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24 플레이톡

03:08 완전 뱀샘 모드!

11:08 재미없어

12:02 플톡은 재미있지만 과제는 재미없죠. ㅋ

12:39 공통의 화제를 찾아라… 잘 모르는 것은 접근하지 마라… ㅡㅡ;; 난 낄 자리가 없어 ㅠㅠ

16:00 헉! 저 참 잘했어요는.. 뭐에여? 얼떨결에 받았…;;;

16:05 엉겁결에 도장 받았는데, 참… 웬지… 기분이..

16:07 블리치 32편 보고 있는중… 하루종일 앉아 25편가량 보고 있어요~

16:17 친구들의 소식 사람들 사진 아래 숫자는 뭐죠?

가양 대교 사건!!

이건 분명 내 일상의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이라는 분류는 적절치 않음에도 내 일상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분류로 설정해 놓았다.

엊그제 어머니께서는 여러 어머니들을 태우고는 어딘가 가시게 되었단다. 대방동 공군회관 앞에서 사람들을 태우고는 올림픽대로에서 강변북로로 이동하시기 위해 가양대교를 건너시게 되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아시는 분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 다리는 도로 변에 사람이나 이륜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그 인도는 주~~욱 남에서 북으로, 또는 북에서 남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대로 또는 강변 북로에서 올라가거나 그 쪽으로 내려가는 길들이 있기 때문에 인도가 일부 끊기고 그곳에는 신호등도 없는 횡단 보도가 있다.

지나다녀 보신분이 계신다면 이해하시겠지만 일단 모르신다는 전제하에 글을 이어적어 내려가보면 필자가 작년에 한창 운동한답시고 자전거를 타고 부천 도당동에서 은평구 신사동으로 다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지나다니던 길이 바로 가양대교였다. 가양대교를 자전거를 통해 지나다니다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1. 생각 외로 사람이 적지 않게 건나다닌 다는 것
2. 생각 외로 트럭 운전사들이 조심성이 많다는 것
3. 생각 로 승용차들은 씽씽 달린다는 것

이상의 3가지가 가자 두드러지는 특징들이다. 나머지는 한번 건너시면서 생각하시고 발견해 보시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이 곳에서의 사고 상황을 말씀드리겠다.

올림픽대로에서 가양대교로 오르시던 어머니는 거의 다 올라가서는 앞에 웬 장애우가 전동 차량(?)을 이용하여 건너시는 것을 발견하셨다!

그 장애우를 발견하신 어머니 재빠르고 순발력 있는 행동으로 브레이크를 밟으셨지만 이미 진행하고 있던 자동차(프레지오 3.0)는 브레이크 따위와는 상관 없이 계속 진행했다. 순간 어머님은 눈을 휘동그레 뜨고는 계셨지만 어찌하실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아니었다. 그 순간에 만감이 교차하셨을거라 감히 상상해본다. 이 순간에도 상상속에서는 차는 진행한다.

그런데 그 장애우 차가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쳐다도 보지 않더란다. 그렇게 진행하던 차량 어머니께서 운전대에서 보시는 관점으로 그 장애우와 프레지오의 거리는 약 5cm미만 이었다고 한다. 천만 다행으로 부딪히지 않았고 그 장애우는 신경은 커녕 가던 길 잘~ 가더란다.

그리고나서 생각이 미치길 뒤의 상황에 생각이 미치신것이다. 다들 아시는 바대로 트럭들 겁나게, 그것도 큰 트럭들이 잘 다니는 길 하면 또 가양대교다! 궂이 가양대교가 아니더라도 그렇지만 일단 그렇다. 뒤에서 다가오던 집채만한1 트럭이 바로 뒤에 정지해 있었다고 한다.

그 사고 시점이 지나고 가던 길 가시면서 그 차에 타고 계시던 총 9분의 어머님들은 아이들을 고아 만들뻔 했다면서 안도의 한 숨을 쉬셨고, 그 중 4명의 바깥 분이 있으셨던 어머님들은 홀아비까지 만들뻔 하셨다면서 안심하셨단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가운데 앉아 계셨던 분들은 앞 뒤 상황을 다 확인하시면서 또 뒤에 앉으셨던 분들은 뒤에서 오는 집채만한 트럭을 보시면서 그 긴박하고 끔찍한 상황을 감내하셨을 것이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가양대교를 포함한 인도가 있는 다리에 횡단 보도가 있다는 사실을 운전자가 충분히 인지 할 수 있는 안내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필자도 작년에 다니면서 씽씽 달리던 차들을 기다리느라 십여분을 기다린 기억이 있다. 사람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는지 못 하는지 그냥 막 내달리던 그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경고할 수 있는 안내 표지판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1. 어머님의 표현을 빌자면[]

남자 냄새…

어젠가 필자의 어머니께서 방에 들어오시면서 남자 냄새가 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름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하고 살았으며 샤워도 자주 하는 편인데 그런 냄새가 나느냐고 여쭈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은 아무리 깔끔하게 살아도 집안에 여자가 있는 것하고 없는 것하고는 냄새만 맡아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필자와 어머님의 특출난 후각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자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집안과 본인의 청결상태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 쪽 분야의 전공이 아니라 뭐라 딱히 이것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남자에게는 그 특유의 냄새가 있다. 본인의 냄새는 중독(!)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이건 은근한 결혼의 압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알아서 할 것이라는 은근한 분위기의 말씀을 드렸다.

2007-03-22 플레이톡

00:35 px-200 줄을 잘라 먹었어요. 그런데 보증서가 보이지 않아요.. 보증서가 있어야 수리해준댔는데.. ㅡㅡ;;

00:43 블리치 1편부터 쭉~ 받아놨는데 이거 코난이랑 병행해서 보니 진도가 전혀 안 나가는군요.

01:12 개 놀림은 어떤 놀림인지 묘사해 주세요

08:27 아침부터 속이 좋질 못하네요… 어제 저녁에 먹고 잔 오리고기탓?

09:43 94.2Kg… 운동을 며칠 쉬었는데도 체중은 그대로다. 저녁늦게 먹고 다니면서도 잠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20:18 인증메일이… 아~

2007-03-19 플레이톡

07:09 영화 보기로 했는데, 아침부터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아요. ㅡㅡ;;

10:36 아웅… 귀엽구 깜찍한 후배가 자꾸 작업들어와요. 어떻게 하죠?

19:34 오늘은 영화를 몰아서 2편이나 봤어요, 그여자그남자 작사작곡이랑 리틀러너를 봤지요. 나름 재미있었어요

모꼬지 준비하느라..

이번 학기가 시작도 되기 전에 OT를 위한 사진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필자가 속해 있는 학회장이 된 후배와 단 둘만 남게 되었다.

이런 저런 짧은 대화가 오가고 난 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후배가 한 마디 한다.

“선배, 이번에 학회 하는데 임원 같이 해 주실 수 있어요?”

뭐.. 그다지 수업도 없을 듯하고 해서 해 준다고는 했지만 이 친구 나름 진지하기도 하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일이 간단하지가 않았다.

요 몇 주간 모꼬지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소모된 체력이 다른 임원들에 비하면 물론 적겠지만 그 적은 체력소모가 적잖이 부담이 된다.

아~ 이거 운동 따로 안 해도 체중이 절로 빠지겠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는데, 금방 들어와서는 눈 앞에 보이는 계란 후라이와 튀긴 생선이 눈에 들어오자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다.

아차! 싶은 순간엔 이미 그것들의 반절이나 없어진 후였다.

습관이란 이래서 무서운거다.

2007-03-16 플레이톡

00:38 오늘 모꼬지 준비하느라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드디어 내일 가는군요. 휴~

01:58 이따 아침에 7시에 학교 출발해야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02:01 플톡 티스토리 사이드바에 넣을 때 조절 사이드바에 나타나게 하려면?

02:07 이제 자야할 시간… 은 지났지만 자야겠소~ 뱌바~

플톡(PlayTalk) 설치 :: 조정 사이드바에 넣을 태그

최근 미투데이와 경쟁하고 있다는 플톡에 가입해 봤습니다. 위키백과에도 등록했더군요.

그곳에 개발자이신 HAN님께서 티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스크립트를 올려주셨는데, 이거 사이드바 조정이 가능한 곳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태그를 스크립트 위 아래에 넣어주셔야 합니다.

            <s_sidebar_element>
            <!– playtalk –>
            <s_rct_playtalk>
            <li><p class=”playtalk”>
HAN님 스크립트
            <br/></s_rct_playtalk_rep></p></li>
            </s_rct_playtalk>
            </s_sidebar_element>

그냥 연결된 화면에 있는 스크립트를 그대로 넣으면 번호가 붙어 버려서 오류가 나기 때문에 view plain를 눌러서 나오는 화면에 있는 내용을 복사해서 넣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위의 태그들을 복사해 넣으셔야 할 위치는 <s_sidebar>의 아래나 </s_sidebar>의 위입니다. 스킨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제가 사용하고 있는 스킨에서는 그렇더군요.

