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의 최후

“고도 너무 낮다” 경고에 조종사 “내가 지형 잘 안다”

위의 기사를 보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종사가 관제탑의 조언을 무시한채 자신의 자만심으로 난 사고임을 알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필자의 주변에 몇 몇의 여성중에는 운전면허를 취득해야하는데, 차가 무서워서 못 할 것 같다며 한달 두달 시험 응시를 미루는 사람들이 있다.1 하지만 이건 자신에 대해 조금 더 믿어주고 용기를 북돋우어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별 것 아니라며 웃는 얼굴로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는 문제임은 여러 지인들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분명 중요하지만, 그 자신감 있는 행동을 하면서 자신을 과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자세가 필요함을 일깨워주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오 대사에 따르면 사고 발생 직전 시아누크빌 공항의 관제탑은 착륙을 준비중인 사고기에 대해 “고도가 너무 낮다”고 경고했다.
공항으로 진입하는 항로 50여㎞ 지점에 해발 1천80m의 보꼬산 국립공원 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가로놓여 있는데 당시 사고기의
고도는 600m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출처 : 상위 링크 기사

일반인들도 그런데 사람의 목숨 몇명 내지는 몇십명의 목숨을 다루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더욱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면 간혹 자신이 버스의 운전기사라는 사실을 잊은채 운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치 자신이 카레이서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을 때마다 – 싸가지 없다는 평을 받더라도 – 지적하지 않으면 안 될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지적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두려움만 가질 뿐 한 소리 할 생각들을 하지 않는다.

정말 그럴때마다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소리도 안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571번 버스로 환승해서 타고 가야하는데, 이 버스를 타는 지점이 영등포 수도사업소 건너편이다. 이곳에서 출발한 버스는 곧바로 성산대교를 건너 가는 노선을 취하는데, 성산대교를 진입하기 3백여미터 앞에서 앞에 가던 차가 깜빡이를 켜지 않은채 끼어드는 시츄에이션을 연출했는데 이 때문에 해당 버스는 잠시나마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때 필자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는데 이 버스기사는 날이 더워서 머리가 살짝 돌아버린건지 약간 정신병적 문제를 가지고 있었는지, 앞의 차량을 좇는데 혈안이 된 듯 보였다. 앞의 차의 왼쪽 차선으로 옮기더니 마치 카레이싱이라도 하듯이 그 차를 좇더니 결국 그 차의 앞에 다다랗다. 그러더니 깜빡이를 켜지 않고 위협하듯 우측 차선에 끼어드는 듯하다가 원 차선으로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 했다.

정말 이 사람 미친 사람 아닌가? 마지 자신의 자가용을, 그것도 혼자 타고 있는 차량에서 해도 사고위험이 있는 행동을 열 댓명이 타고 있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하니 말이다. 자기 목숨 하나 버리는거야 어쨌든 뒤에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최근에 일자리들이 없어서 버스나 택시 기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기는 하지만 그다지 수요만큼의 지원은 없는것으로 알고 있다. 타고 다니는 버스마다 기사를 구한다는 안내를 자주 보게 된다.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런 행동이 발생되지 않도록 교육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미 교육을 하고 있음에도 더위나 과로로 그런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1. 여성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에 대해서 좀 더 자신을 믿고 극복해야할 문제를 강조하는 의도이다.[]

비판의 대상으로서의 나, 그리고 대화

필자는 비판 받는 것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민노씨께서 자주 언급하시듯이 비판은 그 대상에 대한 관심(애정)이 없다면 존재 할 수 없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판은 고양된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물론 비판의 탈을 쓰고, 그 ‘사람’을, 그 ‘블로거’를 증오하기 위한 비난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민노씨.네

민노씨.네

블로그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만들어왔고 자신의 발전에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자세가 비판의 수용이었다. 지금도 역시 비판에 대해서는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 비판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 비난이 아닌 경우에만 그렇다.

오늘 레몬가게님의 글<(불)펌 블로깅 보다는 가벼운 블로깅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과 민노씨의 글<함께 블로깅하기 – 블로깅의 민주적 가치>을 통해 다시한번 (불)펌, 비판, 대화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인용을 할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부분을 인용한다고 원작자에게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원작자는 그 인용여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딘가에 적어둔 어떤 구절을 가지고 나 모르게 사람들이 떠든다면 그것 역시 기분이 나쁘다. 인용의 경우에도 원글에 대한 링크는
확실하게 밝혀야하고 원작자에게 반드시 알려야한다. 똑같은 논리가 링크걸기에도 적용된다.

작성자의 동의와 바른 출처표시가 없다면 위에서 말했던 이유에 근거, 나는 그것을 무개념 포스팅으로 분류한다.

레몬가게

먼저 레몬가게님이 (불)펌질과 인용에 대한 반대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일단 (불)펌질에 대해서는 블로그 활동 초기에는 그다지 그에 따른 문제 발생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 했었고 인용의 부분에 있어서는 출처 표시만으로 필자로서의 의무는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레몬가게님의 의견에 따르면 무개념 포스팅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화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레몬가게님 같은) 작성자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글이 뒷담화1가 되도록 놔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대화를 원해서 작성한 글이 자신이 빠진 상태에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레몬가게님의 마음이 공감이 되었기 때문에 이 후의 포스팅에 인용이나 링크를 할 경우에 작성자에게 통보할 예정이다.

사실 인용문에 대해서 작성자에게 통보하는 행위를 의무로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인용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을 나타내는 것 또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도구 정도로 사용할 뿐인데 그런 활동에 작성자로 하여금 끼어들게 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생각이었기 때문이고, 이것은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단상 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블로그를 대화의 공간이 아닌 기록을 남기는 공간으로서만 활용해 왔기 때문에 생겨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운영행태는 이 블로그의 제목(관계 / 단절의 시작은.. ) 중에 있는 (대화의) 단절의 시작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의 이 블로그에는 대화가 거의 없어졌는데 이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인 셈이다. 대화가 없는 블로그가 그 존재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일단 관계의 시작이 되게 하고 싶다는 블로그 제목의 의미를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레몬가게님의 글을 통해 관계의 시작을 바라면서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공간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했다.

그리고 인용문의 삽입이나 링크를 작성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이유를 한 가지 덧 붙이자면 글을 작성은 하고 있지만 작성된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작성자의 글에 댓글을 달거나 인용했다는 글을 달아서 다른 사람들이 부족한 글 솜씨를 보고 업신여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확실히 이 블로그에서는 지금까지도 정리되지 못 한 듯한 글들이 자주 작성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 과장되게 표현되어진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두려움은 여러 공간에서의 글 작성을 취소하는 행동으로 이어진 적이 적지 않게 있어왔다.

위의 두가지 이유(교류, 자신의 창작물 관리)때문에 나는 (불)펌질이 싫다. 특히나 그 글에 대한 독자의 피드백이 해당 원글로 돌아가지 못하게 의도한 펌글은 더더욱 싫다. 의도했건 어쨌건간에 퍼온글이 원글에 제대로 피드백되지 않게 만들었다면 그건 퍼간사람이 절대적으로 잘못한것이라고 본다.(따라서 출처표시가 되었더라도 어느정도 무개념 포스팅에 포함시킨다.) 퍼온글이면 좀 더 확실하게 원글을 이어주어야 하는것이 퍼간 사람의 예의이다.

레몬가게

레몬가게님이 언급하신 작성자들의 대화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동시에 이미 여러번 다수의 블로거들에 의해 언급되었던 검색의 최적화 문제의 원인2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뭔가 연결된 레몬가게님의 글의 주제와 살짝 거리감을 가진 듯 하지만 일단 레몬가게님의 비판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에 공감되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민노씨.네와 레몬가게님의 블로그 해당 글에 트랙백을 보내며, 이 글이 지적을 위함이 아니라 공감의 표시임을 알린다.

  1. 대화의 주제가 주제의 작성자를 배제한 대화를 뒷담화라고 정의 내려 본다면 말이다.[]
  2. 검색에서 원작자의 글보다 펌질 된 글이 더 상위에 링크되는 것에 대해 여러 블로거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었다.[]

명확하게 알고 사용하기

글을 잘 작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단어나 문장을 적절한 상황에서 제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히포크라테스의 4가지 기질 분류 중 다혈질 적인 성향도 가지고 있는데, 다혈질의 사람은 열정적으로 추진력은 있지만 우울질의 성향을 많은 부분 가진 사람만큼 꼼꼼하거나 세밀하게 작업하려는 속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단점을 가진다.

물론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울질의 – 긍정적인 – 성질도 조금씩 늘리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지만, 인간의 속성을 변화시키기는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이전보다 조금은 더 발전된 형태의 작업 방식 – 우울질적인 세밀함 – 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그 성격 – 다혈질 적인 – 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서 완벽하고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 글의 제목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단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기록해 보고자 한다. 이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서 기질에 관련된 설교를 듣고 있는데, 학습을 할 때 다혈질 성향이 강한 사람과 우울질의 성향이 강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대충하느냐 세밀하게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것과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하면, 학습을 할 때에도 모르는 용어들의 의미까지 완벽하게 알아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 학업 성취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예를 들면 필자는 시험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있는 그대로 외우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기억하고 그것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판단을 통해 관련 내용을 서술하거나 논술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공부방법에는 문제가 있다. 교수자가 원하는 용어의 사용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시험 측정에서 고득점을 할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 용어의 사용은 그 학문의 이해에 대한 반 이상의 중요성을 가지는데, 용어의 선택을 잘 못 함으로써 이해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거나 이해는 하고 있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이해를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학습에 있어서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업무상의 필요 용어들의 사용은 업무 처리의 효율성과도 연관되어진다. 상대방과의 업무 처리 관계에서 관련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업무의 흐름을 끊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에 들어가게 되든지 문제는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얼마나 빨리 익히고 사용하는가가 적응의 속도를 가름한다.

이런 일련의 내용들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결론이자 해결책은 역시 용어의 정확한 이해와 그 용어 및 의미를 평소에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벼락치기 공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소화해 내기에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에 세세히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련 문제에 대해서 궁금증이나 믜문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예습과 복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벼락치기 공부로도 일정의 고득점을 할 수 있지만, 완벽한 최고점을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압력

내 글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껏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그 정체를 알아냈다.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발견했다는 표현도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바로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하는 압력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수개의 포스팅을 해도 댓글 하나 안 달리는 것이다.

이햐~ 해찬횽~ 멋지잖아!

