨리 끝나게된다. 자기가 갖고 있는 카드를협상 테이블에 전부 올려놓음으로써 상대방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킬 수 있어야 한다.

– 기업의 CEO로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시간 배분은 어떻게 했나.

아마도 가장 골똘히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그것일 것이다. ‘5년이나 10년 후에 (지금 추진하는 일들이) 어떤모습일까’를예측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생각은 길게 하고 관리는 짧게 하라는 다소 모순되는 원칙이 바로 리더가 가져야할덕목이다. 이런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정기적으로 오랜시간을 가지고 고민한다. 때로는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수집하기도 했다.

– CEO 재임 시 당신의 역할모델이 있었나?

(역 할모델이 있었다기보다는) 멘토들이 많았다. (지금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후 지금 여러분 주변에 있는모든사람들이 멘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부하나 후배가 멘토가 될 수도 있다.

– 당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처음 CEO가 되었을 때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CFO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열정적으로 일하는모습과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당시 나로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포천 지와 같은 경제잡지도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다.경제지는비즈니스에 있어 언어와도 같다. 이런 매체를 통해 다양한 상황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내가 현재처한) 상황을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유사한 사례들을 통해 비즈니스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변하고 있다.형식에 구애받기 보다는 성과를 향한 빠른 실천이 중요하다.

– 기업 내 팀장급의 젊은 매니저가 위기의 상황을 맞았다.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지 조언해 달라.

당 신이 젊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리스크에 부딪치라고 말할 거다. 위기라는건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나중을 위해서도 리스크에 많이 도전해 보고, 실수도 많이 해봐야 하는 것이다. 위기를 즐길 수있어야한다는 얘기다. 무엇이 두려워서 주저한단 말인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고, 즐겨라.

– 요새 일주일 단위로 업무 평가를 하고, 주급을 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일이 성과로 나타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일하는사람 스스로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Work flexibility(업무 유연성)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회사매뉴얼이나브로셔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일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일에 유연성을가미하고 싶으면,그 유연성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지만, 이건 아니다. 결국일이란 것은 성과에따라 평가되는 것이다. 추후 성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

– 기업 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떻게 하면 기업의 도덕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기업이란 것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더 앤더슨과 엘런 같은 대기업들이 도덕성을 잃어버렸을 때 그 기업의 가치가현격히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CEO들은 기업 가치가 상실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기업의가치가 토대가 되어 기업 문화가 자리잡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당신은 어떻게 CEO가 될 수 있었나.

레그 존스 전임 회장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회사를 성장시킨 주역 중 한 명이지만 회사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선변화가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회사 분위기를 혁신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이 당시 45살이던 나였다. 그로서는 큰결단이었다.

– 세계적으로 중국, 인도 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국 경제, 특히 제조업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미국의 제조업은 꾸준히 하락세에 놓여져 있다. 이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발달에 힘써야 할 때이다. 어느 나라나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 리더십도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나.

물론이 다. 유전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리더십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감이 있다면 누구나 발휘할 수있는것이다.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자신감을 기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건 자신감을키우는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나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수백 번도 더 연설을 했던 것 같다.

– 당신은 리더십이 뛰어난 CEO로 평가받는다.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내가 CEO에 올라서고, 전임 회장이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갑자기 나에게 많은 일이 주어지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많은일을 하게됐고, 이런 저런 일들을 수행해 가면서 자연스레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 게 바탕이 되어 리더십을 기를 수있었던 것같다.

– 능력 있는 사람이 승진을 못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위로해 주나.

난 직접 그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가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승진한 이유를 알고 있다면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가장 좋다.

– 당신은 그 동안 많은 것들을 일궈낸 성공한 CEO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여성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내가 살았던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점이 지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 보면(CEO는아니더라도)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나보다 훌륭한 여성CEO들도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출처 : <Economic Review>

줄여봅시다

젊을 때 찾아오는 위기는 두려워 말고, 즐겨라는 말이 어쩐지 제게 하는말 같아서 공감이 갔습니다. 웬지 나이 들어서 이 자리를 빼앗기면 어쩌나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처럼 계산적인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위험부담은 없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하거든요. 물론 위기가 닥쳐오면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리스크에 부딪히라는 그의 말은 제게 어떤 제게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잭 웰치가 대답한 그가 CEO가 된 경위(?)에 대한 답변도 참 마음에 듭니다. 보수적인 전임 회장이 자신의 보수적인 성향을 바꾸기보다는 그 자리에 걸맞는 잭 웰치를 후임자로 정했다는 것에서 전 회장의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하고, 소속된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어지도 합니다. 상반된 모습으로 어떤 경영자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그들이 있지요.

마지막으로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자신의 살았던 시대에는 불가능하지만 현 세대에서는 가능하다는 말에 대한 것인데, 아직도 수 많은 곳에서 여성을 자신의 우위에 두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생각을 조금 더 개선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나 개방적인데, 사실 능력에 따라 사람이 사람의 상관인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을 상급자로 둔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뭐.. 이것도 적지 않이 남성우월성향의 발언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 or 비경험

순대국밥 님의 블로그에 갔더니 이런 동일한 제목의 포스팅이 있기에 재미있어 보여 긁어왔습니다. 물론 글 내용은 같지만 표기 된 것은 제가 다시 한 것이지요. 철 없을 때 했던 일들도 솔직하게 표기했으니 대략 정떨어지거나 욕할 거리를 발견하실 수도 있음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경험 ━ 비경험 ━

가출


야동
장난전화
알바

살인

컨닝

배신을 함

배신을 당함

유체이탈

봉사
폭력을 휘두룸

야구

축구
피구
연애
원조교제

게임

해외여행

도둑질
입원
설거지
청소
요리
책읽기
외국어회화를 함
사전찾기
싸움
눈물
발야구

공중부양

자동차운전

오토바이운전

음주운전

협박

왕따

선물을 함
선물을 받음
외상

발레

피아노

상을 받다

연예인을 보기 위해 공방을 뜀

마술

키스
헌혈
취직
안경

렌즈

음악감상
티비출연
몸무게10kg감량
실연

애완동물을 키움
나이트에 감

가정교사를 함

양다리를 걸침
도박
시험 0점을 맞음
혼자 노래방을 감
바둑
장기
벌에 쏘이다
사격

번지점프

1만원 이상 복권당첨

사랑니

전학

사기를 침

사기를 당함

의사놀이

잡기놀이
숨바꼭질

부모를 때림

식중독
컴퓨터 바이러스
해킹

감옥살이

유령을 봄

외계인을 봄

UFO를 봄

선생님을 때림

범인을 잡음

동거

선생님에게 맞음
부모님에게 맞음

벌로 복도에 서있음

새뱃돈을 받음
새뱃돈을 줌
교통사고

결혼

과일깎기

모델일을 함

고백을 함
고백을 받음

지금껏 10명 이상과 사귐

채팅
화상채팅
돈을 뜯음

돈을 뺏김

억울한 일을 당함

전국노래자랑에 출연

아이를 돌봄

별 100개 이상을 접음

낮잠
노래

국적이동

국내여행
바람 핌
폭식
부모님께 안마를 함
컴퓨터 10시간 이상
하루동안 세수를 안함
불륜

이혼

불꽃놀이
문답을 함

운동 시작!

앞 글에서도 밝혔듯이, 체중의 과다 증가, 체력의 부족으로 인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체중을 확인했는데, 앞 글에서는 5Kg부족한 100Kg이라고 했는데, 무려 96.1Kg이더군요.
전자체중계라서 평균치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몇 번을 해 봐도 똑같습니다.
일단 체중을 확인했으니 운동하러 가겠습니다.

운동후…

와~ 정말 제 체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 싶습니다. 전에도 운동했다가 꽤나 힘들었다는 포스팅을 했었는데, 점차 더 심해지는군요. 20분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5분도 안되어 지치게 되는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역시나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운동 부족입니다. 운동을 쉬었던 기간과 정확히 비례해서 체력이 떨어집니다.

쨌든 시간은 다 채웠습니다. 오랫만에 운동을 하는데, 그 동안 안 좋은게 아닐까 싶었던 부분들이 아파옵니다. 병원에 한번 들려봐야겠습니다.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나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듯합니다.

체중 뿐만 아니라..

요즘들어 부쩍 듣는 소리가 몸이 좋아졌다거나 살이 쪘다는 소리입니다. 확실히 전보다 몸이 둔해 진 것을 느끼고 있는데다가 체력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절대 필요가 생겼습니다.
고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처럼 또 흐지부지 되고 말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사랑 ▶ 운동 카테고리 쯤에 운동으로 인한 체중 변화 등이 기록 될 예정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홀딱 벗은 몸의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첨부하고 싶지만, 사실 혐오감이 드는 사진 일 수도 있을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건 보류하기로 합니다.
운동은 아무래도 지금 체중에 5kg 부족한 100kg 이기때문에 장시간 뛴다거나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듯하기 때문에 짧은 줄넘기 정도가 괜찮을 듯 싶습니다. 체중이 많이 불어 있는 상태라서 이것도 사실 좀 불안하기는 합니다만, 지나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체중 감량 기한이 없기 때문에 하루에 5천번 정도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20분 정도니까 2천여번 정도가 괜찮아보입니다.

쨌든 이제 다시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비가 올 일은 좀 드물기를 바라면서…

아! 해방이다~

시험이 끝났습니다.
일주일간 몇 과목 보지 않았지만, 그동안 콩글리쉬 생활을 해 왔던 제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99년도에 입학해서 영어 I, II에 해당하는 과목은 이미 이수했기 때문에 영어 회화 I, II를 이수해야되었기 때문에 2학기에 편성되어있는 영어회화 II를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1학기 영어회화 I에 이어서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이치이겠습니다만, 코스모스로 복학해버린 저에게는 불리한겁니다. 쨌든 저 하나때문에 교육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었고, 그로 인해서 영어로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는 쉽게 해 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학기를 시작했습니다만, 수업시간을 한 시간 한 시간 거치면서 그 동안 대단히 심한 콩글리쉬를 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수업이 진행되면서 심각성을 느끼고 시작하려는 의지가 생겼을 땐 이미 중간고사가 코 앞에 다가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쨌든 지금 당장의 시험만 바라보고 공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기본 문법부터 다시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시험 전날까지 공부해서 필요한만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독해하고 간단히 문장 만드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죠. 하지만,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서 이전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구술 시험에서는 버벅거렸습니다.

이번 깨달음을 계기로 문법 공부를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절실하지가 않았던 모양인지 몇일인가 하고 말곤 했는데, 이번엔 정말 문법이 기반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문법에 대해 여러곳을 찾아봤는데, 나름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관심있으시면 들려보시길 권합니다.

괴물군의 여러가지

왜 내가 군대에 가지 않으면 안되지?

왜 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군에 대한 애착을 물려받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내게 있어서 군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이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군인으로서 복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들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군에 가기 싫은 사람은 돈 열심히 벌어서 어떤 비겁한 인간들처럼 외국국적을 획득해서 이민가도 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니까 상관할 바 아니다.