HAN님께서 소스 주석문에서도 밝히셨지만, 왼쪽의 화면과 같은 위치에 넣으시면 화면 출력이 지연되는 현상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파워콤에서 광랜 공사를 위해..

장비 설치 동의서를 받으러 왔다.

방금 전에 파워콤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점퍼를 입고 옥상에 광랜 장비를 설치 할 때 동의한다는 서류에 서명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사실 필자는 하나로 케이블 상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광랜은 언제 공사가 되는지 하나로 본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적이 있는데(약 1개월 전), 당시 상담원으로부터 지금은 공사 계획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었다. 사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품질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특히나 자료를 송수신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전송 품질에 민감한 편이다. 그래서 광랜 공사를 기다리는 것인데 하나로 통신이 한 발 늦었다. 일단 파워콤 측에서도 공사가 필자의 동네까지 이르기는 약 1달여의 기간이 소요된다는 답변이 있었기에 1달여의 기간이 더 있기는 하지만 하나로측에서 1달 이내에 관련 공사를 한다는 보장도 없고, 만약 공사를 하더라도 파워콤보다 먼저 사용이 가능해지느냐하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바꾸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쨌든, 위의 문단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로 보아 필자는 파워콤의 공사가 먼저 완료될 경우 1년 여의 사용 기간의 위약금을 물더라도 바꿀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하나로 통신에서 일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일하고 있지 않으며 해당 업체에서 퇴직한 지금은 자신에게 더 이익이 되는 쪽의 상품으로 쉬이 변경할 수 있는 소비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으면서 두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1. 이 서류에 서명을 하는 것이 건물에 입주한 모든 사람인가
2. 필자에게만 받아서 건물 전체의 동의를 얻었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서명을 받으러온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그럴 염려는 없고, 다만 나이가 많아서 관련 작업에 대해 이해를 못해서 서명을 받지 못하거나 가정에 사람이 없어서 못 받을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2번째 항목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광랜이 들어올 수 있다는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서 서명해 버렸다.

일단 이렇게 기록을 남겨놓으면 하나로 통신 관련 직원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고 위약금을 물지 않고 상품변경으로 변경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는 희박한 희망을 가지고 적어본다.

96.8Kg

체중이 거의 세 자리가 되어갈 무렵 나에게는 또 다시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감량이었다. 군 전역을 1년 남겨두고 그 이전 6개월 동안 술로 인해 순식간에 15Kg이라는 체중이 불어버렸던 나는 감량을 계획했다. 그 때는 군생활중이었기 때문에 기본 체력이 밑 바탕이 되어 무식하게 운동해도 괜찮았다.

하루에 5천회씩 3개월을 했다. 매일 무슨일이 있어도 훈련기간이 아니라면 거르지 않았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고 난 회식 후에도 빠짐이 없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이거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다. 음주운동.. ㅡㅡ;;

쨌든 그렇게 3개월을 했더니 10Kg이 감량 되었고 85Kg이라는 가뿐한 몸으로 전역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작년 초에 했던 엄청난 체력소모성 아르바이트로 인해 고된것에 익숙해있다가 그것을 그만두자 몸이 별 다른 무엇을 하지 않았는데도 무려 20Kg가까이 불어버렸다. 결국 세 자리가 가까워온 것이다. 이제는 맞는 옷도 없다. 그 전에 사두었던 옷 중에 카고바지만이 맞을 뿐이다. 유2하게 맞는 그 두 바지만 계속 번갈아가면서 입고 있다. 체중 감량을 해서 다시 입던 옷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코 몸에 맞는 옷을 사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했지만 동생의 결혼식에는 어쩔 수 없이 양복 한 세트를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기성복은 맞는 것이 없기 때문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동생의 결혼식이 마쳐지면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그 결과 지금 5Kg이 감량 되었다. 103Kg이었던 체중에서 시작한 운동은 96.8Kg이라는 체중으로 줄어들었다.

굉장히 무거운 체중이기 때문에 관절에 무리가 갈 것이라는 생각에 걷기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역시나 무식한 운동방법에 익숙한 몸으로 걷기운동을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아서 어제는 무리하게 줄넘기를 했다.

그랬더니 어김없이 신호가 왔다. 오늘은 줄넘기를 챙겨나가지 않고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1시간 가량을 그렇게 했더니 땀을 많이 흘릴 수 있었다.

같은 곳을 빙빙 도는 것에 지루함을 느낄까봐 DMB폰과 헤드폰을 챙겨 나가 한 시간동안 TU도 보고 듣고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졸업사진만은 뚱뚱이로 사진을 남기고 싶지 않다.

사진은 오래 남으니까 사진 찍을 때만 이렇게 얍삽하게 빼는건 좋지 않은 듯 하지만 어찌 그동안 편하게 지내면서 긴장할 만한 그 무엇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지 비만형이라 옷을 입으면 아무도 100Kg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없다. 얼굴만은 가장 나중에 살이 찌기 때문이다. 필자의 체중을 맞춰보라면 대부분 80Kg 즈음으로 보곤했기 때문에 긴장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었다.

여자친구는 웬지 귀찮아서 사귀고 싶지 않았다. 은근한 컨텍이 있었지만 은근히 거절했다. 운동을 하면서 귀찮음이 줄어들어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게 되려나.

클래식 스쿠터를 구매해 볼까해서…

오늘(07년 1월 13일) 마블 웹툰을 보고는 스쿠터를 구매해 볼까해서 “스쿠터 가격”이라는 검색어로 구글링 해 봤더니, 많은 결과들이 출력되었다. 그래서 가격이 나와있는 첫 번째 결과를 클릭했더니 지금 끌고 다니는 마티즈(99년식)보다 비싸다.

헉… 정말 이거 중고로 140만원 주고 샀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더 떨어졌겠지라는 생각은 둘째치고 헉… 이라는 외마디..

그나저나 이 사이트 좀 웃긴게 소비자가에는 무조건 중간줄을 치도록 되어 있어서 좀 웃기는 현상이…


 
제 품 명 :
메데스125

소비자가 : 2,250,000
판매가격 : 2,250,000원

예를 들면 위와같은것.. 소비자가와 판매가격이 똑같은데, 가운데 줄이 넣어져 있다.

그리구…


 
제 품 명 :
Joker

원 산 지  : 일본

판매가격 : 0원

이건 공짜로 주는건가! 신청하면 그냥 보내주는건가? 배송비 따위도 없고! 진짜라면.. 아싸!! (-_-;;;)

하지만 바로구매 클릭하면 구매할 수 없다고 나온다는거..

동생을 보내다…

오늘은 두 명의 동생을 보냈습니다.

한 명은 제 친동생이지요. 친 동생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결혼식을 마쳐갈 무렵에서야 아..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다른 집으로 가는 구나 싶더군요.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사진 찍는 것 밖에는 없어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해서 스튜디오에서 스냅사진을 빼고 얼마의 돈을 할인 받았습니다. 하지만 후회스럽네요. 다른 두 친구의 결혼식에서 찍었던 것만큼 잘 찍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웬지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이쁜 사진을 찍어내기 위해서는 아니, 찍어낸다는 표현보다는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이러 저러한 곳으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는데, 결혼식 중반부터는 결혼하는구나… 동생이 결혼하는 구나… 라는 생각에 뛰어다니질 못하고 아버지의 광고 중 시 낭독 – 동생과 그의 남편된 사람에게 적으신 – 때에는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닐 수가 없더군요.

매우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알송으로 하드에 저장되어 있는 음악을 재생하여 듣고 있는데, 웬일인지 모두가 우울하게만 들립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우울해 있는데, 자주 가는 모기불 통신의 기불님께서는 정다빈씨의 자살 소식에 우울증에 대해 적어놓으셨더군요. 그 글을 보면서 故정혜선 양의 자살 소식을 검색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옥탑방 고양이에서 상큼 발랄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에게도 나름의 인생의 고충이 있더군요. 해 맑은 웃음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더군요.

그런 그녀에게 악플을 다는 개념 충만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웬지 이 기계세상이 싫어집니다. 아무 생각없이 던지고는 신경도 쓰지 않은채 또 다시 던지는 그들의 행태를 보아오면서 늘 분노를 느끼지마는, 어찌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웬지… 오늘은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우울함에 영향을 받았네요… 오늘은 흠뻑….

이 늦은 시간까지..

나라는 인간은 무얼 하고 있는가.