누가 더 쉬울까?라는 글에서 링크된 이해찬씨에 대한 과거사를 나름 객관적인 사실들을 주관적으로 서술한 – 무슨 말인지 – 글을 읽게 되었다.

이해찬씨가 책방을 운영하였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TV의 다큐멘터리던가에서 들어봤던 듯 한데, 그 이외의 이야기는 새로운 것들이었다.

그 책방이야기가 사실인 것을 보면 그 외의 이야기들도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되는데, 특히나 감동되었던 부분은

판사 : “피고인 이해찬 사형!”
이해찬: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다. 모친과 함께 법정에서 판결을 듣는 순간 졸고 있었다는 내용이 정말 압권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그 다음 부분인 위의 부분이 나오자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그 외의 사건들도 정말 멋지다고 생각되어질 수 있는 사건들인데, 해찬 횽~ 정말 멋진 사람이구나.

이런 류의 글들은 대게 꾸며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웬지 그 글에 대한 신뢰성이 의심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 대선 후보들 무더기로 나와서 마치 국회의원 선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번에야 말로 좀 힘들더라고 그 사람들의 지난 이력들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찾아보고 판단하여 투표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AW Series

얼마 전에 Ch. CGV에서 SAW 2의 결말 부분을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이전의 1도 일부분만 보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이번에 SAW 시리즈를 차례대로 보기로 했고 보고 있다.

사실 필자는 공포물이나 하드고어류를 보아도 별반 섬칫해하거나 하지 않았는데, 별 것 아닌 장면에서 섬뜩해 졌다.

그것은 바로 2에서 마약 주사를 위한 주사기 더미 위에 떨어지는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랬다.

정말 그 순간 섬짓했다.

의사들은 항상 차가운 의학용어로 내가 죽은 시체나 다름 없다는걸 돌려말하지

출처 : SAW III 중 24:50~54

이 대사는 직쏘1가 그가 암 판정을 받은 병원의 의사 중 한 여성 의사의 답변을 들은 뒤의 대사이다.

저 대사를 들으면서 생각해 낸 것은 얼마전 있었던 순천향 병원의 여중생 사건이었다. 정말 잊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되면 다시 언급하고 싶어지는 계기가 생긴다.

또 한가지는 의사들의 어쩔 수 없는 직업적인 말투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만일 의사였다면 어찌했을까 죽음의 그 무게 앞에서 가볍게 말할 수도 없을테고, 부드럽게 말하려해도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경우의 수들말이다. 좀 귀찮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 하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게 아니라 그 이후에 생길 일에 대한 귀찮음을 말한다.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말하는데도 가족들은 그렇게 느끼지 못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느끼게 된 것은 잘 하며 잘 살자 이다.

  1. 일본어 ‘칙쇼(?)’가 생각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젠장’이던가.[]

미루었던 글쓰기

밀린 글을 쓸 때 가장 큰 문제점은 아무래도 쓰려고 마음 먹었을 당시의 느낌을 100% 되살리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쓸 내용은 매우 밝고 긍정적인 내용인데, 쓰려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우울하고 서글픈 때는 다소 난감해집니다.


정말 난처했다.

이번에 끝난 학기 중에 상담과목이 있었는데, 기혼 친구의 이혼 문제에 대한 상담을 한 것이 3월이었고, 그 친구와 상담한 것을 상담 사례로 제출하기로 하고는 다른 과제들에 밀려서 미루고 미루어졌다.

사실 그 과제의 제출일은 기말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기때문에 한참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에 간단한 기록을 스프링 노트에 남겨두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는 대화의 전체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었다. 사실 상담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내담자1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대로 미루고 미루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거의 다 마치게 되었을 즈음에 가서야 조금 여유가 생길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내었는데, 학기 말은 그런 생각으로 미루어 둔 과제들이 몰려있기 마련이다. 이번 학기에는 조금 나은 형편이라고 말할 수 없고 되려 더 심한 형편이었다.

하지만 간단히 기록을 남겨둔 것에 힘입어 열심히 열정적으로 그 내용들을 기억해 내어 다 작성하긴 했다.

하지만 제출하기 위해 살피면서 그 때의 절박함2이 다 표현되어 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설과 같은 표현력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 사례 자료였지만, 좀 아쉬웠다.

역시! 글은 그 때 그 때! 글 뿐만 아니라 생각났을 때 얼른 처리해 버리는 것이 속 편하고 그것 나름대로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1. 상담을 청해온 사람[]
  2. 그 친구는 작년에 결혼해서 6개월 가량의 신혼이었는데, 이혼 상담을 청해왔음.[]

포기하는 것은 인간일 뿐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하의 글을 기독교 전체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개인의 신앙 고백이지만 사실에 근거하여 글이 작성되었음을 밝혀둔다.

그 동안 너무 쉼 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근 한달여를 RSS구독을 미뤄왔다.1 그러다가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그 동안 읽지 못했던 포스팅들을 읽어내려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오늘은 리디의 생각하는 섬 바닷가의 글들을 읽고 있었다. 그러던 중 On your mark님께서 작성하신 글을 읽다가 문득 다음 부분에서 시선이 고정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다만 인간입니다.

그렇다. 인간은 신(하나님)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오해를 많이 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다 안다는 듯이 사고를 하고 비판을 해댄다. 그게 무슨 신이냐. 인간을 만들었으면 그를 사랑한다면서 왜 그렇게 고난을 주고 힘들게 놔두느냐. 신 따위 없는게 아니냐. 혹시 포기한 것은 아니냐.

인간은 성경과 역사적인 근거들을 통하여 이성의 힘을 빌어 그를 정의하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정의될 수 있다면 난 흥미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끝 없는 탐구의 존재 아무리 알려고해도 다 알 수 없는 존재가 더 흥미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에서 저 부분에 시선이 멎은 것은 아니다. 바로 필자의 인생에서도 같은 생각을 갖도록 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정의내려버리고는 그것과 달라버리거나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되는 사건으로 이어지면 신은 없다. 그 따위 것은 심리적인 의존일 뿐이다. 라고 단정해버린다.

과연 그런가. 필자는 – 전에도 말했을 테지만 – 굉장히 의심이 많은 인간이다. 모태신앙인이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온전하지 않았다. 끝 없이 부정하고 오해하고 투덜였다. 완전히 그를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완전히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중요한건 지금의 필자가 있기까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할 수 없었던 성격적인 면이나 성품적인 면에서의 변화는 필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하고 변화를 구하고 난 시점 뒤에 눈에 띄일 정도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도 인간이고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오해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게 확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즉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렇게 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밥 한 숟갈 먹였다고 배부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인간이기 때문에 욕먹을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건 마찬가지겠지만 그런 것을 악용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자들까지도 피해를 보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서 악행을 일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신경쓸 이유가 없다. 그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줄 것을 권면하여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중에는 개인이 먼저 권면하고, 교회의 직책을 가진 자들에게 권면을 요청하고, 교회에 권면을 요청해도 안되면 그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어서 그냥 방치하는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방치 이전에는 분명히 단계적인 권면이 있어야 한다.

필자가 느끼는 인성, 성품의 변화를 아무런 행동이 없이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분명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있으셨고, 그로 인해 변화되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필자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이시며 적극적으로 힘이 되어 주시지만 어떤 행동에 대해 꾸짖거나 하지 않으셨다. 물론 그런 것이 무조건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필자에게 있어서는 적절한 대응 방식이셨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것은 인간들이여 자기 중심적 생각으로 신을 정의하지 말라 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속성을 알기를 구하고 – 기도하고 – 노력하라는 것이다.

  1. 방학이 끝나면서 Google Reader라는 존재를 알면서 HAN RSS에서 갈아타보려고 사용해 보고 있는데 글들을 쭉 읽으면서 웬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한 RSS와는 별 다른 기능의 차이는 없는듯 한데 어딘가 불편하다.[]

정체성은 둘 째 치고라도…

바로 전에 정체성에 대한 글을 적으면서 언급한 블로그의 글을 지난 번 읽었던 글 이후로 주욱 읽어가고 있는데, 계속 자극받고 있다. 이 블로그의 목적은 단지 기록일 뿐이라서 어떤 목표같은 것은 없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런데 블로그는 쌍방향 매체라는 말이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 시킨다. 누군가 들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자만인건지도 모른다.

일단 자신의 성격 변화에 대해 말해보면, 이전에는 꽤나 수용적인 자세로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였고 사람들의 하는 말 중에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필자의 인생에, 삶에, 행동에, 생각에 반영해서 고쳐보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비수용성 인간이 되어 있다.

분명히 그 주인장의 말들과 인용구들의 말들은 틀린 것이 없는데, 자신의 생각이 벽이 되어 튕겨내 버리고 말았다.

조금 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좀 해보고 있다. 이전에 수용성 인간일 때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별다른 노력이 없이도 유지되고 만들어지고는 했는데, 지금은 적잖이 관계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 나이를 먹어가고 사회경력이 쌓여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려워지는 것이라고도 생각해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들기에 다시 한번 수용성 인간으로 변해보려고 한다.

자! 이제 필자에 대한 고찰이 시작되고 변화의 노력이 시작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 도움이 되어 주시지 않겠는가?

아! 물론 악플은 정중하게 거절한다.

블로그 정체성에 대한 단상

이 블로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해 보지 않았다. 단지 일상의 끄적거림을 주로 운영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공간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목표나 정체성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반 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미투데이의 기록이 남겨지는 공간으로, 또한 그저 생각날 때마다 기록하는 공간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은 운영으로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비즈니스 블로그이든 개인 블로그이든 블로그 운영의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면, 효율적인 운영이 힘들 것이며, 그 기간은 짧게 반짝하고 끝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 있어 기획이라는 것이 필요하듯이, 비즈니스 블로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획이라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Interactive Dialogue and PR 2.0[비즈니스 블로그 기획] 비즈니스 블로그 기획을 위한 큰 그림 잡기

짧게 반짝하고 끝나게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적잖은 파장을 형성했다. 뭔가 이 블로그에 정체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정체성을 설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점차 정체성을 설정하여 운영할 수 있는 블로그를 따로 기획하고 운영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당장 이 블로그에 목표를 부여할 수 없고, 정체성을 부여할 수 없다. 그저 내가 기록하고 싶은것들을 기록할 뿐이다.

