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몇번인가 해를 찍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카메라 동호회의 어느 회원이 올렸던 글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DSLR의 경우에는 영상을 디지털화 신호로 바꾸어야 하기 때문에 별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태양을 찍게 되면 그 센서가 타버려 굉장한 비용을 들여야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쨌든 그런 생각 – 태양을 찍는 – 을 할 때마다 생각나는 일화가 있는데, 어린시절의 불장난에 연관된 일화이다. 불장난을 꽤나 좋아했었다. 지난번
동생과의 사건일지(!)를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불장난으로 집을 홀라당 태워먹을 뻔한 일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렌즈가 필수라는 것은 다들 아실것이다.

렌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것이 생각나시는가? 본인의 경우에는 돋보기이다. 돋보기를 통해 할 수 있는 장난질은 여러가지가 있다. 단순히 글자를 확대해 볼 수 있는 도구 본연의 기능 외에도 꽤나 이러 저러한 용도로 활요하여 재미를 느끼 실 수 있다.

먼저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의 신체 일부를 확대해서 보는 것이다. 꽤나 징그러운 장면이라고 생각하실만한 것들을 관찰 하실 수 있을 것이다. 피부에서부터 눈알까지 닥치는대로 한번 확인해 보시라. 그러나 이 때 주의해야할 것은 절대로 태양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눈의 검은자는 타기 딱 알맞은 색상이기 때문이다.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고 활동하는 것만큼이나 미련한 행동은 없다. 그만큼 검은색은 열을 잘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또 잘 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눈의 검은자는 돋보기로 발생되는 집중열을 금새 받아들여서 단지 안과 진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인의 어린시절 친구의 친구는 그런 장난을 치다가 실명한 사례도 있으니 꽤나 주의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해 볼 수 있는 것은 신문지를 태워보는 것이다. 일반 종이보다 기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면서, 활자가 적지 않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신문지만큼 잘 타주는 재료도 없다. 기름의 함량으로 치면 기름종이가 있지 않냐며 반문하시는 독자도 계시겠지만, 기름종이는 생각보다 잘 타지 않는다. 신문지야 말로 불장난하기에 최적의 재료라 할 수 있다. 수 없이 돋보기의 집중열로 인해 타들어갔던 신문지들을 생각하면 소변이 마렵다.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의 말을 여과없이 듣게 마련인데, 그러는 중에서도 과감하게 불장난에 임했다. 어른들의 말로는 불장난을 하면 이부자리에 오줌으로 지도를 그린다고 했는데, 불장난을 그렇게 심하게 했으면서도 지도 그린 적이 없다는 것에 웬지 모를 자부심을 가진다.

사진 찍을때의 요령(내셔널 지오그래픽스 기사)

출처 : http://blog.naver.com/maxjjw/110009503226

Bob Krist (“Danish Light,” July/August 1998)

– Pay attention to the quality of light and not just the subject.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 Shoot in warm light, around dawn or dusk.
해가 있을 때 찍으세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입니다.
– Always take a look at the edges of the view field.
언제나 시야의 가장자리(끝)를 주목하세요.
– Shoot plenty of film.
셔터누르는 걸 아끼지 마세요.
– Include a dominant element in the image.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마세요.
– Always carry a polarizing filter and tripod with you.
편광필터와 삼각대를 챙기세요.

Gail Mooney (“America’s Hometown,” July/August 1998)

-Be an observer. Be patient and watch life as it happens?then be readyto capture the right moments as they present themselves.
삶을 관찰하세요. 인내하며 무엇이 삶에 일어나는지 주목하세요. 그리고 제때에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을 준비를 하세요.
-Don’t bog yourself down with all the latest gadgets. The real art isbeing able to communicate and to understand what the message is.
최신의 기계(사진기? 렌즈?)로 당신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지 마세요. 진정한 사진(예술)은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공감가능한 것입니다.
-A lot of amateurs make the same mistakes: not thinking about whatthey’re shooting; not considering the light; staying on the outside andnot getting in where the action is; using a flash in a big interiorwhere it won’t do any good.
많은 아마튜어는 공통된 실수를 하곤 합니다. 뭘 찍고 있는지 생각치 않고, 빛을 무시하며, 그 상황의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머무르며, 도움도 안 되는 아주 큰 실내에서 플래쉬를  사용합니다.
– Never leave home without lots of extra batteries, a small flashlight, a compass, a magnifier, and a weather radio.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충분한 건전지, 작은 손전등, 나침반, 쌍안경과 작은 라디오를 챙기세요.

Jim Richardson (“Sojourn on a Southern Highway,” November/December 1998)

-Shoot more pictures and throw away the bad ones. You’ll try morethings: angles, exposures, and so on. The one way to get the photoright is to try lots of different approaches.
더 많이 찍고, 버리십시오. 구도와 노출값등을 바꾸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세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 The human eye sees differently than a camera, so try to imagine how that image will look in a photograph.
우리가 보는대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사진으로 찍혔을 때를 머릿속으로 그리세요.
– Don’t just point the camera at the scene. Try to create a sense of depth and put things in the image for scale.
눈에 보이대로 찍는 것만 하지말고,  깊이있는 감각을 만들도록 하고, 사진안에 스케일에 맞게 그것들을 집어넣으세요.
– Get up early and stay out late.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Force yourself to “think little” and to “think big” by doing close-upsand long shots. You’ll gain a lot in the process of looking for detailsand grand-scale images.
가까이 다가감으로, 롱 샷으로 보다 작게, 보다 크게 생각하세요. 디테일을 보는 것으로, 그랜드 스케일을 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 Try carrying a right-angle viewfinder and put the camera on the ground or up high on a ledge and experiment.
적절한 앵글 뷰파인더를 써보세요, 그리고 사진기를 아주 낮게 또는 아주 높게,  보는 눈높이를 바꿔며 실험해보세요.
– Meet the people you are going to photograph and establish a rapport before you begin shooting.
사진찍을 사람과 먼저 만나고,  친해지세요.
– Use wide-angle lenses for close-ups, because it’s easier to create a sense of perspective.
다가가서 찍을 때는 더 광각의 렌즈를 쓰세요. 원근감을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 Carry a compact folding reflector to illuminate objects in the foreground.
접는 반사판을 가지고 대상물에 앞에 낮은 곳에 두면 빛이 더 삽니다.
-When you are traveling, go to a souvenir shop and pick up a bunch ofpostcards for the place you’re visiting. It will let you see how others see each place so you can try to approach it more creatively.Invariably, you will also find something that you didn’t know wasthere!
여행에서는 관강상품 가게에서 그 지방의 엽서들을 보면 다른 이들이 보는 방법을 볼 수 있고 당신은 더창조적인 사진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지방에 있는지 몰랐던 새로운 장소나 볼거리를 찾을 겁니다.

Mark Thiessen (“Garden of Dreams,” January/February 1998)

– Try to get close enough to your subject to capture the important details.
중요한 디테일을 잡을 수 있게 대상에 충분히 접근해보세요.
-Experiment with different types of film in different lightingconditions. For example, try using tungsten film outdoors, perhapsusing a fill-flash with a daylight-to-tungsten gel taped over the head.
여러 상황에서 여러 필름을 여러 빛의 상황으로 실험하세요. 예를 들어 텅스텐 필름으로 야외에서, 아마 플레쉬를 이용해 머리위의 태양광과 텅스텐 젤 테입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Try using a fanny pack rather than a camera bag. It is not only lighter but safer while traveling in foreign countries.
허리색을 이용하세요. 가볍기도 하거니와 여행지에서 더 안전해요. 도난을 막아요.
– Take a tripod, which allows you to use slower speeds and longer lenses during twilight.
삼각대! 그것은 어두운 불빛에도 느린 스피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Bill Luster (“Brown County,” July/August 1997)

-Be as basic as you can in your equipment. Try to use just a camera, acouple of lenses, and not much more. It keeps you thinking about whatyou’re shooting.
단촐(!)하게 꾸려서 다니세요. 사진기 한개에 렌즈 두어 알에 몇가지 악세사리만 챙기세요. 촬영에 몰두할수 있게 도와줄거예요.
– Try to include people in every picture you shoot.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 집니다.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동생의 노래실력..

최근에 동생이 남자친구를 소개받아 사귀고 있다. 사실 25살이 넘은데다가 어른들의 소개로 만난 것이라서 선 본 상대와의 만남이다.

쨌든 그동안 소개받았던 사람들과는 서로 성격의 차이나 사람의 캐릭터 등으로 인해서 잘 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생활 패턴부터해서 사람 됨됨이가 괜찮아서인지 꽤나 잘 되어가고 있다. 특히나 동생의 생활패턴이 독특하기 때문에 더욱 성사율이 낮았더랬는데,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는 좀 맞는듯 하다. 개인 사업으로 여행쪽일을 하는데, 주 5일이라 토요일엔 온전히 쉬고, 오전엔 그다지 일이 없는 편이어서 동생이 출근하기 직전 시간인 점심시간 즈음에는 둘이서 데이트를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만남인것이다.

쨌든 이래 저래 말들은 건너뛰고 둘이서 노래방엘 갔었는데, 노래방에서 제공하는 기능 중에 녹음해서 웹에서 다운 받는 그런 게 있더란다.
그래서 그걸 음원파일로 만들어 보았다.
들어보시라.. ^^


어머님께서는 이 걸 멀리서 들으시고는 웬 새로운 가수가 부른듯한 착각을 일으키셨단다..
물론.. 본인은…?
박자도 조금씩 어긋남을 느끼며… ㅋㅋㅋ

사실 동생 삶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가사를 외웠다고 한다. 남자쪽에서 좋아한다는 곡이라는 이유에서란다. 흠… 상대방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인가.

입장의 차이

본인은 작은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임명되어 사역중에 있다. 교육 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교육 파트를 전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본인 같은 경우에는 정식으로 전도사 고시를 보지 않은 사람을 전도사로 임명하기 위해 교회의 목사님이 임의로 임명한 경우에 속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란다.)
일단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는 전도사라고해도 하는 일은 큰 교회와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조금 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한다는 것 정도의 차이를 가질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서 목사님께서 교회에 안 계시는 빈도가 높아졌다. 그로 인해서 새벽예배, 수요일 저녁예배, 금요철야예배를 인도해야 할 상황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 불만을 쏟아내자 모친께서는 큰 교회의 부교역자 시절을 떠올리시며 말씀하셨다.

모든 교회들이 그런것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머님께서 계시던 교회에서는 텃새(?)가 꽤나 심하다고 하셨다. 선배들의 압력이라고 표현해도 될만한 행동들이다.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는 물론이고, 목사 안수를 받고 나서도 수요예배 또는 금요철야예배 인도 및 기도는 커녕 새벽예배 때 조차도 마음대로 인도할 수 없도록 무언의 압력이 가해졌다고 하신다. 선배 목사님들이 인도하시는데 감히 자신이 인도하겠노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기도제목이었다. 하나님께 진정 간구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인것이다. 하나님 새벽예배 인도 하게 해 주세요! 진정 하고 싶습니다. 하는 식의 기도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서 겨우 얻었던 기회를 아들이라는 사람은 불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것을 입장의 차이라고 할까?

쿨픽 775여 안녕~

사진은 여러모로 추억을 담고 있다.
휴우…

[ 이 자리는 원래 사진이 있던 자리인데, 몇 번의 이사로 유실되었다.
1346172503.jpg ]

내 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가졌던 카메라이며, 디지털카메라였던 Nikon CoolPix 775로 찍었던 사진이 죄~ 없어져 버리고 달랑 한 장 남았다.
이 사진만이 남은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원인은 아무래도 불안정한 하드를 새로이 설치하면서 지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도 하드에 남아있는 것 외에 최초에 찍은 CD2장 분량의 사진은 백업되어 있다.

위에 남아 있는 사진은 천안에서 찍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달래려 크레이지아케이드 BnB라는 게임을 하던 시절에 온라인에서 자주 만나던 누님들과 만나기로 했던…. 이라고 치는순간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 잘려나간 버스의 뒤편에 새겨져 있는 수원여객이라는 글자!!

