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뽐뿌!

오오~ 이거 카펙 대신에 사용하면 괜찮겠다는 아이템이 나왔으니!
T-man이라는 캐릭터를 이용한 FMT(Frequency Modulation Transmitter)이다. 이 아이템의 장점은 Wireless라는 것이다. 선이 없이 무선 주파수 대역 88.5와 88.9의 두 개의 채널로 전송한다는 것이다.
단점은 한번 충전해서 5시간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과 핸즈프리 대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음.. 사실상 하루에 왕복 2시간 가량 이니까 한번 충전하면 이틀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조금 귀찮긴 하겠지만 하루에 한번이 아니라는 것을 위안 삼아 사용하면 될 것이고, 핸즈프리야 핸드폰 리모콘에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에 괜찮다.
이거 보면 볼 수록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디자인도 캐릭터 외관이라서 그다지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썰렁한 마티즈 내부에 밋밋함을 제거해 줄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템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관련글 : FMT하나 바꿨을 뿐인데, 차가?

대공중관계(Public Relations)

아거님의 GatorLog의 스타벅스 파드캐스트가 남긴 교훈을 읽다보니 대공중관계(Public Relations)라는 용어가 있어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광고와 홍보의 관계에서 홍보(publicity)라는 개념을 기록한 바 있는데, 그것과 대공중관계라는 용어로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PR이라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존재를 홍보(알리는 행위)하는 것으로 나타내고 자기 PR의 시대라는 식으로 사용 했는데, PR을 홍보와 다른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단지 알리는 행위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니 멋지게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PR이란 바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람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GatorLog

인터넷을 처음 접하던 그 때..

과거에는 인터넷이라는 이름보다는 PC통신이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행했던 때가 있었다. 필자의 부친께서는 필자만큼이나 PC에 관심이 많으셨기 때문에 1993년에 처음 PC를 가지게 된 때에도 케텔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그로 인해 전화요금이 엄청나게 나와서 혼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느렸던 PC사양(XT)과 엄청나게 느렸던 속도(당시 제일 빨랐던게 초당 2400 비트, 300바이트, 0.29Mb)에서 잘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컴퓨터는 오지게 사용했지만 인터넷을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부터 컴퓨터에 미쳐있었던터라 이런 저런 것들을 많이 접해봤지만, 인터넷만은 일부 BBS에서만 텍스트 형태로만 제공하고 되었거나, 일부 통신사를 통해 연결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중학교 중반이었던가 ISDN이 나와서 신청했을 때 정액제였던 걸로 기억되는데, 그 때부터는 조금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듯 하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 전산실에 설치된 전용라인을 통해 맘편히 사용할 수 있었던 것에 대단한 감동을 느꼈다. 실제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전산반에 입반했는데, 작업을 핑계로 수업도 꽤나 빠졌고, 늦은 시간 – 대략 저녁 9시 또는 12시 – 까지도 인터넷과 네트워크 게임에 빠져있었다.

사실 그 시절의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는 용어조차도 흔하게 쓰이지 않았을 무렵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아서인지 정보의 순수성은 확보되었었다. 그래서 불편한 점도 없지는 않았지만, 원하는 정보는 꽤나 정확하고 성실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인터넷은 제대로 찾아보지 않으면 성실한 정보를 획득하기 힘들다. 물론 관련 정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그런 것은 정보를 획득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다지 좋은 점이 될 수 없다. 정리하자면 접근성은 좋아졌지만, 원하는 정보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ZdNet의 기사를 훑다보니 과거 메일(인터넷)에 대한 약사가 나오는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어서 관련하여 적어보았다.

알만에 의하면 현재의 인터넷이 탄생 초기와는 크게 변화되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뢰할 수있는 수단으로서 메일을 사용하기 위해 앞으로도 보안을 계속 유지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하고 그 때문에 최대한의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고.
출처 : 센드메일 개발자, “메일을 너무 많이 사용해”

집은…

집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의식주의 한 부분으로써 그 중요성은 달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이 행복을 만들어가고 생활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집인데, 이거 참 최근의 투기한다는 인간들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이고 답답할 때마다 포스팅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세 낼 돈이 없어서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집을 가지고 투자라는 명목으로 말 그대로 장난질이나 하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살며 답답한 소리 하고 있느냐고 해도 역시나 그렇게 생각하는게 극히 정상적인것이 아닌가? 사서 살아야 할 집은 이미 하나 가지고 있으면서 살지도 않을 집을 몇 채씩이나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 분개해 하지 않을 사람은 투기 목적의 주택소유자들 뿐이라고 생각된다.

집은… 돈 놀이 하는 도구가 아니란 말이다.

관련기사 : “억, 억 뛴다고요? 어느 나라 얘긴가요?”

평범한 사람들이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평생 소원이라면 그게 정상인 사회일까. 마치 내집마련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된 듯하다.모두들 부동산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신경을 곤두세우는 나라, 집값으로 보통사람 연봉의 몇 배를 순식간에 거머쥐는 세상,며칠 만에 오르고 내리는 부동산 가격에, 부동산정책에 울고 웃는 사람들, 참 암담하다.

대다수 서민에게 집은 투자대상도, 투기대상도 아니다. 그저 식구끼리 단란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일 뿐이다. 집은 그냥 집일 뿐이다.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야고보서 3:1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것은 인내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 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을 주일학교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아이들이 따라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선생의 자리에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을 가져야 하는 지에 대해 여러 모로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것은 비단 선생이라는 자리만 그런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아이에게 있어 가르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

필자의 결혼한 친척누나가 콩을 어른이 되어서도 안 먹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먹으라고 했다가 언젠가 한번은 아이가 엄마도 안 먹으면서 왜 나한테만 먹으라고 해 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에게 이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의 자리라는 것은 이보다 더 비중있는 책임감이 부여됩니다. 한 인간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치는 자로서 부도덕함으로 교회에서 누군가를 떠나가게 만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교회자체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교회의 영광은 세상의 죄를 책망하며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많이 세속화되어 있다. 진정으로 영광받아야 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고 인간이 그 영광을 가로채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전통만 강조하는 교회, 생활에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인물들이 교회의 지도자로서 군림하고 있을 때 비판력이 강하고 양심이 예민한 교인들은 교회를 통해 아무런 은혜를 받을 수 없어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적어도 교회학교의 지도자와 교사들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하며 행동에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1

  1. *. 양창삼 지음, 『교회행정학』, (서울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무부, 1998), p. 106.[]

자전거는 다리가 두꺼워진다?

사실 남성은 신체적인 특성상 다리가 두꺼워지지 않을 수 없다. 똑같은 기간에 같은 거리를 운동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인 변화의 정도는 다르다. 둘 다 체력이 보강되어지고 전반적인 대사량이 소비되겠지만, 남성에게는 한가지의 변화가 더 생긴다. 바로 다리 근육의 발달인데, 이것이 자전거 타기를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 – 정확히 말하자면 땀을 흘리는 행위 – 필자는 줄넘기도 해보고, 자전거로 통학도 해 왔다. 특히나 자전거로 통학할 때는 조금 무리가 된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침 저녁으로 땀을 흘려주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양대교를 건너는 동안에는 곁길이 있어 별 불편이 없었지만, 그 외의 일반 도로의 경우에는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거나 인도에 오르내리는 부분에서 매끄럽지 못해서 자전거 바퀴가 상하거나, 그로 인해서 터지곤 했었다. 그리고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구간에서는 인도에서 다니는 것이 불편 –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 – 했기 때문에 인도에 가까운 차도로 다니기가 일반적이었다.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환경과도 관련되어지는데, 차량으로 다니는 것보다 그만큼의 매연이 줄어들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전거 이용자수가 눈에 띄일 정도의 인원일 때의 말이다. 차량 이용자들이 잘 구축된 자전거 도로나 제반 시설이 생기고 국가에서 지원이 있다면 그만큼 자전거로 이동수단을 변경할 것인가하는 의구심도 살짝 든다. 그 동안 차량으로 편히 다니다가 자전거로 힘들여 다니고자 하는 사람이 그 만큼 생길 것인가 하는 것이 그 의구심의 첫째되는 항목이다.
쨌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개인의 체력 증강, 건강 회복의 이점 외에도 좋은 점이 많지만 사람들의 의식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략을 잘 구성하여 시행하지 않는다면 잠시 떠들고 마는 수준의 활동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관련기사 : 우울하다면? 차 버려! 살쪘다면? 차 버려!, 창원시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 제정, ‘자전거 타기 활성화’ 10년간 헛바퀴 돌아

PC remains alive.