자신이 정해 놓은 시간을 지키지도 못하면서 여전히 절제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아무런 경각심따위도 가지고 있지 못하는 못난 모습을 싫다고 하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고 이전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인가.

인간이라는 일반적인 범주에 자신을 포함시키려는 무의지적인 행동들은 더 이상 계속되어져서는 안된다며 엉뚱한 자신을 사랑한다면서 다른 이들과 다름 없는 평범함에 자신의 몸을 방치해 버린다.

난…

그런 이다.

사랑 시리즈 2

서울에서 살다가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아버지의 일 때문에 부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앞서 1편에서 부교역자로 계시던 교회에서 나와 개척을 하게 되신것이다. 그렇게 남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1년 반을 지내고 졸업을 했지만 친한 친구는 사귈 수가 없었다. 물론 남자 중학교였기 때문에 여자와의 관계는 가질 수 없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이고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는 노력이 없었다고 해야할 듯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남녀공학이었다. 남녀공학에도 남자와 여자를 각기 다른 반에 편성해 운영하던 학교였지만 과의 특성상 여자가 더 많았고 해당 과에 배정된 반이 2개 반이어서 남녀 합반으로 편성될 수 밖에 없었다. 남자들은 3년 내내 같은 반으로 지낼 수 밖에 없었다.

1학년에 입학해서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 한 껏 내성적인 성격으로 지냈던 것에 후회라는 것을 하게 됐다. 고등학교에서는 좀 더 활달한 사람이 되자는 목표아래 조금 이상한 행동을 해 버렸다. 이 계획에 다행히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께서 자유로이 자리를 정하도록 해 주셨던 것이었다. 난 문간에 앉아서 지나다니는 친구들에게 모두 인사하기 시작했다. 같은 중학교에서 온 친구들은 모두 다른 반으로 흩어졌기에 인사하는 친구들은 모두 새로운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시작하면서 보게된 그녀였다. 피부가 백성공주라고 불리워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하얀 친구였다. 지금도 그녀를 처음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인다. 물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내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있다. 설레임..

문간에 앉아서 인사를 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와는 그런 친구들 중에 한 명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는 3년 간의 one side love가 시작되었다. 고지식하다고 하겠지만 한 여자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다른 여자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1학년 중간고사를 보고나서인지 2학년이 다 되어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고백을 하게 되었다.

고백의 결과는?

학교를 마치고 다른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간데다가 버스 정류장에는 그녀와 그녀의 친구, 그리고 내 친구와 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좋아하는데 사귀면 어떻겠냐는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고등학교 때에는 아무도 사귈 생각이 없다였다. 그 대답은 완곡한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녀를 먼저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나서 애꿏은 정보지 통을 발로 차 버렸다. 내성적인데다가 눈물이 많은 필자는 집에 가서 펑펑 울어제꼈다. 그렇게 울고 있는데, 집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라며 들려온 목소리는 그녀였다.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알려 준 적이 없었는데, 어찌 저찌해서 알아냈다며 자신의 감정을 밝히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필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사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고백할 때 곁에 같이 있어줬던 내 친구가 한 마디 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녀석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기는 하지만 일단 이 것에 대한 확인은 추후에 하도록 하겠다.

그렇게 고등학교 3년간을 짝사랑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포기가 되어졌다. 그리고는 취업을 나가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는 채팅에서 만난 사람들과 번개를 하면서 지냈다. 주로 1:1 만남이었고 대상은 여자들이었다. 나름대로 여성에 대한 면역이 생긴정도를 넘어서서 적절한 작업이 가능한 성격으로 변화해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OT를 지내고 나서 한 친구에게 사귀자고 했다. 고등학교 내내 사랑했던 그녀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여자를 사귀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사귀자고 했던 친구였다. 물론 호감이 가는 친구였기 때문에 사귀자는 제의를 했었지만 그 친구와는 그리 오래 사귀지 않았다.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사귀자고 했던 목적이 불순했다는 솔직한 얘기로 이별을 고했다.

CC로 사귀었던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가 되지 않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고등학교 때의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사귀는 여자친구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그 친구는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귀고자 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다.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다는 말에 조금 놀라는 듯해서 니가 나랑 사귀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에 고등학교 때는 그랬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화가 나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 하고 전화를 끊었다.

웬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 라는 존재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3년 간의 짝사랑은 마무리 되어졌다. 아니 마무리 되어진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그녀는 나를 설레이게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컴퓨터 살아나다~

필자의 컴퓨터는 왜 이렇게 불안정한건지 모르겠다. 이번엔 아주 큰 건이 하나 터졌다.
바로 메인보드가 죽어버린것이다.
다행히 집주변에 있는 중고컴퓨터 가게 사장님과 안면이 있어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CPU를 장착할 수 있는 보드를 싸게 구매할 수 있었다. 당장 총알의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어떻게 해 낼 도리가 없었다.
재정상태가 아주 최악인 요즘은 이렇게해서라도 살리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글을 쓰고 나서 몇달이 지나버린듯한 생각이 들어서 PC를 살리자마자 들어와봤다.

이번엔 윈도우가 말썽이다. 인증을 완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증을하란다.
마소에서 기술지원을 받아야 할 때인가!!

cansmile.cy.ro

이 블로그의 주소에서도 사용되었지만 cansmile이라는 닉네임은 1997년 나우누리를 가입할 때 최초로 사용했던 아이디이며 닉네임이다.

cansmile이라는 것은 웃을 수 있다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 당시 공부좀 한다는 친구녀석에게 문의해서 만들었던 아이디이다. 웃을 수 있다라는 의미로 영어 단어를 추천해달라고 했었는데, 난 can laugh라고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 친구녀석이 laugh는 비웃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어지는 단어이기 때문에 좋지 않겠다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그래서 찾아보니 정말 그런것이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cansmile이라는 아이디 겸 닉네임인 것이다.

언젠가 웹디자이너일을 하면서 cansmile.com이라는 멋진 페이지를 만들어보자고 했었지만, 생각만큼 채워낼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cansmile.com은 꿈만으로 가지고 있다. 그렇게 꿈만으로 간직해 놓았는데 몇년 전엔가 cansmile.com이라는 도메인을 외국인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바로 이 사람이다. cansmile.com의 소유자, 결혼하는지 타이틀이 Wedding..)

그렇다. 이제는 cansmile.com으로 내 공간을 꾸밀 수 있으리라는 꿈은 꿈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사람이 조금 일찍 죽게된다거나 그 속성(cansmile)을 지겨워 바꾼다던가 하지 않는 이상에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cansmile.net도 있다. 다른 것들도 가능하지만 웬지 .com에 애착이 간다.

쨌든 꿈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두고, 그렇게 아이디를 만들어 쓰고나서 5년이 지날 때까지만해도 나만의 아이디였다. 하지만 sayclub을 가입하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elimsnac이라는 뒤집어진 아이디로 들어가 확인해 봤더니 25살(그 당시)의 여인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확인해가며 나름대로 elimsnac으로 활동하였는데, 1년이 지나도 최종 접속일이 바뀌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운영진에게 메일을 보냈고, 본인이 활동을 안 하는것 같은데 정리해서 나에게 cansmile을 달라… 라는 내용이었다. 그 운영진들도 나름대로 확인의 절차를 밟느라 그랬는지 적잖은 시간이 흘러 답변이 왔고, cansmile이라는 아이디를 차지할 수 있었다.

웬지 뭔가 점령해 나간다는 느낌마저 드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어진다. 그렇게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싸이월드의 시대가 펼쳐졌으나 가입만해놓고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인 즉슨 cansmile을 다른 여자분이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cansma1이라는 것으로 만족할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미니홈피의 열기는 다른 사람들로하여금 나에게 사용하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해왔다. 지금은 300명에 가까운 1촌들을 거느린 미니홈피가 되었다. 그들과 연락을 계속 하느냐? 그렇지 않다. 그들의 대부분은 내가 찍은 사진들을 퍼가기 위해 1촌 신청을 한 사람들이다.

쨌든 그렇게 몇년의 세월을 보내왔지만 여전히 그녀는 사용해왔다. 그렇게 올해로 접어들었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웬일인지 cansmile.cy.ro라고 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미니미의 안내표시가 나왔다. 뭔가 잘못된것인가라고 생각하며 cyworld.com/cansmile이라고 쳐 봤으나 역시나 마찬가지다!

드디어 내 것으로 만들 기회가 온 것이다. 누군가 새로 가입할까 겁이난 것인양 재빠른 동작으로 미니홈피 설정에서 중복확인을 하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아~ 이 정복후의 만족감이란…

지금의 내 상황의 여러 어려움들이 싹~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다… 느낌만 그렇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웬지 이 만족감으로 다른 어려움으로 인한 부정적 요소들을 다 날려버리는 듯하다..

글이 뜸해진 이유..