나라라는 집단은 가족이 모여서 구성되었고, 가족은 국민이라는 인간개체들이 모여서 구성되었다. 그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바로 내 가족이며 친지이고, 부모들이자 형제들이다. 이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자리에 왜 가기 싫어하는가.

그건 그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폐해들 때문이리라. 초등고등학교를 압력 속에서 지내오다가는 겨우 자유를 얻은 듯했는데, 그 자유를 구속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에서 전역한 사람들을 통해서 적지 않은 루머들이 흘러나왔고, 그런 것들은 루머가 아닌 현실로서 그들에게 접근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연인이었던 여인들과 이별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여자들만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공감대도 없는 그들과 2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사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되니까.

그러면 이런 악순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것인가. 군을 개혁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군을 개혁한다고 하는 소리는 수 없이 있어왔고, 지금도 개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상심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찾으려는, 보상 받으려는 심리쯤으로 정의해두자.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되어져 온 것은 상급기관에서만 그 노력이 그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점차 하급기관으로 내려와 점차 교육수준이 높이진 병사, 간부들에 의해서 일부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부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미 강제력으로 인한 편함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 때문이리라고 생각된다.

입대해서 교육을 받고, 근무할 곳에 배정 받은 간부(하사 이상)들을 이등병 취급하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행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의 발생이다. 초임 시절의 괴로움은 그 간부의 남은 군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초임 시절에 강제력으로 하지 않으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그렇게 부하를 이해하고 통솔하려는 마음보다 강제력을 쓰는 것이 더 쉽다고 느껴버린 간부는 자신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이후의 병사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강제력을 행사한다.

강제력이라는 건 일을 쉽게 만든다. 그래.. 쉬운것.. .인간이 끝없이 요구하는 욕구 가운데 하나는 쉽고 편한것이다. 점차 기술은 생활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 대한 행동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잠시 생각한 것을 끄적거리고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쉽게 길어져버린다.
쓸데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오해를 통해 가진 악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면 군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내 나라, 내 가족, 내 형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광고와 홍보의 관계

광고와 홍보는 기업이나 제품이 외부(공중1)에 알려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알리는 데 필요한 비용의 지불 여부와 알리는 행위를 하는 주체를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에서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매체에 알리는 행위들은 광고에 해당한다. 홍보는 알리는 주체가 달라지는데,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교육기관 등에서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알리는 목적이 아닌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에게 요청하는 자료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이다. 홍보효과를 위해 기업은 홈페이지 등에 자사에 대한 정보 또는 관련 자료들을 정보로 제공한다.

참고한 글 ::

홍보(Publicity)는 기업, 정부, 단체, 조합, 정당 등이 언론사로 하여금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게끔 보도자료 및 기타 편의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광고와 달리 판매가 아닌 정보제공이나 교육이 목적을 이루고, 기사화됨으로써 매체의 일부를 무료로 사용하는 것이고, 기사화되는내용을 홍보 주체가 직접 통제할 수 없고, 그 내용이 기사화 됐을 때 독자나 시청자는 홍보 주체를 확인할 수 없다.

출처 : 네이버 용어사전

퍼블리시티[publicity] 신문 ·잡지 등의 기사나 라디오 ·방송 등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광고 ·선전하는 것을 말한다. 광고는 광고주가 매체를 통하여 자기의 기업이나 신제품에 대하여 유료로 광고 ·선전하는 방법인 데 비하여, 퍼블리시티는 광고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료로 매체측의 계획에 의하여 내용의 표현 등이 자유롭게 기사화되는 선전 방법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광고를 광고하는 것, 바로 광고의 퍼블리시티 전략입니다. 광고가 방영되기도 전에 광고가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시청자,소비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죠.

출처 : <20> 북한 무용수 조명애 효과는?

광고의 기본개념-1
광고의 기본개념-2
저작권… 그런데 퍼블리시티권은?

  1. 공중 : 기업목적 달성을 위해 실질적 또는 잠재적으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말한다.이것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나 분야에 따라 금융공중(financial publics), 매체공중(media publics),정부공중(government publics), 시민운동공중(citizen action publics), 지역공중(loclapublics), 일반공중(general publics), 내부공중(internal publics)으로 분류될 수 있다.[]

디마케팅(Demarketing)

기업이 일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마케팅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이것은 목적에 따라 공익을 목적의 디마케팅, 수급조절을 위한 디마케팅, 이미지 향상을 위한 디마케팅, 규제회피를 위한 디마케팅, 수익제고를 위한 디마케팅의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마케팅의 의도와 달리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억제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어 법력 아래 경영이 이루어지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경우의 초과수요 상태를 말하며, 여름철 피서지 인파와 같이 갑자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일시적 마케팅활동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마케팅 관리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촉진활동의 축소나 가격인상, 모델 변경 등으로 일시적 도는 영구적으로 수요를 저지하는 마케팅활동을 펼칠 수 있다.
출처 : 마케팅, 하대용, (서울 : 貿易經營社, 2006), p. 20.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들의 상품을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디마케팅이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사도록소비자를 유도해야 하는 것이 기업인데 오히려 사지 말라고 하다니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이런 마케팅을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하는 바가 있다.

출처 : 한국 네슬레가 디마케팅(Demarketing)에 실패한 이유에서 재인용

기업들이 자사의 상품을 많이 판매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객들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마케팅전략이다. 수요를 줄인다는 점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는 기업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킨다’와 같은 담배·술의 경고문구 등이 바로 디마케팅 기법에 해당하는데, 소비자보호나 환경보호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려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밀어내는 마케팅, 즉 돈이 안 되는 고객과는 거래를 끊고 우량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은 극대화하려는 모든 유형의 마케팅 기법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① 금융기관이 거래실적이 별로 없는 휴면계좌를 정리하거나 채무 규모가 적정 수준을 넘은 고객의 거래 및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마케팅 ② 온라인 게임업체가 청소년 회원에게 부모의 동의를 얻은 시간에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③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유료 회원제로 전환하거나 휴면계정을 삭제하는 경우 ④ 백화점이 우량고객에게 별도 제작한 선물을 하거나 감사 서비스를 실시하는 경우 ⑤ 맥주 회사가 고급 브랜드를 일정한 업소에만 선택적으로 공급하는 경우 등이 모두 디마케팅 기법의 예(例)에 속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디마케팅>

우리는 자기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안정을 제공해 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기업 수익의 80%를 올린다는 ’80/20 법칙’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객들을 좀더 세분화해 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만들어내며, 그 바로 아래 40%의 고객은 수익의 30%를 창출한다. 반면 하위 40%의 고객은 이익은커녕 오히려 수익의 10%를 까먹는다. 따라서 VIP들을 관리하는 귀족마케팅과 함께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전략이 바로 하위 고객들을 잘라내는 디마케팅이다. ‘디마케팅(Demarketing)’은 필립 코틀러가 1971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정기적으로 고객과 건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기업이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출처 : 개인 블로그 <디마케팅> 소개

 

파레토 법칙(분석)

이탈리아 80%의 자산이 20%의 인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는 이탈리아 경제학자 Vilfredo Pareto의 연구 결과로서, 이를 경영학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Josept M. Juran이다. Juran 박사는 양적 경영보다는 질적 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많은 고객을 붙잡아두기 보다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적은 수의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가리킨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만큼 쇼핑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사용한다. 2대 8 법칙라고도 한다.

출처 : 위키 대백과 <파레토 법칙>

관리력이 일정한 경우에 가급적 효과가 높은 부분에 중점적으로 투입하기 위한 분석방법. 관리력의 대상을 A·B·C 등의 존(zone)으로 나누어서 분석하고, 그중에 서 결과의 90%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되는 A존에 중점적으로 손을 쓴다. 예를 들면 100개의 거래선 중에서 자사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곳은 10개(A존)에 불과하다고 할 경우, 관리력을 이 A존에 가중해서 배분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개발자인 V.파레토의 이름을 따서 파레토 분석이라고 한다.


출처 : 야후 용어사전 <파레토 분석>

이태리 경제학자 Vilfredo Pareto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80-20 법칙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80%의 자산이 20%의 인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를 경영학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Joseph M. Juran이었다고 한다. Juran박사는 이른바 중요한 소수, 대수롭지 않은 다수(vital few and trivial many)라는 이론을 통해 소수의 20%가 80%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때문에 이른바 질적 경영(quality management)이 필요함을 주창했다. 물론 이는 20%가 긍정적인 80%를 만들어낸다는 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20%의 불량품이 80%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80-20에 적용시켜볼 수도 있다.

출처 : 블로그 방문자수의 파레토 법칙

남자의 재력은 차키에서부터?

구영운영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야마토나데시코 Ep – 01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내용을 주욱 훑어보는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남자의 어디를 보는거지?  
제일 첫번째로 체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

자동차 키

거기서부터 연수입, 부동산, 주식보유량 등
남자의 재력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구
그때야말로 난 이사람한테 걸어볼까 하고 생각한다구.  그렇습니까?!!



이 문구(“자동차 키”)를 확인한 순간들었던 생각은, 강남의 월세 할부인생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강남쪽에서 외제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 젊은이들 중에 재력이 있어서 가지고다니는 사람들보다는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적인 조사를 해 본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났다.

만약 미팅에 나간 남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 여자(사쿠라)처럼 이 남자, 저 남자 동시다발적인 미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사람 잡아 시집 잘 가자는 목적으로 – 사실 이런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 간다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진정한 낭패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함께 그 부채들을 감당해야할테니까요. (추가) 물론 요즘엔 합리적 사고라는 면의 접근을 통해 그런 문제들도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부채는 각자가 알아서 갚는 식의 부부들도 생겨나고 있다는군요. 그런 합의조차도 되지 않는 부부들은 이혼에 이르기도 하구요.

사실 여자고 남자고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요. 급하게 만나 결혼하고 급하게 이혼해버리는 세태를 따라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인내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뽐뿌질 하지 말아라!

광고는 그것이 표현되어질 수 있는 모든곳에 존재 한다. 어떤 분야든지 기업들은 수익을 높이고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광고를 하게 마련이다. 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부터 시작해서, 기업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광고까지 광고의 목적이 다양하다. 그 목적이 수익 증가를 위한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의 목적이 그렇다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노선의 차량에는 광고가 엄청나다. 사람이 봐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일 것이다. 어떤 매체의 광고든지 사람은 그 광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에 영향이 미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지를 가지고 부인하려 해 봐도 잘 되지 않는다.

다행히 필자는 뽐뿌를 받지 않는 타입이라서 광고들을 보면서 어떤 점이 괜찮고 어떤 광고는 지나치다 등의 평가만하지만, 영향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광고를 뿌리쳐야만 하는 자신의 분수를 탓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뽐뿌질 하지 말아라!”며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 내의 광고들이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는가? 점차 줄어드는 광고 수입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광고라는 것은 독창성이나 완성도를 떠나서 덕지 덕지 붙어있다면, 단지 벽지의 무늬정도로밖에 인지가 안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이유로 인해서 줄어들어가는 것이다.