이로써 새로운 내용을 기억해 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왜 저 곳에서 찍게 된 것일까? 수원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을까? 기억이 조작되었다. 명확하게 어떤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2003년 4월 14일에 무슨일로 수원에 갔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연도별 월별 일자별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 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 찍었는지조차도 모른채 쌩뚱맞은 사진이 될 것이었다.

사진은 동영상과는 달리 정지된 모습안에 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고 머리속 영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 안에 있는 상황들을 예상하고 여러가지 다른 기억들과 대조하면서 기억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저 사진이 어떤 사진일까? 기억해 내는데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결혼에 대한 단상

내 이상형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일단 함께 살아갈 반쪽은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일단 기도를 잘한다는 것은 방언을 한다는 것인데, 이제 일반적인 초신자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했던 방언을 말하는데, 방언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하는 필수 단계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기도를 잘 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의견을 여쭈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그런 면에서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꽤나 노력하고 있으니 반려자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기도로 서로를 중보하면서 서로를 우선순위로 두기보다는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더 높이 두어 서로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줄 수 있는 그런 관계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학교의 학과장으로 계신 분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분께서 신부감을 고르실 때 선택 기준 중에 하나이셨다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밥을 잘 먹는 여자여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이다. 이번 주 월요일에 마케팅 담당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어떤 여자를 이상형으로 두었냐고 물으시길래 “밥 잘먹는 여자요”라고 했더니, “돼지 키울 일 있냐?”고 하셨다. 그 상황에서 더 자세하게 말하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은 결코 과도하게 먹는 식탐의 소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짧게 집고 넘어가겠다.

이런 여자를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데, 아버지께서 어머님을 선택하셨던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였다고 한다.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잡수셨고, 그런 모습에 반하셨다고 한다. 어찌보면 이건 눈에 콩깎지가 콱~ 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했으리라고 설명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야리야리한 아가씨들보다 그렇게 건강하고 밥 잘먹는 모습이 더 좋으셨기 때문에 조금은 저돌적인 청혼을 하셨다고 한다.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밥 잘 먹으면 일단 건강은 따 놓은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밥 잘 먹는 여인네들은 성격이 원만한 편이며 성격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여성상은 대략 저정도 뿐이다. 거기에 외모도 좀 받쳐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다지 외모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귀어왔던 여성 동무들의 외모를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

최근에 와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식의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것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라는 설명보다는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고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개인과 개인이 사랑해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집안과 집안이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이성 선택의 기준은 결국 집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레마를 가진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여성정도라면 어떤 여성이라도 – 상대 집안의 신앙과 불신앙 – 상관 없다. 그러나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 문화적 충격에 민감하신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단 여기에서 우리 어머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은 예수쟁이라는 – 기독교인을 이르는 당시의 털털한 표현 – 딱지를 달고 불교인 집안에 들어오셨다. 당연히 시누들이나 시부모님들로부터 엄청난 눈총을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님이 시집온다는 말에 집안에서는 “예수쟁이 며느리를 얻으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억지의 말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 그 시대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암 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의 변형 정도로 생각하고 말자. 그렇게 시집오셔서는 집안을 전도하시는데 20여년을 보내셨다. 이런 경험에 의해서 부모님들은 여자쪽의 집안도 모두 믿는 가정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요소로 고려해야할 것은 본인이 목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신학생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충돌이라는 것은 결코 우습게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문화적 충돌을 얕잡아 보는 것은 심지어 이혼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르게 하기도 한다. 단지 둘이 좋아서 결혼하는 것으로 결혼생활은 원만히 마무리 되지 않는다. 술, 제사, 기타 집안행사에 있어서 문화적인 차이를 통해 다투게 되고 그런 것들로 불화를 겪는 가정은 적지 않다. 그런 것들로 인해서 다른 기독교인들에게마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잘 되지 않는 경우를 들어보자면 그 문제성은 더욱 심도를 가진다.

뭐.. 이런 저런것 다 따지다 보면 어떻게 연애를 하겠는가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나이에 이르르니 별 수 없다. 본인의 연애관은 일단 쿨하게 시작하고 맺음도 깔끔하게 하자는 것이다. 누군가 본인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일단 그 사람에게 확실히 말해둠으로써 더욱 깊어질 정으로 인해 상처가 커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된다. 그것이 그 순간에는 상처가 될 것이지만, 그 이후에까지 방치해서 더 깊은 상처를 받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본인은 80년생(27세)이고 위로 6살 아래로 6살까지 커버 가능하다는 점을 기억하시고, 이 글을 읽는 분중에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기도 잘하고 밥 잘 먹는 여인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기 바란다. ^^ 소개가 아닌 자신이 그런 조건에 부합된다고 생각하시면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짓겠다.

권력 앞에 무릎을 꿇다.

대추리에 새로운 군사시설은 필요 없다

9월 13일 주택 강제철거는 오후 4시쯤에 끝났다. 인가가 무너질 때 배추밭까지 밟혀 망쳐진 할머니는, 손을 꽉 쥐며

지금부터어떻게 되겠지. 일본군에 쫓겨나고 해방 후엔 미군에 내쫓겼는데 또 나가라니. 나는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은 것뿐인데

라고무너진 집 더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소한 바람은 그것으로 무너져 내렸다. 인간이 사는 곳엔 어디에나 권력이 있기 마련이다. 형태의 유무를 떠나서 그것은 그 자신 외의 것을 압제한다. 군이라는 존재는 더욱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집단이다. 대한민국 공권력은 미국이라는 힘 앞에 대리인의 자격으로 철거를 서두른다.

미군기지 확장은 단지 그것이 군사적 계획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별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을 문제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이미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주민이 있는 지역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행위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있다.

이촌향도의 흐름은 농민을 소외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고 수 많은 집단들이 생겨난 깨끗한 도시의 인간들은 그들이 떠나온 곳에 무신경한 시선만을 보낼 뿐이다. 아니 시선조차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끝 없이 이기적이다.
아… 이 부정적인 말들의 근원은 어디란 말인가! 

인간이란 이기적인 동물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집안의 치부를 드러내어 스스로 먹칠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 사항을 먼저 밝힌다.

우리 집안은 꽤나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조부님은 인물도 괜찮으셨고, 재물도 적당히 있으셔서 조부님의 먼저번 조모님께 얻었던 두 딸이 있으셨고, 사별 후 함께 살고 계시는 조모님과 재혼하셔서 딸 하나에 두 아들을 얻으셨다. 게다가 첩까지 얻으셔서 아들들을 낳으시어 함께 살아내셨다.

참… 창피한 집안사이지만, 낮에 조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연계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조모님께서는 조부님과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두 따님들을 당신이 직접 낳으셨던 것처럼 키워오셨고 얼마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며 대해오셨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부터도 차별하지 않으셨으며,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그 두 딸들에게 있어서 조모님은 그렇지 않았더라면서 속내를 손자인 내게 털어놓으셨다.

조모님께서 젊은 시절 그 두 따님들을 키우면서 주변에 동생 되시는 – 친동생이 아니라 조모님의 퍼주시는 성격으로 인해 생긴 동생 – 분께서

“누님, 저 아이들에게 너무 잘 해주지 마쇼. 누님이 생각해 주는 것만큼 누님을 엄니로 생각하는줄 아시면 크게 마음 상하셔라..”

그러나 조모님께서는 그런 동생을 꾸짖으시며 그렇지 않다고 하셨단다. 조모님께서는 꽤나 정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도 어려운 생활 형편 가운데서도 뭔가를 부지런히 만드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눠주신다. 조금 더 털털한 표현을 빌자면 “막 퍼주신다”. 그런 조모님 곁에서 자라온 결과 그렇게 하셨으리라는 것을 쉬이 떠올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시면서 두 따님들이 아버지께 대했던 내용을 들으셨단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만나시고 얼마 되지 않아 연애하시면서 서울로 올라가셨더란다, 어찌 저찌해서 돈이 다 떨어져버려서 고모님께 가서 돈좀 빌어달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모님께서는 야박하게도 없다고 하셨더란다. 이웃사람이 와서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주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와서 빌어달라고 하는걸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수가 있을까? 사실 그 부분에서 그네들에게 가진 남은 조그마한 정을 다 털어내버렸다. 이미 그들에게는 정을 가지지 않았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졌던 그 잔정마저도 뚝 떨어진다.

사실 최근에 고모님들의 행동에서 이미 떨어져 가던 정이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께 된장을 담아 달라며 그 먼거리를 – 부천에서 의정부 – 오라고 하시는 사건만 해도 개인적으로 꽤나 정 떨어지는 사건이다. 요즘 세상이야 이런 저런 더 심한 일들도 서슴 없이 일어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되먹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조모님을 찾아와서 담아가지구 가져가도 욕먹을 행동이 아니던가. 함께 만들자는 것도 아니도 일방적인 요구다.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두 사람의 연령을 생각해보면 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모녀지간이라는 특별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를 먹으면… 더 철이 없어지는 것일까.
더 바르게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학문의 터…

교육의 상품화??란 포스팅을 보면서 본인이 다니고 학교를 생각하게 되었다

공용의 것이어야 할 물마저도 자본원리에 의해 지배 되는 세상([에뿌키라] 당신들만의 천국-FTA 블루골드를 삼키다)에서 더 이상 학교라는 공간이 학문 연구만을 위한, 학생을 학자로 키워내기 위한 목적만을 달성하기 위한 공간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찌라시의 의견에 공감한다.

신학교로 시작된 학교는 이제 70년이 다 되어 가면서 종합대학으로의 변모를 꿈꾸고 있다. 과정을 짧게 살펴보자면, 신학만을 가르치던 학교는 그들의 기본 종교인 기독교의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회복지학과를 증설한다. 여기까지의 발전에 대해서는 꽤나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최근 증가 추세에 있는 대학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 더 규모가 있을 필요가 발생 된다. 규모는 영향력과 비례하다는 사고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추측해 본다. 이런 이유로 학교의 교육부 등록을 완료하고, 몇 개의 학과를 증설하면서 종합대학으로써 상품화 한다. 일단은 생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해두자.

그러나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모토로 움직이고 있는 학교의 본모습을 잃어간다는데 슬픔을 감출 수 없다. 새로이 증설된 학과들은 자신들의 취업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학교 이름의 변경을 요구하고, 기독교에서 요구하는 생활 기준을 개인 기호의 자유라는 이유를 들어 무시해버린다. 물론 학교측에서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위한 노력들 가운데서 자존심마저 버리지 않기위해 학교 이름 변경 요구에 거부 반응 또는 무반응으로 표현해 낸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력을 교육기관의 상품화라는 면에서 접근해보자면,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자존심의 존립을 위해 상품화의 방해요소를 방치해 둔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데 한 몫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고 앞서 밝힌 상품화를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종합대학으로 변해가면서 발생되는 문제들은 스스로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을 극복해 내야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들을 비판하고 배척하기보다는 먼저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이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본인을 포함한 재학생들의 사명만은 아니기에 후배 재학생들에게도 권면해 나가야할 의무도 병행한다.

아프다는것..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한번쯤은 아프기 마련이다. 육체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것 모두를 포함한다.

저번주에 학교에서 주관하는 추계신앙수련회를 다녀오면서부터 토요일까지 무리하게 활동했다. 신앙강좌때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고 그렇게 밤새다시피 마지막날을 보내고 나서 수원 본성전에서 청년들 일하는것 도와주기로 한 것이 있어서 카페 오픈에 필요한 소품제작이랑 조명설치를 도와주느라 밤을 꼴딱 새버리고, 그리고는 양평에서 있었던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문제는 그렇게 결혼식을 다녀온 후부터였다. 결혼식에 다녀오는데 머리가 멍해지면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이틀밤을 새다시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간간히 잠도 자보고 차에서 내려 손운동도 좀 해 보고 했지만, 별반 나아지질 않았다.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서는 꽤나 정확한 판단을 하는 본인에게

아! 정말 많이 아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육체적인 아픔이 있기 시작한다는 신호는 목으로부터 확인된다. 피곤하다거나 몸살이 나기 시작하면 목부터 아파오기 때문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다시 수원으로 가는 동안 아슬아슬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100Km이상을 달려야 기분이 나는 사람에게는 난 장애물로밖에 안 보였을 것이다.