최근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회수가 굉장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웬지 표현하는 것보다는 받아들이는 데 더 치중하게 됐다는 말로 변명을 하면 다들 좋게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이런 저런 이유들로 글 쓸거리들은 많아 졌지만 사실 다른 목적이 생겼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을 자중한다거나 하는 등의 신경쓰게되는 면이 없어졌다. 블로그 자체에 신경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것들에 집중하고 있다.

음… 아주 안 쓰지는 않겠지만, 한달에 몇개의 글로 끝나고 말 날이 올지 모르겠다는 예측을 살짝해본다.

사랑 시리즈 1

기억도 못할 시절의 첫사랑은 예외로 두겠다. 왜냐하면 기억하려고 애써봤자 기억나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먼저 누군가를 좋아한 것은 – 물론 가족을 제외하고 이성이라고 생각되어지는 – 김△□양이었다. 그녀는 부모님들께서 부교역자로 일하시던 교회 총회장 목사님의 손녀딸이었다. 지금도 어린 시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꽤나 귀여운 그녀이지만 어린 시절만큼은 아니다.

다 커서 어느날인가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본인은 그녀를 찾기 위해 무려 420명의 동일 생년 동명의 여인들 중에서 그녀를 찾으려 했으나 헛 수고였다. 메인에 자신의 사진을 걸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언니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서 찾아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그녀는 어린 시절의 첫 사랑 그녀였던 것이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첫사랑은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는 이루지 못했거나 깊은 상처로써 기억하겠지만, 사람들은 첫 사랑에 대해 기분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만난 그녀와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지냈지만 부모님들께서 목사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여건이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조금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생각을 가진게 다 였지만 중학생이 되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었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지만 어느 날인가 동생이 본인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상형을 물어보고는 알려주었는데, 그것으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접게 되었다.
왜 인지 그당시에는 굉장히 비뚤어진 이상형을 가졌다고 생각되었다. 담배도 좀 피워보고 술도 좀 마셔 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물론 본인은 굉장히 고지식한 존재로서 그녀에게 인식될만큼의 인물이었고 스스로도 그런 이상형에 가까워질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는 부천이라는 동네로 이사오게 되었다.

그 중간에 홍당무라고 불렀던 여자친구에 대해 호감을 가지긴 했지만 그다지 사랑이라고까지 여기지는 않았었다. 홍당무라고 불렀던 그녀는 웬지 얼굴이 자주 붉어지던 아이였다. 그래서 별명을 홍당무라고 지었는데, 그럴때면 얼굴이 빨개져서는 화를 내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리고는 중학교에 진학하고 아버지께서 부천에 교회를 개척하셨기 때문에 부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난 친구일 뿐이고, 나 역시 그녀를 친구로서만 생각하고 있다.

mp3용량 제한이 10Mb?

오늘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 교육과정 중 녹음한 강의를 올릴 공간이 마땅하지 않아서 개편된 티스토리의 추가 블로그 생성을 이용해 보았다.

강의 파일이 생성되기 전에 가지고 있는 다른 파일(동영상)로 업로딩 테스트를 해 보았더니 잘 올라갔다. 그런데 강의를 녹음하여 업로딩하려고 하는데 용량 초과로 인해 업로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티스토리 가이드 블로그에서 검색하였더니 mp3 용량 제한이 10Mb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디오 업로드

여러곡의 MP3 파일(최대 10MB)을 선택해서 업로드가 가능하며, 플래시 플레이어를 삽입합니다.

자동 재생 여부와 팟캐스트 지정 여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지 않은 음악 파일을 올리게 되면 저작권법 위반으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되실 수 있으니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글쓰기] 내 블로그에 글은 어떻게 쓰나요?

파일의 용량은 대략 30~100Mb이기 때문에 제한 용량으로 만들려고 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단순히 트래픽 문제는 아닐 듯 하고, 다른 업로딩 용량과 같게 하여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였을 것 같지만 일단은 이에 대해 티스토리에 문의를 해봐야겠다.

티스토리 가이드 글에 코멘트로 의견을 물으려 했지만 역시나 안되는 관계로 트랙백으로 보내본다.
음.. 그리고 유료 강좌가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와 상관이 없음을 밝혀둔다.

네비게이션

크리스마스 전날에 작은 아버지의 명에 의거 할머님을 작은 아버지댁으로 모셨다. 나름 아는 길로해서 모셔다 드리는데 할머님께서 보시기에는 아버지나 작은 어머님이 모셔다 드릴 때와 다른 길로 다니니까 불안하셨는지 왜 이상한 길로 가느냐고 계속 맞는지 확인을 하셨다.

뭐.. 할머님께 이 길로 가도 된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작은 아버지께서 부르셨던 일이 다 마쳐지고 집에 돌아가는길에 할머님께서 손주가 길치임을 불안해하셨는지 길찾는기계(네비게이션)를 사라고 돈을 주셨다. 그 돈에 맞춰 검색을 해 봤는데 다행히도 해당 제품이 있었다. 다른 부가기능은 필요없고 단지 네비게이션과 GPS기능만 있는 것으로 찾아봤지만 해당 가격권 안에서는 없었기에 다 있는 것으로 고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상품 일정시간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배송이 된다고 적혀 있었는데, 당일은 아니고 2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도착한단다. 시간으로 따져도 2일(48시간)이 족히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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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7 08:56 서대구 집하출고 서대구
해운대
서대구 서구 xxx
2006-12-27 20:54 대구센터 터미널배차 대구센터
해운대
대구센터
2006-12-27 20:56 대구센터 터미널도착 서대구
대구센터
대구센터
2006-12-28 09:16 해운대 배송입고
해운대
해운대
2006-12-28 23:31 대구센터 터미널배차 대구센터
안성센터
대구센터
2006-12-28 23:31 대구센터 터미널도착 동래
대구센터
대구센터
2006-12-29 05:30 안성센터 터미널도착 대구센터
안성센터
안성센터
2006-12-29 06:14 안성센터 터미널배차 안성센터
부천
안성센터
2006-12-29 08:49 부천 배송입고
부천
부천
2006-12-29 10:57 부천 배송출고
부천
부천 xxx

으음.. 선택한 상품은 G-Market에서 가장 싸게 판매하고 있었다.

[카나스[한정수량특가판매]] [당일발송] 로드메이트 RMC-4000 골드]유비스타 RMC-4000 골드 512MB 4인치 터치스크린 네비 / 전화번호검색

아래는 해당 제품설명에 있는 그림 링크다.

괜찮은 제품이라고 품평이 되어있어서라기보다는 순전히 가격때문에 고른 것인데 좋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최근의 저는 빛에 대해 관찰중입니다. 어떤 빛이냐하면 사람들과 물체들에 비추는 빛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안 내력상 그림을 잘 그리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미술시간에 수채화를 그리던 시간에 선생님께서 제가 그린 그림을 보고 이게 사람이냐? 라며 창피를 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던 대상이 같은 반 친구였는데, 지금의 제가 생각해도 꽤나 못 그린 그림이었기 때문에 별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만 그 뒤로 저는 단지 낙서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욕망에 노력을 조금 더했습니다.

교과서나 낙서를 할 수 있는 종이에는 그림을 그려보고는 했는데, 지금은 인물도 꽤나 그럴듯 하게 그려낼 정도가 되었지요. 하지만 역시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기에 그림 실력이 금새 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림 쪽으로 직업을 삼으며 나가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배울 여력도 되지 않아 혼자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름 애니메이션이나 다른 사람들이 그려놓은 것들을 보면서 연구하고 실상이 그렇게 비추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것이 재미가 쏠쏠합니다.

ㅋ.. 살짝 부끄럽긴 하지만, 방금전에 그려본것.. 사진을 대고 그린것이긴 하지만 대강 그림자 넣어본 것입니다.

재은이 사진 트레이싱

강원도 철원… ㄷㄷ

며칠을 강원도 철원에서 보내게 되어서 월요일부터 약 4일간을 철원에 있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위성 DMB조차 잡히지 않는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목적을 가지고 갔고, 그 목적을 온전히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를 얻었다.
4년 동안 강원도 인제에서 지냈던 실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되었는데, 아직은 찬물로 샤워도 할 수 있고, 외투를 입지 않고도 그럭저럭 버틸만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살짝 자부심을 느껴본다.

며칠간 블로그에 방문하여 댓글도 달아주고, 트랙백도 날려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시험 끝~ 방학 시작~

와~ 드디어 길고 길었던 한 학기가 끝나버렸습니다.

이번학기는 학교 입학하고 최고학점(많은 과목)을 수강했었는데요, 우워.. 참 정신이 없었습니다.