    이래 저래 PC가 살아났습니다. PC는 뭔가를 해야할 때마다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깨우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이래 저래 회개할 거리들이 산재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절대적인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절대적 사실입니다.

쨌든, 어제의 검색으로 BAD POOL CALLER 문제에 대한 답변들 중 스파이웨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이 있어 인터넷 라인을 빼 놓고 설치해 보았더니 이상없이 설치가 되었습니다.

휴~ 한시름 놓았다 싶었지만, 세팅의 압박이 밀려왔고, 끝내는 밤을 꼴딱 새버렸습니다.

그나저나 인증을 위해 혹시나 하고 걸었던 마이크로 소프트, 받아서 인증 처리했습니다. 처리한 시간이 대략 10 어간이었는데도 열심히 일하는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약간의 감동 비슷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PC에 문제가 많아 벌써 10번 이상의 인증으로 자동 응답에서는 처리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가셨습니다.

이미 여러번의 불안정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운영체제를 다시 깔아야할 것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사태로 PC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윈도우를 시작하면서 ntfs.sys파일이 손상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반복되는 메시지의 출현으로 운영체제 하드 디스크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재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설치 직후에는 괜찮지만, 그 이후에 어떤 설정을 하던지 – 심지어는 화면 해상도 변경 – 다음 시작때에는 bad pool caller라는 메시지가 반복됩니다. 이거 하드디스크의 불안정이라고 생각해서 C드라이브의 파티션을 10G정도를 버리고 사용해보려했더니 지나치게 느린 시작을 보이는 겁니다.

아~ 이거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은 학교인데, 집에 가서 다시 설정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피로가 되돌아오는 듯이 느껴집니다.

쨌든 구글링 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과<Topic: Bad Pool Caller  (Read 91305 times)>가 나오는데, 여기에 마이크로 소프트의 기술문서 링크<How to interpret a Stop 0xC2 or Stop 0x000000C2 error message on a Windows XP-based computer>가 걸려 있네요.

일단 읽어보고 해결해 봐야겠습니다.
ㅠㅠ.. 그래도 다행인건, 하드디스크 때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신좀 차려라..

1980년대에 일본사람들은 부동산의 가격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부동산 신화)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 말이 맞는 것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또 오르길 반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부동산을 구입했고, 돈이 없으면 은행에서 대출하여 부동산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부동산을 담보로 다시 대출하여 부동산을 다시 구입하는 순환을 만들게 된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는 생각을 버리시는게 어떤가 싶습니다. 아직도 부동산이 만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경우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기는 하겠지만,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낼 듯한 불안감은 어쩔 수 없습니다.

히치하이킹의 지침

르네상스의 여인들1이라는 책을 방금 다 읽어냈다. 책을 읽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필자에겐 읽는다는 것은 일2이다.
쨌든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책의 말미에 『르네상스의 여인들』창작 뒷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데, 작가가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후에 헝그리했던 젊은 시절에는 히치하이킹을 했다고 말한다. 그와 함께 나름대로의 히치하이킹의 지침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믿든 안 믿든,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으면 그 방법밖에 없었던 시절이에요. 배낭여행이나 어린 학생들의 단체 해외여행이 시작된 건 그후였죠, 그리고 나도 나름대로 히치하이킹의 지침을 갖고 있었어요.
첫째,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을 정도의 돈은 항상 준비해둘 것, 다시 말해서 선택의 여지를 남겨둘 것.
둘째,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어도 상관없지만, 깨끗하고 단정한 차림을 할 것.
셋째, 도로의 가드레일에 걸터앉아서 손만 흔드는 따위의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 것. 반드시 길가에 서서 기다릴 것.
넷째, 치마를 걷어올려 다리를 드러내 보이고 그것으로 관심을 끄는 짓은 하지 말 것. 못된 남자의 차에 타는 위험을 자초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다 섯째, 길모퉁이처럼 차를 세우기 어려운 곳에는 서 있지 말 것.
여 섯째, 직접 운전하든 운전수가 딸려 있든, 혼자 여행하고 있는 사람을 노릴 것. 동승자가 많으면 질문공세에 시달려서 오히려 피곤해 지니까요.
일곱째, 다가오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사람, 운전수가 딸린 차라면 뒷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을 것.
마지막은 나를 태워준 사람과 말상대가 되어줄 것. 상대도 심심해서 태워주는 것이니까, 차를 얻어 탄 이상은 열심히 말상대를 해줘야죠.

이렇게 하면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차를 얻어 탈 수 있었어요.

『르네상스의 여인들』 364면
그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히치하이킹 지침이다. 게다가 젊은 여성이라는 점과 예의 바른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 또 통찰력을 살며시 드러내주는 지침이다.
최근에는 다들 차가 있거나 교통편이 편리한 곳으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히치하이킹 따위는 꿈도 꾸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필자처럼 엉뚱한 생각을 가진 사람도 없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에 적어본다.
작년에 청소년 캠프에 스탭으로 일하면서 중고등학생들과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었는데, 나름 아이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던 프로그램 중에 하나였다. 사실 스탭으로 참여했던 필자도 적잖이 즐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기도하다.

인터뷰를 읽으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름에 관한 것이 그 하나이다.

그런 글을 쓰는 게 직업이 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집가라는 말도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게 해준 부모님한테 작은 효도나 하려고 본명으로 발표했어요. 그러고는 나중에 아뿔싸 했죠. 작가가 될 줄 알았으면 좀더 여자다운 필명을 생각해두는 건데 하고……

『르네상스의 여인들』 375면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가 할머니라는 동생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책의 표지 안쪽에 실린 곱게 늙은 할머니 사진을 본 때문인지 시오노 나나미라는 이름은 꽤나 여성적인 이름이라는 느낌이었는데, 정작 본인은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나나미라는 이름의 캐릭터들도 대부분 여자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시오노라는 부분이 남성적인 성향의 이름이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누구 아시는 독자 있으시면 답변 부탁드린다.
이 후에도 시오노 나나미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증을 해소해 줄만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들이 있으니 사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 김석희 옮김, 서울 : 한길사 , 2002.[]
  2.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니치 마케팅(Niche Marketing)

니치 (niche) 는 ‘틈새’ 를 뜻하는 말로 니치 마케팅은 소규모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전략이다. 대부분의 제품들은 소비자가 오른손잡이일 거라는 가정을하고 만들어 낸다.그러나 대략 전체 인구의 10%정도는 왼손잡이라고 한다. 왼손잡이들이 이용하기 편하게 가위를 생산해서 판매한다면 전체 10%인 왼손잡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시장의 틈새를 찾아 소규모의 특별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니치 마케팅은 다양한 업종에서 색다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니치 마케팅

도루묵 방지..

운동하면서 가장 위험한 건 어쩔 수 없이 쉬었다고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도루묵이 되어버린 체중을 어찌 감당할 수가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어찌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얼마전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며칠간은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운동을 하려고 마음 먹은 날에는 비가 내렸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보니 일주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그래두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이 검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단 말은 체중을 빼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이다.