쨌든 문제는 그렇게 시작된 몸살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주일을 보내면서 예배 중에 자는 것과 다름없이 졸아서 참 많이 민망했다. 그렇게 예배를 마치고 집에서 쉬는데도 도통 나아지질 않는다. 본인은 잔병은 없지만 한 번 아프기 시작하면 된통 아픈 타입이다. 그런데도 무식하게 어금니 꽉 깨물고 참는다. 그런데 이번엔 장난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참았다. 가족들은 걱정하면서 약 먹으라고 권유했지만, 역시나 조금 괜찮아질듯한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참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까지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몸살 감기약을 먹고 났더니 조금 괜찮아졌다는 생각은 들지만, 여전히 몸에 열도 나고 뒤통수도 뜨겁다.

휴우… 뭔가… 더 정신없다.
워낙에 산만하고 정신없는 사람이지만, 평소 보다 훨씬 더 제정신이 아닌듯 생각된다.

오란고교 해피앤드..

역시나 해피앤드!
이제서야 완결편을 봤다.
이미 다 봐서 재미없어하는 분이라면 아래의 내용은 패쓰!
쨌든 여러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 아니 이미 결과를 예상해버렸겠지만 – 좋은 결말을 가진 애니다.
해피앤드 작품을 보노라면 이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우울함을 더해준 사건이 생각난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일단 작품으로서는 괜찮은 편에 속하지만, 꽤나 어려운 사회상황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의 쓴맛을 되뇌이게 만들었다는데서 악평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면 난 이번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결말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좋지 않은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기에는 그동안의 사건들이 지나치게 엉뚱했다고 생각된다. 여러 작품들의 패러디 정도로 끝나버리는 애니메이션이 있는가하면, 적절히 그런 진부함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쨌든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오란고교의 해피엔드이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본인이 스스로에 대해 내리고 있는 착각정도의 작은 생각 중 하나는 엉뚱하다는 것이다.

뭔가 엉뚱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그런 것에서 차이를 가지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엉뚱함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름없게 된다는 것에 대해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면서 사회전반적인 일반 이라는 기준에 밎춰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신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일반적인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후에는 어떻게든 매장당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계열로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꽤나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본인의 미래 목표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그 슬픈 미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본다.

쨌든 이러니 저러니해도 좋은 결말은 행복하게 만든다. 사람들을… 그렇지!

초등학교 1학년, 8시간 공부?

나의 어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으로도 잘 알려진 자녀들에 대한 학습욕(!)이 대단히 높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어머니의 어린 시절 일화를 들어 어머니의 학습열에 대해 살펴보고 본문을 시작하도록 하자.

보실까나?

본인의 모친께서는 초등학교 시절 그 작은 – 그러나 어머니의 고향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 곳에서 결코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승부욕(!)은 다른 초등학생들과는 다른 열정을 가지시도록 만드셨다.

그 시절의 시골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부모님들의 농업을 도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어머니께서는 밤에 불을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되셨다. 게다가 어머니의 형제들은 9남매라는 거대 인원인데, 그 중 맏이 셨던 어머니께서는 동생들을 보살피셔야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선택하셨던 방법이 각성제였다. 잠 안 오는 약으로 알고 드셨던 그 약을 통해서 밤새어 공부하셨더란다.
그럼 이쯤에서 어머니의 과거사 이야기는 접어두고, 본인의 과거사 이야기로 돌아가보겠다.

그렇게 대단한 열정을 가지셨던 어머니는 우리들(동생과 본인)에게도 높은 수준을 요구하셨더란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왔던 전과는 대략 5가지쯤 또는 그 이상이었는데, 그 모든 전과&학습지를 사셔서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을 학습시키셨더란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8시간동안 그 초등학교 1학년 생이 버텨냈다는 것이다!
애초에 본인이 학습 성취도가 낮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 그 결과에 대해 어머니는 대단히 좋지 않게 생각하셨다고 생각된다.

쨌든 중고등학교 및 초등학교 2학년시절부터 꽤나 존재감이 없었던 학습에 대한 압박을 생각해보면 결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동생은 어머니의 그 승부욕을 학교 성적에 두었고, 본인의 경우에는 PC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결과로 현재의 삶에 나타나 있지만, 결코 후회될만한 결과는 아니다.

별 것 아닌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지만, 어머니께서 그대로 그런 학습욕을 본인에게 요구하셨더라면 지금은 어떤 결과로 나타났을까?
어머니의 설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그런 욕심이 사라지셨기 때문에 본인과 동생이 편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하신다. 규모가 크건 작건 집단이라는 곳에서는 소문이라는 것이 있었을테고, 기도 좀 하신다는 분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런 분들 가운데 한 분께서는 어미님께 “하나님께서 맡기시라고 하시네요”라는 말로 본인을 구원하셨단다.

그랬더니 8시간의 공부를 시켜서 나왔던 성적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결과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 달에 바로 그만두실 수 있었단다.

뭐.. 그런 본인에게도 공부에 대한 욕심은 장기적으로 존재해왔다. 언제나 그만두지 않는다. (켈룩…) ㅡㅡ;;

잠과의 전쟁..

와~ 수업시간마다 잠과 전쟁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봄도 아니고 밥 먹은지도 꽤나 되었는데도 잠이 온다는 것은 수업에 관심이 떨어져서 일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구 수업에 임하고 있음에도 머리가 멍해지고 잠이 오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해야하는 것인가.
최근들어서 이러저러한 작업들로 인해서 잠을 좀 못잔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정신력이라는 것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참고 있지만 오히려 참으려고 노력하는 뇌활동이 더 자게 되는 원인이 되어 버리는것은 아닐까.

잠은 언제나 생활에 장애를 가져온다.
수업시간에 졸게 되면 그 부분이 건너띄어지고 그 순간의 지식 습득 장애로 인해 이어지는 수업 내용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러버린다면 대박인것이다.

하아…
졸고 싶지 않은데, 졸아버리고 말아버리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오란고교.. 그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문답하는 히카루와 쿄우코

하루히 : 저기… 학원제라면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수작업 성향이 강하다고 할까? 전부 수작업으로 준비하지 않나요?

쿄우야 : 그건 일반학교에서나 그렇겠지. 이 오란제에서는 중요시되는건 기획력이랑 통솔력이야. 이 곳 학생들 대부분이 장래에 리더가 될 자질을 기대 받으며 그 힘을 어필하도록 요구되지.

쿄우야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기업 후계자들이 주로 학생으로 있는 학교(학원)이다.
이미 애니 초기에서부터 그런 곳에 서민인 하루히의 등장으로 서로의 차이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여러가지 들이 있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게 될 만큼이나 일반의 학원코믹물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차 가볍지만은 않았던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5화에서 26화의 내용을 잠시읽을 수 있었다. 이미 26화의 내용을 본 사람들의 증언인지 제작사의 사전 공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하루히가 아닌 에크레르를 선택해야하는 결말이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의 평도 봤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알고 있어도 직접 보지 않으면의미가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역시나 기대되는 결말이다.

이 글에 근거하여 결말을 지어버린다면, 가문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버려야 하는 그들은 어떤가. 얼마전 삼성의 여식이었던 그녀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더 비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꼭 부한 것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하루히 뒤의 스오우, 그리고 쿄우코

그런데 파인애플이라니… (털썩..)

딴지거는 것에 대해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간접광고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기 위한 것일까?

뭐.. 애니를 보면서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나로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

쨌든, 오란고교 호스트부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부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수 있었으니, 이것으로 간접경험이 만족되려나?

다소 허구의 정도가 강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공간을 통해 간접경험이라니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들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한 인간 심리 파악이 무기였기 때문에 부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25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타마키의 행동인데, 우리가 얼마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자만을 쉽게 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본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한 성격 중 하나가 진짜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쓰고 악한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면 낭패겠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벽 같은게 자동설정되어서 그 사람으로하여금 cansmile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고 예측하는 것을 어긋나게 해 버리는 엉뚱함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타마키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조금 닮아있다.

쨌든 지금 예상하고 있는 대로의 결말일찌라도 직접 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기대한다.

과식…

과식은 단기적으로는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비만과 기능 저하의 원인이 된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알 리스, 잭 트라우트, 박진부, 서울 : 십일월출판사, 1998] 에 나오는 문구 중에 하나이다. 기업이 할인행사, 쿠폰제 등을 사용하는 것이 짧은 기간동안에 수익을 올려주기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많은 비용의 지출 또는 수익의 감소 등의 결과를 초래한다는 내용 중에 등장한 말이다.

과식에 대한 것의 폐해를 머리로는 이해하여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사실 그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저녁에 먹지 말아야지 하고는 어느새 손에 들려있는 음식거리를 보면서 난 역시 안된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비난을 퍼붓는다.

왜 그렇게 모질지 못한거냐!? 하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머리 속에서까지 포기해버리면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살들을 소유하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과대 비만 상태에 까지 이르를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간단한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줄넘기 20분씩이라도 해야겠다. 검색 결과중에 줄넘기 20분 하는 것이 걷기 운동 90분 한 것만큼의 열량을 소모하게 만든다는 것을 보았다.
일단 체중이 어느정도 빠지고 각 관절들이 버거워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예전처럼 천대로 줄넘기 해야겠다

아~ 옛날이여!  

경영활동과 고객

마케팅을 배우는 중에 기업의 경영활동의 주요 항목들과의 관계에서 마케팅 비중의 변화를 나타내주는 그림에서도 나타나지만 마케팅은 점차 기업 경영활동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중심에 고객을 위치시키게 된다.

마케팅의 비중 변화

이런 마케팅의 입지도를 통해 오늘날의 고객 – 이전의 소비자라고 불리우던 것과 구분하여 – 들은 기업 경영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었다.

자동차 동호회의 입김에 관련된 기사를 보는 중에 이론을 실상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실제로 최근의 대기업들은 SKT를 시작으로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하고, 삼성의 경우에는 고객은 거의 왕수준으로서 노발대발 우기면 새 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고객이라는 것과 경영이라는 것의 연관도를 깊이 있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닌 연령, 성별, 학력 등의 기준을 통해 세분화되어 관리되고 있는 고객을 기업은 무서워하기에까지 이르른것이다. 그런 기업의 태도는 고객을 더욱 적극적이게 만들어주게 된다.

얼마전까지 서비스 업종에서 몸 담았던 사람으로서 최근의 그런 기업 태도는 실무자들로하여금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시키고 있다. 그만큼 고객들은 편하고 자신의 심기를 편하게 모든 대우를 받는 것이다.
당해본 사람이 안다고 이전의 CS(Customer Service) 엔지니어들을 대하던 태도와 지금의 태도를 비교해보면 상당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딴 소리를 하자면,

서비스직으로 일하다보면 매우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다양하고 충격적이게 겪게 된다. 개중에는 진짜 미친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개념이 정립되어있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돈 내고 받는 것인데 그만큼 누려야 한다는 것이리라.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세상에 사람을 믿으라더니..