영어회화를 수강하면서 영어에 대해 제 스스로 잘난척 했던 모습이 사그라 들어버리고, 새로운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쨌든 오늘부터가 진짜 방학인겁니다. 어제까지 마지막 수업을 듣고, 정리하고 학교에 제출할 서류들 다 제출하고 하니까 진짜 방학이 된 기분입니다.
어차피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학기 중에도 학교를 안 가는 날이었지만, 그래도 꽤나 좋습니다. 이번 방학에는 할 일이 많아졌어요. 개인적으로 한계를 느꼈던 영어 기본 문법부터 다시 파야겠습니다. 능력은 스스로 키워야죠. 그리고 학기중에 학과공부를 하느라 소홀했던 프로그래밍 공부도 다시 시작할 겁니다. 가장 기분 좋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는 미친놈이다

ㅎㅎ.. 오늘 어떤 분이 미친놈이라는 댓글을 달아두셨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8시간 공부?  라는 제 어린시절의 회상글에 말이죠. 자신의 이름이나 운영하는 홈피, 또는 블로그 주소, 그것도 아닌 이메일마저도 밝힐 수 조차 없는 겁쟁이에게 그런말을 듣고 싶지는 않군요.

제 욕하는 것 까지는 뭐..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께 와 미친 엄마네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사용하시다니 일단 자신에 대한 흔적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겁쟁이치고는 꽤나 용기 있다고 칭찬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어린시절부터 스스로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만한 짓들을 수 없이 해왔지만, 저런 과거 회상 정도의 극히 정상적인 행동에 대해 욕 먹은건 처음이랄까요. 게다가 어머님까지 욕되게 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로그오프 상태에서 댓글을 달지 않도록 설정해 놨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는 사람에게 댓글을 허용한 이 툴도 마음에 안 드는군요.

이미 티스토리 운영진에게 요청을 해 놓은 상태라서인지 더 화가 납니다. 관련글에 트랙백만 걸어놓는것으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실 아직 적용할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할까요?
일단 뭐.. 다시 한번 요청하고 싶은 생각 따윈 없습니다.

로그오프 사용자에게는 댓글 입력란을 숨겨 주시는 것으로 바꾸어 요청해야 겠습니다.

전 꽤나 꼴통이지만, 이레뵈도 인간이라는 나약한 존재라서 상처 받는 존재라서 아무렇지도 않지는 않습니다.

취업, 그리고 피자 부페

정보산업 고등학교를 다녔고 진학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3학년 2학기 때 취업을 나갔다.
사실 선생님께서 컴퓨터 분야에 굉장한 관심을 가진 것을 아셨기 때문에 성수 역에 있던 하드웨어 조립업체에 소개를 해 주셨지만, 집이 부천인지라 출퇴근시간으로만 하루에 4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엄청난 거리였기 때문에 면접만 보고 나왔다.

그리고는 며칠 지나지 않아 벼룩시장 구인란을 뒤적거리다가 웹디자이너를 구한다는 광고가 보여서 잽싸게 전화를 걸어 면접약속을 잡았다. 물론 가서 바로 취직됐다. 일하던 디자이너 누나가 턱이 빠지는 진풍경을 연출해서 재미도 있었고, 회사에서는 그 누나가 나가버리고는 대체 인력이 없어서 그 동안 그 누나를 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그래픽 프로그램을 끄적거리며 습관삼아 가지고 놀았기 때문에 편집 능력은 뒤따라 주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준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취직을 했다.

그렇게 일하면서 몇개월 뒤에 서울에 시사저널 건물 디자인팀과 같은 층의 사무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같은 공간안에서 파티션만 나누어서 쓰게 되었는데, BGI(Best Graphic International)라는 팀이었다. 그곳에서 디자이너 오정표형과 만나게 되었다. 99년 당시 28살이었는데, 군대를 전역하고 이러저러한 일들때문에 이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또 한명의 디자이너 누나는 김선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의 본인의 실력에 비해 둘 다 실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쿽으로 편집디자인 했던 김성훈형이랑, 또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쨌든, 이 회사에서 인턴을 뽑아서 같이 일하게 되었는데, 이 사람들이 본인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인턴들이 일하기 시작한 날에 퇴근시간이 가까워왔다. 본인은 할 일이 조금 더 있었기 때문에 앉아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와서 저희 퇴근하겠습니다. 라고 하길래 그러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 사람들 아직 다른 회사라는 걸 모르는구나.. 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점심을 같이 먹는데, 인턴을 받은 회사 성훈형이 인턴들에게 어제 왜 둘 다 얘기도 없이 그냥 가셨어요? 라는 것이다.

그러자 이 분들 나한테는 인사하고 퇴근했는데? 라고 말하니까, 이 두 인턴들 막~ 웃는 것이다.

퇴근할 시간은 가까워오고 높아 보이시는 분들은 외근하셔서 안 계시고는 쭈욱~ 둘러보는데, 본인이 가장 나이가 많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이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고 이 사람한테만 인사하고 가면 되겠다 싶어 본인에게만 인사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본인은 (털썩~) 주저 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그렇게 살찌거나 하진 않았지만 패션감각이 본인도 좀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하고 다녔는데, 그게 오히려 늙어보이게 한 것이었던 듯 하다.

쨌든 그곳에서는 그런 에피소드가 기억이 날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책을 만든것이었는데, 아직도 교보문고에서 검색이 된다.

이 책은 당시 첫 회사 사장님이 미국에서 문서포맷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PDF에 대한 서적이었다. 지금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포맷이었다. 이것으로 본인이 처음으로 편집디자인을 경험했었다. 사장님의 지시가 있었지만, 표지디자인에서 책 내용 편집까지 죄다 본인이 한것이다. ㅋㅋ.. 근데 지금 보니 표지디자인 굉장히 구려보인다.

또 이 회사는 프리랜스처럼 보이는 프로그래머를 고용하고 있었는데, 이 분은 삼성 훈민정음에 들어갈 PDF 부분을 개발하셨다. 이 프로그래머분 굉장히 나이 들어보이셨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솔로셨다. 음.. 진짜 딱~ 보면 이 사람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라구나 하는 필의 생김새였다.

그리고 그 작업이 끝나고 함께 일하던 과장님이 창업을 할거라면서 함께 나가자고 해서 그 회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같이 나가서 일하기 시작했다. 창업한 회사는 웹디자인으로 돈을 벌고, 다른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창업된 회사 사장님은 폐쇄회로카메라 분야의 사장님과 동업하시기로 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함께 일하게 되었다.

동업하시는 사장님은 제임스라는 영어이름을 가지고 계셨는데, 어느날인가 다른 직원들은 다 퇴근하고 제임스 사장님이랑 단 둘이 남게 되었다. 토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장님이 퇴근하고 같이 밥 먹자고 하시면서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어오셨다. 물론 당연히 피자를 먹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치킨, 피자이다. 짜장은 웬지 순위에서 어느순간 밀려나갔다.

피자를 먹으러 가는데 중학교때부터 초~ 대식가 기질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사장님께 피자부페로 가자고했고, 사장님도 그렇게 하자고 하셨다. 그 피자부페 그 이후에 몇년인가 지나서 그 자리에 갔더니 피씨방이 들어서있었다. 쨌든, 그곳에서 먹기 시작하는데 당시 피자헛 패밀리 사이즈를 혼자 2판 정도는 우습게 먹는 실력이었기 때문에 한접시, 두접시, … 비워나갔다. 사장님은 나이드신분이시라서인지 두 조각인가 먹고는 먹는걸 구경하셨다.

그 피자 부패는 일반적인 부페하고 달리 손님이 앉아 있으면 구워나온 피자를 커팅해서 원하는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한번에 한 조각씩 주었는데, 그렇게 10번째가 넘어가니까 이 알바생 본인이 앉은 테이블 주변으로는 오지 않는다. 더 앉아서 먹을 수 있었는데, 웬지 사장님께서 민망해 하셔서는 그만두고 나가자고 했다.

ㅋㅋ… 사실 그 때만큼은 못 먹어도 피자를 너~~무 좋아해서 금방 밥 먹었어도 피자시켜준다고하면 먹을정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린블루스 11월 28일 - 2.5기
아~ 이 사장님 뭐하고 사실까 궁금하다..

어정쩡한 해상도(1920×1200)

화면 해상도를 높게 쓰게 된 것은 그래픽 작업을 하면서 작업공간이 적었던 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그저 끄적거리는 수준의 작업에서 포스터로 출력하기 위해 고해상도의 큰 사진을 편집하게 되었을 때 축소로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 순간에 고해상도 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점차 그래픽카드 쪽으로 관심이 옮기웠고, 조금 경제적 여건이 괜찮아질 즈음엔 모니터로 관심이 옮기웠습니다. 지금은 19인치의 적지 않은 화면으로 작업을 하고 있지만, 15인치의 화면에서 1024×768화면을 썼던 적도 있습니다.

