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남성은 신체적인 특성상 다리가 두꺼워지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기간에 같은 거리를 운동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변화의 정도는 다르다. 둘 다 체력이 보강되어지고 전반적인 대사량이 소비되겠지만, 남성에게는 한가지의 변화가 더 생긴다. 바로 다리 근육의 발달인데, 이것이 자전거 타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 정확히 말하자면 땀을 흘리는 행위 – 필자는 줄넘기도 해보고, 자전거로 통학도 해 왔다. 특히나 자전거로 통학할 때는 조금 무리가 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침 저녁으로 땀을 흘려주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양대교를 건너는 동안에는 곁길이 있어 별 불편이 없었지만, 그 외의 일반 도로의 경우에는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거나 인도에 오르내리는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해서 자전거 바퀴가 상하거나, 그로 인해서 터지곤 했었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구간에서는 인도에서 다니는 것이 불편 –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 – 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까운 차도로 다니기가 일반적이었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환경과도 관련되어지는데, 차량으로 다니는 것보다 그만큼의 매연이 줄어들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전거 이용자수가 눈에 띄일 정도의 인원일 때의 말이다. 차량 이용자들이 잘 구축된 자전거 도로나 제반 시설이 생기고 국가에서 지원이 있다면 그만큼 자전거로 이동수단을 변경할 것인가하는 의구심도 살짝 든다. 그 동안 차량으로 편히 다니다가 자전거로 힘들여 다니고자 하는 사람이 그 만큼 생길 것인가 하는 것이 그 의구심의 첫째되는 항목이다.
쨌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개인의 체력 증강, 건강 회복의 이점 외에도 좋은 점이 많지만 사람들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략을 잘 구성하여 시행하지 않는다면 잠시 떠들고 마는 수준의 활동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1980년대에 일본사람들은 부동산의 가격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부동산 신화)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 말이 맞는 것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르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부동산을 구입했고,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하여 부동산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대출하여 부동산을 다시 구입하는 순환을 만들게 된다.
르네상스의 여인들1이라는 책을 방금 다 읽어냈다. 책을 읽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필자에겐 읽는다는 것은 일2이다.
쨌든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말미에 『르네상스의 여인들』창작 뒷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작가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후에 헝그리했던 젊은 시절에는 히치하이킹을 했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나름대로의 히치하이킹의 지침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믿든 안 믿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으면 그 방법밖에 없었던 시절이에요. 배낭여행이나 어린 학생들의 단체 해외여행이 시작된 건 그후였죠, 그리고 나도 나름대로 히치하이킹의 지침을 갖고 있었어요.
첫째,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을 정도의 돈은 항상 준비해둘 것, 다시 말해서 선택의 여지를 남겨둘 것.
둘째,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상관없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을 할 것.
셋째, 도로의 가드레일에 걸터앉아서 손만 흔드는 따위의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 것. 반드시 길가에 서서 기다릴 것.
넷째, 치마를 걷어올려 다리를 드러내 보이고 그것으로 관심을 끄는 짓은 하지 말 것. 못된 남자의 차에 타는 위험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다 섯째, 길모퉁이처럼 차를 세우기 어려운 곳에는 서 있지 말 것.
여 섯째, 직접 운전하든 운전수가 딸려 있든, 혼자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노릴 것. 동승자가 많으면 질문공세에 시달려서 오히려 피곤해 지니까요.
일곱째, 다가오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 운전수가 딸린 차라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을 것.
마지막은 나를 태워준 사람과 말상대가 되어줄 것. 상대도 심심해서 태워주는 것이니까, 차를 얻어 탄 이상은 열심히 말상대를 해줘야죠.
이렇게 하면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차를 얻어 탈 수 있었어요.
『르네상스의 여인들』 364면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히치하이킹 지침이다. 게다가 젊은 여성이라는 점과 예의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 또 통찰력을 살며시 드러내주는 지침이다.
최근에는 다들 차가 있거나 교통편이 편리한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히치하이킹 따위는 꿈도 꾸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필자처럼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에 적어본다.
작년에 청소년 캠프에 스탭으로 일하면서 중고등학생들과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었는데, 나름 아이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였다. 사실 스탭으로 참여했던 필자도 적잖이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하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름에 관한 것이 그 하나이다.
그런 글을 쓰는 게 직업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집가라는 말도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해준 부모님한테 작은 효도나 하려고 본명으로 발표했어요. 그러고는 나중에 아뿔싸 했죠. 작가가 될 줄 알았으면 좀더 여자다운 필명을 생각해두는 건데 하고……
『르네상스의 여인들』 375면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할머니라는 동생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책의 표지 안쪽에 실린 곱게 늙은 할머니 사진을 본 때문인지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은 꽤나 여성적인 이름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나나미라는 이름의 캐릭터들도 대부분 여자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시오노라는 부분이 남성적인 성향의 이름이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 아시는 독자 있으시면 답변 부탁드린다.
이 후에도 시오노 나나미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해 줄만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들이 있으니 사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jpeg로 저장하도록 품질(Quality)을 설정해 두었는데, 이번에 4GB 용량의 CF를 사서 RAW파일로 저장하도록 설정을 바꾸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별반 차이가 없고, 편집할 때 변화가 생겼는데, 알씨에서 곧바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일일히 열어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뭔가 편리한 유틸이 있어도 이 작업 방식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면서 무보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최근 사진을 띄엄 띄엄 찍어서인지 화벨 설정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찍고 나서 포샵에서 커브로 이미지를 보정했는데, 그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RAW파일로 불러왔을 때 열리는 관리 페이지에서 Color Temporature(색 온도) 설정에서 간단하게 변경 할 수 있게 된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역시나 이전 작업보다 불러내는 시간도 더 걸리는데다가, 일일히 색온도를 변경해주고 오픈하고 액션으로 처리하고… 뭔가 작업량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래서 사진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사람들의 독촉에 시달리는 주기가 더 짧아졌다.
이거원.. 사진도 완전 일이돼버렸다. 사진 찍는건 그렇다고 치고 정리하고 올리는게 일이 돼버려서인지 흥미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가졌던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을 담고자”하는 그 생각만은 변함이 없기를 스스로 바라고 있다.
이번에 찍은 사진 중 분위기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이다.
내 수준이 이런 수준정도라는게 탄로날만한 사진인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차에 대한 생각은 뽀대와 관련이 되는데, 경차는 일단 크기가 작아서 뽀대가 안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혜택들을 뒤로 제쳐놓고 사고시 피해충격이 다른 차에 비해 강하게 받기 때문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마티즈 차량의 외부 재료는 양철1로서 다른 차량에 비해 그 강도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만도 매우많은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 가입자인 특수곰(dunkbear)은 마티즈에 대해 <아, 자전거 탄 대법원장을 보고싶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차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차가 좋은 이유가 구입 가격이 싸고 연비가 좋아야 하지만 구입가도 별로 싸지도 않고 연비도 좋은 것도아닙니다. 오죽하면 마티즈 CVT 같은 모델은 별명이 “마쿠스”라고 불렸을까요? 소비자들이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워서 마티즈안타는 것이 아닙니다. 마티즈 타나 소나타 타나 유지비 차이가 감당할 수준이라서 소나타 타는 것이죠.
필자는 마티즈(MD) 99년식을 중고로 구매해서 소유하고 있는데, 전 차주가 사고 한번 없이 회사 차량만 거의 이용해서 2006년까지 8만 9천Km정도를 주행한 것을 구매했다. 구매가는 140만원이었는데, 차체 외관은 물론 실내도 매우 깨끗했다. 회사에서 차량이 주어져서 정작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판매자의 말은 사실인 것으로 추측된다. 구매후에 본인의 부주의로 인한 차량 수리를 제외하면 차량 수리라고 할만한 것은 엔진오일 교체 정도이다.
그런 차량을 사서 기름을 꽉 채우고 – 마티즈의 기름 통은 40리터 –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만 사용했을때, 2주가 조금 못되는 12일을 주행할 수 있었다. 통학거리는 대략 왕복 50Km정도이다. 위의 글에 의하면 일반 승용차로도 그정도 밖에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 운동 관련 포스팅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작지 않은 몸이기 때문에 차량을 구매하고 얼마 안된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덩치에 맞지 않는다던지 장난감 몰고 다니냐는 소리를 자동반사적으로 해줬다. 일반적으로 그런 소리를 듣게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는가. 초기에 몇 사람들, 몇 번의 기분 나쁜것을 견디면 그만큼의 이득이 발생한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프레지오를 운전하는데, 확실히 프레지오와 대비해 주차 문제, 요금 문제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지방으로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지만 통행료를 지불할 때마다 마티즈를 선택한 것에 만족을 느낀다. 소형이상의 차량 대비 50% 이상의 요금절감, 공영 주차시에도 마찬가지로 50%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차량 크기가 작기 때문에 웬만한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주차를 시킬 수도 있다.
마티즈의 유지비가 소형차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의 차이라고 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인다면 그만큼의 다른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란다. 부자가 되는 방법 중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별 것 아닌 비용들을 차단시키는 것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의 성격과 사정, 생각에 따라 자유로운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칼로 위협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맨발에 머리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오르시는 성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야말로 마키아밸리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가 후세에 전한 그 유명한 말이다. 카테리나는 유유히 치맛자락을 홱 걷어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멍청한 놈들아,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여기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222 쪽 – 11 줄
시오노 나나미가 쓴 르네상스의 여인들의 한 부분으로 카테리나 스포르차라는 여인의 이야기인데, 지금 이 여자는 자신의 남편인 영주를 잃은 성에서 자신의 작은 나라인 포를리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배짱을 부린 장면입니다.
과연 저런 행동을 한 그녀는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들이 죽기를 바랐던 것일까. 세상에 어떤 어머니도 자신의 아이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을것입니다. 물론 모성애조차 가지지 못한 불쌍한 여인들도 있습니다만, 그녀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편에서 생각해보자면,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살아나더라도 비뚤어져버릴테다~ 라는 개그만화의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리라 결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 꽤나 치밀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영주보다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카테리나가 아이들을 버린 것은 아니다. 사로잡혀 있을 무렵, 그녀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아이들을 이렇게 타일렀다고 한다. 지금까지 죽이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위험은 없다고 생각해라. 너희는 용감하기로 이름난 스포르차 가문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느냐, 카테리나는 단지 선수를 쳐서 오히려 적의 의도를 꺾어버리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223 쪽 – 3 줄
필자의 주변에 저런 대범함을 갖춘 여인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청혼하겠습니다. 이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목회자가 될 사람으로서 그에 맞는 사모의 요건 중에 하나가 바로 대범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포르차의 저런 대범함만이 긍정적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은데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다른 여인의 남편을 믿어주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 여인에 대해 남아있는 애가를 남겨두었는데,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이런 나를 위해
무장을 갖추고 말을 달려와 용기를 보여준
군주는 한 사람도 없구나.
온 세상이 경악했다.
‘프랑스 만세’를 외치는 병사들의 함성에
이탈리아의 힘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저 교황의 아들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이
앞으로도 계속 포를리에 머물 생각이라면
미장이로 직업을 바꾸는 편이 좋을 것이다.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미친 듯이 화가 나면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해버릴 테니까.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16세기 초에 로마냐 지방에서 불린 「카테리나 스포르차의 애가」에서
179쪽 – 2줄
애가라고는 하지만, 꽤나 무서운 구석이 보입니다. 그 당시의 그녀에 대한 표현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자세한 서적 정보는 <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 | 르네상스 저작집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서울 : (주)도서출판 한길사, 2005)>
요즘들어 모기불 통신에 자주 가는 편이다. 이슈화 되는 것들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검색을 통해 학습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을 작성해 나간다.
쨌든 오늘은 수입 바나나는 위험한가? 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트랙백으로 달려 있는 미국 바나나? 라는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원래 바나나는 씨가 많지만 현재 주로 재배되는 것은 씨없는 바나나라고.