분명히 그의 말대로 효율적인 운영은 힘들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상관 없다고 생각된다. 그의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기록되어진 글들은 논리적이라고 생각되어 도움이 되고 있지만, 그의 글에서 말하고 있는 기획과 효율적 운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 뿐이다. 더 이상의 이유는 필요 없다. 단지 그의 말에 잠시 흔들린 정도라고 표현해 두고 싶다. 특별히 공격적인 표현은 없지만 juny님에게 악감정이 있다거나 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그다지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 그의 글에 트랙백은 날리지 않는다.
이래서 난 안되는건지도…

안정지향적, 모험지향적

어디선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동안 사고가 나는 상황에서의 여성과 남성의 차이에 대해 들었다.

남성은 사고가 날 때 눈을 크게 뜨게 된다는데, 여성은 그와 반대로 사고의 순간에 눈을 감는다고 한다. 그래서 운전 교육을 하면서 그에 대한 사항을 주지시키고 눈을 뜨고 사고에 대한 순간적인 대응을 나름대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그 순간의 반응에 관련된 생각인데 여성은 안정지향적이어서 눈을 감아 쉬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남성은 그와 반대로 눈을 크게 뜨는데 그건 아마도 모험지향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여성들도 충분히 여느 남성보다도 더 활발한 모험심을 발휘하기도 하고 여느 여성들보다 가정일에 소질을 보이고 안정을 원하는 남성들도 있기 때문에 무의미한 해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엉뚱한 해석도 어딘가에 쓰일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단상에 젖었다.

조바심

대안 미디어로서의 블로그에 관한 생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했다.

그리고, 블로고스피어의 혹은 세상의 대중은 그보다는 진실한 감정이나 일상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적으면 되지 않나 싶어요. 세월이 흐르고 지혜가 생긴다면 넓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 혹은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면모까지 드러낼
수 있겠지요.
이런 형태야 말로 대안 미디어라 불릴만 하지 않을까요? 기존의 미디어가 부족하고 못나서 대체
(substitutive)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도 판단도 주체도 새로운 대안 (alternative) 미디어로서의 블로거의
의미는 바로 이런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의 글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다. 다른 것에는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웬지 글 작성에 대한 것만은 자신이 없었다. 당시 필자의 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횡설수설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 횡설수설하다는 평판은 필자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게 아닌가하는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 추측해본다. 활동하는 동호회에서 글을 작성하고나서 다른 사람들의 글과 비교해보면 정리가 되지 않아보였기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횡설수설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를 넣게 되었다.1 이 문구는 점차 글을 쓰는 자신에게 나는 글을 잘 못 쓰고 정리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저렇게 느끼게 된 것은 그 당시에도 통찰력 있는 글들과 비교해서 자신의 글을 비교하면서 글 작성에 대한 자신감을 깎아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필자가 작성한 글에 대한 자신감을 점차 깎아내려가고 글 작성에 대해 겁을 먹도록 만들게 되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생각은 그 때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 볼 생각을 할만큼의 적극성이 없었다.

써머즈님의 말씀처럼 당장은 어떤 분야에 통찰력을 가진 글을 작성하기에는 넓은 통찰력과 날카로운 분석을 할만큼의 세월이 지나지 않아서 기록이 불가능한 것일까.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세월의 힘이라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해보인다. 하지만 사실일 것이다. 필자가 생각2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처음 글 작성에 대한 고민을 가졌을 때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본인이 읽을만한 정도의 글은 작성하게 되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관련 분야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작성하는 순간에도 그 이후에도 더 정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써머즈님은 그저 통찰력을 가지거나 날카로운 분석의 글은 그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진실한 감정이나 일상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적으면
되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이 마저도 힘들고 모자라 보인다는 생각을 가졌던, 그리고 더 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조바심을 냈던 필자에게 시원한 바람같은 글이 아닐 수 없다.

  1. 사실 그 당시에 작성했던 게시판의 대부분의 성격은 자유게시판이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편으로는 초기의 PC통신의 사용자들은 필자 또래의 초등학생이 아니라 아저씨들이었다는 사실이 그들보다 못한 게 당연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당연히 더 깊은 글들이었을 수도 있겠다.[]
  2. 생각, 사고, 고뇌 에서도 밝혔지만 여기에서 말해지는 생각은 단순히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떠 오르는 것을 어떤 다른 것들과 연관짓고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회장아들 폭행사건의 발단

모기불님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글에 댓글을 달아놓은 것에 조금 더 추가하자면, 사실 필자는 가해자들이 회장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회장 아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1를 생각하고 때린 것에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추측을 하고생각으로 초점을 회장 아들을 때린 자들과 김승연 회장의 보복에만 집중하는지 궁금해 했었다.

시비는 G가라오케 화장실 앞에서 발생했다. 조씨는 김 회장의 아들이 계속 째려보는 등 거슬린다는 이유로 뺨을 때렸고 김씨가
넘어졌다. 싸우는 과정에서 김 회장의 아들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눈 주위를 10여 바늘 꿰매는 상처를 입었다. 김 회장의
아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때리느냐”고 따졌지만 이들은 “네가 누군데?”라며 무시했다

기사를 좀 뒤적이니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말 실수를 했던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못났더라도 사람이라면 자존심이 훼손된다면2 물리적인 폭력행사가 아니더라도 악감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일단 김승연 회장이 아들의 보복에 대한 처벌을 하기 전에 원인을 선 제공한 조씨측도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법관련 지식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확언은 하기 힘들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지금 전반적인 분위기가 김승연회장의 재력을 통핸 권력 행사로 몰아가고 있는데, 김승연 회장도 처벌을 받아야하고 조씨 측도 원인을 제공하고 회장 아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1. 드라마, 소설 등에 등장하는 돈에 대한 관념이 없고, 자기 잘난 맛에 마음대로 하는 자식.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부정적인 쪽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는다.[]
  2. 표현이 좀 좋지 못하지만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한다.[]

zero gravity

아거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오늘자(2007-04-28 08:52)로 올라온 무중력상태의 스티븐 호킹 박사라는 포스트를 통해 뉴스를 접했다. TV를 거의 보지 않고 사는 것은 다른 창조적인 작업에 할애할 시간이 많이 생긴다는 이점도 있지만, 때론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TV가 아닌 다른 매체를 통해 전해받는 소식들도 TV를 직접 보며 알게 되는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또 다른 느낌이 있다.

Firefox를 사용하면서 Wizz RSS News Reader를 Addon으로 사용하다가, 얼마전에 HAN RSS를 접해보고는 갈아탔다. HAN RSS에 대해서는 적지 않이 오래전에 존재를 알았지만, 당시에는 RSS를 구독한 지 오래되지 않았었고, 나름 뭔가 불편을 느꼈었던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얼마전에 다시 접했을 때는 이전에 가졌던 느낌은 기억이 나질 않고 괜찮고 편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 Gatrolog 6 A.M.에 새로운 글이 하나 있다는 표시에 블로그 제목을 누르니 위의 뉴스가 포스팅되어있었다.

아거님께서 작성하신 내용에는 홍보 이벤트에 중점을 두셔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본문에 첨부되어 있는 동영상 링크를 보고 나서는 또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을 보면서 엉뚱하게도 무중력이라는 것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

스티븐 호킹 박사가 무중력 상태에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다.

무중력, Zero Gravity.

삶을 살아오면서 무중력을 느끼기는 불가능하다. 스티븐 호킹과 같이 우주인 체험의 기회가 주어지거나 관련 직종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수한 경험인것1이다.

우리의 삶에의 중력은 단지 표면적으로 우리가 땅에 붙어있을 수 있는 힘만이 아니다. 주위 환경에 의한, 인간관계와 삶에의 무게를 모두 느끼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적지 않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간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자신의 지병(루게릭병)으로 인해 삶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무중력상태의 경험을 통해서 200초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느꼈다. 일상에서의 자신의 불편함, 현실의 무게에서 일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무게를 잠시라도 잊어서 행복하고 천진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언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의 평소의 표정이나 생활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영상에서 무중력 체험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표정을 본 것이 필자만이 아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발견했다면 그 민간 우주 여행 사업자는 홍보에 성공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1. 우주여행이 보편화되는 미래의 언젠가에는 얘기는 달라지겠지만[]

괜찮은 독자

책을 읽으면서 발견되는 적지 않은 오타들을 보면서 사람이 만든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이런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인력들이 투입되었을텐데 도대체 그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돈을 받아먹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오타가 있는 책도 적다고만은 할 수 없다.

오탈자의 문제는 비단 책에 국한 할 수 없다. 종이로 출판되는 것들에서는 대부분 오탈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고 있다. 재작년에 들었던 수업 중에 담당교수님께서는 오타가 발견될 때마다1 외국의 경우2를 들어가면서 말씀하셨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에 절대적으로 공감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하면 플톡에서 방송하시는 분 중에 쿨하니라는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의 블로그 글들을 앞에서부터 주욱 읽다가 괜찮은 독자가 되어야 겠다부분을 발견했다.

필자는 독력이 매우 좋지 않은 편인데, 독력이라는 것은 책을 읽는 속도 뿐 아니라 내용 파악과도 연결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그냥 무슨 글자인 줄만 아는 정도로 읽는다면 금새 읽겠지만 그렇게 읽으면 책을 읽고 나서도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책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읽으려면 속도는 고민이 될 정도로 느렸다. 지금도 그다지 빠르지는 않지만3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후로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이처럼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며 읽기 위해서는 집중해서 보게되는데 그래서인지 오탈자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전에 앤 시리즈를 읽으면서 오타를 몇 번인가 발견해서 출판사에 보내려고 시도는 했지만, 본문에 집중하며 읽는데 맥이 끊겨버리곤 해서 몇 번 적다가는 말았다. 그리고 또 적지 않게 된것은 이렇게 해서 이미 누군가가 보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괜찮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도 좀 필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부지런하기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든다.

쿨하니님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발전해 나가는 것이다.

  1. 약 4회 정도[]
  2.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탈자를 신고하면 돈을 주기도 한단다[]
  3. 필자의 동생이나 학교 후배들 중에는 보통의 소설 한 권을 1시간에 독파가 가능, 물론 내용파악도 되는 읽기[]

순간 판단력

PS2 같은 게임을 하며 자란 아이들의 관심의 정도는 훨씬 더 짧아 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임의 핵심은 순간적인 판단과 본능적인 반응이다.