쨌든 중요한건 어제 외가 막내 삼촌이 결혼을 하시면서 엄청난 과식을 해 버린데다가 오늘 또한 과식해버렸다.
한참 먹고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그 엄청난 식탐에 지배당한 내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체중계에 올라 확인해보니 500그램 부족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절대적인 위기감은 다시한번 그렇게 찾아왔다.

그렇다! 체중을 그렇게 되돌아온 것으로도 부족해서 더 올라갔다.

오늘 그 체중을 조금이나마 줄였다.

운동전 체중 : 99.5Kg
운동후 체중 : 97.2Kg

아마도 옷 무게도 한 몫했을테지만, 위기감!  

그동안 사진을 찍을 때~

jpeg로 저장하도록 품질(Quality)을 설정해 두었는데, 이번에 4GB 용량의 CF를 사서 RAW파일로 저장하도록 설정을 바꾸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별반 차이가 없고, 편집할 때 변화가 생겼는데, 알씨에서 곧바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일일히 열어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뭔가 편리한 유틸이 있어도 이 작업 방식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사진을 찍으면서 무보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최근 사진을 띄엄 띄엄 찍어서인지 화벨 설정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냥 찍고 나서 포샵에서 커브로 이미지를 보정했는데, 그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 RAW파일로 불러왔을 때 열리는 관리 페이지에서 Color Temporature(색 온도) 설정에서 간단하게 변경 할 수 있게 된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지만 역시나 이전 작업보다 불러내는 시간도 더 걸리는데다가, 일일히 색온도를 변경해주고 오픈하고 액션으로 처리하고… 뭔가 작업량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래서 사진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사람들의 독촉에 시달리는 주기가 더 짧아졌다.

이거원.. 사진도 완전 일이돼버렸다. 사진 찍는건 그렇다고 치고 정리하고 올리는게 일이 돼버려서인지 흥미가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흥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처음에 가졌던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을 담고자”하는 그 생각만은 변함이 없기를 스스로 바라고 있다.
이번에 찍은 사진 중 분위기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되는 사진이다.
내 수준이 이런 수준정도라는게 탄로날만한 사진인듯하다.  

돈놀이 장난감

필자가 살고 있는 집은 작년(2005년)에 가족들이 재정적인 능력을 죄~ 끌어모아 겨우 마련한 집이다. 그 동안 월세, 전세를 거쳐 힘들게 마련한 집이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의 상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재정적인 능력이 최저로 떨어져 경매로 넘어가서 어쩔 수 없이 이사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사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필자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아르바이트(동생은 학원강사인데, 국가에서 아르바이트로 정의해 버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적인 동원능력이 조금 되었던 때였고, 이래 저래 만들 수 있는 한 최대한 끌어서 만들었다.
부채들 중 일부는 그렇게 마련한 집을 저당잡아 처리해버리고 지금도 매달 얼마씩 상환하고 있다.

...

이렇게 힘들게 마련한 한 집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나마도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에 그런걸로 돈놀이를 하는 그들이 있다.
한 가구의 여러 개체(구성원)들이 여러 채의 집을 가지고 있는 동네에서 공급이 부족하단다. 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돈 놀이 하려면 더 많은 집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리라.
공급을 더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 그들이 또 사들여 공급을 부족하게 만들겠지.
결국에는 사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고, 그것들의 거품이 사라지게 되는걸까.

주변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적잖이 발견할 수 있다. 대부분 바깥 양반들은 착실하게 보일만한 직장인들인 경우는 그다지 없다. 짝 맞춰 돈놀이 한다는 얘기다.
돈 버는거… 좋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살기 힘들게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철저한 이기주의자들!
이기주의 세계 대회에 출전하면 특등상으로부터 동상, 장려상까지 이 나라의 그들이 차지하리라!

자신의 판 무덤에 빠질 인간들이여!
부디.. 부디… 정신차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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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이도 못 치겠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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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교복이 의무화 상용화되어 보급된다면 떙땡이 치는 학생들에게 타격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교복을 벗어 학교내 사물함에 넣어둔다던지 하는 식으로 처리해 버리면 그만 이라고 생각된다면 뭔가 또 다른 방법이 강구되어 사용되어질 것이다.
휴우… 이제 학창시절의 로망, 땡땡이는 힘들어지는것인가!

황진이의 최후

최근 황진이라는 드라마를 가끔씩 보게 되는데 그 도도함의 매력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필자는 원채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라 계속 보지 않았는데, 오늘 어머님께서 보시는 것을 우연히 보고 있는데 문득 황진이의 최후는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구글링해서 얻은 결과물들을 예상대로 최근 방영되고 있는 황진이에 대한 검색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2페이지 하반부에 황진이에 대한 글이 있어 확인해 보니

황진이는 이와 같이 일생을 지내다가 사십 내외에 불행히 병에 걸려 죽었다. 그는 죽을 때에집안 사람들에게 유언하되 『나는 평생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놀기를 좋아하였은 즉 고적한 산중에다 묻어주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다니는 대로변에다 묻어주며, 또 평생에 음률을 좋아하였은 즉 장사지낼 때에도 곡을 하지 말고 풍악을 잡혀서 장례를지내달라』하였다. 그의 무덤은 몇 백년 전까지도 송도 대로변에 있었다. 천하의 호협 시인 백호 임제 같은 이는 평안도사로부임하던 길에 일부러 제문을 지어가지고 그의 무덤에까지 가서 제를 지내 주었다가 그것이 언관에게 말썽거리가 되어 그 일로좌천까지 된 일이 있었다.

출처 : <기녀 황진이>

라는 부분이 있었다. 사십 내외에 불행히 병에 걸려 죽었단다. 그녀의 유언을 보시라… 센스! 후훗… 천한 자신을 대로변에 장사해 달라니, 엉뚱하지 않은가.
필자도 꽤나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저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훗… 황진이 드라마 종영되면 한꺼번에 날 잡아서 봐야 할 목록에 추가!

시편의 문학 장르

제6 장 시편의 문학 장르

20세기초에 궁켈(Herman Gunkel)은 우선 시편의 관용어, 형식적 구조, 그리고기능을 해석함으로써 시편을 크게 다섯 형태로 분류하였다.

  1. 찬양시(hymns)
  2. 개인 탄식시(individual laments)
  3. 개인 감사시(individual thanksgiving songs)
  4. 공동체 탄식시(communal laments)
  5. 제왕시(hymns for kings)

이러한 다섯 가지 양식 외에도 보다 덜 보편적이거나, 형식을 규정하기가어려운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다. 그것들은 공동체 감사시(communal thanksgivingsongs), 순례자의 노래(songs of pilgrimage), 축복과 저주'(blessings andcurses), 지혜시(wisdom poetry), 의식시(liturgies: 다른 문학 유형들로부터끌어 온 단편들을 의도적으로 결합시켜 예배를 위한 하나의 단위로 만든 것),그리고 ‘혼합 유형 또는 혼합시'(mixed types; 제의와 무관한 시편들을 융합시키고자유롭게 합성한 것) 등이다.

갓월드(Gottwald)는 시편의 다양한 유형을 다음 네 가지 유형으로 대별한다음에 다시 세분화된 형태를 제시한다.

  1. 탄식과 탄원 장르(Lamenting and Entreating Genres)
  2. 찬양과 감사 장르(Praising ana Thanking Genres)
  3. 실연(實演)과 연출 장르(Performing and EnactingGenres)
  4. 교훈과 명상 장르(Instructing and MeditatingGenres)

I. 탄식과 탄원 장르

1. 개인 탄식시

1)신체적 질병, 심리적 고통, 또는 사회-정치적인 억압과 배척을 당하는익명의 인물(표제의 자료에 언급된 구체적 인물은 제외한다)은 거친 표현으로그의 고통을 묘사하고, 때로는 결백함을 주장하게나 죄를 고백하며, 야웨께그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탄원한다. 간혹 도움을 바라는 울부짖음이 상달되고구원이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명한다. 이 장르의 세부적 하위 부분들에대해서는 다른 명명법이 종종 사용된다.