사실 어떤 식물이든지 그것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씨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다. 이건 어쩌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씨 많은 바나나를 먹기 힘들기 때문에 씨를 없앤 종을 재배하여 먹고 있듯이 수박 역시 씨없는 수박의 개량종이 맛이 탁월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바나나만큼 흔히 먹게 된다면, 수박은 원래 씨가 없는 것이라고 인식해버리거나 씨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쓸데 없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익숙함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위험성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안전 불감증도 그런 익숙함에서 안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고에 대해 둔감하고 그로인해서 발생되어질 사고들에 피해를 입는 것은 둔감한 그 자신이다. 또한 익숙함이란 자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해서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는 자만함은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사실 리더의 자리는 소규모 집단에서조차도 아랫것들의 사정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규모가 작은 그들 가운데서도 그러한데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은 어떠할까.
홍종학 교수의 기고문에서 언급되었던 사전 검열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가장 크게 생각된 것이 군대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업에 대한 것이다.
군대의 머리되시는 분들이 끝 없이 그들의 군에 대한 변화 노력을 내비추고 있음에도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 가리워진 진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그 아래의 하급자들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왜곡된 보고를 받는다. 점차 올라갈 수록 그것은 더욱 심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쳐지지 않으면 안될 것에 대해 희생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에 의해 제제된다. 이 말들은 자신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 숨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죽지 않기 위해 방치 묵과 은닉해 버리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사 진행에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은닉하기는 군대와 매 한가지다.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기업 내부의 비리들을 듣고있노라면 적잖이 씁쓸할 뿐이다.
쨌든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리더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래 상황에 대해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군에 대한 애착을 물려받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내게 있어서 군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이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군인으로서 복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들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군에 가기 싫은 사람은 돈 열심히 벌어서 어떤 비겁한 인간들처럼 외국국적을 획득해서 이민가도 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니까 상관할 바 아니다.
나라라는 집단은 가족이 모여서 구성되었고, 가족은 국민이라는 인간개체들이 모여서 구성되었다. 그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바로 내 가족이며 친지이고, 부모들이자 형제들이다. 이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자리에 왜 가기 싫어하는가.
그건 그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폐해들 때문이리라. 초등고등학교를 압력 속에서 지내오다가는 겨우 자유를 얻은 듯했는데, 그 자유를 구속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에서 전역한 사람들을 통해서 적지 않은 루머들이 흘러나왔고, 그런 것들은 루머가 아닌 현실로서 그들에게 접근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연인이었던 여인들과 이별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여자들만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공감대도 없는 그들과 2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사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되니까.
그러면 이런 악순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것인가. 군을 개혁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군을 개혁한다고 하는 소리는 수 없이 있어왔고, 지금도 개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상심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찾으려는, 보상 받으려는 심리쯤으로 정의해두자.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되어져 온 것은 상급기관에서만 그 노력이 그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점차 하급기관으로 내려와 점차 교육수준이 높이진 병사, 간부들에 의해서 일부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부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미 강제력으로 인한 편함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 때문이리라고 생각된다.
입대해서 교육을 받고, 근무할 곳에 배정 받은 간부(하사 이상)들을 이등병 취급하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행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의 발생이다. 초임 시절의 괴로움은 그 간부의 남은 군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초임 시절에 강제력으로 하지 않으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그렇게 부하를 이해하고 통솔하려는 마음보다 강제력을 쓰는 것이 더 쉽다고 느껴버린 간부는 자신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이후의 병사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강제력을 행사한다.
강제력이라는 건 일을 쉽게 만든다. 그래.. 쉬운것.. .인간이 끝없이 요구하는 욕구 가운데 하나는 쉽고 편한것이다. 점차 기술은 생활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 대한 행동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잠시 생각한 것을 끄적거리고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쉽게 길어져버린다. 쓸데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오해를 통해 가진 악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면 군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내 나라, 내 가족, 내 형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구영운영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야마토나데시코 Ep – 01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내용을 주욱 훑어보는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남자의 어디를 보는거지?
제일 첫번째로 체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
자동차 키
거기서부터 연수입, 부동산, 주식보유량 등
남자의 재력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구
그때야말로 난 이사람한테 걸어볼까 하고 생각한다구. 그렇습니까?!!
이 문구(“자동차 키”)를 확인한 순간들었던 생각은, 강남의 월세 할부인생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강남쪽에서 외제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 젊은이들 중에 재력이 있어서 가지고다니는 사람들보다는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적인 조사를 해 본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났다.
만약 미팅에 나간 남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 여자(사쿠라)처럼 이 남자, 저 남자 동시다발적인 미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사람 잡아 시집 잘 가자는 목적으로 – 사실 이런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 간다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진정한 낭패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함께 그 부채들을 감당해야할테니까요. (추가) 물론 요즘엔 합리적 사고라는 면의 접근을 통해 그런 문제들도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부채는 각자가 알아서 갚는 식의 부부들도 생겨나고 있다는군요. 그런 합의조차도 되지 않는 부부들은 이혼에 이르기도 하구요.
사실 여자고 남자고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요. 급하게 만나 결혼하고 급하게 이혼해버리는 세태를 따라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인내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베이커가의 망령은 대강 천재 소년이 개발한 인공 두뇌 프로그램인 Noah’s Ark를 뜻한다. 천재 소년은 히로키라는 이름의 캐릭터인데,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와도 헤어지게 되어 개발자로서 IT계열 최고봉 기업주에게 소속된다. 그리고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일들이 있게 된다.
히로키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일본의 개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교육 분위기로 인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개발자로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기업주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가 프로그래밍이 완료된 후에 자신을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굉장히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역사들에 의해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는 적지 않이 닮은 꼴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의 작품들이 스토리가 탄탄하다거나 작화의 세련미라는 이유 외에도 설명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쨌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Noah’s Ark가 정, 재계 2, 3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상 게임 프로그램에 침투하여 통제하는데, 그런 내용 중에 게임에 들어가 경험하는 2,3세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기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단지 애니메이션의 가상 상황(픽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조금은 우습게 여겨지지만 그 내용을 통해 필자 고모님의 아들인 S군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본인의 조모님은 그 분의 둘 째 따님의 아들 – 말하자면 외손자 – 인 S군에게 별다른 정이 없으셨다고 한다. 본인과 동생, 그리고 셋째 고모님의 자녀들처럼 직접 키우시거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모님께서 고모님댁을 방문하셨을 때 고모님께서 보이신 행동에 대해 S군은 실로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고모님꼐서는 상체의 비만으로 인해 가지게 되신 지병의 치료 목적으로 수영장에 가신다고 했던 것으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조모님은 81세(2년전)의 고령의 몸을 이끄시고, 부천에서 고모님께서 계신 의정부까지 친히 방문하셨다고 한다. 방문하신 집은 둘째 고모님댁이며 그 고모님은 하체에 문제가 있으셔서 거동에 적잖은 불편을 겪고 계셨고 그 때문에 치료 목적의 수영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고모님댁에 도착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고모님은 조모님께 수영장에 가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S군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엄마, 할머니께서 자주 오시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만에 힘들게 오셨는데 그거 나중에 가도 되는거잖아요. 나중에 내가 커서 엄마 오셨는데 일보러 나간다고 하면 어떠시겠어요?
이런 별것 아닌듯한 말에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에 의아해하시는 분을 위해 추가 설명들어가겠다. 둘째 고모님은 S군을 재혼을 통해 얻으셨다. 둘째 고모부님은 사업을 하시던 분이셨고, 첫째 부인과 사별하시어서 혼자인 상태이셨다고 한다. 그런 중에 고모님과 결혼을 하셨는데 이 고모부님 성격이 정말 대단하시다. 필자와 동생의 어린시절 이 고모부님의 포악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몰인정한 행동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모님의 친정, 즉 우리 친족들과의 왕래를 극히 꺼려하셨고 굉장히 거친 언사로 고모님을 공포로 몰아넣으셨던 분이시다. 물론 이 묘사에는 한치의 과장도 섞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묘사를 제하였다.
그런 고모부님의 아래에서 자라난 S군에게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됨됨이가 하한가를 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옳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에 따라 발언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발견된다. 물론 악한 부모 자손들이 무조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행동이나 사고를 여과없이 배우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에서 유사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S군의 입에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감동했고, 그런 발언을 통해 가능성은 발견된 것이다.
어떠신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버릇없고, 인간미 떨어지는 사람을 방치하기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성향을 옳바르게 잡아줘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내 자식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해 줄 필요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아래의 답변은 기독교 전체의 답변이 아니며, 본인의 짧은 지식과 생각을 비춘 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또한 추가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주변 교회의 목사님을 방문하시거나 권위있는 학자들의 글들에서 답변을 얻으시기를 권하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안티 기독인들에 대한 글들을 많이 접해오면서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더욱 공부하고 알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제는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글을 통해서 다시한번 배타성과 관련하여 적은글에서 외부의 사람이 느끼는 배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글에 navman님이 질문을 해 오셨다. 그것은 기독교 배타주의에 관한 것이었고, 성경 상의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들였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짧게 반문을 적어두었었다. 그런 후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이 나서 뭔가 확실한 답변이 될 만한 것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쾌한 답변을 내려주기에는 지식적 경험적 한계를 가졌다. 그렇더라도 일단 알고 있는 한에서는 답변을 해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답변을 해 본다. 그러나 질문하신 분에게 기타 신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함으로써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심도 있는 언급은 제하기로 한다. 일단 navman님을 포함한 기독교적 지식과 이해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죄를 지어 잉태하여 후예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들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인간들은 스스로 자만하여 죄악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의인이었던 노아를 선택하여 그의 가족들과 한 쌍씩의 동물들만 남겨두고 물로 심판하신다. 여기에서 문제는 제기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다고 다 쓸어버리는 것이 기독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navman님의 질문 덧글에 답변으로 달아놓은 반문은 그것에 대한 간단한 답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으로써 인간을 없애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하나님께 있어서 소모품 정도의 비중밖에 안되는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셨을 당시의 상대적 의인인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죄로부터 최대한 멀어진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계속되는 인간의 죄악을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설명에 대해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진리라는것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도 그것은 진리인것이다. 해가 이동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덧붙여 말하자면 죄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추가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죄들을 정당화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독교와 관련된 죄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그 뜻을 충분히 여쭙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더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되는 것이다. 위의 문제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기독교의 자기싸움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욕심인 자본주의적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문제들은 발생되는 것이라는 그 포럼에서 논의 되었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 한 사람이라도 생명의 길에 인도하려는 – 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규모를 늘리기 위한 교회사역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한 가지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성인(聖人)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제쳐뒀었고 자만하고, 욕심부려 기독교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발언, 행동들을 가졌었고 그런것들을 고치고 인내해 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 동안 습관적이었던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기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것과 연관지어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는 있지만, 죄된 습관을 오랜동안 가지고 살다가 회개하여 믿게 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오랜 것일수록 고치는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부활이나 인간의 종말에 대한 말씀들을 믿고 믿지 않고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권하는 것은 안타깝기 때문이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함께 영원한생명을 얻어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영원한 생명에 대해 뱀파이어나 기타 죽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모레 수렁에 빠져서 점차 몸을 침식당해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언제 데려가실지 모를 상황에서 그 긴박함은 강제성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권유하고 물가에서 위험하게 놀 때에는 혼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야 한다.