최근까지 1600×1200으로 사용해 왔었는데, 어느날인가 학교 PC를 사용하는 중에 모니터가 15인치인데, 1600×1200까지 지원되는 것을 보고는 어랏 내 모니터는 17인친데 1600×1200밖에 지원이 안되는건가? 하고 집에 와서 확인을 해 보니 1920×1200까지 지원이 되는군요. 그래픽 카드에서는 더 높은 해상도(2048×1536)를 지원하지만 이 모니터(DAENYX D786FD)가 지원할 수 있는게 그 정도입니다. 사실 이 해상도는 가로, 세로 비율이 일반의 다른 해상도에 비해서 세로 축 비율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인지 기본 설정엔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조금 좌우로 찌그러져 보이는 현상외에는 불편함이 없겠다 싶고 작업공간을 조금 더 넓게 쓸 수 있겠다 싶어서 바꾸었는데, 세로축이 1600×1200과 같아서 다시 원래대로 바꿀까도 싶습니다.
이 해상도 꽤나 어정쩡하다고 생각됩니다.

게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 정도면 전에 15인치에서 1024×768 쓸 때랑 별 차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후~
19인치 모니터를 사야할 때가 왔습니다!

티스토리 2% 부족할 때..

새로워진 티스토리, 갱신일에는 준비과정 동영상이 나와서 당황됐지만 바뀌고 나서의 화면은 실로 만족스럽다.1

아직 베타라는 이름에 맞게 여기 저기에서 새로이 변모된 티스토리에 대한 지적포스팅이 자주 보인다.

그 여세에 본인도 몇 글자 끄적거려본다면, 새로이 개편된 티스토리에서는 원래 가지고 있는 블로그 외에도 몇 개(아직 확실하게 몇 개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의 블로그를 더 개설할 수 있도록 변하였다.

그런데, 새로 만들 필요가 있어 하나를 만들고 메뉴를 둘러보는데, 댓글알리미 제목 아래부분에 있는 문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새로 만든 블로그 환경설정 > 댓글알리미

다른 사람의 블로그에 단 댓글에 대한 댓글이 등록되면 알려줍니다. 알리미가 동작하기 위해서는 댓글 작성시 ‘홈페이지’ 기입란에 자신의 블로그 주소(http://cansmile.tistory.com)를 입력하셔야 합니다.

바로 저 부분!!
저 부분이 왜 이상하다고 하냐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블로그 주소이기 때문이다. 새로 만든 블로그의 주소가 나와야 정상이지 않을까 싶은데, 저렇게 나오는 것을 나름대로 가능성을 추측해 본다면,

1. 소유자의 메인 블로그 주소로 댓글들을 취합해서 함께 보여준다.
2. 안내 메시지 부분 코딩시에 다수의 블로그를 개설한다는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다.
(아이디로 블로그 주소를 검색하기 때문인가???)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음.. 개인적으로는 2번의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인데, 혹시나 1번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방금 테스트 해 보니 댓글이 달면서 새로 만든 블로그 주소를 입력하면 댓글알리미에 나오지 않는다.
이거 테스트 하면서 다른 걸 또 발견했는데, 로그아웃 상태에서도 로그인한 사람만 댓글달도록 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로그인 해야 된다는 메시지에 취소를 누르면 작성할 수 있다.
ff, ie(7) 모두 같은 현상이다.라고 쓰려는데, 다시 한번 댓글달려고 했더니 귀하는 차단되었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나오면서 작성이 안된다. 그래도 최초에 한 번은 작성된다.

어차피 팀블로그로 운영할 것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소유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댓글알리미에 접근할 일도 없기는 하겠지만, 이 블로그는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은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에 끝까지 사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관리자 화면 접근 권한
권한 별로 접근 할수 있는 관리자 화면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유자 관리자 편집자 필자
글 – 댓글알리미

O

아! 글 작성하면서, 한 가지 더 발견했다.
표에 효과를 적용했다가 효과제거버튼을 누르면 선택영역의 첫 번째 칸만 없어진다.
또 TR 태그에 적용된 스타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건 당연한건지도.. )

지금 상단에 막대가 보이는데, 그곳에 나타나는 블로그 이동 콤보 박스에 나타나는 블로그도 옵션으로 일부 가릴 수 있는 기능을 넣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댓글 알리미에 소유자의 기본(최초) 주소로 표시된다.
2. 로그오프시 댓글 작성 불가능하도록 설정해 놔도 최초 한번은 작성이 가능하다.
3. 상단 막대에 표시되는 블로그 콤보 박스에 표시되는 것을 숨길 수 있는 옵션이 있었으면 좋겠다.
4.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footnote 밑에도 번호 표기 해 줬으면 좋겠다.

더 좋은 기능과 모습으로 발전하는 티스토리를 기대하면서..

_

  1. 사실 그때 글 쓰려고 들어왔던건데 그 동영상 때문에 짜증이 좀 났었다. 머리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글감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었다. 메모를 해 둘까 생각했지만, 그다지 메모까지 남겨가면서 남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그냥 넘어갔다.[]

목소리 톤..

고등학교 때도 몇 번인가 지적 받았던 적이 있다. 발표를 하는데 있어서 목소리에 톤이 너무 일정해서 뭔가 이야기에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면 웃음바다인데, 같은 얘기를 내가 하면 썰렁함을 감출 수 없을만큼의 한기가 느껴진다.
오늘만해도 발표를 하고 있는데 잠시 교수님께서 나갔다 오셨다. 전화를 받으시느라 그러셨겠지만, 꽤나 마음이 상한다. 아무리 그래도 발표 중간에 나가시다니…
돌아오셔서는 “xx한테 한 방 먹었다..”며 다른 친구들을 왜 재우냐구 하신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인데도, 스스로는 여전히 변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아니… 그런 의지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는 편이 더 나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발표 후에 교수님께서 한 마디 하신다.
어떤 목사님이 결혼하시면서 사모님께 말씀하셨단다.
“여보~ 내가 설교하는게 지루하거나 졸릴 때마다 계란 하나씩 넣으세요~”
그리고는 10년이 지나고 열어보기로 하고, 10년이 지났다.
목사님은 그 상자를 열어 보고는 기뻐서 사모님께 말한다.
“와~ 5개 밖에 안되네~ 내 설교가….”
라고 말하는 순간 옆에 돈 뭉치가 2개 있더란다. 그래서.
“여보~ 이 돈은 뭐야?”
사모님 曰 “계란 판 돈이에요…

(털~)

저 얘기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웃음을 얼굴에 가득채웠지만, 얼굴만큼이나 내 마음속에서는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식겁했다.
나중에 저렇게 되지 않아야 할텐데… 그래야 할텐데…

벌써부터 겁을 집어 먹으면 어쩌라는게냐! 라며 스스로를 꾸짖어보지만, 쉽게 뱉어지지 않는다.

인터넷을 처음 접하던 그 때..

과거에는 인터넷이라는 이름보다는 PC통신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행했던 때가 있었다. 필자의 부친께서는 필자만큼이나 PC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1993년에 처음 PC를 가지게 된 때에도 케텔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와서 혼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느렸던 PC사양(XT)과 엄청나게 느렸던 속도(당시 제일 빨랐던게 초당 2400 비트, 300바이트, 0.29Mb)에서 잘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컴퓨터는 오지게 사용했지만 인터넷을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부터 컴퓨터에 미쳐있었던터라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접해봤지만, 인터넷만은 일부 BBS에서만 텍스트 형태로만 제공하고 되었거나, 일부 통신사를 통해 연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중학교 중반이었던가 ISDN이 나와서 신청했을 때 정액제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때부터는 조금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 전산실에 설치된 전용라인을 통해 맘편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대단한 감동을 느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전산반에 입반했는데, 작업을 핑계로 수업도 꽤나 빠졌고, 늦은 시간 – 대략 저녁 9시 또는 12시 – 까지도 인터넷과 네트워크 게임에 빠져있었다.

사실 그 시절의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용어조차도 흔하게 쓰이지 않았을 무렵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정보의 순수성은 확보되었었다. 그래서 불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는 꽤나 정확하고 성실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인터넷은 제대로 찾아보지 않으면 성실한 정보를 획득하기 힘들다. 물론 관련 정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런 것은 정보를 획득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점이 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ZdNet의 기사를 훑다보니 과거 메일(인터넷)에 대한 약사가 나오는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관련하여 적어보았다.

알만에 의하면 현재의 인터넷이 탄생 초기와는 크게 변화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뢰할 수있는 수단으로서 메일을 사용하기 위해 앞으로도 보안을 계속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그 때문에 최대한의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출처 : 센드메일 개발자, “메일을 너무 많이 사용해”

PC remains alive.