2)결백을 표현하는 탄식시는 “허위 고발당한 피고의 기도문”으로, 죄를 고백하는탄식시는 “참회시”로, 그리고 현재 당하는 고통보다는 조만 간에 닥쳐올 고통을시사하는 탄식시는 “보호시”로 각각 불린다.

3)개인 탄식시와 공동체 탄식시 사이의 차이점은 분명하지 않다. 어떤 시편에서는”나”라는 주어가 공동체를 대변하는 화자일 수도 있고, 또 본래는 개인 탄식시였던것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공동체 탄식시로 변화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4)이와 마찬가지로, 개인시들 중 어떤 것들이 탄식시인지 혹은 감사시인지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것은 탄식시가 사실상 “감사를 미리”표현할 정도로 확신에 차서 구원을 상징적으로 예기하고 있는 반면, 감사시는과거의 고통에 대한 보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5)개인탄식시의 일반적 구조(Anderson, 73-74)

  1. 하나님을 부름
  2. 불평
  3. 신뢰의 고백
  4. 탄원
  5. 확신의 말
  6. 찬양의 서약

해당 시편 : 3; 5; 6; 7; 9-10; 13; 17; 22; 25; 26; 28; 31; 35; 36; 38;39; 40; 42-43; 51; 54; 55; 56; 57; 59; 61; 63; 64; 69; 70; 71; 77; 86;88; 94; 102; 109; 120; 130; 140; 141; 142; 143

시편 3편

<구조>

1-4절 야웨께 구원을 요청함(하나님을 향한 탄원)
5-7절 구원에 대한 확신(하나님에 대한 신뢰)
8절 제의적 축복(혹은 찬양)

시 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많소이다
시 3: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시 3: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자니이다
시 3: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시 3: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시 3:6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시 3: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시 3:8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2. 제왕의 개인 탄식시

포로기 이전의 다윗계 왕이 적어도 10편의 시에서 주제로 나타난다. 그 이외의다른 시편에서도 암암리에 언급되고 있다. 전체를 왕의 탄식에 할애하고 있는시편은 거의 없지만, 왕의 탄식어투가 적어도 세 편의 시에 포함되어 있다.

해당시편: 18:4-6; 89:46-51; 144:1-11

시편 144:1-11

<구조>

1-2절 개회찬양
3-4절 덧없는 인간의 한계성을 고백함
5-8절 신현현과 하나님의 중재를 요청하는 후렴구
9-11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신뢰

시 144: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시 144:2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 시요 나의 산성이 시요 나를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 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자시로다
시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시 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시 144:5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가발하게 하소서
시 144:6 번개를 번득이사 대적을 흩으시며 주의 살을 발하사 저희를 파하소서
시 144: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건지소서
시 144:8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시 144: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시 144:10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종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시 144: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3. 공동체 탄식시

1)기근, 역병, 사회경제적 억압, 또는 군사적인 재난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공동체가 모여서 단식하고 탄식하며 희생제사를 드린다. 비록 공동체 탄식시가관련 재앙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묘사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개인탄식시의 구조와동일하다. 불편은 대개 “우리”라는 형식으로 전개되지만, “나”라는 화자가 공동체를대표하며 탄식할 때도 있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공동체 단식기간중에도 개인 탄식시가 아울러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공동체탄식시의 일반적 구조(Westermann, 57-68)

  1. 하나님을 부름
  2. 불평
  3. 하나님의 과거행위에 대한 회상
  4. 탄원
  5. 하나님의 응답
  6. 찬양을 위한 서약

해당 시편: 12; 44; 58; 60; 74; 79; 80; 83; 85; 89; 90; 108; 123; 126;137; 144.

시편 12편

<구조>

1절 A: 야웨께 도움을 요청함(탄원)
2a-3 B: 하나님께 기도
4절 C: 악한 자들의 말
5절 C’: 하나님의 말씀
6-7절 B’: 합창단들의 응답
8절 A’: 현실에 대한 탄식(탄원)

시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없어지도소이다
시 12:2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말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말하는도다
시 12: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시 12:4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시 12:5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시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 12:7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시 12:8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4. 개인 확신시

궁켈인 “청취 확신”(the certainty of a hearing)이라고 일컬었던 탄식시의한 부분이 시편 기자가 처한 곤경과는 거의 관계없이 어느 한 시편 전체의 내용이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야웨로부터 오는 구원을 예기하며 그것을 확신에 찬어조로 선포하기 때문에 이것들은 종종 “신뢰시”(trust psalms)라고 불려진다.

해당시편: 4; 11; 16; 23; 27; 62; 121; 131

시편 11편<구조>

1a절 하나님에 대한 신뢰
1b-3절 거짓 친구들의 충고
4-6절 주님을 신뢰하게 된 동기
7절 야웨를 찬양함(신뢰 및 의지)

시 11: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시 11: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시 11: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시 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시 11:5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미워하시도다
시 11:6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뵈오리로다

5. 공동체 확신시

개인의 탄식시에 상응하는 공동체 확신시가 있다.

해당 시편: 115; 125; 129

시편 125편

<구조>

1-3절 야웨에 대한 확신(신뢰)
4-5절 의인을 향한 구원 요청

시 125:1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같도다
시 125:2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시 125:3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시 125:4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시 125:5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II. 찬양 및 감사 장르

1. 찬양시 혹은 선언적 찬양시

1)하나님 찬양시 또는 찬미시는 신의 위엄을 기리거나 찬양하라는 말로 시작되고끝맺는다. 찬양시의 중심부에서는 자연과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야웨의속성과 행위가 묘사된다. 찬양시와 감사시는 공통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차이점이 있다. 찬양시가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의 보편성과 지속성이라는 측면을노래하는 반면, 감사시는 특정한 고통으로부터 최근에 구원받은 것에 관해 말한다.

2)”찬양”이 찬양시와 감사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담론(discourse)임을강조하기 위해 베스터만(C. Westermann)은 찬양시를 “서술적 찬양시”(descriptivepraise; 하나님을 그의 존재와 그의 활동 전체로 찬양하는 시 형태)로, 감사시를”선언적 찬양시”(declarative praises; 하나님의 백성과 개인을 위한 그의 구원활동을 찬양하는 시 형태)로 부를 것을 제안했다. 기타 찬양시들은 전쟁 후에낭송하기 위한 “승리 찬양시”,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배자들을 위한 “순례자의노래”, 그리고 해방절이나 초막절과 같은 어느 “정규 축제”와 연관된 것으로사료되는 찬양시로 분류된다.

3)찬양시의 구조(Anderson, 121-122)

A. “찬양하라”는 부름(요구)
B. 찬양해야 할 이유(동기)
C. 회상(송영 및 고백)

해당 시편: 8; 19:1-6; 29; 33; 95:1-7; 98; 100; 103; 104; 111; 113; 114;117; 135; 145; 146; 147; 148; 149; 150

시편 8편

<구조>

1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
2절 원수를 잠잠케 하신 하나님
3-8절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9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

시 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시 8:2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시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내가 보오니
시 8: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5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두셨으니
시 8:7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것이니이다
시 8: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1. 시온 찬양시

어떤 찬양시들은 야웨에게 질 수밖에 없는 원수들이 공격하거나 위협하는,그러나 난공불락인 시온산 위의 예루살렘성에 거하시는 분으로 야웨를 묘사한다.궁켈은 이러한 찬양시들을 장차 올 구원의 날에 대한 종말론적 언급으로 간주하였다.모빙켈은 이 제의적 드라마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은 공동체의 토대에 대한 야웨의현재적 재보증이라고 보았다. 두 학자 모두는 이러한 시온 찬양시들이 난공불락의거룩한 산을 신의 보좌로 보는 고대 가나안의 신화에 나타나는 주제들과 일치한다고보았다.