본인은 단 몇 줄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면 그것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꽤나 고민거리였던 것 중에 하나는 글의 길이였다. 블로깅할 때 뿐 아니라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조차도 글을 길게 써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글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글이 길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의 지난 포스팅들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동안 작성했던 글들을 생각해봤을 때 글의 내용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주제와 관련된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그동안 뭘 썼던 것일까? 단지 주저리 주저리 문자들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게하는 글이 눈에 띄기도 한다. 블로깅을 단순히 기록활동으로 생각한다면 허용될만한 글들이지만,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목적과 그 글을 작성했을 때의 목적에 비춰생각한다면 허용될 수 없는 글들인것이다. 물론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블로그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본인의 글을 쓰는 습관을 다시 한번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하는 과목 중에 성경본문을 연구하는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의 발표를 – 겁도 없이 – 처음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표를 하는 중에 발생됐다. 교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딴지를 거셨다. 물론 속으로는 조금씩 화가 나고 있었지만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계속 인내했다. 논리적 개연성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인 즉슨 지금 열심히 떠들고는 있는데 무슨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교수님께 논리적인 사고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에 대해서 배움을 얻고싶다고 고백적인 말을 드렸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다 듣고 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답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봤을 때 “나”라는 존재는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우선하는 인간이어서 그런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살펴보면서 생각하게 되는것은 그들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정리해 낸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선천적이어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은 본인의 글 작성을 소극적이게 만든다. 웬지 모를 자괴감 – 또는 그런 유사한 감정 – 이 들어서 포스팅할 생각에 압력을 가한다.
쨌든 이 블로그가 쉬지않고 운영되어지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이며, 그들의그외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단련하는데 있어서 노력은 그 목적에 가깝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이전의 본인과 현재의 본인은 확실하게 발전된 형태로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허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글의 작성은 학문적인 것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 모두가 논리적 글작성이 필요하다. 고로 본인은 이런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갈 것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머리속에 응큼한 생각 한 둘씩은 하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응큼한 생각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어떤 죄를 더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머리속 상상으로 머리를 분쇄시켜버린다. 온갖 알고 보고 들었던 절단할 수 있는 도구들이 머리 속에서 본인의 머리를 잘게 부숴버리는 상상으로 그런 응큼한 상상을 마무리 시키는데, 참 그 때의 기분이란 참 묘하다.
꽤나 잔인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변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뭔가 자신을 분쇄시키면서 응큼한 생각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잔인한 장면으로 쾌감을 얻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파랑새를 찾아서 – 용기를 주는 말이라는 포스팅을 읽는 중에 ‘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네’ 라는 부분에서 김제동씨와 관련된 사건(?)이 생각났다.
야심만만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 중에서 회사 면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그 때 김제동씨가 자신이 당했던 얘기를 했고, 강호동씨가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여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제동씨는 섭섭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울분에 섞인 목소리와 붉어진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면서
“그 때 그 인사 담당자분 진짜 실수하신겁니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말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주고나서 알게 된다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하는걸 어색해 한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이 더 그런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한 습득력이나 익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성경 상에 방언에 관련한 구절들이 적지 않게 있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보자면 보잘 것 없는 정도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전서 14장 23절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부교역자로 사역중이셨다. 부모님들이 사역하시던 교회는 방언이나 성령의 역사가 활발했던 교회였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산기도를 다니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던 교회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방언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친구들을 교회에 전도하였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기억난다. 친구들은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교회라는 집단의 문화를 접해보지 않았었는데, 그 친구들은 보기에는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했던 모습만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부흥회 기간이 되어서는 적지 않은 친구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흔히들 부흥회 기간에는 서슴없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성경말씀 본문에서 나와있는 것처럼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언은 성경상에 기록되어 있는 극히 정상적인 은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해보지만 생각을 바꾸기란 적지 않이 쉽지 않다. 물론 본인은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그런 문화에 적응해 있었기 때문에 별 달리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겨졌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중에 교회에 가게 되신다면, 이상한 말로 눈감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라. 그건 방언이라는 기도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 Pay attention to the quality of light and not just the subject. 좋은 빛을 찍는 겁니다. 좋은 대상물이 아니예요. – Shoot in warm light, around dawn or dusk. 해가 있을 때 찍으세요.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입니다. – Always take a look at the edges of the view field. 언제나 시야의 가장자리(끝)를 주목하세요. – Shoot plenty of film. 셔터누르는 걸 아끼지 마세요. – Include a dominant element in the image. 내가 담고자 하는 것의 제일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지 마세요. – Always carry a polarizing filter and tripod with you. 편광필터와 삼각대를 챙기세요.
-Be an observer. Be patient and watch life as it happens?then be readyto capture the right moments as they present themselves. 삶을 관찰하세요. 인내하며 무엇이 삶에 일어나는지 주목하세요. 그리고 제때에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을 준비를 하세요. -Don’t bog yourself down with all the latest gadgets. The real art isbeing able to communicate and to understand what the message is. 최신의 기계(사진기? 렌즈?)로 당신 자신을 엉망으로 만들지 마세요. 진정한 사진(예술)은 메세지를 이해할 수 있을 때 공감가능한 것입니다. -A lot of amateurs make the same mistakes: not thinking about whatthey’re shooting; not considering the light; staying on the outside andnot getting in where the action is; using a flash in a big interiorwhere it won’t do any good. 많은 아마튜어는 공통된 실수를 하곤 합니다. 뭘 찍고 있는지 생각치 않고, 빛을 무시하며, 그 상황의 안에 있지 않고 바깥에 머무르며, 도움도 안 되는 아주 큰 실내에서 플래쉬를 사용합니다. – Never leave home without lots of extra batteries, a small flashlight, a compass, a magnifier, and a weather radio. 풍경사진을 찍을 때는 충분한 건전지, 작은 손전등, 나침반, 쌍안경과 작은 라디오를 챙기세요.
Jim Richardson (“Sojourn on a Southern Highway,” November/December 1998)
-Shoot more pictures and throw away the bad ones. You’ll try morethings: angles, exposures, and so on. The one way to get the photoright is to try lots of different approaches. 더 많이 찍고, 버리십시오. 구도와 노출값등을 바꾸어 여러 가지를 시도하세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은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 The human eye sees differently than a camera, so try to imagine how that image will look in a photograph. 우리가 보는대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 사진으로 찍혔을 때를 머릿속으로 그리세요. – Don’t just point the camera at the scene. Try to create a sense of depth and put things in the image for scale. 눈에 보이대로 찍는 것만 하지말고, 깊이있는 감각을 만들도록 하고, 사진안에 스케일에 맞게 그것들을 집어넣으세요. – Get up early and stay out late.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오세요. -Force yourself to “think little” and to “think big” by doing close-upsand long shots. You’ll gain a lot in the process of looking for detailsand grand-scale images. 가까이 다가감으로, 롱 샷으로 보다 작게, 보다 크게 생각하세요. 디테일을 보는 것으로, 그랜드 스케일을 보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 Try carrying a right-angle viewfinder and put the camera on the ground or up high on a ledge and experiment. 적절한 앵글 뷰파인더를 써보세요, 그리고 사진기를 아주 낮게 또는 아주 높게, 보는 눈높이를 바꿔며 실험해보세요. – Meet the people you are going to photograph and establish a rapport before you begin shooting. 사진찍을 사람과 먼저 만나고, 친해지세요. – Use wide-angle lenses for close-ups, because it’s easier to create a sense of perspective. 다가가서 찍을 때는 더 광각의 렌즈를 쓰세요. 원근감을 만들기가 더 쉽습니다. – Carry a compact folding reflector to illuminate objects in the foreground. 접는 반사판을 가지고 대상물에 앞에 낮은 곳에 두면 빛이 더 삽니다. -When you are traveling, go to a souvenir shop and pick up a bunch ofpostcards for the place you’re visiting. It will let you see how others see each place so you can try to approach it more creatively.Invariably, you will also find something that you didn’t know wasthere! 여행에서는 관강상품 가게에서 그 지방의 엽서들을 보면 다른 이들이 보는 방법을 볼 수 있고 당신은 더창조적인 사진을 위한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지방에 있는지 몰랐던 새로운 장소나 볼거리를 찾을 겁니다.
Mark Thiessen (“Garden of Dreams,” January/February 1998)
– Try to get close enough to your subject to capture the important details. 중요한 디테일을 잡을 수 있게 대상에 충분히 접근해보세요. -Experiment with different types of film in different lightingconditions. For example, try using tungsten film outdoors, perhapsusing a fill-flash with a daylight-to-tungsten gel taped over the head. 여러 상황에서 여러 필름을 여러 빛의 상황으로 실험하세요. 예를 들어 텅스텐 필름으로 야외에서, 아마 플레쉬를 이용해 머리위의 태양광과 텅스텐 젤 테입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 Try using a fanny pack rather than a camera bag. It is not only lighter but safer while traveling in foreign countries. 허리색을 이용하세요. 가볍기도 하거니와 여행지에서 더 안전해요. 도난을 막아요. – Take a tripod, which allows you to use slower speeds and longer lenses during twilight. 삼각대! 그것은 어두운 불빛에도 느린 스피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Bill Luster (“Brown County,” July/August 1997)
-Be as basic as you can in your equipment. Try to use just a camera, acouple of lenses, and not much more. It keeps you thinking about whatyou’re shooting. 단촐(!)하게 꾸려서 다니세요. 사진기 한개에 렌즈 두어 알에 몇가지 악세사리만 챙기세요. 촬영에 몰두할수 있게 도와줄거예요. – Try to include people in every picture you shoot. 사람이 들어가야 사진이 재밌어 집니다. – Make sure you’ve got film in the camera, set the ISO dial, and don’t shoot into the sun. 필름은 넉넉하게 갖고 다니시고 필름감도를 맞추어 찍는 걸 잊지말고, 해는 찍어봐야 사진만 버립니다.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When shooting horses, putting pebbles in an empty film canister andshaking it really gets the animals’ attention. They think it’s food sothey respond to it. 말들을 찍을때는 작은 자갈 몇개를 빈 필름통에 넣어서 흔들면 관심을 가질겁니다. 먹인 줄 안데요. -Always have a sturdy tripod handy and never leave home without ducttape in your camera bag. Tape around the camera to keep out dust andwater. You can also writes notes on the tape to organize captioninformation at the end of each day. 무식한 삼각대와 넓은 종이 테이프 없이는 나가지 마세요. 카메라를 둘러싸면 먼지와 물을 막아줍니다. 또한 테입에 찍은 데이타 정보를 적어놓으세요.
[ 이 자리는 원래 사진이 있던 자리인데, 몇 번의 이사로 유실되었다. 1346172503.jpg ]
내 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가졌던 카메라이며, 디지털카메라였던 Nikon CoolPix 775로 찍었던 사진이 죄~ 없어져 버리고 달랑 한 장 남았다. 이 사진만이 남은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원인은 아무래도 불안정한 하드를 새로이 설치하면서 지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다행히도 하드에 남아있는 것 외에 최초에 찍은 CD2장 분량의 사진은 백업되어 있다.
위에 남아 있는 사진은 천안에서 찍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에서의 무료한 생활을 달래려 크레이지아케이드 BnB라는 게임을 하던 시절에 온라인에서 자주 만나던 누님들과 만나기로 했던…. 이라고 치는순간 눈에 들어온 건 오른쪽 잘려나간 버스의 뒤편에 새겨져 있는 수원여객이라는 글자!!
이로써 새로운 내용을 기억해 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왜 저 곳에서 찍게 된 것일까? 수원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을까? 기억이 조작되었다. 명확하게 어떤 사진인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2003년 4월 14일에 무슨일로 수원에 갔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연도별 월별 일자별로 폴더를 만들어 분류 해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 찍었는지조차도 모른채 쌩뚱맞은 사진이 될 것이었다.