Koreanjurist.com
에서 한 줄 포스팅의 힘? 에서 나오는 한 부분이다. 저 부분을 인용한 것은 순간적인 판단 이라는 부분 때문이다. 순간판단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본인의 성향을 설명할 때마다 들었어야 하는 것은 왜 순간 판단력이 떨어질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위의 a77ila님께서 들었던 대중연설에 대한 수업에서 세사미 스트리트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관심의 환기 주기가 7~8분 정도이고, PS2를 하고 자라는 사람들은 더 짧아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필자는 주의 환기 주기와는 다른 생각을 해 본다.

다름아닌 순간판단력이다. 순간 판단력이라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해 순간적 판단 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필자는 한 문제를 두고 이리 저리 생각해보는 건 잘하지만 순간적으로 무슨 일을 판단해서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선택하는 것은 잘 안된다. 순간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필자를 우유부단한 사람이라고 정의해 버리도록 만든다. 그렇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필자는 적지 않이 우유부단한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어떤 문제를 결정하기에 있어서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월한다. 그래서 어느날인가 결심했다. 목숨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그저 먼저 생각 속에 들어오는 것으로 그 결정을 내리기로 말이다. 그게 필자의 우유부단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유부단함이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유부단한 것이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문제에 봉착했을 때조차도 우유부단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그래서 애를 먹은 적이 여러번 있다. 학교에서 수업하는 중에 교수님께서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판단을 하는데 있어서 순간적인 백지상태로의 전환은 단지 판단력의 문제만은 아닐거라고 생각은 해 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단 순간적으로 판단 내릴 수 없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된다. 그 이전에도 순간판단력이 떨어져서 애를 먹고 있을 때 순간판단력을 기르고 싶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노력은 해 봤지만 쉽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위와 같은 해결방법으로는 문제가 깊어질 뿐이다.

앞의 인용문은 순간판단력이 게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셈이다. 필자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하지 않는다. 게임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컴퓨터를 처음 접했을 때의 지금 한창 고전게임으로 즐김을 당하고 있는 것들이나 고등학교때 한창 재미있게 했던 Command and Conquer뿐이었다. 그 외에는 그다지 게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단순하게 즐길 수 있었던 Crazy Arcade BnB이다.

이 게임들을 즐기면서 줄곧 들었던 생각은 순간 판단력의 부재였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즐겼던 게임은 승패와 상관없이 사람들과 관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사람들이 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못해 나중에는 자기 편으로 편성하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까지 다양하게 경험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고 파고들었다면 언젠가 그 게임에 대해서는 실력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과연 그것이 순간판단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당연히 미지수이다.

순간판단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 프로그램이 있다면 참여애 보고 싶다.

블로그에 대한 애정..

그 이야기들은 자기가 다루고자 하는 글의 대상과 소재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꽤 긴 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긴 글들이 그다지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그 애정이 불러일으키는 일종의 매혹일테다. 물론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렇게
능수능란한, 그리고 담담한 듯 깊이 있는 글은 쉽게 만날 수 없다.

출처 : 민노씨네

자신이 글을 쓰는 대상과 소재에 대한 애정에 대해 민노씨께서 언급하셨다. 아거님의 포스팅에 대한 글에서 언급된 것인데, 아거님의 미닉스라는 블로거에 대해 리뷰한 글에 대한 포스팅이다.

민노씨께서 작성해 놓은 글들을 보아도 자신의 글감들에 들어간 정성들이 보인다. 물론 그가 칭찬해마지않는 아거님의 포스팅들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의 생각들과 경험들을 적절한 표현들을 사용해 적어내려가는데 그것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그들이 필자의 앞에서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때론 온화한 모습으로, 때론 날카로운 모습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두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의 글에 대한, 포스팅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거님의 포스팅을 통해 알게 된 미닉스님의 글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링크 따라가 앉은채로 몇 시간1을 두고 그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심지어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애정을 가지고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애정을 한껏 담아 읽는 이로 하여금 같은, 또는 유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글을 작성할 날이 오길 바라면서 작성해 본다.

  1. 몇 번인가 언급했지만, 필자의 독력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미닉스님의 글 하나를 읽는데 30여분 이상을 족히 소비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

필자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는 아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행위로 재미를 얻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볼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인 듯하다. 고등학교때는 지금만큼 활발하게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더 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서였고, 그림 공부를 더 하고 싶기도 했다. 영어를 공부하는데 생활영어가 많이 사용되는 시트콤을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과 같은 원리로 생각했고, 나름대로 추가적인 공부 없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알아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일본어는 성별에 따라서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쓰는 말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듣는 것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일 뿐 그것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전혀라고 표현한것은 확실하게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1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지만 언어에 대해서 대충 쓰는 버릇은 영어에 있어서도 꽤나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이 알아들으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그냥 되는대로 영어단어 몇 개 아는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에 있어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학문적인 자료들을 검색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구조를 알고 명확하게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언어를 공부하기로 했는데 그나마 수준이 높은 편인 영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일본어는 언제 할거냐. 애니메이션은 왜 보는거냐. 그건 일본어도 언젠간 공부할 생각이기 때문이다. 일본어를 어떤 장면에서 어떤 말을 사용했는가를 상황에 맞춰 기억해 두면 나중에 일본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할 때도 영화를 보면서 내용과 함께 그 상황에 맞는 어휘나 문장의 사용등을 고려하면서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언어와 관련된 하나의 이유는 구성방식을 통해서 말하는 방법을 배우려는 목적이라고 해 두고 싶다. 사건의 흐름대로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 하다.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재구성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재미있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재미 없어서 듣기가 괴롭도록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경우는 후자쪽에 가까운데, 전자 쪽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하는 한 방편인것이다. 이야기의 재구성은 말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재구성의 노력을 이끌어낸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또 한가지의 이유는 그림공부이다. 어린 시절부터 만드는 것에 재미를 은근하게 알고 자라왔고, 창작에 대한 괴로움과 기쁨은 필자에게는 남다르다. 위대한 음악가가 된다거나 미술계에 영향력을 끼치는 그런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마음속에 있는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내서 현실화시킬 수 있는 실물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안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그림치의 기운을 극복하고 벌써 10여년째 낙서와 함께 그림실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다면 학원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우면 되되 왜 혼자 낙서하면서 하려고 하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겠다. 그건 위의 문단에서도 말했지만 그쪽 방향으로 진출할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취미로서의 활동이라고 해 두면 알아듣기 좋을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죽기전까지 혹은 애니메이션이 없어질 때까지 – 그런 날이 올까 – 계속 볼 생각이다.

  1. 이것은 0칼로리를 사용할 수 있는 범위랄까 그런것과 같은 원리다.[]

정치의 과정, 코리안 타임

정치의 과정은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 싸움의 연속이지만 그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루고자 하는 결과에 한발 더 다가가는
것, 그리고 결과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도 한발 다가가는 성과로서 받아들이고 이후 또 이와 같은
국가적 의제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그렇게 함께 노력해가야 될 일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단 정치의 문제만 그런것은 아니다. 인간이 조직의 구성원으로 있는 집단은 위의 글에서 정치의 과정으로 설명되어진 상황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이 인간이 살아온 방법이고, 지금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문제들이 해결되어져 온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 같은 과정은 인간 개인의 관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겪고, 싸움을 하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피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회피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대립이나 갈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격하지만 싸움을 통해 해결되어지는 것이 훨씬 서로를 위해 좋은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싸움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시리라 생각된다.

필자 역시 매일의 삶에서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원만한 대인관계와 갈등과 대립의 관계를 겪으면서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을 때는 한다. 그 말을 했을 때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유지되지 않더라도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말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우선순위의 정립이 옳바르게 되고, 조금 더 나아가 사회는 부정 부패를 더 친근하게 여기는 풍토로부터 조금이나마 더 멀어지는 발단이 되기 때문이다.

코리안 타임은 왜 생겨난 것일까. 빨리 빨리하려는 속성과는 달리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어디서부터 발생된 문제일까. 그것은 아마도 인간 상호간에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원만한 관계를 위한 묵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 어설프게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혹은 어느 한 편이 불리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묵인되기도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 이후에 말은 해야한다. 물론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함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항상 철저히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은 그 말을 듣는 사람도 알 것이고 유쾌하진 않겠더라도 스스로를 바꾸려고 하는 노력의 원인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과정으로 설명되어진 갈등과 대립, 싸움의 연속과 코리안 타임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사회에서 코리안 타임이 적용되지 않는 곳은 없다. 제 시간에 도착해야 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좀 늦어도 괜찮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발단이다. 인간은 이토록 한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거론하게 되면 갈등을 겪기도 하고 대립상태에 들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싸움도 필요하다. 그 사람과의 골을 내는 그런 싸움보다는 원만한 토의를 통해 상대방과 자신의 의견에 중간 즈음이라도 그것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코리안 타임은 심지어는 1시간 내외로 적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중간단계라면 그 시간의 반일테고 또 다음에 그 문제가 거론 되기 전에 그런 의견이 주고받아졌을 때는 의견을 최소한 나눈 사람들은 조금 긴장하여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 일반적인 수준에서 하는 말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코리안 타임을 핑계로 약속시간에 늦지 말자는 것이다. 시작은 거창한 것처럼 청와대 블로그의 글까지 인용했지만, 일단 약속 시간에 늦는것은 그 후의 일정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1

  1. 물론 그런 코리안 타임까지 계산된 모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대부분의 약속이 그런 시간을 제외하고 계획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인은 쉬운게 아니다.

슈퍼 쥬니어의 동해라는 친구가 중국 팬들이 있는 곳에서 욕설을 해서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동해라는 친구가 욕을 한 상황이 참 난감하다. 팬들이 경찰이 만들어 놓은 저지선을 뚫고 들어와서 쉬이 짜증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일반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상황이고 말이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게다가 이게 동영상으로 촬영이 되어서 중국으로부터 한국까지 퍼져 왔다는게 또 문제다.

동해라는 친구가 그 상황이 있기 전에 개인적으로 심기가 불편했을 수도 있고 그 상황 자체가 그 친구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수도 있는데, 다시말하지만 공인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목사님을 비롯한 교회 직분을 맡은 사람도 말하자면 공인인데, 공인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성도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단지 마음 속에 저런 감정이나 생각이 들어서 저지시키는 수준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완전히 변화되어서 그런 마음이 아주 들지 않을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서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나름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공인으로서의 자세, 삶의 태도, 생각까지도 통제해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이 비로소 바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감성과 냉정

제목을 적으면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작품의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글은 nonem_Blog에서 요즘 작업이라는 글을 보면서 필자에 대해 몇 자 끄적이려고 적었다.