    이래 저래 PC가 살아났습니다. PC는 뭔가를 해야할 때마다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래 저래 회개할 거리들이 산재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절대적인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절대적 사실입니다.

쨌든, 어제의 검색으로 BAD POOL CALLER 문제에 대한 답변들 중 스파이웨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 있어 인터넷 라인을 빼 놓고 설치해 보았더니 이상없이 설치가 되었습니다.

휴~ 한시름 놓았다 싶었지만, 세팅의 압박이 밀려왔고, 끝내는 밤을 꼴딱 새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인증을 위해 혹시나 하고 걸었던 마이크로 소프트, 받아서 인증 처리했습니다. 처리한 시간이 대략 10 어간이었는데도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약간의 감동 비슷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PC에 문제가 많아 벌써 10번 이상의 인증으로 자동 응답에서는 처리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가셨습니다.

이미 여러번의 불안정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운영체제를 다시 깔아야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태로 PC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윈도우를 시작하면서 ntfs.sys파일이 손상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반복되는 메시지의 출현으로 운영체제 하드 디스크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재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설치 직후에는 괜찮지만, 그 이후에 어떤 설정을 하던지 – 심지어는 화면 해상도 변경 – 다음 시작때에는 bad pool caller라는 메시지가 반복됩니다. 이거 하드디스크의 불안정이라고 생각해서 C드라이브의 파티션을 10G정도를 버리고 사용해보려했더니 지나치게 느린 시작을 보이는 겁니다.

아~ 이거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학교인데, 집에 가서 다시 설정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되돌아오는 듯이 느껴집니다.

쨌든 구글링 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Topic: Bad Pool Caller  (Read 91305 times)>가 나오는데, 여기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기술문서 링크<How to interpret a Stop 0xC2 or Stop 0x000000C2 error message on a Windows XP-based computer>가 걸려 있네요.

일단 읽어보고 해결해 봐야겠습니다.
ㅠㅠ.. 그래도 다행인건, 하드디스크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루묵 방지..

운동하면서 가장 위험한 건 어쩔 수 없이 쉬었다고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도루묵이 되어버린 체중을 어찌 감당할 수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어찌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얼마전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며칠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운동을 하려고 마음 먹은 날에는 비가 내렸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래두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검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단 말은 체중을 빼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이다.

쨌든 중요한건 어제 외가 막내 삼촌이 결혼을 하시면서 엄청난 과식을 해 버린데다가 오늘 또한 과식해버렸다.
한참 먹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엄청난 식탐에 지배당한 내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체중계에 올라 확인해보니 500그램 부족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절대적인 위기감은 다시한번 그렇게 찾아왔다.

그렇다! 체중을 그렇게 되돌아온 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올라갔다.

오늘 그 체중을 조금이나마 줄였다.

운동전 체중 : 99.5Kg
운동후 체중 : 97.2Kg

아마도 옷 무게도 한 몫했을테지만, 위기감!  

돈놀이 장난감

필자가 살고 있는 집은 작년(2005년)에 가족들이 재정적인 능력을 죄~ 끌어모아 겨우 마련한 집이다. 그 동안 월세, 전세를 거쳐 힘들게 마련한 집이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의 상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재정적인 능력이 최저로 떨어져 경매로 넘어가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사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필자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아르바이트(동생은 학원강사인데, 국가에서 아르바이트로 정의해 버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적인 동원능력이 조금 되었던 때였고, 이래 저래 만들 수 있는 한 최대한 끌어서 만들었다.
부채들 중 일부는 그렇게 마련한 집을 저당잡아 처리해버리고 지금도 매달 얼마씩 상환하고 있다.

...

이렇게 힘들게 마련한 한 집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나마도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에 그런걸로 돈놀이를 하는 그들이 있다.
한 가구의 여러 개체(구성원)들이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동네에서 공급이 부족하단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돈 놀이 하려면 더 많은 집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공급을 더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또 사들여 공급을 부족하게 만들겠지.
결국에는 사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고, 그것들의 거품이 사라지게 되는걸까.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바깥 양반들은 착실하게 보일만한 직장인들인 경우는 그다지 없다. 짝 맞춰 돈놀이 한다는 얘기다.
돈 버는거… 좋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살기 힘들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철저한 이기주의자들!
이기주의 세계 대회에 출전하면 특등상으로부터 동상, 장려상까지 이 나라의 그들이 차지하리라!

자신의 판 무덤에 빠질 인간들이여!
부디.. 부디… 정신차리시오…

관련기사들::
‘세금폭탄’ ‘공급확대’ 파상 공세 부동산에선 정부보다 강한 조중동
한국의 부동산은 거품인가?

황진이의 최후

최근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그 도도함의 매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자는 원채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 계속 보지 않았는데, 오늘 어머님께서 보시는 것을 우연히 보고 있는데 문득 황진이의 최후는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구글링해서 얻은 결과물들을 예상대로 최근 방영되고 있는 황진이에 대한 검색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2페이지 하반부에 황진이에 대한 글이 있어 확인해 보니

황진이는 이와 같이 일생을 지내다가 사십 내외에 불행히 병에 걸려 죽었다. 그는 죽을 때에집안 사람들에게 유언하되 『나는 평생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놀기를 좋아하였은 즉 고적한 산중에다 묻어주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다니는 대로변에다 묻어주며, 또 평생에 음률을 좋아하였은 즉 장사지낼 때에도 곡을 하지 말고 풍악을 잡혀서 장례를지내달라』하였다. 그의 무덤은 몇 백년 전까지도 송도 대로변에 있었다. 천하의 호협 시인 백호 임제 같은 이는 평안도사로부임하던 길에 일부러 제문을 지어가지고 그의 무덤에까지 가서 제를 지내 주었다가 그것이 언관에게 말썽거리가 되어 그 일로좌천까지 된 일이 있었다.

출처 : <기녀 황진이>

라는 부분이 있었다. 사십 내외에 불행히 병에 걸려 죽었단다. 그녀의 유언을 보시라… 센스! 후훗… 천한 자신을 대로변에 장사해 달라니, 엉뚱하지 않은가.
필자도 꽤나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저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훗… 황진이 드라마 종영되면 한꺼번에 날 잡아서 봐야 할 목록에 추가!

타블렛 떨림 현상..

얼마전부터 타블렛 커서가 떨리는 현상이 발생해서 여기 저기 뒤적거리다가는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오래되서 바꿀 때가 되어서인가 싶었다. 하지만 구글링은 역시 대단하다!

와콤 홈페이지 및 타블렛몰에 FAQ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올라와있었다.

태블릿을 사용하다 보면 커서가 떨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고장인가요?
스크린 커서의 떨림 현상은 태블릿을 모니터 가까이 두는 경우에 생길 수 있습니다. 모니터가 RF (라디오 주파수) 잡음을 발생하여 와콤 태블릿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태블릿을 모니터에서 멀리 이동하거나 해상도나 모니터 주파수 비율을 바꾸는 리플레쉬 설정을 조정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답변을 보고서 모니터의 화면 재생빈도를 확인해 보니 60Hz, 이것을 65Hz로 바꾸었다. 그러나 변화가 없이 여전히 떨림 현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어제는 떨리지 않은 순간이 있엇다는 것을 애써 기억해내고는 또 다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관련 답변은 위의 것 하나였다. 그 순간 문득 또 다른 문구에 눈이 갔다.
바로 RF(라디오 주파수)라는 단어였다. 그 순간 눈알은 타블랫 옆으로 이동하여 뭔가를 찾아냈다!
빙고! 바로 이것이었다. 핸드폰!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핸드폰에 모네타칩이 박혀 있어서 이것으로 버스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휴대폰을 멀리 떨어뜨려보니 역시나 떨림은 사라졌다. 버스카드는 RF방식으로 결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휴대폰의 전원이 켜 있는 중에는 전파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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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시집 간다는데..

참.. 쓸쓸합니다. 그 동안 그 어떤 남매보다도 친근한 사이를 자랑하던 사이였는데, 막상 시집 간다니까 쓸쓸해집니다. 신학과가 있어서 고령의 학부생들이 많은 학교의 특성상 제 동생과 같은 학번인데도, 30대의 나이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제 동생이 그 동안 이런 저런 선자리들 중에서 만남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같은 학번의 아저씨(!)에게 연락이 왔더랍니다. 자기 친구중에 여적 결혼하지 않은 솔로가 있노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언뜻 전에 결혼에 관련된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부모님의 반려자 기준은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동생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사항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항들이란 문화충돌에 대비한 기준들을 말합니다. 쨌든 그런 요건에 어느정도 부합되는 사람인데다가, 소개 받기 직전 남자가 공무원에 합격되어서인지 원래 인간이 그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보는 자리에서 제 동생보고 다이어트 안 하시나봐요!라는 어이 상실하게 만드는 발언을 해서 동생의 마음에 난도질을 해 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지 소개받은 사람과 첫 만남 이후 그 사람에 대해 꽤나 긍정적이더군요. 그 난도질 한 사람 누구인지 어디 소속인지 이름까지 물어봤지만, 쫓아가서 죽여버린다는 말에 대답을 않더군요.(오! 주여 용서하소서!)