사람을 믿어준다는 것에 이렇게 후회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9월 11일에 E. N미디어 라는 곳에서 전화가 왔다. 2004년 8월 경에 잡지를 구매했는데 그 때 발생한 개인 정보를 삭제해 준다는 내용이었다(이미 이 때부터 의심을 했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지금에서야 드는건…). 그러면서 당시에 계약하기를 2회분을 계약 했는데, 당시에 제가 대금 결제 능력(카드 한도)이 전액을 하기가 힘들다고 해서 반만 결제하고 계약한 물품 중 반만 받았고, 다음달에 반을 더 결제하고 받았어야 하는데 그 당시 담당자가 병가를 얻어 장기 휴직이었다가 퇴사해서 이제서야 전화를 했다며 그 당시에 결제하지 않은 부분을 지금 결제하고 물건을 받으라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영어 잡지를 구매한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이 나는데 결제 내용에 대해서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더니 자신들이 통화한 내용이 전산에 남아있다면서 확실하다고 하면서 결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카드사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더니 기록이 없으면 자기들이 어떻게 알고 전화했겠냐고 따지길래, 어쨌든 전 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니 확인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었다.
카드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최근 6개월의 기록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회사 ARS에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까지 연결해서 확인해 봤지만 당시의 그만큼의 액수(30만원 대)로 결제된 내역이 없다고해서 내역을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잡지 회사 담당자에게 연락해서 통보했더니 언제쯤 연락을 주면 되겠냐고 물어와서 그 다음주 쯤이면 도착할테니 확인하고 연락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다음주 월요일이 되었고, LG카드 내역서와 BC카드 내역서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날 연락이 왔다. 확인 못해서 아직 안된다고 했더니, 자기도 곤란한 중에 일주일정도를 기다렸는데 다시 한번 기억해보라면서 자기도 상급자에게 독촉받는 형편이라고 했다. 일단 결제해도 내역이 확인되면 취소해 준다고 하기에 그렇게 하라고 하고 결제를 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LG와 BC카드 내역서가 도착해 있어 확인해 보니 그 둘 어느곳에서도 30만원대의 할부 또는 일시불 사용 내역이 없는 것이다!
확인한 시간은 이미 10시가 가까왔고, 이런 저런 생각들로 한시간을 보냈다.
아! 이거 진짜.. 미쳐버린듯하다. 소비자 보호원에 확인해서보니 청구 취소를 할 수 있는 내용증명서류 양식이 있어 작성해 두었다.
아침에 날이 밝이 업무시간이 되면 핸즈프리와 MP3를 연결해서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내용증명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남 등 쳐먹고 돈 벌면 마음이 편하지만도 않을텐데…
하아… 나란 인간은 어찌 이리 멍청한지 모르겠다.
자괴감마저 들려고 한다. 휴우…

생각, 사고, 고뇌

상대방의 필요를 파악하고 그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원하는 것을 획득한다.

꽤 나 재수 없다고 생각되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어떤 목적에서든지 사람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이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상대방으로부터 얻기 위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최근에 재미있게 보고 있는 카툰이 하나 더 늘었는데, 그것은 죽는 남자이다. 죽을 날이 90여일밖에 남지 않은 남자의 이야기인데, 죽기전에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서울역에서 노숙하고 있는 50대의 거대 기업의 중견간부였던 사람에게 자포자기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것을 요구한다.
그렇게 요구받은 노인은 고민 끝에 자신의 가족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인공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했던 일은 무엇인가. 생각이다! (사 고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생각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상(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전략과 전술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다. 특히나 지금의 나에게는 더욱 더 필요하다. 31화를 보려고 클릭한 순간, 득도한 듯한 그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에 떠 오른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고민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생각인것이다. 다시 말해 떠올리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떠 올린 것을 다른 것으로 이어가고 무형의 구조체를 만들어갈 수 있는게 생각이다.
내 머리에 생각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하게 된 때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특정 분야인 컴퓨터쪽으로는 언제나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은채 개념을 가출시켜버린 일상의 반복이었다.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그 순간부터 한시라도 뭔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하기 힘들다.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은 고민거리로 다가왔다.

그로 인해 머리가 폭주해 버린 것일까. 과부하 걸린다는 표현으로 정리하고 싶은 현상이 있는데,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PC에 과부하 걸려서 다운되는 듯한 현상이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잠들어서, 어느새 눈을 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버린다. 참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 생각을 지속하다가 과부하걸려버리는 그런 경험말이다.

개발자 그들은…

20살, 갓 20대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였지만, 역시나 고등학교 때 입사해 놓은 회사를 그만두기는 힘들었다.
그 때는 실력이 형편 없는 –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지만 – 웹디자이너였다. 프로그래머가 따로 없으니 당연히 프로그래밍도 혼자 다 처리해야 했다. 회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사장이라는 사람은 꽤나 개방적이었다. 미국에서 적잖이 살다 나온 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안 사람되시는 분이 대표로 되어있는 세탁소를 여럿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장님과는 서울로 사무실이 옮겨지게 될 때까지 함께 일했는데, 당시 회사에서는 PDF와 관련된 기술을 삼성에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개발중이던 훈민정음에 해당 기능이 들어갔었다. 그 분야를 개발하던 분이 계셨는데, 머리가 희끗한데다가 꽤나 나이를 먹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구부정한 형태의 몸을 가졌다. 그 분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전형적인 프로그래머 상이라는 것이었다.

반평생을 – 최소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 프로그래밍에 젊은 시절을 다 바쳐서 지금의 나이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에 감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 불쌍해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젊은 날을 한가지 일에 열정을 다해 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그의 모습에서는 경력을 입증할만한 어떤 태도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전에 어떤 블로그에선가 프로그래머에 대한 글을 접했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머리가 희끗 희끗한 장기 경력의 프로그래머들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상 주변(명확히는 한국)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나이 들어 할 만한 여건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30대 전후로 개발 관리자로 승진하거나 다른 분야로 전향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지인 중에 현재 성악을 전공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을 예로 들자면, 그분도 젊은 시절 대학에서 프로그래머로써 열정을 다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2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하려는데 생계에 대한 부담이 압박하더란다. 과연 이 걸로 이 여자(형수님)를 밥 벌어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고민 끝에 일반의 다른 직종으로 전향했다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개발자는 헝그리한 직업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되새김질 되었다.

안그래도 배고픈 직업인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더욱 그들을 괴롭힌다. 경쟁을 위한 촉박한 납기일, 무개념의 경영자들로 인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재촉해서 좋을일이 없다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니, 비단 개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빠르게 처리하면 시간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발에 있어서 그것은 매우 많은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안정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개발자(프로그래머)가 있다면 그들의 고뇌를 들어보시라!
주변에 경영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말씀하시라!
그들의 개발에 대한 가출한 개념을 찾아와 정비할 수 있도록..!

교촌 치킨… 짜요!

오늘 모임이 있어서 친구네 집에서 몇 명이서 모였는데, 저녁을 못 먹었을 것 같다는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2가지 품목을 배달해 왔다.

교촌 치킨을 처음 먹어본 건 군에서 영천으로 출장 갔을 때인데, 영천에서 하루밤 묵어야 될 일이 있어서 자고 기차를 기다리는 데 아침도 못 먹고 해서 밥 먹을 곳을 찾았는데, 금새 먹을만한 집들이 열려있는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게 찾은 곳이 교촌 치킨인데, 나름 1마리 정도쯤이야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성을 가지고 있기에 일단 한 마리 해 달라고 했다.

사실 처음 보고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왜 인지는 먹어보신 분들만 아시리라.. 게다가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인데 간장 소스에 튀긴것이라 참… 짰다. 먹다보면 그 감각이 둔해져버려서 모르게 되지만, 일단 첫 맛이 짜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간장소스니까.

아까 먹었던 2가지 종류의 치킨 중에서 간장 소스가 아닌 것을 먹었는데, 그건 맵고 참 맛있었다. 간장 소스는 여전히 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그게 그 치킨의 특색이겠거니하고 맛있게 먹어줬다.

아… 좀 덜 짠 교촌은 없는것인가…
그럼 그 특색이 사라져버려서 인기가 없어지려나…역시 닭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

마케팅 전쟁

마케팅 과목의 과제로서 읽고 있는데, 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적자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 배우는 21세기 마케팅 행동원칙(Al Ries and Jack Trout, 차재호 옮김, 2002, 서울:비즈니스 북스)

이 정도 되시겠다. 지금 3/5정도 읽은 상태에서 잠시 정리해보자면, 대충 주제는 집중으로 요약된다. 어떤 전략이든지 집중과 연관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글 쓴 사람들이 의도한 바가 그것이 아닐지라도 일단은 여러 주제들의 글들에서 ‘집중‘이라는 주제는 나타난다. 회사의 경영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능력이 되지 않는 확장은 도산의 지름길이라는 내용의 문단들을 자주 발견하게 됐는데, 사람의 인생 역시 같다고 생각된다.

본인은 욕심이 많은 편이라서 이것 저것 하고 싶은것들도 많았고, 지금도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전에는 얼마나 하고 싶은것들이 많았는가하면 스스로도 꽤나 변덕쟁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지금이야 이런 저런 것들을 정리했지만 사실상 지금도 미련을 못 버리는 분야가 몇 가지가 된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하는 것들로부터 남는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한 가지라도 무엇인가를 하면서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 좋지 아니할 수가 없다. 얻었다는 것은 발전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 중 하나는 역사를 알고 연구하면 지금의 세대에 대해 어느정도 통찰력을 가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관련 사례들을 통해 유사점을 발견해내고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효과중의 가장 큰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애초에 경영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통찰력’을 획득 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희망이었기 때문에, 통찰력은 본인의 관심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심리학을 위해서 점수 따기 좋은 컴퓨터 과목이 있어서라는 것은 편하게 말하기 위한 이유라고나 할까. 진정한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약점이 될 가능성을 높인다는 약간은 재수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쨌든, 이 책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도 적잖이 도움이 될 듯하다.

일! 끝도 없어..

뭔가 일을 만들어내는데에는 천재적이라고 자부할 만큼 지루할 틈이 없다.
지루할 틈이 없다는 건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루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다른 말로하면 쉴틈이 없다는 것인데, 지루한 걸 싫어하는 편이어서 뭔가 일을 만드는게 무의식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뭔가 부탁하면 거절하지 않는 편이어서 도와줄 능력과 시간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도와주겠다고 해버리니, 이거 일 = 생활 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다.
바쁜게 좋다고는 하지만 가끔은 그렇게 쳇바퀴를 굴리는 다람쥐 같은 느낌이 들어버리면 이거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같이 학기가 시작되어 과제들이 치고 밀어 들어오는 가운데에서도 일을 만들어 버리니 스스로도 미칠 지경인 경우도 적잖이 발생해 버린다.
하지만 대부분은 감당할 정도만 일을 만들기 때문에 즐겁다. 즐겁지 않더라도 흥얼 흥얼 가만히 앉아서 일들을 처리한다.

밤새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던 지난날의 경험들로 인해서 뭔가 붙잡으면 밤 새는건 기본이고, 다음날 일정을 잠도 없이 쭉 처리해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나이라는 것을 한 살 먹어버려서인지 적잖이 무리가 된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작년까지는 밤새 달려 놀기에도 뭔가 붙잡고 하기에도 무리 없었는데, 나이가 먹어서라기 보다는 운동의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운동도 한다 한다 말만 늘어놓고는 제대로 되어지지를 않는다. 네이버로부터 퍼온 초기의 포스팅처럼 무식하게 운동할 때도 있었지만, 한번 귀찮아져버리니 쉽게 귀찬음을 떨쳐버리기가 힘들다.

뭐… 쨌든 일 하는건 즐겁지만 스스로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역시나 개강이란…

그것들이 수 없이 말을 걸어온다.

당췌 난 언제 처리해 줄거냐?

끝없이 달려든다. 같은 놈들이 아니다. 분명 뭔가 다른 놈들일텐데, 내게 끝없이 달려들면서 언제 끝내줄거냐고 달려든다.
휴~ 오늘도 그들 중 하나가 적극적으로 덤벼들었다.
몇 시간 후면 해가 떠 버릴텐데, 어설프게 끝내기에는 그 무게감이 엄청나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할랑한 생각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지간에 그날 그날 처리하지 않으면 끝없이 불어나는 것이 과제이다. 하지만 그날 그날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도 뭔가 또 다른 과제들에 쫓기어 쉽지 않다.

그래도 끝가지 버티어 해 내지 않으면 안될 것들이다.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점수이기 때문이다.
아자!

카툰들은…


그저 보고 웃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만화라는 것은 애초에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던가. 아! 그런 것에 있어서는 장르별로 다른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보는 몇몇 카툰들이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카툰들은 웃고 즐기기에만 좋은 것도 있고,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

만화라는 것은 내 인생에 들어와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용기를 주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했으며, 상상력을 늘려주기도 하였다.
머리 속에 이미지를 떠 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 머리속에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은 수 없이 봐왔던 영화들보다는 카툰이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위에 있는 카툰은 여러 카툰들 중에서 아! 하는 감탄사를 주었던 작품(!)들 중에 하나이다.
반전의 재미를 알게 해 주기도 했다. ^^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동생이 얼마전에 책을 하나 사왔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을 흰 배경과 조화시켜놓은 표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읽었던 책은 부대에서 누구인가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겉 표지 디자인된 종이가 없이 단지 두꺼운 종이에 문자로만 이루어진 미색의 창호지같은 재질의 은색 글씨색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일을 수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 지금도 적잖이 그런 성향이 있지만 – 책 하나를 잡으면 한달을 가기도 했던 독력(최악 독력 극복 )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읽든지 정독의 수준을 넘어서서 연구를 하면서 봤었다. 책을 정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빌려오는 책들 중에서는 흥미를 끌만한 내용을 가진 책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동생이 빌려오는 책의 대부분은 만화책을 제외하고는 역사 관련된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쨌든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의 악마적 성질의 후면에는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다.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캐리터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조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악랄함보다는 외면받는 그의 모습의 불쌍함을 느꼈다.