<관련기사 : 지하철 승객에게 광고 안볼 권리를 허하라>

구라 문답

이라네요..
올블에서 같은제목으로 글이 올라온걸 봤더니 모기한테 물린사람 몽땅 이라는군요.
ㅋㅋ

쨌든… 갑니다…

[Rei]의 5대 거짓말

1. 살빼자.. 다이어트 해야지

요즘들어 운동할 생각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한건 저번주 어느날인가 저녁에 잠시 나가서 줄넘기 하고 온게 전부라는거… 

2. 저 순진해요 

뭐… 어떻게 보면 순진한건지도 모릅니다만, 사실 초등학교때부터 순진하지 않았습니다.
문명을 일찍 접한 부정적 측면이라고 할까요…?

3. 귀찮으니까 블로그 때려쳐야지

그런 생각은 아직 들지 않았습니다. 시작한지는 꽤 오래됐지만, 뭐든 시작하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시작하면 어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닌이상 그만두거나 하지 않습니다.

4. 공부 잘되고 있어요

ㅋㅋ… 잘 되고 있습니다.(자기 최면) 사실 영어때문에 다른 과목들을 포기한 상태이지만, 이번시험.. 그래도 영어만큼은 어떻게 해 보려고 합니다.

5. 남자전화는 무조건 걸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뭐… 걸기도하고 받기도 잘 합니다. 이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질문인건 아니겠죠?

http://www.allblog.net/GoPage/1463073.html?orignalUrl=http://www.blogin.com/blog/?datX=00668122&keyX=numr&keyY=00652484

이거 그다지 길지도 않고, 재미삼아 적어볼 만 합니다.
바톤 받을 다음 사람은 제 블로그에 들리셔서 이 글을 보시는 바로 당신!

LG 파워콤 100만 돌파

파워콤은 지난 2000년 설립되어 운영되어오는 초고속 인터넷 회사이다. 그들은 하나로 등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경쟁 대열에 들어 최근 1년 여만(2005년 9월 1일부터)에 100만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외국 관광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빨리 빨리”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우게 했을만큼 속도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런 민족적 속성이 인터넷 사업분야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빠르게했겠지만 이것으로 인한 문제는 관련 기업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예외의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이용시 페이지 로딩이 느리면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서비스 회사에 전화해 따지고 최근의 초고속 서비스 회사들을 전전하며 경쟁기업들간에 제 살 파먹기를 지속시켰다.

긍정적인 현상 – 사용자 입장 – 으로는 파워콤의 속도 품질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로의 속도 기준이 기존 라이트 4Mbps, 프로 8Mbps에서 라이트 10Mbps, 프로 20Mbps로 배이상 증가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전에 얻은 수익을 통해 장비 투자를 해 나갔지만 사용자들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한가한 파워콤망과는 달리 야간 체증현상이 벌어져 그로 인한 전향이 잦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속도 기준의 증가는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 가입자들을 타사 서비스로 전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금년 초 필자가 H 통신사의 기사로 일할 때의 경험을 들어보자면, 실제로 일주일만에 하나로에서 파워콤으로, 파워콤에서 다시 하나로로 변경한 사람들도 적지 않이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워콤과 하나로는 장기가입의 조건을 들어 상대 회사의 서비스를 해지하고 자사의 서비스를 가입해주는 사람들에게 상품 공세를 펼쳤으며, 후에는 상품이 아닌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의 마케팅을 펼쳐왔고, 관련 사실은 기사화되기도하였다. 이런 마케팅은 직원으로서도 사용자의 입장에도 제 살 파먹기 경쟁으로 비춰졌다. 결국 이런 경쟁 모델은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전장에서의 혈투를 연상하게 한다.

과연 어느 기업이 승리할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제 살 파먹기 경쟁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은 각기 회사에서 누구에게 돌려질지 궁금증으로 남는다.

<관련기사 : LG파워콤, ‘엑스피드’ 가입자 100만 돌파>

코난 6기 극장판 – 베이커가의 망령

베이커가의 망령은 대강 천재 소년이 개발한 인공 두뇌 프로그램인 Noah’s Ark를 뜻한다. 천재 소년은 히로키라는 이름의 캐릭터인데,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와도 헤어지게 되어 개발자로서 IT계열 최고봉 기업주에게 소속된다. 그리고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일들이 있게 된다.

히로키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일본의 개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교육 분위기로 인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개발자로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기업주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가 프로그래밍이 완료된 후에 자신을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굉장히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역사들에 의해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는 적지 않이 닮은 꼴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의 작품들이 스토리가 탄탄하다거나 작화의 세련미라는 이유 외에도 설명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쨌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Noah’s Ark가 정, 재계 2, 3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상 게임 프로그램에 침투하여 통제하는데, 그런 내용 중에 게임에 들어가 경험하는 2,3세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기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단지 애니메이션의 가상 상황(픽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조금은 우습게 여겨지지만 그 내용을 통해 필자 고모님의 아들인 S군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본인의 조모님은 그 분의 둘 째 따님의 아들 – 말하자면 외손자 – 인 S군에게 별다른 정이 없으셨다고 한다. 본인과 동생, 그리고 셋째 고모님의 자녀들처럼 직접 키우시거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모님께서 고모님댁을 방문하셨을 때 고모님께서 보이신 행동에 대해 S군은 실로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고모님꼐서는 상체의 비만으로 인해 가지게 되신 지병의 치료 목적으로 수영장에 가신다고 했던 것으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조모님은 81세(2년전)의 고령의 몸을 이끄시고, 부천에서 고모님께서 계신 의정부까지 친히 방문하셨다고 한다. 방문하신 집은 둘째 고모님댁이며 그 고모님은 하체에 문제가 있으셔서 거동에 적잖은 불편을 겪고 계셨고 그 때문에  치료 목적의 수영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고모님댁에 도착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고모님은 조모님께 수영장에 가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S군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엄마, 할머니께서 자주 오시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만에 힘들게 오셨는데 그거 나중에 가도 되는거잖아요. 나중에 내가 커서 엄마 오셨는데 일보러 나간다고 하면 어떠시겠어요?

이런 별것 아닌듯한 말에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에 의아해하시는 분을 위해 추가 설명들어가겠다. 둘째 고모님은 S군을 재혼을 통해 얻으셨다. 둘째 고모부님은 사업을 하시던 분이셨고, 첫째 부인과 사별하시어서 혼자인 상태이셨다고 한다. 그런 중에 고모님과 결혼을 하셨는데 이 고모부님 성격이 정말 대단하시다. 필자와 동생의 어린시절 이 고모부님의 포악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몰인정한 행동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모님의 친정, 즉 우리 친족들과의 왕래를 극히 꺼려하셨고 굉장히 거친 언사로 고모님을 공포로 몰아넣으셨던 분이시다. 물론 이 묘사에는 한치의 과장도 섞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묘사를 제하였다.

그런 고모부님의 아래에서 자라난 S군에게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됨됨이가 하한가를 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옳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에 따라 발언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발견된다. 물론 악한 부모 자손들이 무조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행동이나 사고를 여과없이 배우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에서 유사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S군의 입에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감동했고, 그런 발언을 통해 가능성은 발견된 것이다.

어떠신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버릇없고, 인간미 떨어지는 사람을 방치하기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성향을 옳바르게 잡아줘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내 자식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해 줄 필요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기독교의 배타성?!

아래의 답변은 기독교 전체의 답변이 아니며, 본인의 짧은 지식과 생각을 비춘 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또한 추가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주변 교회의 목사님을 방문하시거나 권위있는 학자들의 글들에서 답변을 얻으시기를 권하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안티 기독인들에 대한 글들을 많이 접해오면서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더욱 공부하고 알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제는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글을 통해서 다시한번 배타성과 관련하여 적은글에서 외부의 사람이 느끼는 배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글에 navman님이 질문을 해 오셨다. 그것은 기독교 배타주의에 관한 것이었고, 성경 상의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들였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짧게 반문을 적어두었었다. 그런 후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이 나서 뭔가 확실한 답변이 될 만한 것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쾌한 답변을 내려주기에는 지식적 경험적 한계를 가졌다. 그렇더라도 일단 알고 있는 한에서는 답변을 해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답변을 해 본다. 그러나 질문하신 분에게 기타 신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함으로써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심도 있는 언급은 제하기로 한다. 일단 navman님을 포함한 기독교적 지식과 이해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죄를 지어 잉태하여 후예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들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인간들은 스스로 자만하여 죄악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의인이었던 노아를 선택하여 그의 가족들과 한 쌍씩의 동물들만 남겨두고 물로 심판하신다. 여기에서 문제는 제기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다고 다 쓸어버리는 것이 기독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navman님의 질문 덧글에 답변으로 달아놓은 반문은 그것에 대한 간단한 답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으로써 인간을 없애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하나님께 있어서 소모품 정도의 비중밖에 안되는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셨을 당시의 상대적 의인인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죄로부터 최대한 멀어진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계속되는 인간의 죄악을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설명에 대해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진리라는것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도 그것은 진리인것이다. 해가 이동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덧붙여 말하자면 죄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추가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죄들을 정당화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독교와 관련된 죄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그 뜻을 충분히 여쭙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더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되는 것이다. 위의 문제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기독교의 자기싸움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욕심인 자본주의적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문제들은 발생되는 것이라는 그 포럼에서 논의 되었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 한 사람이라도 생명의 길에 인도하려는 – 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규모를 늘리기 위한 교회사역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한 가지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성인(聖人)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제쳐뒀었고 자만하고, 욕심부려 기독교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발언, 행동들을 가졌었고 그런것들을 고치고 인내해 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 동안 습관적이었던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기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것과 연관지어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는 있지만, 죄된 습관을 오랜동안 가지고 살다가 회개하여 믿게 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오랜 것일수록 고치는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부활이나 인간의 종말에 대한 말씀들을 믿고 믿지 않고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권하는 것은 안타깝기 때문이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함께 영원한생명을 얻어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영원한 생명에 대해 뱀파이어나 기타 죽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모레 수렁에 빠져서 점차 몸을 침식당해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언제 데려가실지 모를 상황에서 그 긴박함은 강제성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권유하고 물가에서 위험하게 놀 때에는 혼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를 보는 시각

올블 메인 페이지에 들렸을 때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 글을 직접 발견한 것은 아니고 다른 페이지에서 였다. 그 글에 대해 불교인뿐 아니라 무교인이 본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표현했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반면 또 달리 드는 생각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였다.

신학도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미래는 목회자이다. 목사라고 불리우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선교사로서 일하든지 신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지식의 획득만을 위해서이든지 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공통된 분모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그 말씀에 의해 전도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무를 언젠가는 행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과 같은 의미로써 위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글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어떤 부분에서 자기 편이 아닐 때는 배척하고 증오하고 복수했다.고 느꼈을까하는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보이셨던가? 증오하고 복수까지 했다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추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부분이 그들을 증오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복수했다고 묘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외에도 여러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그 글의 필자가 토론을 위한 글이 아니라고 전제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가 몇가지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길게 쓴다고 좋은 글은 아니다.