그렇게 2달 전에 만남을 가지기 시작해서 저번달 말에 본인의 부모님들께 인사드리는 것으로 내년 3월1일에 잠정적인 결혼일자를 정했습니다. 동생과 만난지 한달이 넘었는데, 이 사람이 부모님께 인사를 오지 않은 것이 괘씸하셔서 아버지께서 이달 안으로 인사 안 오면 결혼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덕분에 부랴부랴 일과 관련된 일정들을 조정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동생과 같은 학번이었던 아저씨의 친구였기 때문에 대학 졸업후 3년 만에 소개받은것이니 올해 나이가 37살이랍니다. 동생 말로는 달수로 계산하면 2달 모자란 띠 동갑이라고 합니다.

쨌든, 이렇게 급속도로 진전되는 가운데 동생과 절친한 관계로 지낼 수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하는 생각에 쓸쓸해집니다. 내일 당장 과제를 내야할 것이 있음에도 쉬이 붙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동생 남자친구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양주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해서 3년동안 살다 나와서 돈을 남겨먹겠다고 했습니다. 둘이 살기엔 넓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남자쪽에서 그런 뜻을 내비춘것에 대해 그다지 반박하지는 않습니다. 동생도 뭔가 재테크에 관심이 생긴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 시작!

앞 글에서도 밝혔듯이, 체중의 과다 증가, 체력의 부족으로 인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체중을 확인했는데, 앞 글에서는 5Kg부족한 100Kg이라고 했는데, 무려 96.1Kg이더군요.
전자체중계라서 평균치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몇 번을 해 봐도 똑같습니다.
일단 체중을 확인했으니 운동하러 가겠습니다.

운동후…

와~ 정말 제 체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 싶습니다. 전에도 운동했다가 꽤나 힘들었다는 포스팅을 했었는데, 점차 더 심해지는군요. 20분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5분도 안되어 지치게 되는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역시나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운동 부족입니다. 운동을 쉬었던 기간과 정확히 비례해서 체력이 떨어집니다.

쨌든 시간은 다 채웠습니다. 오랫만에 운동을 하는데, 그 동안 안 좋은게 아닐까 싶었던 부분들이 아파옵니다. 병원에 한번 들려봐야겠습니다.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나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듯합니다.

체중 뿐만 아니라..

요즘들어 부쩍 듣는 소리가 몸이 좋아졌다거나 살이 쪘다는 소리입니다. 확실히 전보다 몸이 둔해 진 것을 느끼고 있는데다가 체력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절대 필요가 생겼습니다.
고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처럼 또 흐지부지 되고 말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사랑 ▶ 운동 카테고리 쯤에 운동으로 인한 체중 변화 등이 기록 될 예정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홀딱 벗은 몸의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첨부하고 싶지만, 사실 혐오감이 드는 사진 일 수도 있을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건 보류하기로 합니다.
운동은 아무래도 지금 체중에 5kg 부족한 100kg 이기때문에 장시간 뛴다거나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듯하기 때문에 짧은 줄넘기 정도가 괜찮을 듯 싶습니다. 체중이 많이 불어 있는 상태라서 이것도 사실 좀 불안하기는 합니다만, 지나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체중 감량 기한이 없기 때문에 하루에 5천번 정도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20분 정도니까 2천여번 정도가 괜찮아보입니다.

쨌든 이제 다시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비가 올 일은 좀 드물기를 바라면서…

아! 해방이다~

시험이 끝났습니다.
일주일간 몇 과목 보지 않았지만, 그동안 콩글리쉬 생활을 해 왔던 제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99년도에 입학해서 영어 I, II에 해당하는 과목은 이미 이수했기 때문에 영어 회화 I, II를 이수해야되었기 때문에 2학기에 편성되어있는 영어회화 II를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1학기 영어회화 I에 이어서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이치이겠습니다만, 코스모스로 복학해버린 저에게는 불리한겁니다. 쨌든 저 하나때문에 교육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었고, 그로 인해서 영어로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는 쉽게 해 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학기를 시작했습니다만, 수업시간을 한 시간 한 시간 거치면서 그 동안 대단히 심한 콩글리쉬를 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수업이 진행되면서 심각성을 느끼고 시작하려는 의지가 생겼을 땐 이미 중간고사가 코 앞에 다가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쨌든 지금 당장의 시험만 바라보고 공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기본 문법부터 다시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시험 전날까지 공부해서 필요한만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독해하고 간단히 문장 만드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죠. 하지만,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서 이전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구술 시험에서는 버벅거렸습니다.

이번 깨달음을 계기로 문법 공부를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절실하지가 않았던 모양인지 몇일인가 하고 말곤 했는데, 이번엔 정말 문법이 기반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문법에 대해 여러곳을 찾아봤는데, 나름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관심있으시면 들려보시길 권합니다.

괴물군의 여러가지

늙은거?

본인보다 연로하신 적지 않은 독자에게 먼저 사과의 말씀 전한다.

오늘 오랫만에 줄넘기를 해 보았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이전에 했던 방식의 무식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실로 몇개월이나 걸린것이다. 그리고 인정 후에도 결심하기까지 몇 개월이 흘렀다.

2006년 이전의 포스팅들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진정 아무나 믿을 수 없을만큼의 수치인 5천번은 젊었을 때나 가능한 줄넘기 횟수인것이다. 지금에와서는 그럴 정도의 체력은 있지 않은것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과 결심을 오늘에서야 실행해 옮겼다. 그런데 이거 웬일인가 다시한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20분씩만 하자고 마음먹고는 줄을 들고 집 뒤쪽 공원으로 향했다. 물론 무릎의 무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콘크리트나 블럭이 아닌 흙이 밟히는 땅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녁에 먹은 튀김닭이 무리를 가져왔다. 조금 많이 먹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이렇게나 힘들게 하다니.. 줄넘기를 시작하고 노래가 한곡 반이 흘렀을 때 신호가 왔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꿋꿋이 버텨내려 했으나 무리가 된다는 신체적인 신호가 더욱 심화되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했던 과식 후의 운동은 전혀 그런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렇게 위험하다는 음주상태에서의 줄넘기도 무리가 되지 않았던 몸이 이제는 몇 년 지났다고 무리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아… 이런걸 나이먹는다고 하는 것인가…
(털썩..)

매직스트레이트 까잇거 일주일이면..

오해라는 글을 보고는 취업후 첫 월급의 씀씀이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인문계 학생들과는 달리 취업전선에 나가야 할 시기인것이었다.
당시의 본인은 반곱슬의 머리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펴려고 온갖 방법을 다 해보던 시절이었다.

젤이라든가 헤어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밀크로션을 머리에 발라 머리 모양을 바꾸려고도 시도해 본 적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곱슬머리라는 걸 이용해서 꽤나 긴 머리를 자랑하던 때도 있었다.

쨌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었던, 본인은 첫 월급을 타는날 내의 점에 가지 않았다. 흔히들 부모님의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것으로 효를 시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겠지만, 그런 압박마저도 날려버릴만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매직스트레이트(이하 매직)였다. 당시의 매직는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에 꽤나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고되게 하지 않은 고등학생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만큼의 가격이었다. 물론 집안 형편도 그에 못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열망해 마지 않던 매직이었다.

첫 월급을 들고 부천역에 있는 미용실을 향했다. 사실 그 동안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5천원이면 이발할 수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했기 때문에 미용실이라는 공간에 간다는 것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미용실에 들어갔다. 참…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뭐가 그렇게도 부끄럽게 여겨졌는지, 3~4시간의 시술 시간동안 시술하시는 미용사 누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짜잔~ 멋지게 스트레이트 되었다. 미용사는 시술후 2,3일 동안은 머리에 샴푸하지 말라는 당부를 건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왔건만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지금 회상해보건데 당시의 머리 모양은 꽤나 우스꽝스럽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로 인해서 부풀어 있다가 매직 후 가라앉는 상태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일주일이 흘렀다.

털! 썩!

정말 저런 모양새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나 고가를 들여 했던 머리카락들 가운데, 휘어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같은 반 여자친구들을 집에 초청(!)해서 일반 스트레이트를 했었던 때에도 2,3일 정도 밖에 못 버텨냈던 머리라는것을 기억해 내는데에는 많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휴우..

이 저주받은 곱슬머리라고 수 없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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