읽은지 몇년이 지나버려서 전체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단순히 단편적인 느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나 지식의 습득, 인간사의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곧 잊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스토리 라인만 기억될 것들, 단지 어떤 부분에서만 영향이 끼쳐질 것들을 정독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어리석게도 느껴진다.

뒤주 박죽 포스팅… ㅋ

마티즈가 깨끗해져서 돌아왔다.

자금의 출혈이 굉장히 심하기는 하지만, 꽤나 깨끗해져서 왔다. 차량 수리를 의뢰했던 차량 수리기사분께서 주문하지도 않은 외관 수리도 함께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드레일을 받으면서 앞 축을 살펴봤는데, 뒤축도 나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까지 죽지 않고 타고 다녔다는게 신기하다고 하셨단다.
쨌든, 이래 저래 차량을 손보고 안전하게 타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동생과 친한건 아마도..

물론 지금 동생과 친하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 장난도 잘 치고 뭔가 함께 같이 했던 이유들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글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과는 그다지 친분을 쌓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책을 빌려본다던지 사달라고 한다던지 했던 적이 없다. 스스로 읽어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굴러다니던 책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가끔씩은 친밀감을 형성하고 싶은 쌩뚱맞은 충동을 느꼈다.
동생은 글자만 있는 책들로부터 만화책까지 읽는 범주가 넓었기 때문에 그것들이 책과의 친밀감을 형성하고자했던 가끔씩의 충동질을 해소하기 위한 탈출구(?) 정도로 작용했다. 집에 책은 잔뜩 있었지만 그 어린 넘이 읽을 만한 책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동생이 책방으로부터 빌려온 책들을 함께 읽었다. 동생은 계속 책을 가까이 했기 때문에 한 두시간이면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어떤 책이든간에 다 해치워버렸고, 그런 동생이 읽고 남은 기간동안 있는 것이다. 사실상 동생은 책을 빌리기는 잘 하지만 반납하는 것에 있어선 잘 신경쓰질 않았다.
그래서 동생이 자주가던 책방에 반납하는것은 내 임무(!)중에 하나였다. 얼른 읽어버리고 갖다줄 수 있었다면 반납 습관이 들여졌겠지만, 읽고 있는 걸 뺏어서 갖다 줄 수 없었기도 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 습관은 나 때문에 생긴것일까?

쨌든 어떤 연관성을 만들자면 이렇다. 동생이 읽은 책들을 함께 읽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사고방식도 비슷해지기 마련이지 않을까? 함께 가족이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함이 더욱 그 친밀감을 높여주었다고도 생각된다.

또 한가지 이유는 방치된(?) 어린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된다. 왜냐하면 부모님께서는 큰 교회 부교역자로서 꽤나 열성적인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을 돌아볼 여력이 없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께서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들 스스로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숙명적 위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뭐 이런 글에 숙명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니까 웬지 어색하지만, 이러한 조금은 황당한 이유로 동생과 친한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결혼, 이성관에 대한 단상

결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는만큼 서두르는 편이 아니다. 뭔가 아직도 이루어야 할 것이 많고 그런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누군가를 사귀기에는 능력이랄까 그런것이 없다는 생각에서이다. 나이가 이십대 후반이 되고나니 사귄다는 것이 책임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앞선다. 그래서 남자로서 상대방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되버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생각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애에 뭔가 틀을 씌우는 타입도 아니라서, 꽤나 쿨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언제나 쿨하지 않은건 상대방이었으니까. 이런 나를 두고 혹자는 바람둥이 기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모는 그다지 바람둥이 스타일은 아니지만 웬지 여자친구들을 사귀거나 대하는 모습에서 그런 경향을 발견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저 편하게 대해주려는 것 뿐인데,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해버린걸지도 모르겠다. 어려서부터 형들보다는 누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아왔고, 고로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쪽 인맥이 상대적으로 두터운 편이기 때문에  여자를 두려워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지만, 웬지 너무 주변에 흔하게 여자과 접촉(?)을 하고 있어서인지 군대에서조차 여자를봐도 희귀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군대 얘기하면 흔하게 나오는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게 된다는 그런 류의 속설에 해당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안 좋은 점에 대해서는 웬지 외로움을 타지 않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식의 오해를 받는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이성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고등학교 초반까지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 관심은 커녕 느껴보지도 못했다. 단지 혼자라는 느낌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한다면야 몇 번인가 느껴는 봤겠지만 이성과 연관된 외로움에 대해서는 그다지 경험이 없었다. 이성관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너무 가볍게 여겨 장난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오해를 받기도 했다.
조금 다른 얘기로 이어 보자면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에서 꽤나 논다고 하는 여자친구가 나에게 사귀자고 했다. 웬지 그동안 얌전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그 친구가 그저 순진한 녀석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장난치지 말라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꽤나 진심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이미 늦어버린 시점이었다. 그 이후로 껌좀 씹고 다리좀 떨었다는 친구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조금 더 재미있게 생활하려고 했던 똑같은 중고등학생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 친구의 영향이 꽤나 컸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 또래의 논다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다른 얌전한 친구들과 별반 다르게 보지 않는다. 그 때의 작은 경험은 나로하려금 비뚫어진 비행 청소년에 대해 똑바로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

쨌든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기려니 동생(여) 녀석이 여기 저기서 선자리가 들어온다. 어머님은 동생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폰 번호를 뿌리는 대담한(?) 행동을 서슴치 않으시고 계신다. 동생 녀석도 웬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으면서 선자리가 들어오면 꽤나 즐기는 눈치다. 그런 동생을 보고 있노라면 웬지 나도 뭔가 연애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연애는 철저히 능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쉽게 시작되질 않는다. 막상 괜찮은 사람이 있으면 접근해서 작업이 시작되기는 하지만, 이제는 혼자서 좋다고 사귀고 꺠지고 하는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되는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일까?

최근들어 결혼이나 연애에 관해서는 여러가지로 복잡해진다. 나이라는 것과 결혼이라는 문제로 연결이 자연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아~ 어린 시절의 그 때여~

오만과 편견(2005)

오만과 편견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예고편을 보기 전에 이미 그 제목으로부터 끌림을 받았다.
제목에 있어서 관심이 가는 작

품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영화를 볼만한 시간적 여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을 위해 잠시 들렸던 서점에서 같은 제목의 소설(영화의 원작)을 슬쩍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은 그 잊었던 희망(!)사항을 이루었다. 책으로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일단 영화의 흐름에 있어서는 소설 전체 내용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을 얼마만큼이나 잘 살려내었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도회장에서의 카메라 동선은 어지러운 듯 하지만 그 나름의 소설의 내용들을 충실히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이 이동하면서 살피는 듯한 시선처럼 촬영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좋은 느낌이다.

영상면에서는 그 이후에도 높은 선예도를 가진 화면들하며 완전히 어둡지만은 않은 경쾌한 영상들이었다.

사랑.. 그리고 서투른 그들의 표현들이 낳은 결과와 결말!
오랫만에 작품다운 영화를 감상했다.
뭐… 한국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마음먹으려 하니 또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는 영화들이 쏟아진다.

제대로 만들어놓은 좋은 영화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고서도 또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어진다.
웬지 극장에서 보는 그 맛(!)은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영상 중 웬지 독특한 느낌을 갖게 했던 장면이다.

마티즈 생각보다 튼튼하네!?

올해초에 인터넷 설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마티즈를 구매했다. 물론 직거래 구매였고, 아는 사람 건네받은것이긴 했지만 직거래치고도 꽤나 싼 가격에 구매했는데 확인차 가지고 왔던 날 마음에 들어서 사버렸다.

그렇게 6개월이라는 기간이 지나고 아르바이트를 끝냈다. 이제 수입이 없어서 유지하기가 힘들것이라는 이성적인 생각보다 더 강력한 귀차니즘의 압박이 밀려왔다. 개강하고 오늘까지도 아무 이상없이 타고 다녔다.

그런데 오늘 문제가 생겨버렸다. 저녁에 수원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갔다가 오는 길에 경인고속도로에서 부천으로 들어오는 길에 차가 미끌려버렸다. 사실 순간적으로 졸았던 듯하기도 하다. 다행히도 앞 뒤로 차가 없었고, 왼쪽 앞 부분만 콱~ 찌그러진 것과 바퀴 wheel alignment가 어긋난 것 말고는 이렇다할 문제는 없다.

사고 상황은 경인고속도로에서 부천 IC로 들어와서 일반 도로로 들어오는 곳에서 살짝 미끌리면서 왼쪽 가드레일을 받아 튕기어 오른쪽 가드레일쪽으로 가다가 가까스로 부딪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내가 그렇게 순발력이 뛰어난 줄 오늘 처음 느꼈다. ㅡㅡ;;

차가 가드레일에 부딪혔는데, 막상 드는 생각은 수리비용에 대한 것이었다. 유지비 문제로 머리를 싸메고 있는 중에 alignment까지 어긋나버리다니! 최악의 상황이다. 저번에 봉고 alignment 조정하는데 이십만원이 넘는다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아~ 아주 최악이다.

다행히 몸은 전혀 다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감사하고 있지만, 그 충격때문인지 행동이나 표정은 전혀 감사한 표정이 아니다.

이휴~ 인생이란 이런건가!
믿고 구하는자에게 주시리니!
기다리자!

신랑은 어딜가고…

어제 동생이 저녁 늦게 퇴근해오면서 뜬금없이
   “여봉~ 저 왔어요~”
라는 것이다. 그러더니 혼자 뭐가 재밌는지 킥킥 웃는다. 그러면서 얘기를 시작했는데, 동네 가게에 들어갔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신랑은 어딜가고 오늘은 왜 혼자여~”
라고 하시더란다. 그래서 황당해하며 아저씨께 오빠라고 했단다.
그랬더니 실수할 뻔 하셨다면서 동생이 어디갔어요~ 라고 대답하면 “둘 다 크니께 애들도 크겄구먼, 몇살이여?”라고 물어오시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젊은 사람들이 친인척 손윗 남자들에게 부르는 호칭처럼 남편도 똑같이 불러서 헛갈리신다고하셨단다.

아무리 별 다른 행동한것도 없는데, 왜 그런 생각을 가지신건지.
나이가 그렇게 보일만한 나이인건가!?

동생과 함께라면..

동생과는 어린 시절부터 꽤나 친근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지금도 다른 남매들과는 사뭇 다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이 한 살 더 먹고 각자 다른 신분으로 생활을 하다보니 전보다는 확실히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남매들과는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어릴 땐 주로 동생이 일방적으로 맞곤 했다. 장난도 심하고 뭐든지 한번에 끝장을 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임했으니, 동생을 괴롭히는 일에서야 어땠겠는가. 동생의 회상을 들어보면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단 옆차기 가격 등이 본인을 섬찍 놀라게 한다. 본인은 그런 기억이 없기 때문인데, 동생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원래 때린 사람보다는 맞은 사람의 기억이 더 오래간다”는 이유로 그 근거를 삼는다. 정말 인생에서 괴로웠던 순간이 더 많이 자주 기억되는 것으로 봐서는 동생의 말이 맞는 듯도 하다.

동생은 마루타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본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꽤나 이상적인(?) 실험대상이 되어주었고 기타 여러 장난들을 할 때 함께해 주었다. 그런 가운데 가장 자주 회자되는 사건이 몇 가지 있다.