본인은 단 몇 줄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면 그것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꽤나 고민거리였던 것 중에 하나는 글의 길이였다. 블로깅할 때 뿐 아니라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조차도 글을 길게 써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글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글이 길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의 지난 포스팅들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동안 작성했던 글들을 생각해봤을 때 글의 내용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주제와 관련된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그동안 뭘 썼던 것일까? 단지 주저리 주저리 문자들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게하는 글이 눈에 띄기도 한다. 블로깅을 단순히 기록활동으로 생각한다면 허용될만한 글들이지만,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목적과 그 글을 작성했을 때의 목적에 비춰생각한다면 허용될 수 없는 글들인것이다. 물론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블로그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본인의 글을 쓰는 습관을 다시 한번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하는 과목 중에 성경본문을 연구하는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의 발표를 – 겁도 없이 – 처음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표를 하는 중에 발생됐다. 교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딴지를 거셨다. 물론 속으로는 조금씩 화가 나고 있었지만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계속 인내했다. 논리적 개연성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인 즉슨 지금 열심히 떠들고는 있는데 무슨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교수님께 논리적인 사고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에 대해서 배움을 얻고싶다고 고백적인 말을 드렸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다 듣고 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답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봤을 때 “나”라는 존재는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우선하는 인간이어서 그런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살펴보면서 생각하게 되는것은 그들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정리해 낸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선천적이어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은 본인의 글 작성을 소극적이게 만든다. 웬지 모를 자괴감 – 또는 그런 유사한 감정 – 이 들어서 포스팅할 생각에 압력을 가한다.

쨌든 이 블로그가 쉬지않고 운영되어지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이며, 그들의그외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단련하는데 있어서 노력은 그 목적에 가깝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이전의 본인과 현재의 본인은 확실하게 발전된 형태로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허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글의 작성은 학문적인 것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 모두가 논리적 글작성이 필요하다. 고로 본인은 이런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갈 것이다.

난 변태인가?

남자라면 누구나 머리속에 응큼한 생각 한 둘씩은 하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응큼한 생각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어떤 죄를 더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머리속 상상으로 머리를 분쇄시켜버린다. 온갖 알고 보고 들었던 절단할 수 있는 도구들이 머리 속에서 본인의 머리를 잘게 부숴버리는 상상으로 그런 응큼한 상상을 마무리 시키는데, 참 그 때의 기분이란 참 묘하다.

꽤나 잔인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변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뭔가 자신을 분쇄시키면서 응큼한 생각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잔인한 장면으로 쾌감을 얻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흠…

상처를 주는 것은 쉽지.

파랑새를 찾아서 – 용기를 주는 말이라는 포스팅을 읽는 중에 ‘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네’ 라는 부분에서 김제동씨와 관련된 사건(?)이 생각났다.

야심만만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 중에서 회사 면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그 때 김제동씨가 자신이 당했던 얘기를 했고, 강호동씨가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여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제동씨는 섭섭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울분에 섞인 목소리와 붉어진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면서

“그 때 그 인사 담당자분 진짜 실수하신겁니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말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주고나서 알게 된다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하는걸 어색해 한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이 더 그런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한 습득력이나 익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 상에 방언에 관련한 구절들이 적지 않게 있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보자면 보잘 것 없는 정도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전서 14장 23절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부교역자로 사역중이셨다. 부모님들이 사역하시던 교회는 방언이나 성령의 역사가 활발했던 교회였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산기도를 다니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던 교회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방언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친구들을 교회에 전도하였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기억난다. 친구들은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교회라는 집단의 문화를 접해보지 않았었는데, 그 친구들은 보기에는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했던 모습만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부흥회 기간이 되어서는 적지 않은 친구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흔히들 부흥회 기간에는 서슴없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성경말씀 본문에서 나와있는 것처럼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언은 성경상에 기록되어 있는 극히 정상적인 은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해보지만 생각을 바꾸기란 적지 않이 쉽지 않다. 물론 본인은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그런 문화에 적응해 있었기 때문에 별 달리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겨졌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중에 교회에 가게 되신다면, 이상한 말로 눈감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라. 그건 방언이라는 기도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늙은거?

본인보다 연로하신 적지 않은 독자에게 먼저 사과의 말씀 전한다.

오늘 오랫만에 줄넘기를 해 보았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이전에 했던 방식의 무식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실로 몇개월이나 걸린것이다. 그리고 인정 후에도 결심하기까지 몇 개월이 흘렀다.

2006년 이전의 포스팅들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진정 아무나 믿을 수 없을만큼의 수치인 5천번은 젊었을 때나 가능한 줄넘기 횟수인것이다. 지금에와서는 그럴 정도의 체력은 있지 않은것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과 결심을 오늘에서야 실행해 옮겼다. 그런데 이거 웬일인가 다시한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20분씩만 하자고 마음먹고는 줄을 들고 집 뒤쪽 공원으로 향했다. 물론 무릎의 무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콘크리트나 블럭이 아닌 흙이 밟히는 땅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녁에 먹은 튀김닭이 무리를 가져왔다. 조금 많이 먹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이렇게나 힘들게 하다니.. 줄넘기를 시작하고 노래가 한곡 반이 흘렀을 때 신호가 왔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꿋꿋이 버텨내려 했으나 무리가 된다는 신체적인 신호가 더욱 심화되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했던 과식 후의 운동은 전혀 그런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렇게 위험하다는 음주상태에서의 줄넘기도 무리가 되지 않았던 몸이 이제는 몇 년 지났다고 무리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아… 이런걸 나이먹는다고 하는 것인가…
(털썩..)

매직스트레이트 까잇거 일주일이면..

오해라는 글을 보고는 취업후 첫 월급의 씀씀이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인문계 학생들과는 달리 취업전선에 나가야 할 시기인것이었다.
당시의 본인은 반곱슬의 머리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펴려고 온갖 방법을 다 해보던 시절이었다.

젤이라든가 헤어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밀크로션을 머리에 발라 머리 모양을 바꾸려고도 시도해 본 적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곱슬머리라는 걸 이용해서 꽤나 긴 머리를 자랑하던 때도 있었다.

쨌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었던, 본인은 첫 월급을 타는날 내의 점에 가지 않았다. 흔히들 부모님의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것으로 효를 시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겠지만, 그런 압박마저도 날려버릴만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매직스트레이트(이하 매직)였다. 당시의 매직는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에 꽤나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고되게 하지 않은 고등학생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만큼의 가격이었다. 물론 집안 형편도 그에 못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열망해 마지 않던 매직이었다.

첫 월급을 들고 부천역에 있는 미용실을 향했다. 사실 그 동안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5천원이면 이발할 수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했기 때문에 미용실이라는 공간에 간다는 것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미용실에 들어갔다. 참…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뭐가 그렇게도 부끄럽게 여겨졌는지, 3~4시간의 시술 시간동안 시술하시는 미용사 누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짜잔~ 멋지게 스트레이트 되었다. 미용사는 시술후 2,3일 동안은 머리에 샴푸하지 말라는 당부를 건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왔건만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지금 회상해보건데 당시의 머리 모양은 꽤나 우스꽝스럽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로 인해서 부풀어 있다가 매직 후 가라앉는 상태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일주일이 흘렀다.

털! 썩!

정말 저런 모양새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나 고가를 들여 했던 머리카락들 가운데, 휘어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같은 반 여자친구들을 집에 초청(!)해서 일반 스트레이트를 했었던 때에도 2,3일 정도 밖에 못 버텨냈던 머리라는것을 기억해 내는데에는 많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휴우..

이 저주받은 곱슬머리라고 수 없이 생각했다.

논술은 사고를 글로 옮겨놓은 것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무지 논술전문가랍시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선생들이 도무지 학생들과 눈높이가 맞질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수준이 선생과 너무 다르다. 그러니 위의 글은 당연히 낙제인 것이다. 만약 위의 글을 학급의 동급생들과돌려보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문제가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판단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의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로에 관계없이 논술 교육은 필요하다 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는 본인의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이렇다.

초등학교 4학년 PC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 이후 중고등학교시절까지 PC와 결혼했다고도 할 수 있을만큼의 높은 관심과 애착을 통해 대학진학은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대학교라는 곳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나타내기 힘들다. 고등학교 시절 논술이라는 과목을 듣도 보고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떤 오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기본교육으로써 교육받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를 PC와 관련된 학교로써 정보산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그곳에는 전산관련과목과 기본 과목 – 국영수과사국 등 – 들만을 가르치고 있었다.

논술 교육은 학교에서 기본과목으로써 교육해야 한다.
평생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충분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할 필요가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과업을 설명해야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에서 문제들이 발생되고, 대부분의 법률적인 문제에서도 살펴본다면 의사전달의 오류들로부터 발생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자신의 의견을 적절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논술 교육을 기본 교육으로 해야 한다. 물론 개인의 성격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논술 교육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게 한다면 시기 적절하게는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이라는 것은 피교육자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경험을 비추어보건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수업시간, 즉 교육의 현장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적지 않은 교육 효과를 가졌다. 인생을 살면서 이전에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기억들이 토막 토막이나마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고 할 때 기억이 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그것들을 완벽하게 외워내는 것이 아니라 –  추후에 여러 분야의 교육이나 삶에 있어 – 이해가 필요한 부분들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글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오류, 본인의 무식함이 표출되는 문구들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skt가 27위?

이 관계자는

“한국의 인구규모가 작은 탓이 크다

“며 “가입자수가 많은 해외 이동통신사들이 생각보다 다수여서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가입자수가 큰 업체로는 중국의 차이나모바일(2억8000만명), 차이나유니콤(1억4000만명), 유럽의 보다폰(1억9000만명), 일본의 NTT도코모(5200만명) 등이 있다. 남미 멕시코나 인도네시아 1위 사업자도 모두 2000만명을 넘은 지 오래다.

한국이 인구가 많지 않은건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독점이다 뭐다 해서 굉장히 많은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skt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따져봤을 때 27위라는 좋지 않은 순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skt는 그 동안 여러 다른 사업자들의 공격에도 끄떡하지도 않고, 버텨왔지만 국내시장에서 배 두드리고 있는 동안 해외에서는 꽤나 밀려버리는 형세를 만들고 말았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겠지만, 인구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시장에서만 안주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결코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kt가 조금만 더 일찍이 해외시장을 공략했다면 지금의 모습과 어떤 차이를 가질까 생각해본다. 물론 skt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지금의 이런 위치가 그들의 노력과는 무관할 수도 있을 가능성은 있다.