해당시편: 46; 48; 76; 84; 87; 122

시편 46편

<구조>

1-3절 창조주 야웨에 대한 찬양
4-7절 예루살렘에 대한 찬양
8-11절 하나님에 대한 찬양

시 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2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시 46:3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셀라)
시 46:4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시 46:5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그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 46:6 이방이 훤화하며 왕국이 동하였더니 저가 소리를 발하시매 땅이녹았도다
시 46:7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 46:8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찌어다 땅을 황무케 하셨도다
시 46:9 저가 땅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불사르시는 도다
시 46:10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11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피난처시로다

1-2. 야웨의 왕권 축하 찬양시

약간의 찬양시들은 야웨 하나님의 만국통치를 주장하고, “야웨께서 왕위에오르셨다!”는 제의적 외침을 포함하고 잇다. 모빙켈에 의하면 이러한 “희망”의찬양시는 제의현장에서 경험되어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주로 가을 신년축제에서 연출되었다.

해당 시편: 47; 93 : 96 ; 97 ; 99

시편 47편

<구조>

1-4절 박수치며 왕이신 하나님을 찬양
5-6절 나팔소리와 함께 등극하시는 하나님
7-9절 열방의 왕이신 하나님 찬양

시 47:1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시 47:2 지존하신 여호와는 엄위하시고 온 땅에 큰 임군이 되심이로다
시 47: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열방을 우리 발아래 복종케 하시며
시 47: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시 47:5 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소리중에 올라가시도다
시 47:6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시 47: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
시 47:8 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시 47: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모든 방패는 여호와의 것임이여 저는 지존하시도다

2. 익명의 개인 감사시 또는 선언적 찬양시

이 장르의 구조에는 감사드리라는 초청, 과거의 고난에 대한 설명, 야웨께서고통 당하는 자를 구하셨다는 선언, 그리고 때로는 맹세의 표시로 희생제를드리겠다는 성명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일반 찬양시의 축복과 찬양 요소들이포함될 수도 있다. 감사시가 낭송된 개인 감사제에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보다큰 회중이 참여하였다.

해당시편: 30; 32; 34; 41; 52; 66; 92; 116

시편 52편

<구조>

제목 에돔인 도엑에 대한 소개
1-5절 거짓말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6-9절 정직한 사람의 하나님 신뢰

[다윗의 마스길(wisdom words), 영장으로 한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 집에 왔더라 말하던 때에]
시 52:1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 52: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 도다
시 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시 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 도다
시 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뽑아 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시 52: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시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이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시 52: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시 52: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3. 제왕 감사시 또는 선언적 찬양시

제왕감사시 혹은 선언적 찬양시는 특정한 적의 이름을 보여주지 않고 “원수”혹은 “열방”등의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왕이든 군사적 승리를거둔 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한 공동체의 감사시에서 왕이개인적 감사를 드린다(시 118:5-21).

해당 시편 : 18(=삼하 22장)

시편 118:5-21

<구조>

5-9절 피난처 되신 야웨
10-16절 열방의 포위에서 벗어난 것에 대한 감사
17-18절 병고침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
19-21절 구원주 야웨께 감사

시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답하시고 나를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시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
시 118: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시 118:8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시 118:9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시 118:10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시 118:11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끊으리로다
시 118:12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시 118:13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
시 118:14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시 118:15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권능을 베푸시며
시 118:16 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
시 118: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시 118:18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다.
시 118:19 내게 의의 문을 열지어다 내가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 118: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시 118: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4. 공동체 감사시 또는 선언적 찬양시

공동체의 고난이 극복되었을 때, 공식적인 감사절이 지켜졌는데, 이 때 공동체감사시가 낭독되었고, 아울러 개인 감사시가 낭독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데,이는 민족적 축제에 어울리는 양상이었을 것이다.

해당시편: 65; 67; 107; 118; 124; 136

시편 67편

<구조>

1-2절 하나님의 길을 만방에 알리도록 청원함
3-5절 민족들이 야웨를 찬양하게 함
6-7절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

시 67:1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비취사(셀라)
시 67:2 주의 도를 땅 위에,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
시 67:3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하소서
시 67:4 열방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판단하시며땅 위에 열방을 치리하실 것임이니이다(셀라)
시 67:5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하소서
시 67:6 땅이 그 소산을 내었도다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주시리로다
시 67:7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III. 구연과 연출 장르

궁켈이 말하는 몇몇 소수 장르들과 일부 제왕시들이 제의행위를 서술하거나묘사하는 유형의 장르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시들의 유형을 자세하게 분류하기는어렵지만 대체로 다음 유형들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1. 제왕 의식시

이러한 시들 가운데 몇 몇은 왕의 ‘대관식’이나 연례적으로 왕의 즉위를축하하는 경축행사와 관련되어 있다. 백성(흑은 그들의 대표자)과 하나님이왕을 3인칭으로 말하는 것이 이 시들의 특징이다. 시전 45편은 왕의 “축혼가”(marriagesong)이고 시편 101편은 야웨와 공동체에 충성을 다짐하는 “제왕 맹세시”인데,아마도 즉위 시에 사용한 서약일 것이다.

해당시편: 2; 20; 21: 45; 72; 101; 110; 132:11-18

시편 20편

<구조>

1-2절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한 왕에 대한 소개
3-6절 제물에 대한 축복과 하나님의 응답을 위한기도
7-9절 왕의 승리에 대한 제사장의 확신

시 20:1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너를 높이 드시며
시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시 20:3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셀라)
시 20:4 네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하시고 네 모든 도모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시 20:5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시 20:6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저에게응락하시리로다
시 20: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자랑하리로다
시 20:8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시 20:9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부를 때에 왕은 응락하소서

2. 입례와 행렬 의식시

시편 15편과 24편은 야웨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자격에 관한 물음과응답을 내포하고 있는데, 아마 성전에 다가오는 예배자들과 성전 경내에서 응답하는제사장들 사이에서 암송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속하는 네 편의 시들은 그것들을지은 목적이 예배식 행렬 중에 부르기 위한 것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해당시편: 15; 24; 68; 118; 132

시편 15 편

<구조>

1절 성전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 소개
2-5a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의 자세
5b 성전에 들어간 사람들에 대한 축복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5:4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훼방치 아니하며
시 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 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3. 심판 또는 권고 예언 신탁

예언적 담화의 구조와 관용구로 표현된 비난 또는 질책이 몇몇 시편들에서뚜렷하게 나타난다. 궁켈은 이 시편들이 예언자적 이상에 영향을 받은 비제의적텍스트들이라고 추정하는 반면에, 모빙켈은 제의 예언자들이 의식의 정규 순서로회중에게 선포하며 직접 인용하였던 “의식시”(Liturgies)로 간주하였다.

해당시편: 14; 50; 53; 75; 81; 95:7d-11

시편 14편

<구조>

1절 서론(어리석은 자에 대한 비난)
2-3절 부패한 세상에 대한 비판
4-6절 죄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한 심판
7절 구원처가 되는 시온(하나님에 대한 찬양)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하나도 없도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계심이로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되시도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 이 기뻐하리로다

4. 축복시

축복시는 때때로 찬양시와 감사시에서 나타난다. 이 외에도 전적으로 축복으로만이루어진 시들이 있고, 시편 134편의 경우에는 성전 근무 제사장들이 야웨를찬양하라고 외치는 호소문 뒤에 예배자에 대한 축복이 첨부되어 있다.