필자는 어려서 눈물이 많았던 아이였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울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부끄러움이나 스스럼 따위 없이 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만큼 감성적이었다는 것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상태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었는데, 그 때는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예능 계열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비록 집안 내력 상 예능에는 소질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그린다던가 음악을 만든다던가 하는 것에의 관심은 그런 소질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만들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Dr. Halo라는 그래픽 프로그램으로 단지 끄적이던 것이 고등학교에서 이르러서는 포토샵으로 이러 저러한 작품(!)이라는 것을 만들기에 이르렀고, 지금도 그다지 특출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학생들의 눈에는 괜찮아 보일 정도의 물건을 내놓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음악 분야에 있어서도 그랬는데, 중학교 때 미디의 존재를 알았지만 제반 장비를 마련하기에는 재정적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기본 사운드 카드에 내장 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는 프로그램만을 이용한 작곡이었다. 당시 컴포저라는 프로그램으로 마우스로 일일히 찍어 만들었던 음악들은 음악적 지식이 없었어도 나름의 감성을 표현한 작업들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지만,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직책 상의 필요에 의해 그런 감성을 의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자리에 앉게 되면서 감성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서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냉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는데, 전 만큼이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것이다. 분명히 눈물을 흘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종교적인 체험에서 그렇게 잘 나오던 눈물은 마치 가뭄이라도 난 것처럼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어느새 마음 속에서 울려나던 멜로디들은 침묵을 이루었고 그래픽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전만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군을 전역한지 1년이 넘어가면서 전만큼은 아니지만 감성이 조금은 회복되어진 듯 하다. 마음 속을 울려주는 멜로디들은 여전히 울리지 않지만 이만큼이라도 회복되어진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때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청소년 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단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서 감성이 메말라 가는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져보지만 그것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과 비례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뿐이다. 다시 이전처럼 감성인으로 돌아가고 싶다.

경쟁력 만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

문득 armarius: ex libris에서 빈털털이 세대라는 포스트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지 개인의 경쟁력만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구인가라는 거창해 보이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렇지 않다는게 필자의 결론이다.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그 삶의 질을 높일 수 없는 것이다. 유난히 필자의 주변에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경우들에서 경쟁력 있는 개인이 집단의 무능력1으로 그 경쟁력이 묻혀지는 경우를 살펴왔기 때문이다.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그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을 변화시킬 수 없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만큼이나 힘든 것이다.

개인이 집단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개인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고 그 세력을 통해 집단이 변화되는 경우는 있겠지만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변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이 경쟁력과 함께 리더쉽2을 지니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질문과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나라는 질문이 따르게 된다.
개인이 리더쉽을 가지면 그 집단의 변화와 함께 개인의 삶의 질까지도 높일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그건 리더쉽을 발휘 할 수 있을 때 얘기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의해 리더쉽을 지닌 경쟁력 있는 개인은 묻혀버릴 수가 있다. 그런 개인은 또 다른 집단을 찾아가지만 그 집단 역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상사들이 있는 한 경쟁력있는 개인을 그 두각을 나타내기조차 힘들다. 수 년이나, 아니 수십년이나 지나서 그가 자리를 잡을 때 쯤이면 그는 이미 겁쟁이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족과 남편 내지는 아내가 함께이기 때문에 자신이 이루어 놓은 기반을 잃지 않기 위해 겁쟁이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해 답해본다.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 않는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수십년을 이 세상에서 살아왔지 않는가. 그런게 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개인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성취할 수 있는 일이 몇 가지나 되던가. 개인만으로 성취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되었다고 기억하는가.

필자가 좀 부정적인 시각만을 가지고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개인의 경쟁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armarius에서 소개하는 책의 원서 또는 번역본을 읽어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 책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글을 읽으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들을 조금 더 해 봤다.

  1. 조금 다르게 말해 보자면 게으른 집단[]
  2. 여기서 말하는 리더쉽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

이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의미…

in·car·na·tion n. [U.C]
1 육체화한 , 육체부여함;인간화;구체화모양;구체화, 실현
2 (성질·관념 의) 구체화으로서의 사람[사물], 화신of
   the poet as an incarnation of the spirit of the age 시대 정신 자체시인

3의학육아(肉芽) 발생
4신학】 [the Incarnation] 육신 《(神) 인간모습으로 나타나는

출처 : 나베르 딕티오나리(NAVER DICTIONARY)



의미라는 것은 사람에게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대단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게 있어 의미라는 것은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변하게 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그것과 상관 없는 곳에서 – 전혀 상관 없기에 더 의미 있게 다가온 – 그곳에서 발견했다.

성육신의 의미를 가진 단어 인카내이션… 성육신.. 나를 사랑하신 그 분께서 나를 위해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번 주간은 천주교와 기독교에서 고난주간으로 보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

인간이셨기 때문에 겪으셨던 고난…
그래.. 난 예수쟁이다… 그 누가 말했던 피와 뼈속까지 철저히 예수쟁이다.

인간이셨기 때문에 그 고난에 고통을 느끼셔야만 했던 그 분이셨다.

아직도 모르고 있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알 것일 당신이 기대됩니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 The story of a murderer를 소설로 접한건 아마도 2004년 쯤으로 기억된다. 그 때 소설로 읽으면서 이러 저러한 이미지들을 형성해 뒀었는데, 긴 분량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도 들긴 했지만 무엇보다 주인공인 그르누이(Jean-Baptiste Grenouille)에 대한 이미지와 그가 향을 좇아 가는 모습에서의 그 향의 모습이다.

먼저 그르누이는 주세페 발디니(Giuseppe Baldini)의 향수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일했던 곳에서 병을 겪고 나서 면역을 가진채 몇년을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병을 앓고 난 뒤의 그의 모습에 대해 마치 골룸과 유사한 모습의 이미지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웬 잘 생긴 청년 하나가 대~~~충 아팠었는지 말았는지, 그런 모습으로 마지막 압사 당하는 그곳까지 유지해나간다.

그리고 그가 향을 좇아가는 모습을 영화에서는 그다지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지만 소설로 읽었을 때 형성했던 이미지와는 차이를 보였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향을 좇아가는 모습은 아스라히 퍼지는 뿌연 연기 줄기 같은 향이 실처럼 그 향의 근원지로부터 그르누이에게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쨌뜬 이번에 개봉한 영화를 보기 전에 소설의 스토리를 그대로 담았다는 말에 적잖이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소설만큼의 디테일은 살리지 않았지만 실망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죽어가는 그녀들의 수를 세어보라고 하는 듯이 그녀들의 시신은 한번씩 비춰주는 것이 조금 신경쓰였을 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봤는데, 그르누이가 개체를 인식하는 것은 향기인데, 내용의 중반부에서 자신은 향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존감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한 그가 여성들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은 결국엔 그녀들의 향기가 아니라 그녀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영화 마지막부분에서 그는 사형장에서 그녀들의 체취를 담은 향수를 이용해 사람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됐는데 마지막 희생자인 로즈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달려들고 나서야 그는 깨달았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담아두고 싶었던 것은 그녀의 향(체취)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었음을 말이다. 그녀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음을 알게 됐다.

그는 내용의 중간에도 종종 자신의 목적을 잊고, 완전히 잊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데 아마도 그 본 목적을 알았을 때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그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모여 압사당하기 위해 그 향수를 자신에게 부은것이리라 생각된다.

또한 사형장에서의 모습들은 그 향수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꼬집어 놨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시대의 타락한 인간들, 종교의 지도자들의 모습들, 그리고 마녀사냥의 모습까지도 말이다.

츄리닝 3월 20일자

쓸개를 먹으면 꽤나 쓴 맛이 느껴진다. 그것을 먹으며 복수심을 불태웠던 월왕 구천!

그러나 그렇게 복수심을 태우며 쓸개를 먹으며 나날을 보냈지만 어느새 쓴 맛에 익숙해져 복수심이 아닌 그들을 이해해 버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때 그의 복수심을 다시 타오르게 만드는 매개체가 카카오 99%인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나 99% 역시 먹을 수록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한 번 먹어보고는 그 맛을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 중에 하나일까..

체 게바라 평전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을 정복하기 위해 많이 공부하여라. 그리고 혁명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 각자가 외따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점을 늘 기억하여 주기 바란다.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누구보다 너희들 자신에 대해 가장 깊이. 그것이야말로 혁명가가 가져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1

이 책 처음 봤을 때부터 좀 괜찮겠다 싶었다. 하지만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서 필자가 읽는 동안에도 여려 명이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또 그들 중 읽어본 몇 명의 사람들은 재미가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재미있었으며 체 게바라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한 명 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의 후배는 책을 재미있다고 표현했지만, 사실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제 저녁에 마무리 지어지는 부분을 읽으면서 그의 최후에 대한 장면을 묘사해 놓은 장면을 보고나서 참 허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에 대해 존경심이 느껴졌다.

자신을 죽여야 하는 그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는 자신을 쏘라고 했던 장면에서 말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예의없는 것들이라는 영화에서 신하균씨가 목사를 죽이는 장면에서 그 비리 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그 사람과 다른 말을 뱉었을까? 자신을 죽이는 사람을 오히려 독려하고 축복해 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났다.

말로는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머리 속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만큼의 성화가 이루어졌을까 싶은 생각이다. 성화라는 것은 ~화… 변해 간다는 말이다. 성화가 완전히 이루어져서 죽는 인간은 없다.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완전히 성화된 인간은 없는 것이다.

쨌든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면서 뭐든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질이 제대로 발동했기 때문에 육백 몇 십여 페이지의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게다가 일정을 소화해가면서 그 많은 페이지의 책 한권을 다 읽었다는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1. 장 코르미에 지음, 체 게바라 평전, 김미선 옮김, (서울:(주)실천문학, 2004), pp. 518~519.[]

설마 딸 낳은걸로 장난칠까…

개그맨의 딸답게 만우절에 태어난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만우절에 태어났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만우절을 피하기 위해 출산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준형 부부 내외의 출산 예정일이 4월 1일이란다. 그 날은 다름 아닌 만우절인데, 이 두 사람이 다른 직종을 가진것도 아니고 개그맨이기에 가질 수 있는 고민이기는 하지만, 설마 자기 자식 낳는걸 가지고 장난치고 그걸로 속일 거라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두 사람들의 아이들이 만우절에 태어나도 진짜라고 생각할 거라고 생각된다.