1

먼저는

가위로 손이 잘리는가

였다.
어느날인가 동생에게 “손이 가위로 잘릴까?”라는 질문과 거의 동시에 옆에 있던 가위가 손에 들렸다. 그리고는 동생이 아차! 할 순간조차도 허락하지 않고는 왼손의 엄지가락을 싹~ 뚝~!
동생은 아픔을 호소 할 틈도 없이 피가 흐르는 것을 목도(!)해야했고, 피를 보고나서야 울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동생에게 중학교때까지 흉터를 가지게 했다. 지금도 장난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면 이단 옆차기 얘기와 동등할 정도의 빈도를 가진다.

2

다음은 불장난인데 머리가 조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무렵부터 돋보기로 뭔가를 태우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그런고로 어른들이 계실 때 뿐만아니라 아무도 안 계신 틈을 탄 장난도 잦았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집안에서 성냥으로 불장난을 즐기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오시는 기척이 들렸다. 놀란 나머지 휴지에 붙은 불을 얼른 끄고, 옆에 있는 휴지통 안으로 넣고 어른들을 마중했다. 그런데 다시 방에 들어가면서 뭔가 타는 냄새가 나는 것이다. 그 정도가 태우다 만 것을 꺼버린 것 치고는 꽤나 심했기 때문에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얼른 뛰어 들어갔더니, ㅡㅡ;;; 타다 만 휴지를 넣었던 쓰레기통 안에서는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뭔가 외출이라던지 밖에 완전히 나가버린 상태였다면 어땠을까… 꽤나 섬뜩하다.. 당시 우리집은 전세로 세들어 사는 형편이었는데, 주인집은 당시로서는 그 주변 일대의 어떤 집에 비해서는 규모가 중급 이상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결과를 짊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듯하다.

막상 기록하려고 하니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동생과 함께 장난치고 동생을 실험대상으로 했던 일들이 기억날 때마다 다시 적기로 하겠다.  

씨 언어 수업시간..

학교 복수전공을 위해 C언어를 다시 듣게 되었는데, 저번 주에는 예의상 한번 빠져줬고, 이번주에 처음 들어갔는데 참 감회가 새롭다. 지금은 인터프리터 언어로 주로 프로그래밍하기 때문에 약간은 버벅거리기도 하였다. 비쥬얼 C++로 학습하는데, 참… 기분이 묘하다.

이전에 basic으로부터 시작된 프로그래밍에의 흥미는 스스로 감탄할 만한 수준의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실력에까지 이르르게 된다. 물론 전문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개발자들의 프로그램에 비하면 진정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그 성취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하기가 벅차다.

처음 공부하면서 만들었던 자료들은 이미 여러번의 폭탄세례로 인해서 다 없어지고말았지만,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것은 역시나 주민등록번호 제조기가 아닐까 싶다.
한간에 불법 프로그램으로, V3에서는 악성 프로그램으로 진단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지금은 그 가치를 잃었지만 이전에 지금과 같은 복잡한 단계들이 없었을 때는 꽤나 악용되어 여러 사람들을 괴롭혔던 프로그램이었다.

쨌든 지금은 소용도 없지만 이전에 18세 미만인 학생들에게는 꽤나 유용한 프로그램이었다.

지금도 자잘한 프로그래밍들을 하고 있지만, 처음에 만들어냈던 프로그램들의 완성 단계에서 느껴졌던만큼의 보람은 꽤나 오래전부터 느껴보지를 못했다.

그러나, 그 때의 그 기억을 추억하노라면 지금도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까지 느껴진다.
  

합리성과 개방성, 그리고 대 기업의 오만

확실히 우리나라의 대기업들, 그리고 정부라는 기관 – 물론 납품을 받는데 있어서 피납처로서의 정부 기관 – 의 오만함은 실로 말할 수 없으리만큼 방자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된다.

먼저 다음 기사를 보시라. [ ‘모토롤라 레이저’ 성공 뒤에 한국 중소기업 ]

서 사장은 “제품 디자인을 만들고 6개월간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의 문을 두드렸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며

“변변한 납품 실적도 없는 한국 중소기업의 제품을 인정해 준 모토로라의 합리성, 개방성이 놀랍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2003년에만 해도고화질 카메라폰 등 기능 경쟁에 몰두해 디자인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며 “대기업의 오만과 상상력 부재로 삼영과 같은중소기업을 협력업체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외국의 기업들이나 정부들의 여러 면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나 기타 유사 정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합리성과 개방성이었다. 물론 외국의 대기업이라고해서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고, 소개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전체가 아닌 긍정적인 분야들이기 때문이기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조작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전에 풍력 발전기를 개발한 과학자의 이야기가 그 단적인 예로서 들어질 수 있겠다. 풍력 발전 메카니즘을 개발한 과학자는 이 나라에서 그 기술을 최초로 구현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자신의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라를 원망하며 외국으로 기술을 수출하기에 이르른다. 물론 그 기술은 다시 수입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된다.(관련 기사를 찾기가 힘드네요. ^^)

또 한가지 살펴보자면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짜고치는 고스톱 행태에 대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젊은 시절 건축토목기사로 일하셨는데, 그 당시에도 역시 – 지금의 견줄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 부당 입찰이라는게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계약 성사의 방법이라는 것은 술대접 문화라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런 문화는 국내 일류 – 라고 하는 – 기업들이 글로벌화되어 가면서 차츰 없어져가고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중소기업에 있어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받을 것의 기능이나 기술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얼떨결에 받아버리는 것이다. 이런 술자리 계약성사 행태가 오히려 지금의 오만한 대기업의 횡포를 낳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술이나 제품의 흠결의 정도가 많음을 숨기기 위해 술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그들의 자신없는 모습들은 대기업들로하여금 중소기업 제품들은 역시 떨어져 라는 인식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보자면 대기업이라는 입지를 이용한 실무자들의 xxx 없는 행태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이란 권력을 가지게 되면 조금은 변하게 마련이니까.

괜히 이름있는 것을 찾는게 아니라는 변명은 집어치워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귀찮아서 쉬운것을 찾기 때문에 그런 바보같은 악순환의 연속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귀찮음에서 벗어나라!

사진은 내 인생에 있어서..

단지 취미생활의 하나일 뿐이다. 활동하는 주요 분야는 웹 프로그래밍이지만, 주요 모임 등에서는 사진을 맡고 있다. 처음 사진을 맡게 되었을 때는 준전문가용이기는 하지만 꽤나 사람들의 구미에 당기는 사진을 만들어냈기도 했고, 웬지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다는게 흡족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진에 대해 불평을 듣게 되었을 무렵부터 사진에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기분 탓이려니하고 넘어가버렸다.

확실히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의 사진보다 지금의 사진이 더 형편없다고 생각된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그들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 그렇다. 관심의 대상인 피사체를 찍은 것들은 초점이 맞지 않더라도, 대게는 기분 좋은 느낌을 담고 있다. 준전문가용을 갖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똑딱이 카메라(CoolPix 775)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 최근래의 사진보다 훨씬 좋은 느낌의 사진들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것은 – 직업으로 삼기 위해 시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 – 가족들을 찍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카메라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보면 아이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뭔가 기록을 위해서라거나 그저 다른 사람의 찍는 모습이 멋져보이고 멋지게 담고 싶어해서 찍는 경우도 많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를 찾아 더듬어 보자면 중학교 시절 – 물론 전학 오기전 홍익사대부중 – 에 특별활동 시간에 뭔가 관심이 가는 것이 없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가게 된 곳이 카메라 부서였다. 담당 선생님은 기술 선생이셨던것으로 기억된다.

쨌든 사진에 대해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고, 당시에는 필름카메라가 주류였고, 일반 가정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된다는 것이 부르주아 급(!)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했던 때였다. 그 때 사용했던 카메라는 얼마전에 집안에서 발견되어 추억을 회상하게는 했으나, 오랜 세월의 무관심으로 배터리 부분에 녹이 슬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내 작은 희망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별것 아닌 희망이었지만, 그건 세상에 모든 것을 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을 다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들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는 동시에 기록될 만한 어떤 것으로 담고 싶었던 듯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카메라라는 매체가 있었지만, 역시 내게 있어서는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으로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또 동적인 것에는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정적인 화면에서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의 여지는 삶에 짧은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웬지 아직 어린아이이고 싶어하는 본인의 소망을 단순간이라도 이루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쨌든 삶에 있어서 사진이라는 것은 단순히 취미활동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이란 취미활동 이상의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반환된다. 사진은, 내 평생의 취미활동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

이번 글은 내 어머님의 간증이다. 경험담이고,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실행하심에 대한 증거이다.
간증의 내용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로 마감된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이며,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읽으시라.

여기서부터..
먼저 어머님께서 자라오신 환경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조부(여기에서의 호칭은 어머님 기준)께서 성당(천주교)을 다니셨고, 다른 가족들도 조부님을 따라 성당을 다니셨다고 한다. 8남매 가운데서 맏이셨고, 어머님 세대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딸에게는 지원을 굉장히 아끼셨기 때문에, 학교를 자비로 다니시지 않으시면 안되는 상황에서 대학을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하셨다.

고등학교 때에는 믿음이 없으신상태로 교회에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처음 교회에 나간다는게 친구를 따라 나간케이스에 속하셨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시고 대학교 1학년(20살)에 들어섰는데, 뭔가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의 국군간호사관학교는 대구에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전라도 학생들의 향우회가 조직되었고 그 사람들과 여기 저기 활동을 하기도 하고 등산도 다니고, 만남도 가지고 하셨단다. 그런데 그 향우회라는 것의 활동이 그런 활동들의 반복이었고, 그런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셨던 어머님께서는 흥미를 잃으셨다고 한다.

군 교육 기관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했는데, 믿음이 그다지 확실하게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열심을 가지시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좋게 보셨단 당시의 어르신들(군목을 포함한 교회의 어르신들)께서는 교리 학습을 시키셨고, 그로 인해 세례를 받으시기에 이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 전날인 토요일에 문득 생각하셨다고 한다. 믿음도 확실하지 않고, 세례를 받을 자격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그저 앉아서 기도(어머님께서 표현하시기로는 단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정도)하고 계셨는데, 한 학년 선배(2학년)가 한 명 다가와서 주말인데 외출도 안 하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했단다. 그래서 이러 저러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네비게이토식 교리 교육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확실한 믿음을 세우시게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선배를 표현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것에 준비된 영혼을 계획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받으셨던 응답의 대략적인 내용은 큰 단체를 통해서 자비 부담 없이 선교에 쓰시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으로 교육기간을 마치고 마산으로 첫 발령을 받으셨는데, 학교에서만큼 열심으로 할 수 없는 여건들과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믿음의 정도가 많이 떨어지셨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에서 부흥성회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부흥강사님께서 방언으로 기도를 권하셨고, 예배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세계 선교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응답을 받으셨는데, 당장 그것이 이루어지실 것으로 생각하시고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믿음이 전혀 없으셨던 아버지의 신앙상태와 태어난지 1년 정도 밖에 안된 본인과 갓 태어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아버님은 건축토목기사로서 일을 하고 계셨고, 어머님은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셨기 때문에 의무 장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서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을 따라 다녔던 두 아이들은 아버지의 얼굴에 낮설어 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런 이유로 어머님은 대위 4년차에 전역하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만 두시고 나서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었다.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으셨다.(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서울의 큰교회의 부교역자로서 활동하시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당시 선교에 활동적이었던 교회에 가서 교육도 받으시고, 알아보기도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막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부교역자로 활동하시던 교회에서 나와 본인이 중2때(15세, 1994년) 부천으로 개척하여 나오셨는데, 개척교회라는 것이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적지 않게 힘이 든다.

그렇게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셨단다. 이제 그 기도에 대해 별 희망을 가지고 있게 않게 될 즈음하여 어머님은 대방 제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셨고, 그 제단은 대한수도원과 연계된 기도 제단이었다. 그 제단을 통해 훈련을 약 4년 6개월 정도 받으셨단다.

그런데!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동안 훈련 받으시면서 들으셨을법도 한데, 한번도 졸업에 대해 들으시지 못하셨다고 한다. 3년 정도를 제단 지기로 활동하면 그 빡센 훈련의 강제적(?)의무가 해제되고 그와 동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제단에서 약 1개월 여간 활동하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와 유사한 시기에 아버님께서도 중국으로 선교를 다녀오시게 되는 길이 열리셨다.