해당시편: 128; 133; 134

시편 134편

<구조>

1-2절 야웨에 대한 찬양
3절 창조주 야웨의 축복

시 134:1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34: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IV. 교훈과 명상 장르

1. 지혜시와 율법시

시편 가운데 지혜문서의 일반적 특징들을 보여주는 시들이 상당수 있다 그특징들이란 (1)”지혜”, “야웨 경외”, 수신자 호칭으로서의 “아들”과 같은 핵심어들,
(2)질의응답 기법, 숫자를 사용한 말들, 지복(至福)선언(“…한 사람은 복되어라”)과같은 수사학적 장치들,
(3)단호한 어조의 가르침과 경고
(4)부당한 고통, 악한 부자, 경건한 자에 대한 신의 인도와 보호, 생명에이르는 순종과 죽음에 이르는 불순종의 두 길에 대한 집중적 관심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시들 가운데 시편 1편과 19편 7-14절 및 119편은 율법을지혜의 구현 자체로 보고 있으며, 성실한 율법준수를 지혜로운 생각과 행위의본질로 아낌없이 찬양하고 있다(시편 37편과 112편은 동일한 등식을 보다 암시적으로표현한다). 이러한 시들은 모두 분위기가 반성적이고 교훈적이며(reflexiveand didactive), 특히 “율법시”는 텍스트에 대한 집중적인 학습과 명상을 전제로한다(여기에서 텍스트란, 정경으로 인정된 토라와 기타 문서들은 물론이고,시편 자체도 포함한 것이다).

또한 다른 장르들에 속하는 시편 속에도 지혜 요소들이 널리 산재되어 있다는것은 매우 인상적이다(예: 32:1-2; 6-7, 10; 34:11-22; 36:1-4; 78:1-4; 90:3-12;92:5-15; 94:8-15; 111:10). 이제까지 주석가들은 이러한 것들을 비제의적 합성물로간주하려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러한 시들의 작가들인 “현인들”이 제의 예배에의참여에 무관심하였거나 반대하였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

시편 1편

<구조>

1-3절 의로운 자(복이 있는 자)의 길
4-5절 악인의 길
6절 결론

시 1:1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5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못하리로다
시 1:6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2. 역사시

세 편의 장시(長時)들은 하나님이 현재 북왕국을 제외하고 유다만을 당면과제로취급하는 것에 대한 확신과 권고와 정당화를 꾀하기 위해 이스라엘 초기 역사의여러 국면들을 고찰한다. 시편 78편은 지혜 교훈으로 소개되고, 반면에 역사시형태의 다른 두 편은 찬양시로 간주된다.

해당시편: 78; 105; 106

시편 78편 1-17절(비교. 신 32장)

<구조>

1-11절 율법을 거역한 이스라엘(지혜문학 영향)
12-16절 하나님의 구원역사(출애굽 사건)

시 78:1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시 78:2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시 78:3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시 78:4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 78: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시 78:6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그 자손에게 일러서
시 78:7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시 78:8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 78:9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갔도다
시 78:10 저희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그 율법 준행하기를 거절하며
시 78:11 여호와의 행하신 것과 저희에게 보이신 기사를 잊었도다
시 78:12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 땅 소안 들에서 기이한 일을 저희 열조의목전에서 행하셨으되
시 78:13 저가 바다를 갈라 물을 무더기 같이 서게 하시고 저희로 지나게하셨으며
시 78:14 낮에는 구름으로 온 밤에는 화광으로 인도하셨으며
시 78:15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시고 깊은 수원에서 나는 것 같이 저희에게물을 흡족히 마시우셨으며
시 78:16 또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물이 강 같이 흐르게 하셨으나
시 78:17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신명기 32장 1-16절

신 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신 32: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신 32: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돌릴지어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신 32: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신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신 32: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신 32: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신 32: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신 32: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신 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신 32: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진노를 격발하였도다

출처 : 박종수 교수 홈페이지시편연구시편의 문학장르

시편의 케리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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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숨쉬는 사람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1강 시편의 케리그마 – 시편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김이곤 교수(한신대/구약학)

Ⅰ. 문제제기와 방향        

시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오늘날 많은 호기심으로 둘러싸여 있다. 왜냐하면, 시편은 심오한 신앙생활의 경건성을 자극, 충동하여 우리의 경건 전통을 매우 예리하게 조율(調律)해 주는 기능과 특성을 가진 책으로서, 그 어떠한 학문적 연구에 의하여서도 이러한 시편의 전통이 헝쿨어지지는 않는 영원한 경전적 가치를 가진 책으로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또한 경건 전통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함을 넘어가는, 이른바, 철저한 비평학적 분석을 통하여 해석되어야 하는 책으로서, 단순한 신앙적 통찰과 시적(詩的) 영감에만 맡겨 둘 수 없는 학구적 연구를 요청하는 책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월터 부르그만(W.Brueggemann)이 적절하게 지적해 준대로, 시편은 경전의 그 어느 책보다 더, 비평학 이전적(pre-critical)해석1)과 비평학 이후적(post-critical)해석 “모두”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를 요청하는 책이다.2) 즉 시편은, 실제로, 그 어떠한 비평학적 분석에 의해서도 결코 동요하지 않는 케리그마적(복음 선포적)해석을 해 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비평학도 시편이 지닌 “영성”(spirituality)을 삭감시킬 수 없는, 이른바, “성서 속의 성서”(M. Luther)요 “영혼의 해부학”(J. Calvin)이며, 또한, “축소판 성서신학”(a biblical theology in miniature)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책이 “시편”이라고 할 수 있다.3)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시편연구는 시편해석사 전반(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 그리고 현대의 역사비평학자들과 신문학비평학자들의 공시적[synchronic]해석에 이르는 해석사 전반)을 향하여 과감히 자신을 열어 놓는 성서연구여야 한다고 하겠다. 우리에게 “해석사 전반”을 문제삼으라고 요청한 우리 시대의 대표적 성서학자는 브레버드 S. 차일즈(Brevard S. Childs)이다. 그에 의하면4), 해석사 전반에 관한 진지한 고려는 성서 본문을 설명만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성서 본문의 내용과 진지하게 씨름하도록 요구하여 감히 교회로부터도 신학적 충동을 이끌어내며 마침내는 흔히 “매혹적 성서해석법으로 간주되어 온 알레고리의 유혹”도 능히 지양할 수 있는, 이른바, “필요충족한 기독교 신학”(a fully developed Christian theology)의 입장에 서서 성서를 읽게 하고 또 해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편 연구의 경우, “해석사 전반의 요청”이란, 일종, 절대적 요청에 가깝다. 즉 시편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히브리 종교, 유대교, 기독교의 예배의전, 기도, 찬송, 교훈 등이 모두 그것에 기초를 두었던 책이란 점에서 그렇다. 시편 해석의 역사는 18세기 이전의 비평학 이전을 비롯하여 18세기로부터 20세기 초 헤르만·궁켈(Hermann Gunkel)의 양식사적 비평학 이전과 그리고 그 이후로 크게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5)