에러 – RAW파일을 16개 이상 열 때

얼마전 촬영한 파일을 열기 위해서 Adobe Bridge를 실행했다. 그리고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발견했다.

“Could not complete your request because an unexpected end-of-file was encountered.”

그래서 바로 구글링 들어갔다. 사실 이런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이전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거니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 그냥 넘겼다. 그러나 이번엔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구글링까지 들어간 것이다.

그랬더니 Adobe社Photoshop News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검색해 내었다. Can’t open images larger than 2 GB (CS2)라는 제목으로 결과가 검색되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니 다음의 내용이 보였다.

May 22, 2006

Can’t open images larger than 2 GB (CS2)

Source: Adobe Support Knowledgebase

Issue:When you try to reopen an image larger than 2 GB in Adobe Photoshop CS2, you receive one of the following error messages:

– “Could not complete your request because of a disk error.”

– “Could not complete your request because the selected pattern is not available.”

– “Could not complete your request because an unexpected end-of-file was encountered.”

Detail:

You saved your image file from Photoshop with no compression in the
image file, or your image contains a layer style with a pattern or a
pattern content layer.

Solution: Install the Photoshop CS2 9.0.1 update.

Download and install the update from the Adobe website at www.adobe.com/downloads .

Background information

Photoshop CS2 cannot open TIFF, PSB and PDF files larger than 2 GB
if they were saved in Photoshop without compression or if they contain
a pattern layer style or a pattern content layer. The 9.0.1 update
allows you

This story was posted

on Monday, May 22nd, 2006 at 9:10 am and is filed under Photoshop “Issues”.
You can follow any responses to this story through the RSS 2.0 feed.

Both comments and pings are currently closed.

위의 내용에 따르면 한 파일의 크기가 2Gb보다 클 때 나올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 물론 필자의 해석이 정확할 때의 이야기지만 –  하지만 필자가 열려고 시도했던 파일의 크기는 해당 제한 용량의 10%정도의 크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자의 상황은 어째서 나타나는 것인가. 필자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Adobe Bridge로 RAW파일을 열려고 시도하는 중이었고, Bridge의 상태는 기본 창 크기에서 가장 작은 Thumbnail size로 변경한 상태이다. 그 상태에서 두 줄, 즉 16개의 파일을 열어서 작업할 때는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3줄(24개)을 선택하여 열려고 했을 때 이상과 같은 메시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략 파일 각각의 크기는 5Mb정도이다.

위의 검색결과에서는 하나의 파일 크기가 2Gb 보다 클 때 나타난다고 되어있는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파일의 크기는 10%도 안되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건 다른 몇 가지의 상황들이겠지만 일단 거기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머리 아프다.. ㅡㅡ;;;

행복을 찾아서..

작년 한 해 동안 영화를 극장에서 본 적이 아주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보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를 알게 된 것은 Ch.CGV에서 윌 스미스가 그의 친아들과 함께 출현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부분을 우연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가 출현한 영화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잘 본 기억들 뿐인데 그것은 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 영화가 좋아서 그가 좋아졌다기 보다는 그 영화에서 그가 맡아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 동안 연기했던 것들 대부분이 재미있었던 것이었던데 반해 이번 영화에서는 역경을 극복해내 가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음…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로 스포일러들을 싫어하는지라 스스로가 그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할까.

쨌든 이 영화를 보면서 내 어머니께 감사했다. 먼저는 그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공감해 내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를 떠나지 않으신것에 대해 감사했다.

지금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그래서 어머니라는 이름이 아까운 그녀들에게 자랑하고 싶다.

훗… 이 영화에서의 아들이 그의 친 아들이라는데 참 보기 좋았다.

윌 스미스

아포칼립토(apocalypto)

이 영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적지 않은 재미를 주었다.

재규어의 발톱(Jaguar’s PAW)을 맡은 Rudy YoundBlood라는 배우는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듯 한데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구글링해 봤더니 흔한 인상이기는 하지만 공식적으로 아포칼립토라는 영화가 첫 영화이다.

조금 더 구글링해보니 소문이 꽤나 폭력적이라고 나 있었나보다. 역시나 폭력적이기는 하지만 영화의 시대 및 공간 배경상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마야 문명을 구현해 놓은 부분에서는 그 동안 알고 있던 지식적인 것들에 의한 상상과는 조금의 차이를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잘 재현해 냈다고 생각된다.

병들어 죽어가는 소녀(?)의 예언이 엉뚱하고 절묘하게 이루어져 가는 것으로 영화는 재미를 더했다. 멜 깁슨은 고대 예언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생각을 꼬집으려 했던 것일까?

쨌든 영화는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재규어의 발톱역을 맡은 루디

내가 꼬인걸까?

하지만 시장점유율이 90%를 넘는 네이버 다음 야후 등 포털 3사의 반응은 밋밋하다. 최휘영 NHN대표는 이날 “그 동안 공정위
조사가 나올 때마다 물밑 작업이 잘 이루어져 결국 문제가 없었다”면서 “1년 전부터 윤리신고센터를 별도로 운영해 협력업체로부터 신고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도 “잡음이나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대처를 해온 데다 (공정위의) 업무계획에만 포함된 거라 당장 대책을
내놓을 수준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난 왜 저렇게 보일까?…;;;

명탐정 코난 – 마술애호가 살인사건

132~134편을 연속으로 보고 있는데, 이제 132편을 보고 있는데 지난 번 어떤 채널에선가 본 기억이 있는 한국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그 영화는 호러물이었는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순전히 양동근 씨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다른 배우들도 눈에 익은 배우들이 많았지만 양동근씨의 이번 앨범이 나오고 나서 그 영화를 접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고 생각된다.

그 영화는 다름아닌 해변으로 가다(2000)이다. 이 영화에서 양동근은 음침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 영화의 설정이 대략 명탐정 코난 132편에서 134편에 이어지는 설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얼마전 클릭이라는 영화에 대한 평가글 중에서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설정이다라는 글을 보면서 당췌 어디가 어떻게 똑같다는겐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나 역이 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그 영화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다시 차근히 생각해보니 PC통신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것과 살인사건이라는 것이 두 작품의 동일 설정이다. 그 외의 세부 내용은 차이가 있다.

으음… 이렇게 따져 나가다 보면 안 비슷한 작품이 나올까? 단 몇 가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얼굴의 이미지가 비슷하다고 형제나 남매라고 우기는 것이랑 뭐가 다른가!

글을 적으면서 참 바보스럽게 느껴지고 있다… 누가? 본인이..

또 낚일건가?

아직도 이런 광고에 넘어가는 양반이 계신가?

왜 하필이면 HP인가라는 질문을 하신다면 정중하게 대답해 드리겠다. 하필이면 이 시간에 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HP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 기사가 그 시간에 필자에게 걸려들었기 때문에 글을 작성하는 것일 뿐이다. HP와는 어떤 원한이나 불만같은건 없다는 말이다. 이 기사에 표현된 것이 HP라서 HP만 문제시 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HP 레이저젯 보상판매 대잔치에서는 ▲HP컬러, 모노레이저젯 프린터 ▲복합기 ▲HP 디지털 복합기 등 폭넓은 제품을
보상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반납 가능 제품은 잉크젯, 레이저젯 프린터를 비롯해 복사기, 팩스, 스캐너, 복합기 등 모든
사무기기다. 타사 제품도 포함
된다.

기사의 내용 중에서 발췌하였는데, 위의 붉은 글씨에 현혹되어 바꾸려고 생각한다면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일단 새 것으로 바꾸고 나서의 유지비를 생각해 보시라는 것이다. 그 살인적인 유지비는 차라리 프린터를 바꾸고 싶은 충동을 발생시킬 것이다. 이미 여러번 겪었지 않았는가. 이미 바꾸고 난 뒤의 후회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필자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된다.

살 인 적 인 유 지 비

뭐.. 감당할 능력이 있는 분들은 상관없다. 감당할 능력이 된다는 데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이것에 대하여는 다음 기사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왜 컬러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 집중하는가?

전 세계 프린터 시장은 1400억 달러 이상으로 매년 고속성장을 유지하는 ‘노른자’ 비즈니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600억 달러 규모임을 감안하면 1400억 달러하는 프린터 시장 규모는 무시할 수치가 아니다. 이로 인해 주요
기업들이 프린터 기기를 저가에 공급하는 출혈 경쟁을 감수하며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이 손해 보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린터를 저가에 공급하더라도 이후 잉크나 토너 같은 소모품 판매 사업프린터 판매로 인한 마이너스
수익을 충분히 상쇄
해주기 때문이다.


뿌리고 거두는 것..

이제 3일만 지나면 동생이 결혼한다. 동생의 결혼은 필자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편으로는 기쁨을 안겨주기도 한다. 사랑하는 동생이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들과 지내느라 필자와 지냈던 27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것은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이런 우울한 생각은 저쪽으로 던져두고 뿌리고 거두는 것에 대한 짧은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필자의 부모님은 모두 7명 이상의 형제를 두셨다. 그리고 모두가 장남, 장녀 이시기 때문에 결혼식에 많이 다니고는 했다. 물론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축의금을 내야하는데 필자의 고모, 이모님들이 모두 결혼하시던 시기의 필자의 나이는 많아봐야 13살 이전이었다. 게다가 그 외의 친인척들과 교회 식구들의 결혼을 다니고는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수의 결혼식에 다니고는 했다.

축의금을 내야 했던 결혼식보다는 그냥 가서 식사 머리수를 채웠던 결혼식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부모님들은 직업상 이리 저리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셨는데, 이번에 동생의 결혼 청첩장을 돌리기 위한 목록을 만드는데 엄청난 예상외의 참석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동안 심어둔 것이 이렇게 빛을 발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필자는 굉장히 계산적인 사람이라서 이런 사고방식이 자연스럽다.