1996년 1월에 세계최초로 cdma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되어있다.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신경쓰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같은해 6월과 7월에 꽤나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좋은 결과를 받아들고서 세계시장에 파고들었다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의 세계적인 대세가 CDMA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업실패의 위험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어설프더라도 해외 시장에서 CDMA 분야에서 세계 최초라는 점을 확실하게 이용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사실 96년에 사업에 뛰어들었다고해도 늦은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입자를 위한 로밍서비스 역시 중요한 기능이 되겠지만, 사실상 사업상 이유로 해외에 가는 사람들이나 일부 부유층이 아니면 초기 로밍서비스를 이용할 만한 사람이 있었겠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존의 가입자들에게 꽤나 좋은 기능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을 이용할 가입자가 얼마나 될 것이며, 그것에 의해 얻어지는 수익은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의 인구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업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왔어야 할 만큼 세계적인 순위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세계적인 시장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skt가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그 외의 분야에서 얻고 있는 수익들은 진정 돈은 저렇게 벌어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만을 위한 글이 되지 않도록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또한 본인이 간과하고 있다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 환영하겠다.

 

불장난..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몇번인가 해를 찍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카메라 동호회의 어느 회원이 올렸던 글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DSLR의 경우에는 영상을 디지털화 신호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태양을 찍게 되면 그 센서가 타버려 굉장한 비용을 들여야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쨌든 그런 생각 – 태양을 찍는 – 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어린시절의 불장난에 연관된 일화이다. 불장난을 꽤나 좋아했었다. 지난번
동생과의 사건일지(!)를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불장난으로 집을 홀라당 태워먹을 뻔한 일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렌즈가 필수라는 것은 다들 아실것이다.

렌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생각나시는가? 본인의 경우에는 돋보기이다. 돋보기를 통해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여러가지가 있다. 단순히 글자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도구 본연의 기능 외에도 꽤나 이러 저러한 용도로 활요하여 재미를 느끼 실 수 있다.

먼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서 보는 것이다. 꽤나 징그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하실만한 것들을 관찰 하실 수 있을 것이다. 피부에서부터 눈알까지 닥치는대로 한번 확인해 보시라. 그러나 이 때 주의해야할 것은 절대로 태양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눈의 검은자는 타기 딱 알맞은 색상이기 때문이다.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고 활동하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행동은 없다. 그만큼 검은색은 열을 잘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 잘 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눈의 검은자는 돋보기로 발생되는 집중열을 금새 받아들여서 단지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의 어린시절 친구의 친구는 그런 장난을 치다가 실명한 사례도 있으니 꽤나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해 볼 수 있는 것은 신문지를 태워보는 것이다. 일반 종이보다 기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면서, 활자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신문지만큼 잘 타주는 재료도 없다. 기름의 함량으로 치면 기름종이가 있지 않냐며 반문하시는 독자도 계시겠지만, 기름종이는 생각보다 잘 타지 않는다. 신문지야 말로 불장난하기에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다. 수 없이 돋보기의 집중열로 인해 타들어갔던 신문지들을 생각하면 소변이 마렵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을 여과없이 듣게 마련인데, 그러는 중에서도 과감하게 불장난에 임했다. 어른들의 말로는 불장난을 하면 이부자리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린다고 했는데, 불장난을 그렇게 심하게 했으면서도 지도 그린 적이 없다는 것에 웬지 모를 자부심을 가진다.

사진 찍을때의 요령(내셔널 지오그래픽스 기사)

출처 : http://blog.naver.com/maxjjw/110009503226

Bob Krist (“Danish Light,” July/August 1998)

– Pay attention to the quality of light and not just the subject.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 Shoot in warm light, around dawn or dusk.
해가 있을 때 찍으세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입니다.
– Always take a look at the edges of the view field.
언제나 시야의 가장자리(끝)를 주목하세요.
– Shoot plenty of film.
셔터누르는 걸 아끼지 마세요.
– Include a dominant element in the image.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마세요.
– Always carry a polarizing filter and tripod with you.
편광필터와 삼각대를 챙기세요.

Gail Mooney (“America’s Hometown,” July/August 1998)

-Be an observer. Be patient and watch life as it happens?then be readyto capture the right moments as they present themselves.
삶을 관찰하세요. 인내하며 무엇이 삶에 일어나는지 주목하세요. 그리고 제때에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을 준비를 하세요.
-Don’t bog yourself down with all the latest gadgets. The real art isbeing able to communicate and to understand what the message is.
최신의 기계(사진기? 렌즈?)로 당신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지 마세요. 진정한 사진(예술)은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공감가능한 것입니다.
-A lot of amateurs make the same mistakes: not thinking about whatthey’re shooting; not considering the light; staying on the outside andnot getting in where the action is; using a flash in a big interiorwhere it won’t do any good.
많은 아마튜어는 공통된 실수를 하곤 합니다. 뭘 찍고 있는지 생각치 않고, 빛을 무시하며, 그 상황의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머무르며, 도움도 안 되는 아주 큰 실내에서 플래쉬를  사용합니다.
– Never leave home without lots of extra batteries, a small flashlight, a compass, a magnifier, and a weather radio.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충분한 건전지, 작은 손전등, 나침반, 쌍안경과 작은 라디오를 챙기세요.

Jim Richardson (“Sojourn on a Southern Highway,” November/December 1998)

-Shoot more pictures and throw away the bad ones. You’ll try morethings: angles, exposures, and so on. The one way to get the photoright is to try lots of different approaches.
더 많이 찍고, 버리십시오. 구도와 노출값등을 바꾸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세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 The human eye sees differently than a camera, so try to imagine how that image will look in a photograph.
우리가 보는대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사진으로 찍혔을 때를 머릿속으로 그리세요.
– Don’t just point the camera at the scene. Try to create a sense of depth and put things in the image for scale.
눈에 보이대로 찍는 것만 하지말고,  깊이있는 감각을 만들도록 하고, 사진안에 스케일에 맞게 그것들을 집어넣으세요.
– Get up early and stay out late.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Force yourself to “think little” and to “think big” by doing close-upsand long shots. You’ll gain a lot in the process of looking for detailsand grand-scale images.
가까이 다가감으로, 롱 샷으로 보다 작게, 보다 크게 생각하세요. 디테일을 보는 것으로, 그랜드 스케일을 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 Try carrying a right-angle viewfinder and put the camera on the ground or up high on a ledge and experiment.
적절한 앵글 뷰파인더를 써보세요, 그리고 사진기를 아주 낮게 또는 아주 높게,  보는 눈높이를 바꿔며 실험해보세요.
– Meet the people you are going to photograph and establish a rapport before you begin shooting.
사진찍을 사람과 먼저 만나고,  친해지세요.
– Use wide-angle lenses for close-ups, because it’s easier to create a sense of perspective.
다가가서 찍을 때는 더 광각의 렌즈를 쓰세요. 원근감을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 Carry a compact folding reflector to illuminate objects in the foreground.
접는 반사판을 가지고 대상물에 앞에 낮은 곳에 두면 빛이 더 삽니다.
-When you are traveling, go to a souvenir shop and pick up a bunch ofpostcards for the place you’re visiting. It will let you see how others see each place so you can try to approach it more creatively.Invariably, you will also find something that you didn’t know wasthere!
여행에서는 관강상품 가게에서 그 지방의 엽서들을 보면 다른 이들이 보는 방법을 볼 수 있고 당신은 더창조적인 사진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지방에 있는지 몰랐던 새로운 장소나 볼거리를 찾을 겁니다.

Mark Thiessen (“Garden of Dreams,” January/February 1998)

– Try to get close enough to your subject to capture the important details.
중요한 디테일을 잡을 수 있게 대상에 충분히 접근해보세요.
-Experiment with different types of film in different lightingconditions. For example, try using tungsten film outdoors, perhapsusing a fill-flash with a daylight-to-tungsten gel taped over the head.
여러 상황에서 여러 필름을 여러 빛의 상황으로 실험하세요. 예를 들어 텅스텐 필름으로 야외에서, 아마 플레쉬를 이용해 머리위의 태양광과 텅스텐 젤 테입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Try using a fanny pack rather than a camera bag. It is not only lighter but safer while traveling in foreign countries.
허리색을 이용하세요. 가볍기도 하거니와 여행지에서 더 안전해요. 도난을 막아요.
– Take a tripod, which allows you to use slower speeds and longer lenses during twilight.
삼각대! 그것은 어두운 불빛에도 느린 스피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Bill Luster (“Brown County,” July/August 1997)

-Be as basic as you can in your equipment. Try to use just a camera, acouple of lenses, and not much more. It keeps you thinking about whatyou’re shooting.
단촐(!)하게 꾸려서 다니세요. 사진기 한개에 렌즈 두어 알에 몇가지 악세사리만 챙기세요. 촬영에 몰두할수 있게 도와줄거예요.
– Try to include people in every picture you shoot.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 집니다.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동생의 노래실력..

최근에 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받아 사귀고 있다. 사실 25살이 넘은데다가 어른들의 소개로 만난 것이라서 선 본 상대와의 만남이다.

쨌든 그동안 소개받았던 사람들과는 서로 성격의 차이나 사람의 캐릭터 등으로 인해서 잘 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생활 패턴부터해서 사람 됨됨이가 괜찮아서인지 꽤나 잘 되어가고 있다. 특히나 동생의 생활패턴이 독특하기 때문에 더욱 성사율이 낮았더랬는데,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는 좀 맞는듯 하다. 개인 사업으로 여행쪽일을 하는데, 주 5일이라 토요일엔 온전히 쉬고, 오전엔 그다지 일이 없는 편이어서 동생이 출근하기 직전 시간인 점심시간 즈음에는 둘이서 데이트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만남인것이다.

쨌든 이래 저래 말들은 건너뛰고 둘이서 노래방엘 갔었는데, 노래방에서 제공하는 기능 중에 녹음해서 웹에서 다운 받는 그런 게 있더란다.
그래서 그걸 음원파일로 만들어 보았다.
들어보시라.. ^^


어머님께서는 이 걸 멀리서 들으시고는 웬 새로운 가수가 부른듯한 착각을 일으키셨단다..
물론.. 본인은…?
박자도 조금씩 어긋남을 느끼며… ㅋㅋㅋ

사실 동생 삶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가사를 외웠다고 한다. 남자쪽에서 좋아한다는 곡이라는 이유에서란다. 흠… 상대방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인가.

입장의 차이

본인은 작은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임명되어 사역중에 있다. 교육 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교육 파트를 전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본인 같은 경우에는 정식으로 전도사 고시를 보지 않은 사람을 전도사로 임명하기 위해 교회의 목사님이 임의로 임명한 경우에 속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일단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라고해도 하는 일은 큰 교회와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조금 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안 계시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로 인해서 새벽예배, 수요일 저녁예배, 금요철야예배를 인도해야 할 상황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 불만을 쏟아내자 모친께서는 큰 교회의 부교역자 시절을 떠올리시며 말씀하셨다.

모든 교회들이 그런것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님께서 계시던 교회에서는 텃새(?)가 꽤나 심하다고 하셨다. 선배들의 압력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한 행동들이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는 물론이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도 수요예배 또는 금요철야예배 인도 및 기도는 커녕 새벽예배 때 조차도 마음대로 인도할 수 없도록 무언의 압력이 가해졌다고 하신다. 선배 목사님들이 인도하시는데 감히 자신이 인도하겠노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기도제목이었다. 하나님께 진정 간구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인것이다. 하나님 새벽예배 인도 하게 해 주세요! 진정 하고 싶습니다. 하는 식의 기도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서 겨우 얻었던 기회를 아들이라는 사람은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것을 입장의 차이라고 할까?