사진은 동영상과는 달리 정지된 모습안에 동적인 모습을 담고 있기도 하고 머리속 영상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 안에 있는 상황들을 예상하고 여러가지 다른 기억들과 대조하면서 기억해 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오늘은 저 사진이 어떤 사진일까? 기억해 내는데 약간의 시간을 할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9월 13일 주택 강제철거는 오후 4시쯤에 끝났다. 인가가 무너질 때 배추밭까지 밟혀 망쳐진 할머니는, 손을 꽉 쥐며
지금부터어떻게 되겠지. 일본군에 쫓겨나고 해방 후엔 미군에 내쫓겼는데 또 나가라니. 나는 여기서 농사지으면서 살고 싶은 것뿐인데
라고무너진 집 더미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소한 바람은 그것으로 무너져 내렸다. 인간이 사는 곳엔 어디에나 권력이 있기 마련이다. 형태의 유무를 떠나서 그것은 그 자신 외의 것을 압제한다. 군이라는 존재는 더욱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집단이다. 대한민국 공권력은 미국이라는 힘 앞에 대리인의 자격으로 철거를 서두른다.
미군기지 확장은 단지 그것이 군사적 계획의 시행이라는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별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을 문제이다. 하지만 그 곳에서 이미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주민이 있는 지역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행위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그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들로부터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있다.
이촌향도의 흐름은 농민을 소외대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고 수 많은 집단들이 생겨난 깨끗한 도시의 인간들은 그들이 떠나온 곳에 무신경한 시선만을 보낼 뿐이다. 아니 시선조차 보내려 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집안의 치부를 드러내어 스스로 먹칠하려는 의도가 아님은 당연하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희망 사항을 먼저 밝힌다.
우리 집안은 꽤나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조부님은 인물도 괜찮으셨고, 재물도 적당히 있으셔서 조부님의 먼저번 조모님께 얻었던 두 딸이 있으셨고, 사별 후 함께 살고 계시는 조모님과 재혼하셔서 딸 하나에 두 아들을 얻으셨다. 게다가 첩까지 얻으셔서 아들들을 낳으시어 함께 살아내셨다.
참… 창피한 집안사이지만, 낮에 조모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연계하여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조모님께서는 조부님과 결혼하기 전에 있었던 두 따님들을 당신이 직접 낳으셨던 것처럼 키워오셨고 얼마전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며 대해오셨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부터도 차별하지 않으셨으며,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셨다. 그런데 그 두 딸들에게 있어서 조모님은 그렇지 않았더라면서 속내를 손자인 내게 털어놓으셨다.
조모님께서 젊은 시절 그 두 따님들을 키우면서 주변에 동생 되시는 – 친동생이 아니라 조모님의 퍼주시는 성격으로 인해 생긴 동생 – 분께서
“누님, 저 아이들에게 너무 잘 해주지 마쇼. 누님이 생각해 주는 것만큼 누님을 엄니로 생각하는줄 아시면 크게 마음 상하셔라..”
그러나 조모님께서는 그런 동생을 꾸짖으시며 그렇지 않다고 하셨단다. 조모님께서는 꽤나 정이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지금도 어려운 생활 형편 가운데서도 뭔가를 부지런히 만드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눠주신다. 조금 더 털털한 표현을 빌자면 “막 퍼주신다”. 그런 조모님 곁에서 자라온 결과 그렇게 하셨으리라는 것을 쉬이 떠올려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나누시면서 두 따님들이 아버지께 대했던 내용을 들으셨단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만나시고 얼마 되지 않아 연애하시면서 서울로 올라가셨더란다, 어찌 저찌해서 돈이 다 떨어져버려서 고모님께 가서 돈좀 빌어달라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데, 고모님께서는 야박하게도 없다고 하셨더란다. 이웃사람이 와서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주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동생이 와서 빌어달라고 하는걸 그렇게 매정하게 대할 수가 있을까? 사실 그 부분에서 그네들에게 가진 남은 조그마한 정을 다 털어내버렸다. 이미 그들에게는 정을 가지지 않았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졌던 그 잔정마저도 뚝 떨어진다.
사실 최근에 고모님들의 행동에서 이미 떨어져 가던 정이었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께 된장을 담아 달라며 그 먼거리를 – 부천에서 의정부 – 오라고 하시는 사건만 해도 개인적으로 꽤나 정 떨어지는 사건이다. 요즘 세상이야 이런 저런 더 심한 일들도 서슴 없이 일어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정말 되먹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조모님을 찾아와서 담아가지구 가져가도 욕먹을 행동이 아니던가. 함께 만들자는 것도 아니도 일방적인 요구다. 친정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도 두 사람의 연령을 생각해보면 욕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모녀지간이라는 특별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를 먹으면… 더 철이 없어지는 것일까. 더 바르게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혼란스럽다.
역시나 해피앤드!
이제서야 완결편을 봤다.
이미 다 봐서 재미없어하는 분이라면 아래의 내용은 패쓰!
쨌든 여러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 아니 이미 결과를 예상해버렸겠지만 – 좋은 결말을 가진 애니다.
해피앤드 작품을 보노라면 이전에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드라마에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우울함을 더해준 사건이 생각난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일단 작품으로서는 괜찮은 편에 속하지만, 꽤나 어려운 사회상황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좌절의 쓴맛을 되뇌이게 만들었다는데서 악평을 받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쩌면 난 이번 오란고교 호스트부의 결말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좋지 않은 결말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기에는 그동안의 사건들이 지나치게 엉뚱했다고 생각된다. 여러 작품들의 패러디 정도로 끝나버리는 애니메이션이 있는가하면, 적절히 그런 진부함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
쨌든 이 글에서 밝히고자 하는 것은 오란고교의 해피엔드이다.
오란고교 호스트부 인트로에서 모두가 모이는 장면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짧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본인이 스스로에 대해 내리고 있는 착각정도의 작은 생각 중 하나는 엉뚱하다는 것이다.
뭔가 엉뚱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그런 것에서 차이를 가지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떨어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엉뚱함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름없게 된다는 것에 대해 슬픔을 감출 수가 없다. 나이라는 것을 먹어가면서 사회전반적인 일반 이라는 기준에 밎춰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신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이다. 일반적인이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 후에는 어떻게든 매장당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계열로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꽤나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본인의 미래 목표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 그 슬픈 미래를 버릴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본다.
하루히 : 저기… 학원제라면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수작업 성향이 강하다고 할까? 전부 수작업으로 준비하지 않나요?
쿄우야 : 그건 일반학교에서나 그렇겠지. 이 오란제에서는 중요시되는건 기획력이랑 통솔력이야. 이 곳 학생들 대부분이 장래에 리더가 될 자질을 기대 받으며 그 힘을 어필하도록 요구되지.
쿄우야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기업 후계자들이 주로 학생으로 있는 학교(학원)이다.
이미 애니 초기에서부터 그런 곳에 서민인 하루히의 등장으로 서로의 차이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여러가지 들이 있었지만 어느새 잊고 있게 될 만큼이나 일반의 학원코믹물이었다.
하지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점차 가볍지만은 않았던 각자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종지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25화에서 26화의 내용을 잠시읽을 수 있었다. 이미 26화의 내용을 본 사람들의 증언인지 제작사의 사전 공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선가 하루히가 아닌 에크레르를 선택해야하는 결말이냐며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의 평도 봤다. 하지만 전체 내용을 알고 있어도 직접 보지 않으면의미가 없는 나에게 있어서는 역시나 기대되는 결말이다.
이 글에 근거하여 결말을 지어버린다면, 가문을 위해 자신의 선택을 버려야 하는 그들은 어떤가. 얼마전 삼성의 여식이었던 그녀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더 비참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꼭 부한 것만이 행복의 척도는 아니라는 점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하루히 뒤의 스오우, 그리고 쿄우코
그런데 파인애플이라니… (털썩..)
딴지거는 것에 대해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간접광고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기 위한 것일까?
뭐.. 애니를 보면서 드는 여러가지 생각들은 나로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한다.
쨌든, 오란고교 호스트부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부와 인간이라는 주제로 생각할 수 있었으니, 이것으로 간접경험이 만족되려나?
다소 허구의 정도가 강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공간을 통해 간접경험이라니 우스울 수도 있겠지만,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들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한 인간 심리 파악이 무기였기 때문에 부정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25화의 마지막에 등장한 타마키의 행동인데, 우리가 얼마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자만을 쉽게 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본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다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의식적이기도 하고 무의식적이기도 한 성격 중 하나가 진짜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의 탈을 쓰고 악한 마음을 품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진다면 낭패겠지만, 그렇지 않다. 어떤 벽 같은게 자동설정되어서 그 사람으로하여금 cansmile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하고 예측하는 것을 어긋나게 해 버리는 엉뚱함이라고 정의내리고 싶다.
타마키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조금 닮아있다.
20살, 갓 20대가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라는 곳에 발을 들였지만, 역시나 고등학교 때 입사해 놓은 회사를 그만두기는 힘들었다. 그 때는 실력이 형편 없는 –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지만 – 웹디자이너였다. 프로그래머가 따로 없으니 당연히 프로그래밍도 혼자 다 처리해야 했다. 회사는 규모가 작았지만, 사장이라는 사람은 꽤나 개방적이었다. 미국에서 적잖이 살다 나온 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안 사람되시는 분이 대표로 되어있는 세탁소를 여럿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사장님과는 서울로 사무실이 옮겨지게 될 때까지 함께 일했는데, 당시 회사에서는 PDF와 관련된 기술을 삼성에 납품(?)하고 있었다. 당시 개발중이던 훈민정음에 해당 기능이 들어갔었다. 그 분야를 개발하던 분이 계셨는데, 머리가 희끗한데다가 꽤나 나이를 먹은 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구부정한 형태의 몸을 가졌다. 그 분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전형적인 프로그래머 상이라는 것이었다.
반평생을 – 최소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 프로그래밍에 젊은 시절을 다 바쳐서 지금의 나이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에 감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참 불쌍해 보이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젊은 날을 한가지 일에 열정을 다해 일한 사람에 대해서는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그의 모습에서는 경력을 입증할만한 어떤 태도도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전에 어떤 블로그에선가 프로그래머에 대한 글을 접했는데, 외국의 경우에는 머리가 희끗 희끗한 장기 경력의 프로그래머들이 많이 보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상 주변(명확히는 한국)에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나이 들어 할 만한 여건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에 30대 전후로 개발 관리자로 승진하거나 다른 분야로 전향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지인 중에 현재 성악을 전공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을 예로 들자면, 그분도 젊은 시절 대학에서 프로그래머로써 열정을 다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20대 후반의 나이에 결혼을 하려는데 생계에 대한 부담이 압박하더란다. 과연 이 걸로 이 여자(형수님)를 밥 벌어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고민 끝에 일반의 다른 직종으로 전향했다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개발자는 헝그리한 직업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되새김질 되었다.
안그래도 배고픈 직업인데, 최근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더욱 그들을 괴롭힌다. 경쟁을 위한 촉박한 납기일, 무개념의 경영자들로 인해 더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게 재촉해서 좋을일이 없다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아니, 비단 개발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빠르게 처리하면 시간을 그만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개발에 있어서 그것은 매우 많은 위험성을 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불안정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주변에 개발자(프로그래머)가 있다면 그들의 고뇌를 들어보시라! 주변에 경영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말씀하시라! 그들의 개발에 대한 가출한 개념을 찾아와 정비할 수 있도록..!
오늘 모임이 있어서 친구네 집에서 몇 명이서 모였는데, 저녁을 못 먹었을 것 같다는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운영하는 2가지 품목을 배달해 왔다.
교촌 치킨을 처음 먹어본 건 군에서 영천으로 출장 갔을 때인데, 영천에서 하루밤 묵어야 될 일이 있어서 자고 기차를 기다리는 데 아침도 못 먹고 해서 밥 먹을 곳을 찾았는데, 금새 먹을만한 집들이 열려있는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힘들게 찾은 곳이 교촌 치킨인데, 나름 1마리 정도쯤이야 기본적으로 먹을 수 있는 식성을 가지고 있기에 일단 한 마리 해 달라고 했다.
사실 처음 보고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왜 인지는 먹어보신 분들만 아시리라.. 게다가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인데 간장 소스에 튀긴것이라 참… 짰다. 먹다보면 그 감각이 둔해져버려서 모르게 되지만, 일단 첫 맛이 짜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간장소스니까.