오늘 오후 예배가 끝나고 광고겸 간증 시간이 있었는데, 아버님께서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계셨던 한 가지를 생각해 내셨다고 한다. 27년 전 믿음이 없던 시절의 어머님의 미친(당시에는 믿음이 없으셨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이 모두 미쳤다고 이혼하라고 까지 하셨다고 한다)소리를 말이다. 이제 곧 세계 선교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미친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어떠신가… 지금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라. 당장 응답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좌절해 있지는 않는가? 내 삶에 있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에 비추어 결단코 단언하건데, 결코 응답하시지 않으실 분이 아니다!

물론, 자기 욕심과 정욕을 위해 죄악된 것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단코 이루실 것이다.

내가 원인이라는 생각은…

심리학적으로도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가 있다면 어떨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 경우의 수들을 생각해보고 그저 단순히 열기가.. 열정이 잠시 식은것 뿐이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면 어떤가.

하지만 그런 생각이 현실의 결과물로 나타나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노력들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물거품이 된다는 것은 뭔가 형체라도 남아있다는 것인데, 물거품 조차도 아니게 되어버렸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동안 함께 활동하던 친구가 한참을 보이지 않다가 모임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짓 웃음으로 인사를 보내오며 금새 굳은 표정으로 돌아가버리고는 다른 곳을 응시한다. 같은 신분을 가지고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 그 단체가 하나 이상의 모임 장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마주치게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그 희박한 가능성도 아니고 매 주, 같은 요일에 만나야 하는 관계속에서 벽을 세워버린 상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 괴로운 일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벽을 느껴버린 사람은 또 어떤가. 자신은 세우지 않았는데, 다른 존재들로부터 벽이 느껴진다. 그래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난 벽 따위 설치하지 않았다. 벽 같은건 둘 생각도 없었고, 무작정 들이대는 타입이다. 그런 주제에 벽을 느껴버린다. 그 벽을 없애거나 우회하거나 넘어보려고 약 1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벽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벽은 허물어버리기 전에는 그 자리에 위치한다. 이 쪽에서는 도무지 허물어 버릴 수가 없다. 어느 한 쪽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열 수 없는 두 개의 열쇠가 있는 보안 금고같은 벽이다. 한 쪽에서만은 도무지 헐 수가 없다.

노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결실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단지 조금 오래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작게 움츠리고 슬쩍 곁눈질해오고 있지만, 역시나 먼저번의 생각이라는 녀석은 조금도 그 기세를 꺽으려하지 않는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그것..  

인덕을 갖추어야 할 이유

나는 누가 뭐래도 기독교인이다. 지금까지 어디를 가서든 당당하게 밝혀 왔고,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인덕을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에는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꽤나 자유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지 못 했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런 모습으로 인해 시험당하고 아파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거라는건 분명한 일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고, 신학생이라는 신분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인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부정할 수 없다. 이전과 달라지게 된 것은 진심으로 주의 뜻을 받들기 시작했던 그 시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전의 활기차고 쾌활했던 모습들을 생각하고,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시큰둥 해 졌니?”,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거니?”라고 걱정들 한다.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겠지. 성화가 성격의 변화를 말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겸손해졌다고 스스로 느껴진다.

내 삶을 드린 그 순간, 인덕을 갖추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어머님께서 입국하셨다.

길고긴 한 달이 지나버렸다.
생각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꽤 짧게 느껴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31일, 744시간, 44640분, 2678400초가 지났다.
뭐..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거… 생각보다 꽤나 헛짓인거다.

어머님께서는 8월 31일에 나오기로하셨지만, 같이 가셨던 분께서 며칠 더 있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이러 저러한 이유 때문에 조금 늦게 입국하시는거란다.

쨌든 어제 낮(토론토 시간으로는 31일 23시 50분)에 출발하셨는데, 그곳에서 여기까지 무려 13시간이나 걸린단다. 정확한 도착시간이 궁금해서 대한항공에 전화를 걸었더니 기상상태때문에 예정 도착 시간인 2일 새벽 2시 50분 정도에 도착한다고 한다. 뭐… 20분 정도쯤이야.. 기다릴 수 있지.

어머니.. 오랫만에 뵈러 가는데, 모시러 가는데 웬지 그다지 애절하거나 보고싶거나 그런감정이 좀 덜하다.
정이라는게 없는 녀석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참… 인생이 메마른듯이 생각된다. 오래 떨어져있었는데도 가족에게서 조차 애절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건 스스로를 무정한 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게 한다. 이 짧은 한 달이라는 시간에 이런 민감해 보이는 반응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좀 들긴하다.
하지만.. 하지만… 동생이라는 녀석은 좀.. 그 녀석이 유난스럽게 정이 더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 마중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으므로… 여기까지..

어머님은 건강해 보이셨다. 다행히도 시차나 음식, 물 때문에 고생하실만한 타입이 아니라는걸 감사하게 생각했다. 약 한달만에 어머님은 딸, 아들을 보고싶으셨단다. 그렇게 계속 전화통화를 하셨으면서도 그렇다고 하신다.

곁 얘기로 젊은 남자 셋과 젊은 여자 셋이 함께 친구 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다리면서 사진도 찍고 뭔가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친한 친구가 입국하는것인가 추측했다. 하지만 입국절차를 다 밟을 시간이 흐르고 나온 것은 그 중 한 여자의 아버지께서 입국하시는 거였던거다. 혼자 나가고 싶지 않아서 내지는 혼자 나가는 것이 무서워서라는 정도의 이유로 친구들이 함께 해 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친구(?!)들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곁얘기로 입국 수속시간이 꽤 많이 잡아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래봤자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도 외국인은 착륙 후 10분 이내로 나오기도 하는것을 보면서 씁쓸해 했다.

개강하고 나서 첫 수업

뭐… 이번 주 월요일에 개강하고 나서 수업은 여럿 있었지만, 수강 신청을 제때 안 했고 목요일이 되서야 들을 과목들을 정하고 신청서를 완료 지었기 때문에 오늘에서야 첫 수업을 들었다.
사실 전산상으로는 그제 신청을 다 했기 때문에 목요일에도 시간표를 확인하고 수강할 수 있었으나, 전날의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서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게 되었고, 때문에 수업을 못 들었다.

이번학기에는 참 기대되는 과목들이 많다. 먼저 오늘 처음으로 들어갔던 일반 서신 수업인데, 교수님께서 꽤나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니신듯이 보였고, 신학생이면서도 성경을 제대로 연구해 보지 못하는 실정을 여실하게 알고 계셨기때문에 강의 계획표 상에 있는 주교재 및 부교재를 다 제끼고 성경을 교재 삼자고 하셨다. 물론 앞으로 더 겪어 봐야 어떤 사람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겠지만 오늘 수업을 듣고 나서 느낀점을 일단 추측형으로 적어보았다.

그리고 신학과에서는 별 다른 기대되는 과목이 없고, 부전공인 국제경영정보학과 과목 중에서는 DB관리론이 참 기대된다. 봉사하고 있는 선교단에서 이래저래 프로그램들을 요구하는데,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계획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더 큰 작업을 하게 될 때 처음부터 다시 프로그래밍해야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문에 이번에 DB관리론과 함께 C언어를 배운다. 이미 프로그래밍은 할 줄 알지만, 알고리즘 관련해서 배울 게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좀 더 체계적이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압박을 받은건 이번에 프로그래밍 했을 때이다.

이래 저래 무대포식으로 앞뒤 계획없이 간단한 테이블 구조 계획부터 시작했는데, 프로그래밍하다 몇 개의 테이블이 더 추가되어야 했고, 몇개의 필드가 더 추가되고, 삭제되고, 수정되었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 프로그래머들도 이런 작업은 어느정도씩은 할 수 밖에 없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본인에게 있어서는 그 정도가 좀 심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부전공 수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다.

뭔가… 좀 더 발전한 상태로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은 더 발전되고 정리되어 짜임새 있는 프로그램이 탄생될 것이라는게 지금의 생각이다.

첫 수업이 일단 기분좋게 시작되었기 때문에 나머지 수업들도 기분좋게 진행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빠이팅!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멋진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우리들의 영웅이 권력을 얻고나면 잔인하고 파렴치하고 이권을 챙기고 비인간적으로 되어버리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급우편에 서겠다던 반장은 선생님 편이 되어버리고, 국회의원은 제맘대로 당을 바꾸고 뒷돈을 챙긴다. 급우나 지역구의 여론은 안중에 없다.
회사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진급이나 승진을 하여 보다 권력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장 승진을 하면 대리 때보다 목에 힘이 더 들어가고 아랫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어꺠를 펴면서 등이 뒤로 휘어 배가 나오게 된다. 옛날의 그 대리가 아니다.

유쾌한 심리학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 권력 편

  확실히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군을 부사관으로 전역했는데, 애초에 지원한 목적 중에 하나가 변화였다. 그 변화라는 것은  조금더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를 원했다.

  물론 전역한 지금 그런 노력들의 결과로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군 생활은 나로하여금 어떤 다른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했었다. 뭐랄까.. 조금 더 권력 의존적인 행동을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어느 집단에든지 수직적인 관계로인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다른 집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강제권을 가진 곳이 군이라는 집단이고, 그런 곳에서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지휘하고 있는 곳에서는 스스로 왕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건데 결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이 많았다.

  군에 처음 입대했을 때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자는 목적과 함께 다짐했던 것이 폭력행사나 욕설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군입대전 – 그리고 지금 – 신분이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다짐을 굳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리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것이다. 처음 1, 2년 동안은 다짐을 했던대로 부하들에게 욕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정이 없고 약삭빠른 부하들이 많아졌고, 또 이전보다 군기가 헤이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사건들로 인해 그들에게 더 이상 정을 가지고 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되었다. 또 상급자들로부터 군기를 바로잡아야하지 않겠냐는 주문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활하던차에 군에서는 작은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옆 중대에서 전역신고를 하지 않은채 행정병을 괴롭혀서 전역증을 미리 받아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나가버린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근무하고 있는 중대에서는 휴가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중대장님과의 면담도 거치지 않은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군이라는 집단은 신고가 가장 기본인것을 그들이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병사 신분 중에서는 가장 높은 병장의 계급을 가지고 있었고, 전역한 그들 스스로는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다음이 병장이라고 할 정도로 결코 경험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직급으로 따지자면 과장 바로 밑인 대리격이다.

  조금 주제에 어긋나기는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의 내 행동은 조금 더 과격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고, 저녁에 근무를 서면서 중대소속의 부하들을 모두 모아놓고 적잖이 과격한 방법으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을 취했다. 물론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구타가 만연한 그것이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평화적이며 비폭력적인 방법들로 여러면에서 접근했을 때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강제력이 없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해서 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 자체도 적극적이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게중에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상급자인 나로하여금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됐던 부하들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끊이지 않고 있었다.

  쨌든,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조직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게 되면 하지 않으면 안될 행동으로 인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손바닥만한 피자(헛!)

오늘은 학교에 가서 수강 신청, 복수전공 신청을 하고 왔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작업이 생각외로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어서 아침에서야 잠이 들었던 나로서는 오전에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잠시 누워있는다고하며 잠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시간은 이미 오후2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거실에서 자고 있던 동생은 이미 출근한 뒤였다. 썰렁한 집안에서 씻고,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수강신청은 그렇다고해도 복수전공신청 같은 경우에는 학과장의 서명을 받아야하기 때문이었다.
학과장 정도 되시는 분들은 워낙 바쁘셔서 제 시간이 되면 얼른 밖에 나가버리시기 때문에 더욱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렇게 서둘러 학교에 도착해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을 받으러 갔는데, 1전공 학과장님은 다행히도 계셨다. 그러나… 2전공 학과장님은 이미 – 치과를 가셨다고 조교에게 듣긴 했지만 – 퇴근하셨다고 했다.
퇴근시간도 아닐텐데, 이런건 아니자~나~ 아니자~나~

어쩔 수 없이 서명을 받지 못하고, 내일 교무처에 사정을 얘기하고 처리하려고 조교에게 대신 서명을 받아달라고 맡기고 내려와서 1층에 복수전공신청은 다음 주까지란다… ㅡㅡ;;;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괜스레 서둘러 땀냈다는 생각이 급습했다.