쿨픽 775여 안녕~

사진은 여러모로 추억을 담고 있다.
휴우…

[ 이 자리는 원래 사진이 있던 자리인데, 몇 번의 이사로 유실되었다.
1346172503.jpg ]

내 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가졌던 카메라이며, 디지털카메라였던 Nikon CoolPix 775로 찍었던 사진이 죄~ 없어져 버리고 달랑 한 장 남았다.
이 사진만이 남은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원인은 아무래도 불안정한 하드를 새로이 설치하면서 지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도 하드에 남아있는 것 외에 최초에 찍은 CD2장 분량의 사진은 백업되어 있다.

위에 남아 있는 사진은 천안에서 찍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달래려 크레이지아케이드 BnB라는 게임을 하던 시절에 온라인에서 자주 만나던 누님들과 만나기로 했던…. 이라고 치는순간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 잘려나간 버스의 뒤편에 새겨져 있는 수원여객이라는 글자!!

이로써 새로운 내용을 기억해 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왜 저 곳에서 찍게 된 것일까? 수원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을까? 기억이 조작되었다. 명확하게 어떤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2003년 4월 14일에 무슨일로 수원에 갔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연도별 월별 일자별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 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 찍었는지조차도 모른채 쌩뚱맞은 사진이 될 것이었다.

사진은 동영상과는 달리 정지된 모습안에 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고 머리속 영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 안에 있는 상황들을 예상하고 여러가지 다른 기억들과 대조하면서 기억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저 사진이 어떤 사진일까? 기억해 내는데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결혼에 대한 단상

내 이상형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일단 함께 살아갈 반쪽은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일단 기도를 잘한다는 것은 방언을 한다는 것인데, 이제 일반적인 초신자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했던 방언을 말하는데, 방언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필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기도를 잘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꽤나 노력하고 있으니 반려자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도로 서로를 중보하면서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기보다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더 높이 두어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의 학과장으로 계신 분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분께서 신부감을 고르실 때 선택 기준 중에 하나이셨다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을 잘 먹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이번 주 월요일에 마케팅 담당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어떤 여자를 이상형으로 두었냐고 물으시길래 “밥 잘먹는 여자요”라고 했더니, “돼지 키울 일 있냐?”고 하셨다. 그 상황에서 더 자세하게 말하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결코 과도하게 먹는 식탐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짧게 집고 넘어가겠다.

이런 여자를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데, 아버지께서 어머님을 선택하셨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잡수셨고, 그런 모습에 반하셨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건 눈에 콩깎지가 콱~ 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설명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야리야리한 아가씨들보다 그렇게 건강하고 밥 잘먹는 모습이 더 좋으셨기 때문에 조금은 저돌적인 청혼을 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밥 잘 먹으면 일단 건강은 따 놓은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밥 잘 먹는 여인네들은 성격이 원만한 편이며 성격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여성상은 대략 저정도 뿐이다. 거기에 외모도 좀 받쳐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다지 외모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귀어왔던 여성 동무들의 외모를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설명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사랑해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이성 선택의 기준은 결국 집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진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여성정도라면 어떤 여성이라도 – 상대 집안의 신앙과 불신앙 – 상관 없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 문화적 충격에 민감하신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은 예수쟁이라는 – 기독교인을 이르는 당시의 털털한 표현 – 딱지를 달고 불교인 집안에 들어오셨다. 당연히 시누들이나 시부모님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님이 시집온다는 말에 집안에서는 “예수쟁이 며느리를 얻으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억지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 그 시대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암 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변형 정도로 생각하고 말자. 그렇게 시집오셔서는 집안을 전도하시는데 20여년을 보내셨다. 이런 경험에 의해서 부모님들은 여자쪽의 집안도 모두 믿는 가정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할 것은 본인이 목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신학생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문화적 충돌을 얕잡아 보는 것은 심지어 이혼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르게 하기도 한다. 단지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으로 결혼생활은 원만히 마무리 되지 않는다. 술, 제사, 기타 집안행사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해 다투게 되고 그런 것들로 불화를 겪는 가정은 적지 않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다른 기독교인들에게마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들어보자면 그 문제성은 더욱 심도를 가진다.

뭐.. 이런 저런것 다 따지다 보면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나이에 이르르니 별 수 없다. 본인의 연애관은 일단 쿨하게 시작하고 맺음도 깔끔하게 하자는 것이다. 누군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단 그 사람에게 확실히 말해둠으로써 더욱 깊어질 정으로 인해 상처가 커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그 순간에는 상처가 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까지 방치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본인은 80년생(27세)이고 위로 6살 아래로 6살까지 커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 소개가 아닌 자신이 그런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면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권력 앞에 무릎을 꿇다.

대추리에 새로운 군사시설은 필요 없다

9월 13일 주택 강제철거는 오후 4시쯤에 끝났다. 인가가 무너질 때 배추밭까지 밟혀 망쳐진 할머니는, 손을 꽉 쥐며

지금부터어떻게 되겠지. 일본군에 쫓겨나고 해방 후엔 미군에 내쫓겼는데 또 나가라니. 나는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은 것뿐인데

라고무너진 집 더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소한 바람은 그것으로 무너져 내렸다. 인간이 사는 곳엔 어디에나 권력이 있기 마련이다. 형태의 유무를 떠나서 그것은 그 자신 외의 것을 압제한다. 군이라는 존재는 더욱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집단이다. 대한민국 공권력은 미국이라는 힘 앞에 대리인의 자격으로 철거를 서두른다.

미군기지 확장은 단지 그것이 군사적 계획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별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을 문제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이미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주민이 있는 지역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행위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있다.

이촌향도의 흐름은 농민을 소외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고 수 많은 집단들이 생겨난 깨끗한 도시의 인간들은 그들이 떠나온 곳에 무신경한 시선만을 보낼 뿐이다. 아니 시선조차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끝 없이 이기적이다.
아… 이 부정적인 말들의 근원은 어디란 말인가! 

인간이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집안의 치부를 드러내어 스스로 먹칠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 사항을 먼저 밝힌다.

우리 집안은 꽤나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조부님은 인물도 괜찮으셨고, 재물도 적당히 있으셔서 조부님의 먼저번 조모님께 얻었던 두 딸이 있으셨고, 사별 후 함께 살고 계시는 조모님과 재혼하셔서 딸 하나에 두 아들을 얻으셨다. 게다가 첩까지 얻으셔서 아들들을 낳으시어 함께 살아내셨다.

참… 창피한 집안사이지만, 낮에 조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연계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조모님께서는 조부님과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두 따님들을 당신이 직접 낳으셨던 것처럼 키워오셨고 얼마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며 대해오셨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부터도 차별하지 않으셨으며,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그 두 딸들에게 있어서 조모님은 그렇지 않았더라면서 속내를 손자인 내게 털어놓으셨다.

조모님께서 젊은 시절 그 두 따님들을 키우면서 주변에 동생 되시는 – 친동생이 아니라 조모님의 퍼주시는 성격으로 인해 생긴 동생 – 분께서

“누님, 저 아이들에게 너무 잘 해주지 마쇼. 누님이 생각해 주는 것만큼 누님을 엄니로 생각하는줄 아시면 크게 마음 상하셔라..”

그러나 조모님께서는 그런 동생을 꾸짖으시며 그렇지 않다고 하셨단다. 조모님께서는 꽤나 정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도 어려운 생활 형편 가운데서도 뭔가를 부지런히 만드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눠주신다. 조금 더 털털한 표현을 빌자면 “막 퍼주신다”. 그런 조모님 곁에서 자라온 결과 그렇게 하셨으리라는 것을 쉬이 떠올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시면서 두 따님들이 아버지께 대했던 내용을 들으셨단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만나시고 얼마 되지 않아 연애하시면서 서울로 올라가셨더란다, 어찌 저찌해서 돈이 다 떨어져버려서 고모님께 가서 돈좀 빌어달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모님께서는 야박하게도 없다고 하셨더란다. 이웃사람이 와서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주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와서 빌어달라고 하는걸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수가 있을까? 사실 그 부분에서 그네들에게 가진 남은 조그마한 정을 다 털어내버렸다. 이미 그들에게는 정을 가지지 않았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졌던 그 잔정마저도 뚝 떨어진다.

사실 최근에 고모님들의 행동에서 이미 떨어져 가던 정이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께 된장을 담아 달라며 그 먼거리를 – 부천에서 의정부 – 오라고 하시는 사건만 해도 개인적으로 꽤나 정 떨어지는 사건이다. 요즘 세상이야 이런 저런 더 심한 일들도 서슴 없이 일어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되먹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조모님을 찾아와서 담아가지구 가져가도 욕먹을 행동이 아니던가. 함께 만들자는 것도 아니도 일방적인 요구다.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두 사람의 연령을 생각해보면 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모녀지간이라는 특별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를 먹으면… 더 철이 없어지는 것일까.
더 바르게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학문의 터…

교육의 상품화??란 포스팅을 보면서 본인이 다니고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용의 것이어야 할 물마저도 자본원리에 의해 지배 되는 세상([에뿌키라] 당신들만의 천국-FTA 블루골드를 삼키다)에서 더 이상 학교라는 공간이 학문 연구만을 위한, 학생을 학자로 키워내기 위한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공간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찌라시의 의견에 공감한다.

신학교로 시작된 학교는 이제 7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종합대학으로의 변모를 꿈꾸고 있다. 과정을 짧게 살펴보자면, 신학만을 가르치던 학교는 그들의 기본 종교인 기독교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회복지학과를 증설한다. 여기까지의 발전에 대해서는 꽤나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대학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 더 규모가 있을 필요가 발생 된다. 규모는 영향력과 비례하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추측해 본다. 이런 이유로 학교의 교육부 등록을 완료하고, 몇 개의 학과를 증설하면서 종합대학으로써 상품화 한다. 일단은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해두자.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로 움직이고 있는 학교의 본모습을 잃어간다는데 슬픔을 감출 수 없다. 새로이 증설된 학과들은 자신들의 취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교 이름의 변경을 요구하고,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생활 기준을 개인 기호의 자유라는 이유를 들어 무시해버린다. 물론 학교측에서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한 노력들 가운데서 자존심마저 버리지 않기위해 학교 이름 변경 요구에 거부 반응 또는 무반응으로 표현해 낸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력을 교육기관의 상품화라는 면에서 접근해보자면,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자존심의 존립을 위해 상품화의 방해요소를 방치해 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한 몫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앞서 밝힌 상품화를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종합대학으로 변해가면서 발생되는 문제들은 스스로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 내야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들을 비판하고 배척하기보다는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본인을 포함한 재학생들의 사명만은 아니기에 후배 재학생들에게도 권면해 나가야할 의무도 병행한다.