아까 먹었던 2가지 종류의 치킨 중에서 간장 소스가 아닌 것을 먹었는데, 그건 맵고 참 맛있었다. 간장 소스는 여전히 짜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그게 그 치킨의 특색이겠거니하고 맛있게 먹어줬다.
아… 좀 덜 짠 교촌은 없는것인가…
그럼 그 특색이 사라져버려서 인기가 없어지려나…역시 닭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
그저 보고 웃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이다. 만화라는 것은 애초에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던가. 아! 그런 것에 있어서는 장르별로 다른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보는 몇몇 카툰들이 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보기 시작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카툰들은 웃고 즐기기에만 좋은 것도 있고,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도 있다.
만화라는 것은 내 인생에 들어와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용기를 주기도 하고, 희망을 주기도 했으며, 상상력을 늘려주기도 하였다.
머리 속에 이미지를 떠 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 머리속에 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은 수 없이 봐왔던 영화들보다는 카툰이 더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위에 있는 카툰은 여러 카툰들 중에서 아! 하는 감탄사를 주었던 작품(!)들 중에 하나이다.
반전의 재미를 알게 해 주기도 했다. ^^
동생이 얼마전에 책을 하나 사왔다. 붉은 머리칼의 여인을 흰 배경과 조화시켜놓은 표지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전에 읽었던 책은 부대에서 누구인가 가져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겉 표지 디자인된 종이가 없이 단지 두꺼운 종이에 문자로만 이루어진 미색의 창호지같은 재질의 은색 글씨색을 가지고 있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소설을 이렇게 재미있게 일을 수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그 이전에는 – 지금도 적잖이 그런 성향이 있지만 – 책 하나를 잡으면 한달을 가기도 했던 독력(최악 독력 극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읽든지 정독의 수준을 넘어서서 연구를 하면서 봤었다. 책을 정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상태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빌려오는 책들 중에서는 흥미를 끌만한 내용을 가진 책들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동생이 빌려오는 책의 대부분은 만화책을 제외하고는 역사 관련된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쨌든 향수의 주인공 그르누이의 악마적 성질의 후면에는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의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낸다. 측은한 생각마저 들게 만드는 캐리터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을 조정(!)하는 그의 모습에서 악랄함보다는 외면받는 그의 모습의 불쌍함을 느꼈다.
읽은지 몇년이 지나버려서 전체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단순히 단편적인 느낌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나 지식의 습득, 인간사의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곧 잊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스토리 라인만 기억될 것들, 단지 어떤 부분에서만 영향이 끼쳐질 것들을 정독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어리석게도 느껴진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예고편을 보기 전에 이미 그 제목으로부터 끌림을 받았다.
제목에 있어서 관심이 가는 작
품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당시의 나로서는 영화를 볼만한 시간적 여력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동생을 위해 잠시 들렸던 서점에서 같은 제목의 소설(영화의 원작)을 슬쩍 읽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늘은 그 잊었던 희망(!)사항을 이루었다. 책으로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일단 영화의 흐름에 있어서는 소설 전체 내용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을 얼마만큼이나 잘 살려내었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도회장에서의 카메라 동선은 어지러운 듯 하지만 그 나름의 소설의 내용들을 충실히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사람이 이동하면서 살피는 듯한 시선처럼 촬영을 했다는 것에 있어서는 좋은 느낌이다.
영상면에서는 그 이후에도 높은 선예도를 가진 화면들하며 완전히 어둡지만은 않은 경쾌한 영상들이었다.
사랑.. 그리고 서투른 그들의 표현들이 낳은 결과와 결말!
오랫만에 작품다운 영화를 감상했다.
뭐… 한국영화의 작품성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마음먹으려 하니 또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하는 영화들이 쏟아진다.
제대로 만들어놓은 좋은 영화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고서도 또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어진다.
웬지 극장에서 보는 그 맛(!)은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취미생활의 하나일 뿐이다. 활동하는 주요 분야는 웹 프로그래밍이지만, 주요 모임 등에서는 사진을 맡고 있다. 처음 사진을 맡게 되었을 때는 준전문가용이기는 하지만 꽤나 사람들의 구미에 당기는 사진을 만들어냈기도 했고, 웬지 사람들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다는게 흡족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진에 대해 불평을 듣게 되었을 무렵부터 사진에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기분 탓이려니하고 넘어가버렸다.
확실히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의 사진보다 지금의 사진이 더 형편없다고 생각된다.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그들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 그렇다. 관심의 대상인 피사체를 찍은 것들은 초점이 맞지 않더라도, 대게는 기분 좋은 느낌을 담고 있다. 준전문가용을 갖기 전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똑딱이 카메라(CoolPix 775)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의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 최근래의 사진보다 훨씬 좋은 느낌의 사진들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 것은 – 직업으로 삼기 위해 시작하는 경우를 제외하고서 – 가족들을 찍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카메라 동호회 사람들을 만나보면 아이의 아버지 또는 어머니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다. 뭔가 기록을 위해서라거나 그저 다른 사람의 찍는 모습이 멋져보이고 멋지게 담고 싶어해서 찍는 경우도 많다.
사진을 시작한 이유를 찾아 더듬어 보자면 중학교 시절 – 물론 전학 오기전 홍익사대부중 – 에 특별활동 시간에 뭔가 관심이 가는 것이 없어서 조금이나마 관심이 가게 된 곳이 카메라 부서였다. 담당 선생님은 기술 선생이셨던것으로 기억된다.
쨌든 사진에 대해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고, 당시에는 필름카메라가 주류였고, 일반 가정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된다는 것이 부르주아 급(!)이라는 인상을 가지게 했던 때였다. 그 때 사용했던 카메라는 얼마전에 집안에서 발견되어 추억을 회상하게는 했으나, 오랜 세월의 무관심으로 배터리 부분에 녹이 슬어서 쓸 수가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내 작은 희망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별것 아닌 희망이었지만, 그건 세상에 모든 것을 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모든 것을 다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들을 내 마음속에 담아두는 동시에 기록될 만한 어떤 것으로 담고 싶었던 듯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카메라라는 매체가 있었지만, 역시 내게 있어서는 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것으로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또 동적인 것에는 생각의 여유를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정적인 화면에서 얻을 수 있는 상상력의 여지는 삶에 짧은 활력소이기 때문이다.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웬지 아직 어린아이이고 싶어하는 본인의 소망을 단순간이라도 이루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쨌든 삶에 있어서 사진이라는 것은 단순히 취미활동에 불과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얻어지는 기쁨이란 취미활동 이상의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반환된다. 사진은, 내 평생의 취미활동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글은 내 어머님의 간증이다. 경험담이고,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실행하심에 대한 증거이다. 간증의 내용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로 마감된다. 이 글 역시 마찬가지이며, 읽고 싶으신 분들만 읽으시라.
여기서부터..여기서부터 접기
먼저 어머님께서 자라오신 환경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조부(여기에서의 호칭은 어머님 기준)께서 성당(천주교)을 다니셨고, 다른 가족들도 조부님을 따라 성당을 다니셨다고 한다. 8남매 가운데서 맏이셨고, 어머님 세대의 다른 어르신들처럼 딸에게는 지원을 굉장히 아끼셨기 때문에, 학교를 자비로 다니시지 않으시면 안되는 상황에서 대학을 국군간호사관학교에 입학하셨다.
고등학교 때에는 믿음이 없으신상태로 교회에 다니셨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사정은 마찬가지겠지만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처음 교회에 나간다는게 친구를 따라 나간케이스에 속하셨다. 그렇게 고등학교 생활을 마치시고 대학교 1학년(20살)에 들어섰는데, 뭔가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의 국군간호사관학교는 대구에 있었는데, 그런 이유로 전라도 학생들의 향우회가 조직되었고 그 사람들과 여기 저기 활동을 하기도 하고 등산도 다니고, 만남도 가지고 하셨단다. 그런데 그 향우회라는 것의 활동이 그런 활동들의 반복이었고, 그런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셨던 어머님께서는 흥미를 잃으셨다고 한다.
군 교육 기관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했는데, 믿음이 그다지 확실하게 세워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열심을 가지시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 모습을 좋게 보셨단 당시의 어르신들(군목을 포함한 교회의 어르신들)께서는 교리 학습을 시키셨고, 그로 인해 세례를 받으시기에 이르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례 전날인 토요일에 문득 생각하셨다고 한다. 믿음도 확실하지 않고, 세례를 받을 자격이 되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그저 앉아서 기도(어머님께서 표현하시기로는 단지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정도)하고 계셨는데, 한 학년 선배(2학년)가 한 명 다가와서 주말인데 외출도 안 하고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했단다. 그래서 이러 저러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네비게이토식 교리 교육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확실한 믿음을 세우시게 되었는데, 어머님께서는 그 선배를 표현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가르치는 것에 준비된 영혼을 계획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받으셨던 응답의 대략적인 내용은 큰 단체를 통해서 자비 부담 없이 선교에 쓰시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으로 교육기간을 마치고 마산으로 첫 발령을 받으셨는데, 학교에서만큼 열심으로 할 수 없는 여건들과 여러가지 이유들 때문에 믿음의 정도가 많이 떨어지셨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서 교회에서 부흥성회를 하게 되었는데, 당시 부흥강사님께서 방언으로 기도를 권하셨고, 예배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세계 선교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 응답을 받으셨는데, 당장 그것이 이루어지실 것으로 생각하시고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믿음이 전혀 없으셨던 아버지의 신앙상태와 태어난지 1년 정도 밖에 안된 본인과 갓 태어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아버님은 건축토목기사로서 일을 하고 계셨고, 어머님은 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셨기 때문에 의무 장교로 근무하셨기 때문에 서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을 따라 다녔던 두 아이들은 아버지의 얼굴에 낮설어 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런 이유로 어머님은 대위 4년차에 전역하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만 두시고 나서 아버님께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었다. 목회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으셨다.(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서울의 큰교회의 부교역자로서 활동하시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서도 당시 선교에 활동적이었던 교회에 가서 교육도 받으시고, 알아보기도 하셨는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막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부교역자로 활동하시던 교회에서 나와 본인이 중2때(15세, 1994년) 부천으로 개척하여 나오셨는데, 개척교회라는 것이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적지 않게 힘이 든다.
그렇게 2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셨단다. 이제 그 기도에 대해 별 희망을 가지고 있게 않게 될 즈음하여 어머님은 대방 제단이라는 곳을 알게 되셨고, 그 제단은 대한수도원과 연계된 기도 제단이었다. 그 제단을 통해 훈련을 약 4년 6개월 정도 받으셨단다.
그런데!
그렇게 짧지 않은 기간동안 훈련 받으시면서 들으셨을법도 한데, 한번도 졸업에 대해 들으시지 못하셨다고 한다. 3년 정도를 제단 지기로 활동하면 그 빡센 훈련의 강제적(?)의무가 해제되고 그와 동시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제단에서 약 1개월 여간 활동하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와 유사한 시기에 아버님께서도 중국으로 선교를 다녀오시게 되는 길이 열리셨다.
오늘 오후 예배가 끝나고 광고겸 간증 시간이 있었는데, 아버님께서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계셨던 한 가지를 생각해 내셨다고 한다. 27년 전 믿음이 없던 시절의 어머님의 미친(당시에는 믿음이 없으셨기 때문에 시댁 식구들이 모두 미쳤다고 이혼하라고 까지 하셨다고 한다)소리를 말이다. 이제 곧 세계 선교를 하게 될 것이라는 미친 소리를 들으셨다고 한다.
어떠신가… 지금 당신의 모습을 살펴보라. 당장 응답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좌절해 있지는 않는가? 내 삶에 있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에 비추어 결단코 단언하건데, 결코 응답하시지 않으실 분이 아니다!