그렇게 다 정리하고 나서 시간을 보니 5시 반 정도였다.
며칠전부터 BF 녀석이 저녁 안 사주냐고 전화를 했었는데, 그 녀석 생일도 제대로 못 챙겨줬고해서 여러가지로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말았다는게 생각났다.
전화를 걸었는데 이 녀석 어찌된 일인지 받지 않는다! 다시 걸려고 폼 잡고 있는데, 그 녀석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하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녁 사주게~!?”였다. 참.. 내 자신의 친구 관리가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대번에 보여주는 대사가 아닌가!
쨌든 용산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배회하고 있는 듯한 녀석의 주변부 소리를 무시하고는, 용산으로 이동했다.
여기 저기 퇴근시간이 가까워지기도 했고, 원래 잘 막히는 구간이라서 가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도착해서 음식점 찾아서 주차하는데까지 무려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종로를 왜 모두 비싸기만한 유료 주차장들 뿐인건지, 당췌 차라는걸 가지고 간 자신이 개념이 탈출한게 아닌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간 곳은 피자헛이었다. 어차피 출혈이 클거라고 예상되는 마당에 샐러드바로 배채우자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찾아들어가면서 생각해보니 그 녀석과 만난 최근의 4번 정도를 피자헛 연속인것었다. 쨌뜬, 질리지도 않고 찾아가는 피자헛이었다.

지난 여러 만남들에서 주문한 피자는 치즈 바이트 퐁듀 였다. 퐁듀가 나오기 전엔 소스를 일부러 시켜다가 먹고 했기 때문에 퐁듀가 나와서 시켜먹었는데, 전에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전혀 새롭지 않았었다.
오늘은 뭔가 새로운 메뉴를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곳도 펼쳐 살펴 봤는데, 프레쉬 고메이 라는 항목이 눈에 띄었다. 메뉴판에 적혀 있기로는

고메이

라는게
미식가들을 위해 맛있게 조리되었다는 프랑스 말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와~ 나 같은 사람(!)을 위한 메뉴로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주문을 했다.

“프레쉬 고메이 세트주시구요, 4~5인분으로 주세요, 음료는 스프라이트로 주세요, “

라고 말하고는 주문 확인까지하고 친구랑 샐러드를 맛나게 갖다 먹었다. 둘다 느끼한 것들을 좋아하다보니 가져오는 샐러드들은 꽤나 느끼한 편이다.

쨌든,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파스타를 먹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피자가 나왔다.
와~ 하고 피자를 보는 순간 그 감탄사가 쏙~ 들어가버렸다.

좀 황당해서 그냥 놔두는 대로 보고만 있었다. 이거 4~5인분 맞는건가? 하는 생각과 주문이 잘 못 되었을거라는 확신을 머리에 채워나갔다. 그래서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있기에 불러다가 이게 4~5인분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것이다. 이거 보통 다른 피자의 medium 정도 밖에 안되지 않느냐! 고 항의하니까 메뉴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헉! 이런 대 실수를…. 메뉴판에 적혀 있는 세트 메뉴의 내용들을 주의깊게 보는데 프레쉬 고메이 피자(M)이라고 적혀 있는게 아닌가!

친구랑 둘이 먹으면서 이거 완전 사기다, 피자헛 사이트에 올려서 항의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주저리 주저리 먹는 내내 떠들었다. 사실 주의깊게 보지 못한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아르바이트하는 사람이 조금 더 주의깊게 알 수 있도록 재차 주지시켜주었더라면 이런 대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맛은 소스를 너무 짜게 만들어서 먹는내내 불평을 했다. 인생에서 가장 불평을 많이 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먹는내내 불평을 했다. 사실 마음에 안들어서도 그랬겠지만 예민한 미각때문이기도 했다. 음식을 매우 싱겁게 먹는편인데 소스를 얼마나 짜게 했는지 입안이 쓰라릴 정도였다고 표현하면 느끼실 수 있으리라…

뜻에 따라 이끌려 간다는 것..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최근의 개인적인 관심사이고, 갈구하는 것 중 하나이다. 최근 이전에도 여러번 하나님의 뜻을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나 노력은 있었지만, 그것이 꼭 직접적으로 음성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제 선교단에서 인생 그래프라는 시간을 가졌는데, 2명의 인물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얘기해주는데, 참… 그 가운데서 그들의 상처를 알 수 있었고, 또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어떤 계기로 선교단에 들어왔는지. 그 사람들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끝없이 갈구해도 모자랄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친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시간엔 이래 저래 웃기만 하고 있었지만, 나란 인간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해 보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명감(!)마저도 불타오르게 됐다.

끝없이 발전시키고 변화시켜도 모자라고 부족하기만 한 불완전한 인간.

우선순위..

그래… 언제나 문제는 우선순위 였던 것이다.

스스로 정해 놓은 일처리 우선순위는 언제 그 집단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집단에 먼저 들어갔는지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두었다.

하지만 이게 최근들어서 문제가 생겼다. 단지 취미활동 – 이라고 하기엔 그 성격이 모호하지만 – 정도로만 생각했던 단체가 비영리 법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그 쪽에 치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들어가서 일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정이 들어가기 시작한 집단인데다가 뭔가 자리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 진것이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 역시 그 집단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또 만나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뭔가 정에 끌려서 못 그만둔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더 괴로운 생각이 든다. 전에 친구에게서 정에 이끌리지 말라고 충고 받았었다. 그 때는 알겠다고만하고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문득 이 문제에 있어서 그런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인생이란 끝없이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그 문제들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나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한 개체로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해야할 의무(!)가 있다.

이래 저래.. 언제나 이렇다.

웬지 울적해졌다…

오늘이 학교 개강일이라는 포스팅을 쓸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믿음의 부족함이 내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가.
믿음의 부족함때문에 눈에 습기가 차 오르는 건가.

ㅁㄴㅇㄻㄴㅇ러ㅏㅣㄴㅇ러ㅏㅣㅁㄴㅇ러ㅏㅣㄴ어ㅏㅣㄹ러ㅏㅣ’

복잡하다..

생활 패턴이..

올빼미형으로 다시 돌아가버리는거 같아서 진정 스스로에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거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다니.
저녁에 탄력 받아버리면 아침까지 스트레이트로 작업해버려서 다음날 일정에 영향을 줘버리는 그런 생활이 다시 시작되려하고 있다.
군에 가면서 힘들게 –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지만 – 바꾸었던 생활 패턴이었는데, 주일 예배 시간에 잠깐씩이지만 졸아버렸다.

꾸벅… 꾸벅…

엊그제 당회장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는 졸지도 못하고 오히려 대통령 만났다고 자랑하고 다니면서, 인간의 조물주이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와서는 졸 수 있냐

는 내용으로 요약된다.
그것과 비할 비가 된다. 전부터 예배시간에 조는 것은 굉장한 고민이었다. 졸지 않기위해 허벅다리 안쪽살을 꼬집어보기도 하고, 전날 굉장히 일찍 자기도 해보았지만, 그건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졸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면 오히려 뇌가 과부하 걸려 더 빨리 졸아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거 정신과 쪽으로 상담을 받아야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전역한 후로 당분간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고민 일선에서는 사라졌었다. 그러나 최근들어서 다시 고민 1순위로 접어들게 되었다.

아… 어떻게 하면 졸지 않을 수 있을것인가.
허벅지도 심하게 꼬집어서 피멍까지 들어버리는데도, 왜… 왜! ㅠㅠ

말씀이 함께하지 못하면..

어제(25일) 금요 철야 때 들었던 말씀 중에 기도와 함께 말씀이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설교를 들었다.
김충규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5장 7절을 들어 “말씀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대언하셨는데,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John 15:7)

대부분의 사람 들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대목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새겨둠과 동시에 구하여야 우리가 구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영을 살리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 거지? 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전교인 수련회 때 봉사하던 청년들이 당회장 목사님과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일에 대해 매우 강조하셨는데, 기도로 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직접 그 음성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것보다는 우리가 말씀을 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아! 하고 깨달아졌다. 실제적으로 내 심령 가운데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심령가운데 깨달아지는 방식으로 내게 뜻을 밝히셨던 경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 생활 가운데는 말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는 것은 뜨겁게 기도하는 그 순간 뿐이다. 그렇게 집회를 마치고 나면 일상생활로 들어서서 전혀 관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그 분의 음성을 듣기는 커녕 뜻하심조차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 속으로 꽤나 자주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대부분은 반향이 없다. 웬지 내 마음대로 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도 적지 않다. 역시.. 삶이 말씀 가운데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게 된다.

요즘 미니위니를 통해 알게된 리디의 생각하는 섬 바닷가에 자주 드나드는데, 그 곳 분들의 글들 가운데는 웬지 모를 위로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말씀을 인용한 글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 과는 또 다른 감정이 일기 때문이다. 사실 다니는 여러 다른 곳들 중에는 그런 식(?)의 글들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웹 개발 관련 페이지들이거나 관련 직종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회 관련된 곳에서는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ㅡㅡ;; 인터넷의 물결이 들어오기 전 크넷이라는 곳 이후에는 없었다고 기억된다.

쨌든, 목사님의 설교로 돌아가서, 이후의 인용되는 말씀들을 주욱 살펴보면

사도행전 6: 1~4 ::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시편 119 : 147~148 ::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에베소서 6 : 17~18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한복음 5 : 24~25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시편 119 : 50 ::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말씀들은 모두가

말씀

과 관련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는 것은 명령이며 지켜 순종해 내야 할 부분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말씀에 입각하고 체계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씀위에 바로 서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충규 목사님의 설교는 유난히 – 다른 목사님들의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는 건 아니다 –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귀에 그리고 마음에 잘 새길 수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것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목사님을 찾아가는 이유일까? 그런 행동은 뭔가… 아니다라는 인상을 깊게 남기지만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말씀을 전하기 위한 일꾼으로서의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요즘 내 생활이..

게으름의 정도가 점차 심해져가는 듯하여 긴장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초에 PC 운영체제가 완전히 가버려서 새로이 복구하고, 동생 PC까지 설정해 주면서 밤샘작업이 약 3일간 지속됐는데, 그 시점으로부터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작업하고 아침에 잠들어서는 12시가 넘어서 일어나게 되는 생활이 금새 적응돼 버렸다. 몸이 피곤하면 아무래도 동작도 그 이전의 상쾌했던 때보다 느려지고 고로 밀려버리기 때문에 게을러져버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전에 올빼미 생활에서 변해보려고 노력한 탓에 꽤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이렇게 다시 게을러져버린 걸 보면 인간은 안 좋은 것에 금새 익숙해져버리는 것일까.

어떤 일이든지 나쁜 일을 더 먼저 배우게 되는 그런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시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일찍 잘 필요가 있다.
몇일동안 밤에 잠을 안자고 오후까지 자서인지 일어나고 나서도 꽤나 탁한 기분이 든다. 상쾌하게 일어나는 그런 느낌이 없어져 버렸다. 조금 늦게까지 작업하더라도 저녁에 제대로 잘 때는 그런걸 못 느꼈는데, 확실히 잠 못자면 여러모로 나쁜 점이 많다.

오늘 문득 든 생각인데, 시차가 심한 곳으로 이민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얼굴이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보이는 건 평생을 한국의 시간에 맞게 밤낮 생활을 하다가 외국에 나가면서 뒤바뀌게 되고 한국의 밤 시간에 활동을 하느라 노화가 빨리 되는게 아닌가 싶다. 군대에 다녀오면 – 특히나 상황근무를 주로 서는 장교나 부사관 – 잠을 많이 못 자기 때문에 또래의 사람들보다 피부노화가 빨리 진행되어 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물론 게중에는 밤새도록 제대로 근무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서 고운 피부를 유지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대부분 피부가 엉망이다. 물론 선천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게으름은 여러모로 일의 진행을 느려지게 만든다. 진행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또 몇달이나 걸려버릴 듯 하다.

We use cookies in order to give you the best possible experience on our website. By continuing to use this site, you agree to our use of cookies.
Acce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