쨌든 이번에 동생과 제부될 사람이 만든 청첩장은 400장이었는데, 그 중에서 250장이 우리 몫이었다. 하지만 제부 될 사람 쪽은 당사자만 뺴고 다들 결혼한 상태라서 청첩장이 되려 남아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는 그 남은 청첩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약도 부분만 복사해서 편지봉투를 더 사와서 보내야만 했다. 음.. 그 중에서 몇 명이나 올 것인가는 모르겠지만 웬지 300명 이상은 오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게다가 이번에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가 신랑쪽에서 다니는 교회인데 교회 식당이 교회 규모에 비해서 그다지 큰 편에 속하지 않아서 손님들이 음식을 많이 먹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년 말에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졌었는데, 같은 시간에 결혼식을 치른 손님들을 한 장소에 몰아넣어서 자리가 부족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조금만 먹고 일어나서 가버리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이런 예상을 하는 것인데, 만약 필자처럼 끝까지 남아서 먹는 사람들이 많다면 필자의 말을 듣고 출장부패인원을 줄여버린 신랑 신부가 욕을 먹게 되고 그 욕은 직접하지는 않겠지만 필자의 수명을 증가 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쨌든 이번 결혼식으로 인해서 여기 저기서 스트레스 되는 말을 조금 듣기는 했지만 동생의 결혼식이니만큼 우울해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과 행동으로 일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적기 시작했는데, 참… 웬지 횡설수설하게 적어버린 기분이다.

누가 마시느냐의 차이..


산골짜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산양이 마시면 젖이 되지만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

저 한 문장이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에 싸이에서 한창 돌아다녔던 – 지금도 어디에선가 돌아다닐 것이라 추측되는 – 같은해에 생산된 50원짜리 동전을 비교해 놓은 사진과 같은 필의 말이지만 웬지 그 사진에 달린 글보다 더 선명하게 표현되어졌다는 생각이다.

난… 독사일까 산양일까?

눌러~

아담 샌들러(Adam Sandler)라는 배우는 적잖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첫 키스만 오십번째 였다. 그 이전에도 여러 영화들에서 그를 만나왔지만 그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보게된 영화가 그 영화이다.

클릭이라는 영화는 가족의 소중함을 리모콘을 소유한 마이클의 인생을 통해서 알려주려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뭔가에 집중해 버리면 주변이 암흑이 되어버리는 현상을 자주 겪는데, 이런 경험으로 인해 잃은 것은 적지 않다. 영화에서처럼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Fast Forward 해 버리는 것 같은 경험을 겪고 마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 시간 동안에 다른 마이클이 존재하지만 필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이제 이번주 토요일이면 동생이 시집을 간다. 결혼하기 전의 대부분의 신랑신부들은 꽤나 예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동생과 했던 약속1도 있기 때문에 그녀에게 상처가 될만한 내용의 말들은 굉장한 인내심으로 참고 있다. 원래 성격이 자기 것을 아주 잘 챙기지만 지나친 합리성은 가족과 본인을 완전하게 분리시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그다지 문제를 삼고 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디 가족이라는 그런것인가.

쨌뜬 동생의 편을 들어주면서 그녀의 마음의 상처가 되거나 서운함으로 남는 것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내 노력은 끝났다. 이제 얼마후면 27년간의 동거를 마치고 분가를 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아… 동생과의 시간을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동안에 난 뭘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클릭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동생과의 관계 회복, 나 자신에 대한 변화의 욕구를 실현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글을 적기 시작한 순간부터 머리 속이 굉장히 복잡해 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글을 더 이상 쓰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된다.

  1. 평생 편 들어주겠다는 약속[]

인간관계 장애

지난 몇 번의 포스팅에서도 밝혔던 듯 하지만, 이 블로그의 주인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다른 사람들이 흔하게 갖는 인간관계의 일반적 과정, 또는 수순을 밟지 않아서 인간관계를 하는데 있어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은 단지 어떤 사람과의 만남정도의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는 그 순간부터 그 이후의 과정들을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일단 통성명을 하고 하나 둘씩 깊은 대화들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게 마련이다. 본인이 장애를 겪고 있는 부분은 그 사람들과 만나는 것에서 있지 않다. 사람을 만나고 본인을 소개하고 상대에게서 소개를 받는 것까지는 무난하게,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붙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동들은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하는 행동을 하려고하면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사람과 친해지고 어떻게 해서 그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의 포인트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그렇게 쉬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장애라고 생각되어진다. 평범한 사람으로써 이 정도는 장애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인가? 아니면 장애인가? 라는 것의 기준은 철저히 개인의 생각에 있다.

이것은 장애라고 생각되어진다. 현재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심지어는 가장 친하다는 베스트프렌드라는 친구 외에는 그다지 진짜 속마음을 열어 놓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진짜’라는 수식어를 붙여놓은 것은 가짜 속마음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얼마전에 아찔한 소개팅 스페셜인가 연말에 했던 부분에서 가식의 대마왕이라 불리웠던 사람이 나왔었는데, 그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또는 알고는 있지만 의도적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식의 말이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본인의 상태가 그 정도라고 하면 적당할 듯 하다.

그렇지만 그렇다고해서 싫은 것에 대해서 싫다고 말 못하는 사람은 아니다.

본인의 의지를 통해 변하여진 성격은 굉장히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성격으로 발달되었는데, 스스로 그것을 표현해 내기로는 ‘abo형의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a형이 가진 대표적 성격인 소심함, b형이 가진 대표적 성격인 직선적인 표현, o형이 가진 대표적인 성격인 편안함을 두루 가지고 있다. 그러면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a, b, o, ab형의 성격을 두루 갖추게 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그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성격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키는 성격들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음… 이런 이상한 성격때문에 인간관계에 장애가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또 다시 그런 성격들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의지를 통해 다시금 고쳐나가야 하는 것일까. 사실 부정적인 결과를 발생시키기는 하지만 이런 성격들을 버리고 싶은 생각은 또 없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휴우… 인생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아가는지 본인도 어찌 할 수 없음에 한숨이 나온다…

변화의 시작

한순간에 변하는 것은 없다.
최근에 카툰을 보지 못해서 여러 카툰들을 몰아서 보다보니 도로시 밴드의 최근회에서 허수아비의 대사가 명품이라 옮겨 적어본다. 허수아비의 얼굴부분만 대충 그려서 대사만 넣어보았다.

왼쪽 그림의 다음에 오는 대사가 명언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변화는 오는게 아니야, 단지 시작될 뿐이지…

그래 시작이다. 언제나처럼 새로이 마음을 가다듬고 시작은 하지만 쉽게 변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성격이란 것에서부터 모든 속성들은 변화가 가능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변화를 시도한다.

최근 포스팅 중에서 체중감량 계획에 대한 포스팅이 있었는데, 시작이 쉽지가 않다. 여전히 그 때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 못하고 있다는 핑계성 발언은 하고 싶지 않다. 하려고만 했으면 할 수 있었을만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군에 있을 때 3개월 정도의 기간동안 15Kg를 감량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녹록치 않았던 일정중이었다. 훈련은 훈련대로 진행되고 주마다 무슨 무슨 일이다 해서 회식도 있었다. 그럼에도 저녁에 집에 가면 반바지와 반팔티셔츠를 입고 줄넘기를 했었다. 물론 그 결과 중3이후로 유지했었던 체중(80Kg)으로 감량에 성공했고, 그렇게 전역했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에와서 발생한다. .1ton의 체중을 갖게 되면서 전처럼 과격한 운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걸어다니면서 하는 건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시도만 해 봤다. 걷기 운동이 그것인데, 걷기 운동이 신체에 무리를 적게 주면서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뭔가 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

체중감량을 위해서 했던 운동들은 대부분 과격한 것들1이었기 때문일까생각해보았다. 그런것들도 원인이 되었겠지만, 역시나 과체중으로 인한 신체적 조건의 원인이 더 큰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쨌든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내 삶에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꼭 변화를 이루어내야만 한다. 하지만 전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꾸준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1. 줄넘기 일일 5천회, 20Km왕복 달리기…[]

군용차(장군차)에도 번호판을~

오늘 지인의 집에 상이 있어 벽제에 갈 일이 있었다. 벽제에서 다 치르고 난 후 집에 오는데 1성(별 하나) 장군 차량이 한 대 보였다. 벽제 시내에서 고속도로로 빠지기 위해서는 요금소를 거쳐야 하는데 요즘 한창 공사중인 하이패스 차로가 따로 있는 요금소였다.

필자는 얼마전에 하이패스 단말을 구매했기 때문에 해당 차로로 진입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일성장군 차량이 그 차로로 먼저 진입해서 주행하고 있었다. 아~ 요즘 군용차에도 하이패스가 설치 됐나보네, 라는 생각으로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데, 요금 정산 확인 계기판에 선명하게 찍힌 세 글자 미정산.

순간 들었던 생각은 저렇게 달려가면서 요금 물릴 수 있으면 물려봐라~ 라는 비웃음을 머금고 달려가겠지? 였고, 또 한 가지 생각은 성판이 아니더라도 차량에 식별번호를 붙여서 어떤 차량인지 식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사실 두 번째 생각은 좀 우스운 모양새를 만들기 때문에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 않을까 였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배가 아팠기 때문인데, 누군 돈 내고 지나가는데 나라를 지킨다는 이유로 – 사실 그들이 지키는건 아니지 – 저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본인이 모르는 모종의 체계가 잡혀 있어서 공무차량은 별도로 청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쨌든 군을 욕먹게 하는 또 한 가지 사례가 발생했다는 데 대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밥그릇을 지키고는 있지만..

문득 쟝판님의 싸이월드 C2와 네이버블로그 시즌2여! 진정으로 자유인가!?를 읽으면서 성경 상의 비유가 하나 떠올랐다. 이런 것에 사용되어질 비유는 아니지만, 쨌든 생각난 김에 적어본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나오는 이 비유 중간에 보면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아무런 것도 안 하고 있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꾸지람을 얻는다. 싸이나 네이버는 자사의 이익 원천 수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닫힌 인터넷의 대표주자격으로 논하여 진다. 하지만 저렇게 자사의 이익을 위해 닫아두기만 한다면 사용자들은 어떤 현상을 보일까 계속 돈을 내면서 이쁘게 꾸미고 살아갈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자사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좋지만, 사용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위해 양보하는 부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 보기

      1.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2.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2.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3.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4.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
  5.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1.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3.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4.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5.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은근한 트리 숲

트리
이번에 어떤 행사에 가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는데, 그곳에 설치된 중간크기의 트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 아랫부분에 전구들이 있어서 트리를 밝게 올려 비춰주고 있었는데 웬지 이뻐보여서 찍었는데, ㅋ… 찍고보니 원하던 만큼 이쁘게 나오질 않았다. 하지만 웬지 비밀의 숲 같은 느낌이다.  

샌드위치와 속

12월 초에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이번 모임은 사무실을 옮기고 난 후에 가지는 외부사람도 초청하는 모임이었다. 그래서 다른 모임때와는 달리 직접 만들어서 손님들을 접대했는데, 그 중에 한가지가 샌드위치였다.