물론, 자기 욕심과 정욕을 위해 죄악된 것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시리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단코 이루실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도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근거가 있다면 어떨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 경우의 수들을 생각해보고 그저 단순히 열기가.. 열정이 잠시 식은것 뿐이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면 어떤가.
하지만 그런 생각이 현실의 결과물로 나타나버린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노력들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물거품이 된다는 것은 뭔가 형체라도 남아있다는 것인데, 물거품 조차도 아니게 되어버렸다고 생각되어진다.
그 동안 함께 활동하던 친구가 한참을 보이지 않다가 모임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짓 웃음으로 인사를 보내오며 금새 굳은 표정으로 돌아가버리고는 다른 곳을 응시한다. 같은 신분을 가지고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여버린다. 그 단체가 하나 이상의 모임 장소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 마주치게 될 가능성은 있는 것이다.
그 희박한 가능성도 아니고 매 주, 같은 요일에 만나야 하는 관계속에서 벽을 세워버린 상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래.. 괴로운 일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벽을 느껴버린 사람은 또 어떤가. 자신은 세우지 않았는데, 다른 존재들로부터 벽이 느껴진다. 그래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난 벽 따위 설치하지 않았다. 벽 같은건 둘 생각도 없었고, 무작정 들이대는 타입이다. 그런 주제에 벽을 느껴버린다. 그 벽을 없애거나 우회하거나 넘어보려고 약 1년이라는 시간동안 그 벽을 무시해왔다. 그러나 벽은 허물어버리기 전에는 그 자리에 위치한다. 이 쪽에서는 도무지 허물어 버릴 수가 없다. 어느 한 쪽에서 원하지 않는다면 열 수 없는 두 개의 열쇠가 있는 보안 금고같은 벽이다. 한 쪽에서만은 도무지 헐 수가 없다.
노력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결실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 한편으로는 단지 조금 오래걸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작게 움츠리고 슬쩍 곁눈질해오고 있지만, 역시나 먼저번의 생각이라는 녀석은 조금도 그 기세를 꺽으려하지 않는다.
나는 누가 뭐래도 기독교인이다. 지금까지 어디를 가서든 당당하게 밝혀 왔고,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인덕을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에는 당당하게 말할 자신이 없다. 사실 지금까지 꽤나 자유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살지 못 했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런 모습으로 인해 시험당하고 아파했던 사람들이 있었을거라는건 분명한 일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기독교인이고, 신학생이라는 신분의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인성의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부정할 수 없다. 이전과 달라지게 된 것은 진심으로 주의 뜻을 받들기 시작했던 그 시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전의 활기차고 쾌활했던 모습들을 생각하고,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시큰둥 해 졌니?”,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거니?”라고 걱정들 한다. 이제 익숙해져 가고 있겠지. 성화가 성격의 변화를 말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겸손해졌다고 스스로 느껴진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멋진 신세계를 만들겠다는 우리들의 영웅이 권력을 얻고나면 잔인하고 파렴치하고 이권을 챙기고 비인간적으로 되어버리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급우편에 서겠다던 반장은 선생님 편이 되어버리고, 국회의원은 제맘대로 당을 바꾸고 뒷돈을 챙긴다. 급우나 지역구의 여론은 안중에 없다.
회사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 진급이나 승진을 하여 보다 권력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과장 승진을 하면 대리 때보다 목에 힘이 더 들어가고 아랫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다.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어꺠를 펴면서 등이 뒤로 휘어 배가 나오게 된다. 옛날의 그 대리가 아니다.
유쾌한 심리학 ::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 권력 편
확실히 자리는 사람을 만든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에 공감한다. 군을 부사관으로 전역했는데, 애초에 지원한 목적 중에 하나가 변화였다. 그 변화라는 것은 조금더 외향적이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를 원했다.
물론 전역한 지금 그런 노력들의 결과로 긍정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군 생활은 나로하여금 어떤 다른 인간의 모습을 가지게 했었다. 뭐랄까.. 조금 더 권력 의존적인 행동을이라고 표현하면 적절할까. 어느 집단에든지 수직적인 관계로인해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 다른 집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강제권을 가진 곳이 군이라는 집단이고, 그런 곳에서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군생활을 했기 때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지휘하고 있는 곳에서는 스스로 왕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다. 지금 되돌아보건데 결코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실수들이 많았다.
군에 처음 입대했을 때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자는 목적과 함께 다짐했던 것이 폭력행사나 욕설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군입대전 – 그리고 지금 – 신분이 신학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다짐을 굳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기도 했었다. 하지만 자리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긍정적인 면이 있으면 부정적인 면도 있는 것이 세상 이치인것이다. 처음 1, 2년 동안은 다짐을 했던대로 부하들에게 욕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정이 없고 약삭빠른 부하들이 많아졌고, 또 이전보다 군기가 헤이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사건들로 인해 그들에게 더 이상 정을 가지고 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생각되었다. 또 상급자들로부터 군기를 바로잡아야하지 않겠냐는 주문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활하던차에 군에서는 작은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옆 중대에서 전역신고를 하지 않은채 행정병을 괴롭혀서 전역증을 미리 받아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나가버린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근무하고 있는 중대에서는 휴가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중대장님과의 면담도 거치지 않은채 나가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이다. 군이라는 집단은 신고가 가장 기본인것을 그들이 몰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병사 신분 중에서는 가장 높은 병장의 계급을 가지고 있었고, 전역한 그들 스스로는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다음이 병장이라고 할 정도로 결코 경험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위치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직급으로 따지자면 과장 바로 밑인 대리격이다.
조금 주제에 어긋나기는 했지만 그런 상태에서의 내 행동은 조금 더 과격해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고, 저녁에 근무를 서면서 중대소속의 부하들을 모두 모아놓고 적잖이 과격한 방법으로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을 취했다. 물론 여러분들이 흔히 생각하는 구타가 만연한 그것이 아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할 필요성이 느껴지는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평화적이며 비폭력적인 방법들로 여러면에서 접근했을 때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강제력이 없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해서 간 곳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 자체도 적극적이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게중에는 적극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상급자인 나로하여금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됐던 부하들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끊이지 않고 있었다.
쨌든,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조직에서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게 되면 하지 않으면 안될 행동으로 인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최근의 개인적인 관심사이고, 갈구하는 것 중 하나이다. 최근 이전에도 여러번 하나님의 뜻을 직접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나 노력은 있었지만, 그것이 꼭 직접적으로 음성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어제 선교단에서 인생 그래프라는 시간을 가졌는데, 2명의 인물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얘기해주는데, 참… 그 가운데서 그들의 상처를 알 수 있었고, 또 어떻게 신앙생활을 시작했으며, 어떤 계기로 선교단에 들어왔는지. 그 사람들에 대해서 몰랐던 부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인간은 끝없이 갈구해도 모자랄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친근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시간엔 이래 저래 웃기만 하고 있었지만, 나란 인간에 대해 조금 더 연구해 보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명감(!)마저도 불타오르게 됐다.
스스로 정해 놓은 일처리 우선순위는 언제 그 집단에 소속되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집단에 먼저 들어갔는지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두었다.
하지만 이게 최근들어서 문제가 생겼다. 단지 취미활동 – 이라고 하기엔 그 성격이 모호하지만 – 정도로만 생각했던 단체가 비영리 법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그 쪽에 치중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들어가서 일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정이 들어가기 시작한 집단인데다가 뭔가 자리 잡혀가고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 진것이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 역시 그 집단에서 나온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또 만나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뭔가 정에 끌려서 못 그만둔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더 괴로운 생각이 든다. 전에 친구에게서 정에 이끌리지 말라고 충고 받았었다. 그 때는 알겠다고만하고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문득 이 문제에 있어서 그런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인생이란 끝없이 문제가 있기 마련이고 그 문제들은 사람들을 괴롭힌다. 나 역시 인생을 살아가는 한 개체로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해야할 의무(!)가 있다.
어제(25일) 금요 철야 때 들었던 말씀 중에 기도와 함께 말씀이 마음에 있어야 한다는 설교를 들었다.
김충규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15장 7절을 들어 “말씀과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대언하셨는데, 먼저 본문을 살펴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If you remain in me and my words remain in you, ask whatever you wish, and it will be given you. (John 15:7)
대부분의 사람 들은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에 주목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대목이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구하면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시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품고, 새겨둠과 동시에 구하여야 우리가 구할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영을 살리고, 기도에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왜 들어주시지 않는 거지? 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에 소홀하기 마련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전교인 수련회 때 봉사하던 청년들이 당회장 목사님과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 때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사는 일에 대해 매우 강조하셨는데, 기도로 구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직접 그 음성으로 응답해 주시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것보다는 우리가 말씀을 읽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이 알아지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아! 하고 깨달아졌다. 실제적으로 내 심령 가운데 아들아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심령가운데 깨달아지는 방식으로 내게 뜻을 밝히셨던 경우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내 생활 가운데는 말씀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는 것은 뜨겁게 기도하는 그 순간 뿐이다. 그렇게 집회를 마치고 나면 일상생활로 들어서서 전혀 관계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그 분의 음성을 듣기는 커녕 뜻하심조차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 속으로 꽤나 자주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대부분은 반향이 없다. 웬지 내 마음대로 떠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도 적지 않다. 역시.. 삶이 말씀 가운데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리게 된다.
요즘 미니위니를 통해 알게된 리디의 생각하는 섬 바닷가에 자주 드나드는데, 그 곳 분들의 글들 가운데는 웬지 모를 위로가 있다. 다른 곳에서도 말씀을 인용한 글들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 과는 또 다른 감정이 일기 때문이다. 사실 다니는 여러 다른 곳들 중에는 그런 식(?)의 글들을 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웹 개발 관련 페이지들이거나 관련 직종 사람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회 관련된 곳에서는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ㅡㅡ;; 인터넷의 물결이 들어오기 전 크넷이라는 곳 이후에는 없었다고 기억된다.
쨌든, 목사님의 설교로 돌아가서, 이후의 인용되는 말씀들을 주욱 살펴보면
사도행전 6: 1~4 ::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시편 119 : 147~148 ::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에베소서 6 : 17~18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요한복음 5 : 24~25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시편 119 : 50 :: 이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말씀들은 모두가
말씀
과 관련되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는 것은 명령이며 지켜 순종해 내야 할 부분이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말씀에 입각하고 체계적인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말씀위에 바로 서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충규 목사님의 설교는 유난히 – 다른 목사님들의 그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는 건 아니다 –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귀에 그리고 마음에 잘 새길 수 있다고 느껴진다. 이런 것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맞는
목사님을 찾아가는 이유일까? 그런 행동은 뭔가… 아니다라는 인상을 깊게 남기지만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보도를 보신 분도 있겠지만… 여러 언론에 나온 유명 결혼정보회사가 저희 회사입니다.
거기 나온 전산팀장 혹은 보안책임자가 저구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결론만 말하자면, 해커가 협박한 당일에 그 실제 IP를 역추적하고 실명까지 거의알아냈습니다. 해커는 당연히 자신의 IP 주소를 숨기고 있었는데..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실제 IP 주소를 찾아냈었죠. 그 IP를 기초로 대략의 물리적 위치(동)까지 알아냈습니다. 실제 IP 주소를 알아낸 건 단순한 방법이지만 발상의 전환이 없으면경찰로서는 불가능했죠. (경찰 스스로도 여러번 시인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에서 KT로부터 알아낸 정확한 주소를 덮쳐보니 제가 추정했던 그 이름의 해커가 살고 있더군요. 그리고 놀러다니고 있던 해커의 핸드폰 위치추적까지 해서 밤새 차를 몰아 장흥의 모텔까지 내려가 잡는 순간에도 제가 같이 있었습니다.그리고 압수수색과 기초적인 증거 분석도 같이 했습니다.