18세기 이전의 비평학 이전적(Pre-critical) 시편해석은 문자적 응용, 그리스도론적 유형론, 알레고리적 해석 등으로 성격지을 수 있으며, 그것은 주관적인 영적 통찰력에 주로 의존하였으며, 18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시편시의 문학적 특징을 고려하는 연구가 시작되었다(Cf. J.G. von Herder 의 Vom Geist der hebräischen Poesi, 1783과 R.Lowth의 De Sacra Poesi Hebraeorum, 1753). 그러나, 다윈·헤겔의 역사주의적 철학원리에 영향받은 율리우스·벨하우젠(J.Wellhausen)의 종교사학적 시편 연구는, 오경 연구에서처럼, 시편시들의 저작자를 규명하는 문제와 각 시편 시들의 연대를 결정하는 문제(B.Duhm; C.A. Briggs, et al)에 집중하였다.6) 그러나, 이들의 연구는, 비록 시편 시들의 사상들을 “내적 증거”(internal evidence)7)에 의하여 주관적인 판단을 함으로서 시편의 저자에 대한 전통적 견해가 갖고 있는 결정적 오류(시편에 나타나는 “다윗의 시” 모두를 다윗의 저작으로 보는 견해)를 바로 잡기는 하였어도, 그러나, 시편시들의 그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역시, 시편연구의 결정적인 이정표(里程標)를 세운 학자는 헤르만 궁켈(H.Gunkel, 1862-1932)이었다. 그의 시편 연구 방법론인, 이른바, 시편시들의 유형사(history of types) 연구는 시편시들이란 그들의 제의적(祭儀的) “삶의 자리” (Sitz-im-Leben; life-setting)에 따라 자신의 문학적 장르(genre)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른바, 시편시의 형성 현실을 규명해 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즉 시편시들은 그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예배환경 – 제의 환경 – 에서 형성, 발전되었다는 것이다.8) 그의 동시대의 시편 연구가인 모빙켈(Sigmund Mowinckel)도 또한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으나, 예배의식(제의)적 배경을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추구하는 “제의사적 연구”에로 치우쳐 버렸다.9)이 방향으로 시편연구를 심화하여 간, 후크(S.H.Hooke)와 엥그넬(I. Engnell)의 제의 의식 편향적 연구는 그러나, 구미 신학계로부터 집중적인 공격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궁켈의 시편연구는 자기 이후의 시편연구 방법론들을 비평학 이전의 모든 시편주석방법으로부터 현대 성서비평학적, 학문적 연구에로 근본적인 전환을 하게 만들기는 하였어도, 비평학적 주석과 교회의 실제적 신앙 사이의 갭(gap)을 매꾸라는 신학적 요구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였다. 즉 궁켈의 양식분류방법이 지닌 취약점을 지적하고 또 세미한 개정을 하는데 까지는 갔다고 하여도,10) 폰 라트(G. von Rad)조차도 그의 “응답의 신학” (Israel before Yahweh: Israel’s answer)11)을 통하여 비록 하나님과 이스라엘(인간) 사이의 “대화문학”(a dialogical literature)을 기초한 대화신학 같은 것을 제안하기는 하였으나, 그러나,  그 “대화의 원리”가 무엇인지는 결코 밝히지 못하였다.

더욱이 베스터만(C. Westermann)의 탁월한 시편연구는, 매우 흥미롭고도 또 주목할만 하게도, 시행착오적인 시편신학을 내어놓기까지 하였다!! 그의 본격적인 시편 연구서는 1961년 「시편의 하나님 찬양」(Das Loben Gottes in den Psalmen, 이 책의 영역본, The Praise of God in the Psalms은 1965년에 출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타났으나, 그러나, 그는 여기서 “탄원시”를 포함한 시편시의 모든 양식을 “하나님의 찬양”으로 일원화하는 신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책이 출간된지 16년이 지난 뒤, 1977년에 그는 “하나님 찬양”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탄식”을 비롯한 인간고에 관한 제(諸) 탄식이 지닌 신학적 의의와 그 의미를 발견12)하고는 「시편의 찬양과 탄식」(Lob und Klage in den Psalmen, 이 책의 영역본 Praise and Lament in the Psalms는 1981년에 출간)이라는 제목의 개정판을 내어놓기에 이르렀던 것이다.13) 이것은 제 3 세계 신학의 의의에 대한  발견과 제 1 세계 신학의 신학적 자기반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서구 신학의 시행착오적 모순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궁켈 이후의 시편신학의 과제는 “궁켈의 접근방식에 신학적 해석을 첨부하는 방식”이14)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신학적 해석이 중심적으로 첨가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즉 앞으로의 시편 해석학의 과제는, “부르그만”(W. Brueggemann)이 적절히 지적하였듯이,15) 모빙켈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다원적(pluralistic)이고 다양한(diversified)것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베스터만(C.Westermann)의 참회적 반성과 이에 대한 부르그만(W.Brueggemann )의 적절한 반응에 의하면, 이미 폰 라트(G. von Rad)가 오래 전에 불완전하게나마 예시한 데서 나타나는 것으로서, 이 과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대화적 언어교류(a dialogically verbal exchange between God and humanity)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과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16) 이러한 경우, “탄원시” 연구가 그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이고 그 구성 골격은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Actio Dei)에 대한 시인(詩人: “나” 또는 “우리”)의 (a)신학적 응답 (하나님을 향한 탄원), (b)심리적, 인간학적 응답 (시인 자신의 고난에 대한 탄원), 그리고 (c)사회적 응답 (원수에 대한 탄원)을 중심할 것이다.17) 좀 더 간결한 도식은, 부르그만(Brueggemann)이 제안한 것과 같이,18) (a)하나님의 축복을 보장받은 만족스러운 인간 삶의 응답으로서 “방향제시” (orientation; 기쁨, 즐거움, 아름다움[선함], 하나님의 신실함심,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통치법의 노래) → <권리 상실의 고통이 주는 충격> → (b)”방향감각상실” (disorientation: 혼돈과 질곡의 노래) → <탄원 … 놀람, 그리고 희망과 구원 희구의 절규에 의한 충격) → (c)”새로운 방향제시” (new orientation: 놀라운 새 삶을 경험한 감격의 노래) … <찬양과 감사의 노래>라는 (a)→< >→ (b)→< >→(c) … < >의 구조를 띨 수 있을 것이다.

II. 시편의 케리그마 발굴 작업들  

이상의 개괄적 관찰을 기초로 하여, 시편시들이 담고 있는 케리그마를 찾아내는 다음의 여러 다양한 길들을 따라가면서 시편 신학 수립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이 작업의 본론에 해당된다.

1. 시편의 저작 동기를 묻는 일  

시편해석의 근본 목적은 그 시편 시들이 어떤 “동기”로 노래 불리워지게 되었고 그리고 그 노래들이 누구에 의해서 어떤 예배 환경 속에서 어떤 용도로 사용 되었으며, 또 그 노래가 그 예배 공동체에게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공유할려고 하였는지를 밝혀 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편시들은 저작자들이 하였는지를 밝혀 내는데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시편시들은 저작자들의 시적 감정을 서정적(抒情的)으로 표현, 묘사하려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저작자들이 그들의 신앙 환경 속에서 그들의 하나님과 대화한 것을 노래로서 표현하고 또한 그것을 예배 공동체(제의[祭儀]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나누어 공유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지고 모여지고 보존된 것이기 때문이다.

18세기 계몽주의와 더불어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길이 열리자 시편 연구가들은 우선 히브리시들의 정신 세계가 무엇이고 그 히브리시들의 문학 현실이 무엇인지를 먼저 묻기 시작하였다.

그렇게하여 나타난 첫 학문적 연구의 모습은 시편시의 문학적 특징을 살피는 일이었다. 로버트·로우드(Robert Lowth)의 “히브리시의 평행법”(De Sacra Poesi Hebraeorum, 1753)에 관한 연구는 가장 초기의 학문적 시편 연구의 모습이었다.19)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것은, 시편의 히브리시들이 가진 독특한 특징인데, 그것에 의하면, 히브리시들은 구절체들이 둘 또는 셋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구절체들 사이에서는 마치 그네가 흔들리는 것 같은 반복 평행의 진동(振動)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점은, 놀라웁게도, 시편시들의 케리그마를 발견해 내는데 필요한 가장 기초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중요한 한 도구를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즉 시편시들은 반복어법적 평행법을 통하여 스스로 그 읽는 자들에게 해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본문 해석의 궤도 이탈을 방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산문체로된 기타 다른 성서 본문보다는 시편 본문이 케리그마 발굴을 더욱 용이하게 하고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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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렛 떨림 현상..

얼마전부터 타블렛 커서가 떨리는 현상이 발생해서 여기 저기 뒤적거리다가는 도무지 원인을 알 수가 없어서 오래되서 바꿀 때가 되어서인가 싶었다. 하지만 구글링은 역시 대단하다!

와콤 홈페이지 및 타블렛몰에 FAQ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올라와있었다.