음… 만들고 있는 중에 도와주지는 않고, 그냥 사진만 찍어뒀다. 웬지 예쁘게 나올 듯 해서 찍어뒀는데, PC에서 보니 그닥 예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저 기록정도로만 남겨두려한다.

사랑따윈 필요없어

이번 주는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기간이라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 있다가 동생이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나왔다. 나오면서 TU를 보는데, 다른 곳에서는 재미있는 것도 하지 않고해서 TU BOX채널을 확인해 보니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었다.

동생을 태우러 가서 동생을 태웠는데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상대편에서 시끄러운게 뭐냐고 물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랑따윈 필요없어라고 했더니, 그 영화 망한거야? 라고 대뜸 말했다.

영화를 다 본 후의 감상은 웬지 마무리가 상업적 영화로 성공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내용 전반적인 평가는 뒤로 제쳐두고 마지막 부분에서 오히려 비극으로 끝났다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을지언정 상업적인 영화로서는 성공을 거두었을것이라는 생각이다.

2006년 한국, 전혀 새로운 <사랑따윈 필요없어>를 만난다!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2002년 일본 TBS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와타베 아츠로가 남자 주인공 레이지를, 히로스에 료코가 여주인공 아코를 맡아 총 10부작으로 방영 되었던 드라마를
한국에서 영화로 리메이크 한 작품인 것. 싸이더스FNH가 TBS로부터 판권을 구입한 후 이철하 감독이 연출을 맡아 1년이 넘는
시나리오 작업과 프리 프러덕션 과정을 거쳐 김주혁과 문근영 주연의 영화로 재탄생 하였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원작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되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 뿐 아니라 다른 문화, 다른 시대, 다른 배우와 스탭들이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감성을 담고
있다. “김주혁이라는 배우가 세상에 단 한 사람 뿐이듯, 그가 연기하는 줄리앙도 세상에 한 명 뿐이다”라는 김주혁의 말처럼,
“원작은 원작일 뿐이다. 너무 많은 스탭들이 함께 고생하며 줄리앙과 류민의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들의 영화를 보러 와 달라”는
문근영의 말처럼,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움으로 관객들을 찾아갈 것이다.

영화 제작 노트를 살피다 보니 일본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한국의 정서에 맞게 각색했다는데 이 정도 되면 원작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지금은 시험 기간이기 때문에 시험을 끝내고 난 후에 감상해야 겠다.

더 보기

사랑따윈 필요없어 국내판

일단 각색된 국내 영화판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웬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여러 요소들 중에 마지막의 결말이 그 중 가장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명탐정 코난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접한지 꽤 오래됐지만 한번도 처음부터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애니메이션이다. 이번에 시험기간 후에 죄다 몰아서 보려고 다 받아놨는데, 이거 애니메이션에 너무 푹 빠져서 시험공부를 안하고 놀까봐 나름대로 만들어놓은 스스로를 위한 장치이다. 만약에 시험 기간 중에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다 삭제해 버리겠노라고 작정했고 지키고 있다. 시험 기간이 끝날 때까지 보지 않으면 차례 차례 보는것이다.
과연 여건이 허락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까지고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 보는 동안 몇 편이 더 나올것이다.

학교를 통학하는 중에 투니버스를 자주 보는데, 투니버스에서는 코난 1, 2기 밖에 하질 않는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3기 이상의 코난을 접해보지를 못했다. 그래서 작정하고 1편부터 최근에 방영한 것까지 다 받아두었다. 다 받고 나서 코난넷도 가입했다는 사실, 그런데 가입인사만 떨렁 남겨두고 아무런 활동도 안하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웬지 유령회원으로만 남을 것 같진 않다. 이번 기회에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까지 섭렵해 볼까 싶은 생각도 든다.

ㅎㅎ… 웬지 행복감에 젖어 있다. 시험을 무사히 마치고 볼 수 있을것이라는 기대감이 시험 성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면서, 열공모드 돌입!!

해상도 원상복구..

그래픽카드와 모니터에서 지원가능한 최고의 해상도 1920×1200으로 설정한지 2일만에 복귀다. 문서를 편집할 때는 그럭저럭 사용할 만 했다. 오히려 장평이 줄어든 효과를 내어서 보기가 좋았다. 하지만, 사진을 편집하려고 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반갑다 가로 1600아~

CMS방식, 국위선양

써머즈님의 acoustic mind of summerz 의 포스팅을 확인하면서, 외고 유학반 성적표는 어떻게 부풀려지는가라는 기사를 보면서 궁금해졌다.

△학교는 CMS 계좌이체 방식1으로 (유학반) 강사료를 징수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학부모들이 자율적으로 강사료를 징수해 강사들에게 지급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등의 요구 사항을 담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인데, 뭔가 돈에 대한 흔적이 남아서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구글링해 봤지만, 돈을 입금하는 측의 편의 외에는 그다지 근거가 남는다거나 하는 내용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일정한 간격으로 입금해야 되는 상황일 때 편리하다는 것과 수금자의 경우 안정적인 자금 수급의 좋은 점이 있다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이어지는 글의 내용은 황당했다. 그 중에서 진짜 황당했던 것은 아래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취재진이 취재 도중 일부학부모나 교사들에게 접한 반응은 “아이들을 아이비리그 대학에 보내 국위선양하는데, 이 정도 편의는 줘야 하는 것 아니냐”“외국어고는 우수 학생들이 모인 집단이므로 내신성적에서 이점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새로운 형태의 ‘대학 입시애국주의’라고 할 만했다. 주목할 점은 이런 대학 입시 애국주의가 한국 사회의 부유층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당췌..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자신들의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는 것이 왜 국위선양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될 뿐이라는 생각이다. 고등학생이나 되는 머리들이 부모들의 저런 행동들을 모르고 바르고 잘난 성인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편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들 역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편법에 불법을 저지르는 범법자들이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물론 부모들이나 주변환경이 저렇더라도 본인의 의지에 의해서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런 경우는 희박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철저히 필자 개인의 지식과 경험의 범위 내에서의 사고이다. 실제적으로는 어떻든지 지금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그런 결과가 나온다.


관련내용 :
외고 유학반 성적표는 어떻게 부풀려지는가

  1. CMS란?

    출금이체서비스(Cash Management Service)로 후원금을 비롯해 정기 회비, 각종 물품판매대금, 보험료 등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자금의 일괄수납을 위해 회원의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여 이용기관의 계좌로 입금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금융결제원의 금융전산망을 이용하며 회원이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 간단한 조작으로 다수 은행의 회원 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여 서비스 이용기관의 계좌로 일괄 입금해 준다.

    []

새 예루살렘과 불 못

요한계시록 4: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같다 <like>

⁂like2 [laik] a. (more ∼, most ∼; (주로 시어) liker; likest)
「종종 목적어를 수반, 전치사로 볼 때도 있음」 ① (┅와) 닮은(resembling), ┅와 같은.

시편 90 :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요한복음 14:23
예수꼐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한일서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일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요한계시록 21: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하나님의 거처는 가장 먼저 그리스도시다. 그리고 믿는 이들이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에베소서 2:21~22

  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전서 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고린도전서 3:10~13

  1.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2.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4.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사무엘상 3:3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성경은 (새 예루살렘) 성과 (불) 목의 두 결론으로 끝난다.”

요한계시록 21:1~2, 10~11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2.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 요한계시록 7: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창세기의 네 강이 계시록에까지 이어져서 나타나고
이것들이 성의 중앙을 통과해서 흐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은 마르지 않는다.

모든 적극적인 것들은 물의 성으로 모이게 된다.
그러나 모든 소극적인 것들은 불 못에 던져진다.”


요한계시록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하여 그들과 한 마음이 되어 움직일 때, 사단이 역사할 때 그들은 가장 먼저 유황 불 못에 던져진다.1

요한계시록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창세기 1:8~9

  1.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2.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요한계시록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 창세기 1장, 2장 -> 요한계시록
옛 하늘 -> 새 하늘, 옛 땅 -> 새 땅, 동산 -> (새 예루살렘) 성, 아담 -> 이스라엘과 사도들(새 사람), 생명나무 -> 생명나무

창세기 1: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창세기 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창세기 1: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 필자 주 : 성령훼방죄에 해당한 것으로 추측.[]

집은…

집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의 한 부분으로써 그 중요성은 달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 행복을 만들어가고 생활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인데, 이거 참 최근의 투기한다는 인간들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이고 답답할 때마다 포스팅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세 낼 돈이 없어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집을 가지고 투자라는 명목으로 말 그대로 장난질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살며 답답한 소리 하고 있느냐고 해도 역시나 그렇게 생각하는게 극히 정상적인것이 아닌가? 사서 살아야 할 집은 이미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살지도 않을 집을 몇 채씩이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분개해 하지 않을 사람은 투기 목적의 주택소유자들 뿐이라고 생각된다.

집은… 돈 놀이 하는 도구가 아니란 말이다.

관련기사 : “억, 억 뛴다고요? 어느 나라 얘긴가요?”

평범한 사람들이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평생 소원이라면 그게 정상인 사회일까. 마치 내집마련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듯하다.모두들 부동산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 집값으로 보통사람 연봉의 몇 배를 순식간에 거머쥐는 세상,며칠 만에 오르고 내리는 부동산 가격에, 부동산정책에 울고 웃는 사람들, 참 암담하다.

대다수 서민에게 집은 투자대상도, 투기대상도 아니다. 그저 식구끼리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집은 그냥 집일 뿐이다.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은 인내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선생의 자리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것은 비단 선생이라는 자리만 그런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아이에게 있어 가르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결혼한 친척누나가 콩을 어른이 되어서도 안 먹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먹으라고 했다가 언젠가 한번은 아이가 엄마도 안 먹으면서 왜 나한테만 먹으라고 해 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의 자리라는 것은 이보다 더 비중있는 책임감이 부여됩니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치는 자로서 부도덕함으로 교회에서 누군가를 떠나가게 만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교회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교회의 영광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있다. 진정으로 영광받아야 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고 인간이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전통만 강조하는 교회, 생활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인물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을 때 비판력이 강하고 양심이 예민한 교인들은 교회를 통해 아무런 은혜를 받을 수 없어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적어도 교회학교의 지도자와 교사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며 행동에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1

  1. *. 양창삼 지음, 『교회행정학』, (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무부, 1998), p. 106.[]
We use cookies in order to give you the best possible experience on our website. By continuing to use this site, you agree to our use of cookies.
Acce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