아프다는것..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아프기 마련이다. 육체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저번주에 학교에서 주관하는 추계신앙수련회를 다녀오면서부터 토요일까지 무리하게 활동했다. 신앙강좌때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그렇게 밤새다시피 마지막날을 보내고 나서 수원 본성전에서 청년들 일하는것 도와주기로 한 것이 있어서 카페 오픈에 필요한 소품제작이랑 조명설치를 도와주느라 밤을 꼴딱 새버리고, 그리고는 양평에서 있었던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문제는 그렇게 결혼식을 다녀온 후부터였다. 결혼식에 다녀오는데 머리가 멍해지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틀밤을 새다시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간간히 잠도 자보고 차에서 내려 손운동도 좀 해 보고 했지만, 별반 나아지질 않았다.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서는 꽤나 정확한 판단을 하는 본인에게

아! 정말 많이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육체적인 아픔이 있기 시작한다는 신호는 목으로부터 확인된다. 피곤하다거나 몸살이 나기 시작하면 목부터 아파오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수원으로 가는 동안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100Km이상을 달려야 기분이 나는 사람에게는 난 장애물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쨌든 문제는 그렇게 시작된 몸살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주일을 보내면서 예배 중에 자는 것과 다름없이 졸아서 참 많이 민망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도 도통 나아지질 않는다. 본인은 잔병은 없지만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된통 아픈 타입이다. 그런데도 무식하게 어금니 꽉 깨물고 참는다. 그런데 이번엔 장난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가족들은 걱정하면서 약 먹으라고 권유했지만, 역시나 조금 괜찮아질듯한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참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까지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몸살 감기약을 먹고 났더니 조금 괜찮아졌다는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몸에 열도 나고 뒤통수도 뜨겁다.

휴우… 뭔가… 더 정신없다.
워낙에 산만하고 정신없는 사람이지만, 평소 보다 훨씬 더 제정신이 아닌듯 생각된다.

오란고교 해피앤드..

역시나 해피앤드!
이제서야 완결편을 봤다.
이미 다 봐서 재미없어하는 분이라면 아래의 내용은 패쓰!
쨌든 여러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 아니 이미 결과를 예상해버렸겠지만 – 좋은 결말을 가진 애니다.
해피앤드 작품을 보노라면 이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우울함을 더해준 사건이 생각난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일단 작품으로서는 괜찮은 편에 속하지만, 꽤나 어려운 사회상황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의 쓴맛을 되뇌이게 만들었다는데서 악평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면 난 이번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결말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좋지 않은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기에는 그동안의 사건들이 지나치게 엉뚱했다고 생각된다. 여러 작품들의 패러디 정도로 끝나버리는 애니메이션이 있는가하면, 적절히 그런 진부함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쨌든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오란고교의 해피엔드이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본인이 스스로에 대해 내리고 있는 착각정도의 작은 생각 중 하나는 엉뚱하다는 것이다.

뭔가 엉뚱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그런 것에서 차이를 가지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엉뚱함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름없게 된다는 것에 대해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면서 사회전반적인 일반 이라는 기준에 밎춰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신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일반적인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후에는 어떻게든 매장당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계열로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꽤나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본인의 미래 목표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그 슬픈 미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본다.

쨌든 이러니 저러니해도 좋은 결말은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을… 그렇지!

초등학교 1학년, 8시간 공부?

나의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으로도 잘 알려진 자녀들에 대한 학습욕(!)이 대단히 높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일화를 들어 어머니의 학습열에 대해 살펴보고 본문을 시작하도록 하자.

보실까나?

본인의 모친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그 작은 –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 곳에서 결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승부욕(!)은 다른 초등학생들과는 다른 열정을 가지시도록 만드셨다.

그 시절의 시골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부모님들의 농업을 도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어머니께서는 밤에 불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셨다. 게다가 어머니의 형제들은 9남매라는 거대 인원인데, 그 중 맏이 셨던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을 보살피셔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선택하셨던 방법이 각성제였다. 잠 안 오는 약으로 알고 드셨던 그 약을 통해서 밤새어 공부하셨더란다.
그럼 이쯤에서 어머니의 과거사 이야기는 접어두고, 본인의 과거사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그렇게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던 어머니는 우리들(동생과 본인)에게도 높은 수준을 요구하셨더란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왔던 전과는 대략 5가지쯤 또는 그 이상이었는데, 그 모든 전과&학습지를 사셔서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을 학습시키셨더란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8시간동안 그 초등학교 1학년 생이 버텨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이 학습 성취도가 낮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니는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고 생각된다.

쨌든 중고등학교 및 초등학교 2학년시절부터 꽤나 존재감이 없었던 학습에 대한 압박을 생각해보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은 어머니의 그 승부욕을 학교 성적에 두었고, 본인의 경우에는 PC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결과로 현재의 삶에 나타나 있지만, 결코 후회될만한 결과는 아니다.

별 것 아닌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지만, 어머니께서 그대로 그런 학습욕을 본인에게 요구하셨더라면 지금은 어떤 결과로 나타났을까?
어머니의 설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런 욕심이 사라지셨기 때문에 본인과 동생이 편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하신다. 규모가 크건 작건 집단이라는 곳에서는 소문이라는 것이 있었을테고, 기도 좀 하신다는 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런 분들 가운데 한 분께서는 어미님께 “하나님께서 맡기시라고 하시네요”라는 말로 본인을 구원하셨단다.

그랬더니 8시간의 공부를 시켜서 나왔던 성적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결과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 달에 바로 그만두실 수 있었단다.

뭐.. 그런 본인에게도 공부에 대한 욕심은 장기적으로 존재해왔다. 언제나 그만두지 않는다. (켈룩…) ㅡㅡ;;

잠과의 전쟁..

와~ 수업시간마다 잠과 전쟁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봄도 아니고 밥 먹은지도 꽤나 되었는데도 잠이 온다는 것은 수업에 관심이 떨어져서 일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구 수업에 임하고 있음에도 머리가 멍해지고 잠이 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하는 것인가.
최근들어서 이러저러한 작업들로 인해서 잠을 좀 못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정신력이라는 것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참고 있지만 오히려 참으려고 노력하는 뇌활동이 더 자게 되는 원인이 되어 버리는것은 아닐까.

잠은 언제나 생활에 장애를 가져온다.
수업시간에 졸게 되면 그 부분이 건너띄어지고 그 순간의 지식 습득 장애로 인해 이어지는 수업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러버린다면 대박인것이다.

하아…
졸고 싶지 않은데, 졸아버리고 말아버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오란고교..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문답하는 히카루와 쿄우코

하루히 : 저기… 학원제라면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수작업 성향이 강하다고 할까? 전부 수작업으로 준비하지 않나요?

쿄우야 : 그건 일반학교에서나 그렇겠지. 이 오란제에서는 중요시되는건 기획력이랑 통솔력이야. 이 곳 학생들 대부분이 장래에 리더가 될 자질을 기대 받으며 그 힘을 어필하도록 요구되지.

쿄우야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기업 후계자들이 주로 학생으로 있는 학교(학원)이다.
이미 애니 초기에서부터 그런 곳에 서민인 하루히의 등장으로 서로의 차이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여러가지 들이 있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게 될 만큼이나 일반의 학원코믹물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차 가볍지만은 않았던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5화에서 26화의 내용을 잠시읽을 수 있었다. 이미 26화의 내용을 본 사람들의 증언인지 제작사의 사전 공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하루히가 아닌 에크레르를 선택해야하는 결말이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의 평도 봤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알고 있어도 직접 보지 않으면의미가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역시나 기대되는 결말이다.

이 글에 근거하여 결말을 지어버린다면, 가문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버려야 하는 그들은 어떤가. 얼마전 삼성의 여식이었던 그녀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더 비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꼭 부한 것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하루히 뒤의 스오우, 그리고 쿄우코

그런데 파인애플이라니… (털썩..)

딴지거는 것에 대해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간접광고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기 위한 것일까?

뭐.. 애니를 보면서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나로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

쨌든, 오란고교 호스트부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부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수 있었으니, 이것으로 간접경험이 만족되려나?

다소 허구의 정도가 강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공간을 통해 간접경험이라니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들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한 인간 심리 파악이 무기였기 때문에 부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25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타마키의 행동인데, 우리가 얼마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자만을 쉽게 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본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한 성격 중 하나가 진짜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쓰고 악한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면 낭패겠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벽 같은게 자동설정되어서 그 사람으로하여금 cansmile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고 예측하는 것을 어긋나게 해 버리는 엉뚱함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타마키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조금 닮아있다.

쨌든 지금 예상하고 있는 대로의 결말일찌라도 직접 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기대한다.

과식…

과식은 단기적으로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비만과 기능 저하의 원인이 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알 리스, 잭 트라우트, 박진부, 서울 : 십일월출판사, 1998] 에 나오는 문구 중에 하나이다. 기업이 할인행사, 쿠폰제 등을 사용하는 것이 짧은 기간동안에 수익을 올려주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많은 비용의 지출 또는 수익의 감소 등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내용 중에 등장한 말이다.

과식에 대한 것의 폐해를 머리로는 이해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저녁에 먹지 말아야지 하고는 어느새 손에 들려있는 음식거리를 보면서 난 역시 안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왜 그렇게 모질지 못한거냐!?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머리 속에서까지 포기해버리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들을 소유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과대 비만 상태에 까지 이르를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간단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줄넘기 20분씩이라도 해야겠다. 검색 결과중에 줄넘기 20분 하는 것이 걷기 운동 90분 한 것만큼의 열량을 소모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았다.
일단 체중이 어느정도 빠지고 각 관절들이 버거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예전처럼 천대로 줄넘기 해야겠다

아~ 옛날이여!  

경영활동과 고객

마케팅을 배우는 중에 기업의 경영활동의 주요 항목들과의 관계에서 마케팅 비중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그림에서도 나타나지만 마케팅은 점차 기업 경영활동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중심에 고객을 위치시키게 된다.

마케팅의 비중 변화

이런 마케팅의 입지도를 통해 오늘날의 고객 – 이전의 소비자라고 불리우던 것과 구분하여 – 들은 기업 경영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었다.

자동차 동호회의 입김에 관련된 기사를 보는 중에 이론을 실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실제로 최근의 대기업들은 SKT를 시작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삼성의 경우에는 고객은 거의 왕수준으로서 노발대발 우기면 새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고객이라는 것과 경영이라는 것의 연관도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닌 연령, 성별, 학력 등의 기준을 통해 세분화되어 관리되고 있는 고객을 기업은 무서워하기에까지 이르른것이다. 그런 기업의 태도는 고객을 더욱 적극적이게 만들어주게 된다.