해커를 추적하는 한편으로, 저는 수사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을 끌기 위해 계속 해커와 협상을 했습니다. 일주일 사이 주고받은 메일만 해도 50통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영장만 해도 하루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서 중간중간에 해커를 달래면서 시간을더 끌기 위해 100만원, 200만원 이렇게 보내줬죠.
그렇게 계속 사이버수사대와 공조를 했는데…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해커를 찾아내는 핵심적인 정보는 거의 제가 찾아내서 경찰에 신고한 겁니다. ‘수사의뢰’가 아니라 ‘신고’ 말입니다. 그 외에도 경찰측에 협조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경찰측에서 일방적으로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려버렸습니다. 자신들이 모두 다 한 거고, 저희 회사는 무책임하고 보안이 허술한 회사다, 라고요. 저와 저희 팀에서 계속 관련 정보를 찾아내어 경찰에 수사를 재촉했던 저로서는, 그동안 공들여서 해커를 추적하고 잡아들인 수고가 반 이상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보안이 허술한 회사가 어떻게 해커를 추적해서 경찰에게 범인을 지목까지 했을까요…
어제까지 저는, 제가 일주일 동안이나 그 해커와 좋은 말로 협상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기만하고 추적해서 잡아들였던 생각 때문에 마음이 이래저래 괴로왔습니다. 기본적으로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경찰과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때문에 망연자실해졌습니다. 경찰도 언론도 실적을 위해서는 진실도 가려버리고 무책임하게 떠들어버리는 모습에는… 정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저와 저희 팀은 끈질긴 추적으로 사실상 해커를 우리가 잡아들인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기뻐했었는데,오늘은, 그나마 KBS가 진실과 가깝게 보도해줬을 뿐, 다른 대부분의 언론사는 기본적인 확인 취재조차 하지 않은 채로 무책임하게보도해버리더군요.
어쨌든 저는 이번 사건의 가장 중요한 참고인이자 대부분의 증거를 제가 제시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몇달간은 계속 경찰,검찰, 법원까지 드나들어야 할 형편입니다. 내일쯤 경찰측의 누군가가 뭐라고 하면 이 글도 지워야 하겠지요. 경찰은 뭐니뭐니해도 변함없는 권력기관이니까… 단지 지금은 가슴이 너무 답답해 미칠 지경이라 그냥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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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특히나 욕심에 의한 왜곡이 그 주류를 이룬다. 어떤 이익을 위해 인간은 사실을 왜곡하고 변형한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 시키려는 무의식적 행동은 기억하고 싶은 좋은 것들만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욕구의 하나이다. 왜곡에 주목하기 바란다.
경찰은 직업 군인과 함께 특정직 공무원에 속한다. 공무원 사회에서 성과(실적)는 일반 사회의 인사에서 반영되는 그것보다 더 영향력 있게 요구된다. 인간은 누구나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정받고 싶어한다. 무시 받고 있다 – 인정받지 못한다 – 는 작은 동기로 인해 엄청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일반 회사에서도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그것은 더 심하다고 할 수 있다. 본인 역시 특정직 공무원으로 전역했기 때문에 머리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정할 수는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긍정 이미지를 마련하기 위해 남의 공로를 가로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분노의 원인은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행태이다. 물론 빠른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빠른 뉴스를 위해 왜곡된 보도를 하는 것은 굉장한 문제이다. 스포츠 찌라시 기사들의 그것과 다름없는 졸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사건의 공로자는 단연 임프(박지훈)님이다. 그러나 경찰과 언론은 그들의 긍정 이미지를 위해 큰 실수를 한게 아닐까?
극중 챨스 세비어와 매그니토는 자신들(뮤턴트)의 자유를 찾는 방법에 있어서 평화적이냐 비평화적(폭력적)이냐의 차이를 가졌을 뿐이다. 그 둘에 있어서는 그렇다.
세비어의 죽음에 대해 매그니토는 훌륭한 존재의 죽음이었다고 평한다. 이런 것에 있어서는 우리네 정서와 다르다고 생각된다. 모든 이들이 그런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인정해 줄 수 있는 분위기라는 거다.
전에 미국의 대통령 선거 후에 패자인 대통령 후보가 – 진심이었건 쇼맨십이었건 간에 – 당선 대통령 후보에게 박수를 보낸 것이 기사화 됐던 적이 있었다. 그런 사실을 접했을 때 참 멋지다고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진정으로 멋져보이지 않을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을 인정하기도 벅찬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어떤 점을 인정하지 못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사례도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모토랄까? 기준이랄까? 내 자신에게는 철저하게, 상대방에게는 관대하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는 문제에 있어서 내게 있어서는 가감 5분이 최대라고 생각하고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상대방에게는 조금더 관대하게 가감 1시간 정도를 허용해 준다. 뭐… 1시간 밖에 안되는거냐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자신에 대한 기준을 생각해 봤을 때 적잖이 관대하다고 생각된다.
상대를 인정해 줄 수 있으려면 그들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야하지 않을까.
비논리적인 글들은 언제쯤이나 논리적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 읽어봐도 궤변 수준인 글들을 끝없이 남기며…
요즘 재미있게 보는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오란고교 호스트부이다.
처음엔 아무생각없는 그저 웃기기만 한 내용이려니 하고 웃으며 보고 말 내용이라고 치부해버렸다. 그런데 최근의 내용을 보면서 부장인 스오우가 호스트부원들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면서 개설했다는 점이 마음에 남는다.
히카루, 카오루 쌍둥이 형제가 둘을 구분해 보라며 스오우에게 따지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샷
특히나 이 두 쌍둥이 형제(히카루, 카오루)들의 내용은 머리가 굵어지고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하게 된 시점부터 느꼈던 소외감에 대해 해결점에 가까워지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하나 또는 둘, 그 이상의 집단에 속해있더라도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집단이라도 독립적이다. 그 집단에 속해 있는 인간은 개별적인 존재로서 독립적이다.
쨌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 동시에 온전히 독립적인 동물인것이다.
수 없이 외로움을 느껴가면서도 혼자가 아니라고 애써 그 사실을 감추려한다. 자신은 외롭지 않은 존재이기를 갈구한다.
간소한 문양이 새겨진 먼지 쌓인 금 자물쇠가 쇠사슬에 걸려있는 부분이 크로즈 업 되어 있는 사진
그러나 그런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하려는 속성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굳게 닫혀 있는 자물쇠를 풀고 그(그녀)와 함께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내 자물쇠를 열고 들어와줄 사람은 없는건가… 스스로 벽을 형성하고 그 벽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방어해버리는 걸지도 모른다.
나란 인간은 그렇다.
외롭지 않으려하지만 끝내는 외로워져버리는.. 그런 허술한 인간관계를 가졌으면서,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는 존재
나란 인간은 참 변하지 않는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미 여러 면에서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환경, 성격이라는 3가지 분류로 살펴본다면,
먼저 지금은 무려 2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지고 있다. 나이라는 것은 단지 태어난날로부터 몇 년이 흘렀는가를 나타내기도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사람이 얼마나 죽을 날에 가까워지는가 하는 것을 수치로 나타내주는 것이다. 참… 쓰고 나서도 우울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로군.
환경면에 있어서는 전보다 평균적인 삶의 질이 조금 더 높아졌다고 해야하는걸까? 질이라는 것의 기준이 모호해서 명확하게 어떤 점이 어떻게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생활과 비교해봤을때 지금의 삶은 여러 모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있다. 이전의 월세 생활에서 전세로, 지금은 어렵게 마련한 자금들을 이용한
우리집
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좋아졌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부채들을 생각하면 그다지 나아졌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 가족은 화목하기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17살 ~ 19살)의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생각됐는데, 오늘 그렇지도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낮에 당산에서 회의를 하고 나서 친구녀석이 “너 요즘 왜 이렇게 침체돼 있니?”라는 것이다.
스스로는 성격의 변화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여서인지 “그래?”라는 답변만 해 줬을 뿐이다.
단지 나이를 먹었기 때문에 변한건가? 사람의 성격이라는거 나이 먹어서도 잘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 타인이 갑작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단숨에 – 변해 버린 것일까?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까 확실히 전보다 굉장히 차분해졌다. 사람이 결단을 하고 그것을 행하려고 할 때 변화되어버리는 것인가. 결단이라는 것은 목표가 있지 않더라도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 버릴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변하게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좋지 않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사람이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달라지게 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성격 변화라는 주제에 연관지어 성화라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성화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믿기로 작정했을 때 긍정적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과정을 말하는데, 비난 받는 – 비그리스도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히 성화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히 성화된 인간이 아닌 불완전 성화의 상태이기 때문에 죄를 짓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것이다.
뭔가.. 꽤나 복잡해져버릴 것 같아서 이만 줄여야 겠다. 사실 좀 피곤하기 때문에 줄이는 것이기도 하다.
길거리 혹은 지하철등에서 모금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내가 저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되는 한편으로는 그들이 진정으로 그 모금 목적에 맞게 그 자금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진정 불우한 이웃들도 있을거라는 적은 가능성을 이유로 가끔씩 돕기도 한다.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대화중에서 지하철 맹인 장애우 모금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꼭 나오는 것이 그런 사람들 중에 진짜 맹인(장애우)이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돌아다니며 모금하는 사람들이 끝(또는 처음)칸에 가서는 안경을 벗고 내린다거나, 장난으로 돈을 넣는 척하다가 안에 있는 돈을 빼려고 하면 정확하게 그 손목을 잡아낸다던가 하는 것들을 전해듣기도 했다. 바꿔말하면 사지 멀쩡 비장애우인경우에도 그런 모금을 통해서 생활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들 중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부천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부천에 와 살게된 지 12년 정도 되었고, 12년 전 부천역에서 꾸준히는 아니어도 지금까지도 가끔씩 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친구가 부천역에서 모임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그 사람이 그랜져를 타고 가더라는 것이다. 친구에게서만 들었다면 거짓이었다고 판단했겠지만, 그 이후에도 연배가 있으신 분들의 목격증언이 있었으므로 거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불로소득을 준다는 것이 분하다.
그렇다면 통일교 배경의 단체들의 모금행위는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통일교의 이미지는 적잖이 부정적이다. 기독교 내에서는 이단이라는 점과 비기독교인 중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활동자금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먹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며, 선한 목자들을 그들과 함께 매도시켜버리도록 만들어버리는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박준우씨(31·봉천동)는 “3~4년 전부터 국제학생봉사단 혹은 그 비슷한 이름을 쓰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몇 천원씩 돈을 준 적이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인 데다 외국인이라는 점, 뭔가 공익적인 성격이 있어 보여서 흔쾌히 기부했다. 하지만 통일교와 관련이 있는단체인 줄 알았다면 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뭐.. 저 한 사람의 인터뷰 내용으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면 오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한 이후 모금 행위가 사라졌다고 하는 기사 말미의 내용을 토대로 생각해 봤을 때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진다.
통일교와 관련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보다 더 초점을 두어야 할 문제는 서두에서 말했듯이 그 모금액이 진정 그들이 목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에 제대로 쓰이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달 들어서 사역중인 교회의 성경학교로부터 시작해서 이번주에 집회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제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ㅠㅠ).