얼마전까지 서비스 업종에서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최근의 그런 기업 태도는 실무자들로하여금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만큼 고객들은 편하고 자신의 심기를 편하게 모든 대우를 받는 것이다.
당해본 사람이 안다고 이전의 CS(Customer Service) 엔지니어들을 대하던 태도와 지금의 태도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딴 소리를 하자면,

서비스직으로 일하다보면 매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다양하고 충격적이게 겪게 된다. 개중에는 진짜 미친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 내고 받는 것인데 그만큼 누려야 한다는 것이리라.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세상에 사람을 믿으라더니..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에 이렇게 후회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9월 11일에 E. N미디어 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2004년 8월 경에 잡지를 구매했는데 그 때 발생한 개인 정보를 삭제해 준다는 내용이었다(이미 이 때부터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드는건…). 그러면서 당시에 계약하기를 2회분을 계약 했는데, 당시에 제가 대금 결제 능력(카드 한도)이 전액을 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반만 결제하고 계약한 물품 중 반만 받았고, 다음달에 반을 더 결제하고 받았어야 하는데 그 당시 담당자가 병가를 얻어 장기 휴직이었다가 퇴사해서 이제서야 전화를 했다며 그 당시에 결제하지 않은 부분을 지금 결제하고 물건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영어 잡지를 구매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나는데 결제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더니 자신들이 통화한 내용이 전산에 남아있다면서 확실하다고 하면서 결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드사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더니 기록이 없으면 자기들이 어떻게 알고 전화했겠냐고 따지길래, 어쨌든 전 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니 확인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최근 6개월의 기록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회사 ARS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까지 연결해서 확인해 봤지만 당시의 그만큼의 액수(30만원 대)로 결제된 내역이 없다고해서 내역을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잡지 회사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통보했더니 언제쯤 연락을 주면 되겠냐고 물어와서 그 다음주 쯤이면 도착할테니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음주 월요일이 되었고, LG카드 내역서와 BC카드 내역서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날 연락이 왔다. 확인 못해서 아직 안된다고 했더니, 자기도 곤란한 중에 일주일정도를 기다렸는데 다시 한번 기억해보라면서 자기도 상급자에게 독촉받는 형편이라고 했다. 일단 결제해도 내역이 확인되면 취소해 준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하고 결제를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LG와 BC카드 내역서가 도착해 있어 확인해 보니 그 둘 어느곳에서도 30만원대의 할부 또는 일시불 사용 내역이 없는 것이다!
확인한 시간은 이미 10시가 가까왔고, 이런 저런 생각들로 한시간을 보냈다.
아! 이거 진짜.. 미쳐버린듯하다. 소비자 보호원에 확인해서보니 청구 취소를 할 수 있는 내용증명서류 양식이 있어 작성해 두었다.
아침에 날이 밝이 업무시간이 되면 핸즈프리와 MP3를 연결해서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내용증명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남 등 쳐먹고 돈 벌면 마음이 편하지만도 않을텐데…
하아… 나란 인간은 어찌 이리 멍청한지 모르겠다.
자괴감마저 들려고 한다. 휴우…

생각, 사고, 고뇌

상대방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원하는 것을 획득한다.

꽤 나 재수 없다고 생각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어떤 목적에서든지 사람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이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으로부터 얻기 위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최근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카툰이 하나 더 늘었는데, 그것은 죽는 남자이다. 죽을 날이 90여일밖에 남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인데, 죽기전에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있는 50대의 거대 기업의 중견간부였던 사람에게 자포자기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요구받은 노인은 고민 끝에 자신의 가족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인공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했던 일은 무엇인가. 생각이다! (사 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생각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상(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전략과 전술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나 지금의 나에게는 더욱 더 필요하다. 31화를 보려고 클릭한 순간, 득도한 듯한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떠 오른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각인것이다. 다시 말해 떠올리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떠 올린 것을 다른 것으로 이어가고 무형의 구조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게 생각이다.
내 머리에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하게 된 때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특정 분야인 컴퓨터쪽으로는 언제나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은채 개념을 가출시켜버린 일상의 반복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그 순간부터 한시라도 뭔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하기 힘들다.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그로 인해 머리가 폭주해 버린 것일까. 과부하 걸린다는 표현으로 정리하고 싶은 현상이 있는데,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PC에 과부하 걸려서 다운되는 듯한 현상이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잠들어서, 어느새 눈을 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버린다.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 생각을 지속하다가 과부하걸려버리는 그런 경험말이다.

개발자 그들은…

20살, 갓 20대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였지만, 역시나 고등학교 때 입사해 놓은 회사를 그만두기는 힘들었다.
그 때는 실력이 형편 없는 –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지만 – 웹디자이너였다. 프로그래머가 따로 없으니 당연히 프로그래밍도 혼자 다 처리해야 했다. 회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사장이라는 사람은 꽤나 개방적이었다. 미국에서 적잖이 살다 나온 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안 사람되시는 분이 대표로 되어있는 세탁소를 여럿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장님과는 서울로 사무실이 옮겨지게 될 때까지 함께 일했는데, 당시 회사에서는 PDF와 관련된 기술을 삼성에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개발중이던 훈민정음에 해당 기능이 들어갔었다. 그 분야를 개발하던 분이 계셨는데, 머리가 희끗한데다가 꽤나 나이를 먹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구부정한 형태의 몸을 가졌다. 그 분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전형적인 프로그래머 상이라는 것이었다.

반평생을 – 최소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 프로그래밍에 젊은 시절을 다 바쳐서 지금의 나이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에 감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 불쌍해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젊은 날을 한가지 일에 열정을 다해 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그의 모습에서는 경력을 입증할만한 어떤 태도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전에 어떤 블로그에선가 프로그래머에 대한 글을 접했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머리가 희끗 희끗한 장기 경력의 프로그래머들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상 주변(명확히는 한국)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나이 들어 할 만한 여건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30대 전후로 개발 관리자로 승진하거나 다른 분야로 전향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지인 중에 현재 성악을 전공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을 예로 들자면, 그분도 젊은 시절 대학에서 프로그래머로써 열정을 다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2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하려는데 생계에 대한 부담이 압박하더란다. 과연 이 걸로 이 여자(형수님)를 밥 벌어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고민 끝에 일반의 다른 직종으로 전향했다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개발자는 헝그리한 직업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되새김질 되었다.

안그래도 배고픈 직업인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더욱 그들을 괴롭힌다. 경쟁을 위한 촉박한 납기일, 무개념의 경영자들로 인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재촉해서 좋을일이 없다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니, 비단 개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빠르게 처리하면 시간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발에 있어서 그것은 매우 많은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안정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개발자(프로그래머)가 있다면 그들의 고뇌를 들어보시라!
주변에 경영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말씀하시라!
그들의 개발에 대한 가출한 개념을 찾아와 정비할 수 있도록..!

교촌 치킨… 짜요!

오늘 모임이 있어서 친구네 집에서 몇 명이서 모였는데, 저녁을 못 먹었을 것 같다는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2가지 품목을 배달해 왔다.

교촌 치킨을 처음 먹어본 건 군에서 영천으로 출장 갔을 때인데, 영천에서 하루밤 묵어야 될 일이 있어서 자고 기차를 기다리는 데 아침도 못 먹고 해서 밥 먹을 곳을 찾았는데, 금새 먹을만한 집들이 열려있는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게 찾은 곳이 교촌 치킨인데, 나름 1마리 정도쯤이야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성을 가지고 있기에 일단 한 마리 해 달라고 했다.

사실 처음 보고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왜 인지는 먹어보신 분들만 아시리라.. 게다가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인데 간장 소스에 튀긴것이라 참… 짰다. 먹다보면 그 감각이 둔해져버려서 모르게 되지만, 일단 첫 맛이 짜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간장소스니까.

아까 먹었던 2가지 종류의 치킨 중에서 간장 소스가 아닌 것을 먹었는데, 그건 맵고 참 맛있었다. 간장 소스는 여전히 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그게 그 치킨의 특색이겠거니하고 맛있게 먹어줬다.

아… 좀 덜 짠 교촌은 없는것인가…
그럼 그 특색이 사라져버려서 인기가 없어지려나…역시 닭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

마케팅 전쟁

마케팅 과목의 과제로서 읽고 있는데,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적자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배우는 21세기 마케팅 행동원칙(Al Ries and Jack Trout, 차재호 옮김, 2002, 서울:비즈니스 북스)

이 정도 되시겠다. 지금 3/5정도 읽은 상태에서 잠시 정리해보자면, 대충 주제는 집중으로 요약된다. 어떤 전략이든지 집중과 연관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글 쓴 사람들이 의도한 바가 그것이 아닐지라도 일단은 여러 주제들의 글들에서 ‘집중‘이라는 주제는 나타난다. 회사의 경영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능력이 되지 않는 확장은 도산의 지름길이라는 내용의 문단들을 자주 발견하게 됐는데, 사람의 인생 역시 같다고 생각된다.

본인은 욕심이 많은 편이라서 이것 저것 하고 싶은것들도 많았고, 지금도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얼마나 하고 싶은것들이 많았는가하면 스스로도 꽤나 변덕쟁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지금이야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했지만 사실상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는 분야가 몇 가지가 된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남는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한 가지라도 무엇인가를 하면서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지 아니할 수가 없다. 얻었다는 것은 발전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 중 하나는 역사를 알고 연구하면 지금의 세대에 대해 어느정도 통찰력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관련 사례들을 통해 유사점을 발견해내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효과중의 가장 큰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경영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통찰력’을 획득 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희망이었기 때문에, 통찰력은 본인의 관심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심리학을 위해서 점수 따기 좋은 컴퓨터 과목이 있어서라는 것은 편하게 말하기 위한 이유라고나 할까. 진정한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약점이 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약간은 재수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쨌든, 이 책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도 적잖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일! 끝도 없어..

뭔가 일을 만들어내는데에는 천재적이라고 자부할 만큼 지루할 틈이 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건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다른 말로하면 쉴틈이 없다는 것인데, 지루한 걸 싫어하는 편이어서 뭔가 일을 만드는게 무의식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뭔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는 편이어서 도와줄 능력과 시간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도와주겠다고 해버리니, 이거 일 = 생활 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다.
바쁜게 좋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쳇바퀴를 굴리는 다람쥐 같은 느낌이 들어버리면 이거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같이 학기가 시작되어 과제들이 치고 밀어 들어오는 가운데에서도 일을 만들어 버리니 스스로도 미칠 지경인 경우도 적잖이 발생해 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은 감당할 정도만 일을 만들기 때문에 즐겁다. 즐겁지 않더라도 흥얼 흥얼 가만히 앉아서 일들을 처리한다.

밤새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지난날의 경험들로 인해서 뭔가 붙잡으면 밤 새는건 기본이고, 다음날 일정을 잠도 없이 쭉 처리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이라는 것을 한 살 먹어버려서인지 적잖이 무리가 된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작년까지는 밤새 달려 놀기에도 뭔가 붙잡고 하기에도 무리 없었는데, 나이가 먹어서라기 보다는 운동의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운동도 한다 한다 말만 늘어놓고는 제대로 되어지지를 않는다. 네이버로부터 퍼온 초기의 포스팅처럼 무식하게 운동할 때도 있었지만, 한번 귀찮아져버리니 쉽게 귀찬음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뭐… 쨌든 일 하는건 즐겁지만 스스로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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