다녀와서 빠져나갈 여러 요금들을 점검하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한국통신 요금이었다. 저번달에 해지를 했기 때문에 요금이 70%정도만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확인해 본 결과, 해지 때와는 달리 요금 전체가 청구됐다! 한국통신 요금 납부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려고 들어갔더니만 이미 해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조회가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해지를 했더라도 지난 기록들은 살펴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그렇게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또 다른 한가지를 알게 됐는데, 작년 초에 가입해서 약 3개월여를 사용했던 넷스팟이 해지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건 신경쓰지 않은 내 탓이다. 쨌든, 지금까지 1년여의 기간동안 2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버렸다. 무신경한 내 뇌구조라니…
요 몇 일간의 대한수도원 성경학교 교사활동을 통해서 한 가지 거듭 확인하게 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참된 선생님은 역시 폭력이나 강압적인 주지방법보다는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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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역시 사람이기 때문에 전혀 때리지 않았다거나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다는 말을 거짓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야 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아이들을 대했을 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게 더 가까이 오게 됐다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초등학생 폭행 선생님들이 절실히 필요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교육에 있어서 폭력은 한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의 폭력은 필요 이상의 폭력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내 경우를 들자면 내 아버지는 군에 대해 굉장히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셨다. 신체적인 결함(색약) 때문에 장교 신분에 지원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병장으로 전역하셨지만, 전역 후의 아버지께서는 군의 교육 방식, 또한 조부님의 교육 방식을 취하셨다. 그 교육 방식이라는 것은 잘못에 대해 사랑의 매로 다스리시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던 소극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의 원인은 그 교육방식에 있었다고 확신한다. 같은 경험을 두고 동생의 평가는 다르다. 사랑으로 하신 행동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긍정적 평가를 가진 우리들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런 동생의 의견에 일부 찬성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소극적이며 내성적인 성격에 대한 부분까지 덮을 수는 없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런 면에 있어서 매우 힘들다.
지금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이다. 필자에게 있어 이 책의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 작성법과 장미의 이름으로 친숙했는데, 장미의 이름은 영화로 먼저 접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프리메이슨에 대한 자료들을 읽어봤는데 적잖이 황당한 내용들이 많이 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영화들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어진다. 사람들이 이러 저러한 책들을 읽어가면서 상호 연관성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새삼 체험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까소봉, 야코포 벨보, 디오탈레비라는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추적해 나가는 모양새를 보는 것이 이 책의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이 책은 동생이 구매해서 읽고 있던것인데 나름대로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을 해 왔는데, 필자는 사실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우연하게도 최근에 읽고 본 책과 영화들의 주제 또는 그 구성 요소들에서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들을 이미 알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까소봉이 대학 논문을 성당기사단이라는 주제로 정한것은 우연이지만 그것 때문에 그 이후의 삶에서 그것과 뗼레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가지는 것을 보면 졸업논문 주제를 잘 선택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사실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갔는데, 군에서 졸업 논문 주제를 미리 정해서 복학하면서 그것에 대해 깊이 연구해서 작성해봐야겠다는 의미있는 결심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동안 철저히 잊혀졌다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2권을 막 다 읽고 난 후에 이 글을 적고 있는데, 3권이 꽤나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의 페이지 번호가 1권에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참 새로웠다. 책과 인연이 없어서라고 생각되어지기는 하지만 이렇게 페이지 번호가 이어지는 책은 처음 접해봤기 때문이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 든 생각인데 이 책의 원본은 3권까지 쭉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휴~ 이미 탄력 받은 상태라서 3권을 쭉 읽어나가고 싶지만 3권은 어디론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내일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다. 부천 시립 도서관에 조회해 보니 집 앞에 있는 도서관에 3권이 있다.
전에도 몇 번인가 쓴 적이 있지만 책을 다 읽어낸다는 것은 일단 그 책의 난해함, 분량에 상관없이 엄청난 일이다. 읽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차치하고 읽는 속도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책을 – 이전에도 많이 읽었지만 계속 읽기 시작한 이후로 – 읽었을 때보다 훨씬 빨라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한 달이 걸리던 한권의 읽기 속도는 몇 주 내지는 몇 일만에 읽을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 굳이 흡족해 하는 것은 책 읽기 속도가 느리신 분들은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쨌뜬 이 책의 마지막권인 3권에서 역자인 이윤기씨는 도움말을 별도로 넣으려던것을 그만두었다면서 에코 교수의 말을 인용하여 넣었다.
작품이라는 것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나는 내 작품과 독자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독자들을 가로막고 섬으로써, 혹은 작품을 가로막고 섬으로써 그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가 자아서 훼손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 나는 어떤 분야의 것이든지 일단 평판을 제쳐두고 직접 확인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이나 느낌, 또는 작가(감독)의 의도 따위는 이미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졌느냐 혹은 어떤 메시지를 넣었느냐는 나 자신이 생각하는 그 작품의 의도, 메시지를 구해내고 나서 필요해진다.
다른 사람의 것들을 무시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보다 순수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에코 교수의 한 마디는 필자의 행동에 대한 한 근거로써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에코 교수가 부러 작품의 초반부에 난삽한 글이 있는 까닭에 대한 이유가 걸작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 내 책 머리에 길고 난삽한 글이 실려 있는 데는 까닭이 있다. 원고를 읽어본 내 친구들과 편집자들은, 너무 어려워서 읽으려니까 진땀이 나더라면서 처음의 백 페이지를 줄일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두 번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낯선 수도원에 들어가 이레를 묵을 작정을 한다면1 그 수도원 자체가 지닌 리듬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런 수고를 할 생각이 없는 사람은 내 책을 읽어 낼 수 없다. 따라서 난삽한 첫 부분은 나의 호흡을 따라잡기 위해 독자가 마땅히 치러야 하는 입문 의례와 같은 것이다. 이 부분이 싫은 독자에게는 나머지도 싫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은 산으로 올라갈 것이 아니라 산기슭에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소설로 들어간다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산을 오르자면 산의 호흡법을 배우고, 산의 행보를 익혀야 한다. 배울 생각이 없으면 산기슭에 남아 있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 배울 생각이 없으면 산기슭에 남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어려운 부분에 대해 동생이 잘 읽히느냐는 질문을 해 왔다. 어머님께서도 읽어보시려 하셨는지 똑같은 질문을 해 왔다. 필자는 어떤 것이든지 일단 시작하면 끝내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읽은것이기는 하지만 저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군에 입대하기 전에는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공부와 벽을 쌓았다고 할만큼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역을 하면서 공부라는 것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공부다운 공부를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떤 것이든 하다보면 알게 된다. 경험이라는 것은 그런 면에 있어서 중요하다. 뭐든 어렵더라도 일단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부 역시 지금 당장은 어렵고 피토하고 쓰러질 것 같아도 계속 하다보면 자신만의 요령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공부는 그 이전에 받았던 성적의 두배수에 달하는 평점을 받도록 해 주었다. 컴퓨터에만 국한 되었던 집중력은 공부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것이다.
누구든 산기슭에 남아있고자 한다면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이나 산 속에 들어갔을 때의 그 기분을 전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에코교수는 자신의 책을 읽을 자격시험을 작품의 초반부에 장치해 놓았기 때문에 산기슭에 남아 있으면 된다고 하였지만 실상은 산에 오르기를 바랐다고 생각한다. 산에 올라 그 정상을 점령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산에 정상에 올랐다고 해서 완전히 그 산을 정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끝까지 읽었음에도 아직 모자란 감이 있다.
쉽지가 않다. 사랑인가 아닌가? 그런 판단은 있어서는 어떤 인간에게라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랑에 대해서든 다른 어떤 일을 하든간에 지나친 고민은 일을 그르치고 망쳐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감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건가? 라는 생각을 쉬이 해 버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약간의 호감을 사랑으로 착각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친근감 정도를 사랑이라고 생각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 버리고 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에 시선 때문에 놓치지 않을 기회를 버리는 거 같아서 항상 도전한다. 곧 그 도전은 단순한 호감을 사랑으로 착각했다는 결론을 내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한다는 것!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하는가 중단해야하는 가의 기로에 서 있을 때보다 더 큰 결단력을 요구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가. 과연 한 사람을 책임 질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열정과 패기가 있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표현을 안 할 순 없지 않은가? 난 가끔 그런다. 곁에 애인이 있어도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난 진짜 그런적이 있었다.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무안해 할 걸 알면서도 표현한다.
그러면 물어온다. 난 대답할 수 없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가 있음에도 난 외로움을 느낀다. 기댈 곳이 없는 직장을 잃은 가장 노숙자가 된 기분이었다. 미안해 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사람을 붙잡고 싶어도 지금 당장은 헤어져야 그 마음의 풍랑이 잔잔해 질 듯한 무시할 수 없는 그 기분이 사랑의 종말을 가져오기도 한다. 난… 그런 놈이다. 이런 내가 싫다고? 그냥 바람둥이들의 특성이라고? 뭐라고 말하든 나에겐 상관없다. 이게 나고.. 이런 나를 사랑해 주고 내가 다시 그녀에게 돌아갈수때까지 잠시만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침에 이 책을 찾느나 책 주인이 난리를 했다는 소릴 듣고서야 내일 갖다주겠노라고 얘기했다.
ㅎㅎ… 근데 처음 읽는데 흥미가 당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에게 넌 머리는 좋은데 공부하지 않아서 성적이 좋지 않은거다 라는 얘길 몇번 즘 들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이 말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내 흥미를 끄는 여러 문단들이 있는데, 뒤에 여러가지 문단들은 책 사서 보고 내가 지금 읽은 부분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몇개 올려 본다.
흔히들 “저 사람은 머리가 좋다”라든가 “저 사람은 머리가 나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아니다. 뇌를 두고 천재와 둔재를 따질 수 없다. 즉 좋은 두뇌도 없고 나쁜 두뇌도 없는 것이다. 사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머리가 유연하고 부드러우며, 시야가 넓고 의욕이 있으며, 발상을 전환할 수 있고 호기심이 강하며, 감동을 잘하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며, 생명을 존중하고, 그리고 건강한 것을 말한다. 요컨대 심신이 모두 건전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흐흐.. 특히 주황색이고 두껍게 칠해진 부분이 마음에 든다. 쩝… 이전의 내 모습이었기때문이다. 감동을 잘하는 것으로는 모자라.. 간혹 울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ㅡㅡ.. 남자로서는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않다만.. 감동할 때는 감동 팍! 팍! 해 줘야지!! 아니 그러하오!! ㅋㅋ
자꾸 뇌를 자극해줘야 늙어가면서 죽어가는 (뇌세포들을 살리진 못하지만 계속 늘려가면 보상 받는거아니겠어? 힘들어도 자꾸 자극 해주자… 포기하는 것…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것은 뇌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지름길이라는게 이책의 내용이다. 뭐 80개나 되는 힌트를 담고 있다고 하니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말에 All in!! 맞아. 사람은 상황 때문에 비굴해 지기도 하고, 나약해 지기도 하고, 비열해 질 수도 있는 존재야. 어떤 상황 때문에 자기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행동을 했을 때가 전혀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거짓을 말하는 거라구!
그짓말쟁이!
솔직히 말해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올 인이라는 거 공감이라는 말인거 알지? 그냥 공감이 아니라 절대 공감말이야.
내 상황이 어떻길래 이렇게 난 변해야만 했을까!
난 옛날의 내 모습 중 얼마만큼 변화했을까? 정말… 웃겨.. ㅋ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건 좋지만 드라마에 지나치게 몰입하다보면 너스 베티 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실제 자신을 그 드라마의 등장인물로 착각할 수도 있다구! 자기 남편이 죽어가는 모습도 외면한 채 말이지.
난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해 지거나 후회 따위는 하지 않을거라고 자신하며 살았었거든!? 그런데절대 명령과 복종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는 비굴해질 수 밖에 없어. 할 말도 못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구. 물론 내가일하는 이 곳도 할 말은 할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거쳐왔지만 그래두 대상관죄라는게 적잖이 사람을 비굴하도록 만드는데 충분한후속 조치가 따르거든. 내가 밖에 나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가 뭔지 알아? 밖에서는 자기가 할 말 할 수 있다는거지. 뭐 다를거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다르다구! 이해해?
어쨌든 지금 난 그렇게 생각한다우. ㅋㅋ
이구.. 머리 아프다. 아직두 머리가 후끈거려.. 생각을 하면 열량이 소모 된다는거 순간적으로 깨달아 졌어. 등까지 훅훅 볶으며 땀이 삐질 삐질 하는걸~ ㅋㅋ
다들 잘 자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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