태블릿을 사용하다 보면 커서가 떨리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고장인가요?
스크린 커서의 떨림 현상은 태블릿을 모니터 가까이 두는 경우에 생길 수 있습니다. 모니터가 RF (라디오 주파수) 잡음을 발생하여 와콤 태블릿과 충돌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태블릿을 모니터에서 멀리 이동하거나 해상도나 모니터 주파수 비율을 바꾸는 리플레쉬 설정을 조정하시기 바랍니다.

위의 답변을 보고서 모니터의 화면 재생빈도를 확인해 보니 60Hz, 이것을 65Hz로 바꾸었다. 그러나 변화가 없이 여전히 떨림 현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어제는 떨리지 않은 순간이 있엇다는 것을 애써 기억해내고는 또 다른 원인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관련 답변은 위의 것 하나였다. 그 순간 문득 또 다른 문구에 눈이 갔다.
바로 RF(라디오 주파수)라는 단어였다. 그 순간 눈알은 타블랫 옆으로 이동하여 뭔가를 찾아냈다!
빙고! 바로 이것이었다. 핸드폰!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 하시면 원본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핸드폰에 모네타칩이 박혀 있어서 이것으로 버스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휴대폰을 멀리 떨어뜨려보니 역시나 떨림은 사라졌다. 버스카드는 RF방식으로 결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휴대폰의 전원이 켜 있는 중에는 전파가 지속적으로 발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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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대보다는 경제성!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차에 대한 생각은 뽀대와 관련이 되는데, 경차는 일단 크기가 작아서 뽀대가 안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혜택들을 뒤로 제쳐놓고 사고시 피해충격이 다른 차에 비해 강하게 받기 때문이라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마티즈 차량의 외부 재료는 양철1로서 다른 차량에 비해 그 강도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으로만도 매우많은 차이를 가진다는 것이다.

일단 마티즈와 같은 경차를 소유한 차주가 가질 수 있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

  • 특소세 면제
  • 자동차세 씨씨당 80원
  • 종합보험료 10퍼센트 할인
  • 등록세와 취득세 면제 (2004년 1월 경차지원법 개정 : 기존<= 등록세와 취득세 2퍼센트 할인 )
  • 지역개발 공채 4퍼센트 할인
  • 고속도로 통행료 50퍼센트 할인
  • 할인 공영 주차장 50퍼센트 할인
  • 지하철 환승주차장 80퍼센트 할인
  • 차량 강제 10부제에서 제외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 가입자인 특수곰(dunkbear)은 마티즈에 대해 <아, 자전거 탄 대법원장을 보고싶다>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경차도 마찬가지 입니다. 경차가 좋은 이유가 구입 가격이 싸고 연비가 좋아야 하지만 구입가도 별로 싸지도 않고 연비도 좋은 것도아닙니다. 오죽하면 마티즈 CVT 같은 모델은 별명이 “마쿠스”라고 불렸을까요? 소비자들이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워서 마티즈안타는 것이 아닙니다. 마티즈 타나 소나타 타나 유지비 차이가 감당할 수준이라서 소나타 타는 것이죠.

필자는 마티즈(MD) 99년식을 중고로 구매해서 소유하고 있는데, 전 차주가 사고 한번 없이 회사 차량만 거의 이용해서 2006년까지 8만 9천Km정도를 주행한 것을 구매했다. 구매가는 140만원이었는데, 차체 외관은 물론 실내도 매우 깨끗했다. 회사에서 차량이 주어져서 정작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판매자의 말은 사실인 것으로 추측된다. 구매후에 본인의 부주의로 인한 차량 수리를 제외하면 차량 수리라고 할만한 것은 엔진오일 교체 정도이다.
그런 차량을 사서 기름을 꽉 채우고 – 마티즈의 기름 통은 40리터 – 학교에 왔다 갔다 하는 정도로만 사용했을때, 2주가 조금 못되는 12일을 주행할 수 있었다. 통학거리는 대략 왕복 50Km정도이다. 위의 글에 의하면 일반 승용차로도 그정도 밖에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 운동 관련 포스팅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작지 않은 몸이기 때문에 차량을 구매하고 얼마 안된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덩치에 맞지 않는다던지 장난감 몰고 다니냐는 소리를 자동반사적으로 해줬다. 일반적으로 그런 소리를 듣게되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는가. 초기에 몇 사람들, 몇 번의 기분 나쁜것을 견디면 그만큼의 이득이 발생한다.

교회에서 사역을 하기 때문에 프레지오를 운전하는데, 확실히 프레지오와 대비해 주차 문제, 요금 문제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지방으로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지만 통행료를 지불할 때마다 마티즈를 선택한 것에 만족을 느낀다. 소형이상의 차량 대비 50% 이상의 요금절감, 공영 주차시에도 마찬가지로 50%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게다가 차량 크기가 작기 때문에 웬만한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 주차를 시킬 수도 있다.

마티즈의 유지비가 소형차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의 차이라고 하더라도, 그 차이를 줄인다면 그만큼의 다른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 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란다. 부자가 되는 방법 중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별 것 아닌 비용들을 차단시키는 것도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이다.

개인의 성격과 사정, 생각에 따라 자유로운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줄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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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타는 차가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1. GM대우를 포함한 관련 페이지들을 두루 검색해봐도 구형 마티즈의 차체 외부 재질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내용과 손으로 눌러도 쉽게 찌그러졌던 본인의 경험에 의해 마티즈 차량의 외부 재질이 양철이라고 한 것이다.[]

카테리나 스포르차 – 르네상스의 여인들 : 시오노 나나미

칼로 위협당한 아이들은 울면서 어머니를 불렀다.
그러자 카테리나가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냈다. 맨발에 머리도 묶지 않고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오르시는 성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기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야말로 마키아밸리를 비롯한 모든 역사가가 후세에 전한 그 유명한 말이다. 카테리나는 유유히 치맛자락을 홱 걷어올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멍청한 놈들아, 이것만 있으면 아이쯤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단 말이다.”
여기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222 쪽 – 11 줄
시오노 나나미가 쓴 르네상스의 여인들의 한 부분으로 카테리나 스포르차라는 여인의 이야기인데, 지금 이 여자는 자신의 남편인 영주를 잃은 성에서 자신의 작은 나라인 포를리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배짱을 부린 장면입니다.
과연 저런 행동을 한 그녀는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들이 죽기를 바랐던 것일까. 세상에 어떤 어머니도 자신의 아이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을것입니다. 물론 모성애조차 가지지 못한 불쌍한 여인들도 있습니다만, 그녀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편에서 생각해보자면, 자신의 목숨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쩌면 살아나더라도 비뚤어져버릴테다~ 라는 개그만화의 한 장면의 주인공이 되리라 결심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 꽤나 치밀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영주보다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카테리나가 아이들을 버린 것은 아니다. 사로잡혀 있을 무렵, 그녀는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아이들을 이렇게 타일렀다고 한다. 지금까지 죽이지 않았으니까 더 이상 위험은 없다고 생각해라. 너희는 용감하기로 이름난 스포르차 가문의 피를 이어받지 않았느냐, 카테리나는 단지 선수를 쳐서 오히려 적의 의도를 꺾어버리려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녀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223 쪽 – 3 줄
필자의 주변에 저런 대범함을 갖춘 여인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청혼하겠습니다. 이전에도 밝힌 적이 있지만, 목회자가 될 사람으로서 그에 맞는 사모의 요건 중에 하나가 바로 대범함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포르차의 저런 대범함만이 긍정적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해 그다지 기대하지 않은데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녀의 모습은 다른 여인의 남편을 믿어주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작은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 여인에 대해 남아있는 애가를 남겨두었는데,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모두에게 버림받은 채.
이런 나를 위해
무장을 갖추고 말을 달려와 용기를 보여준
군주는 한 사람도 없구나.
온 세상이 경악했다.
‘프랑스 만세’를 외치는 병사들의 함성에
이탈리아의 힘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저 교황의 아들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이
앞으로도 계속 포를리에 머물 생각이라면
미장이로 직업을 바꾸는 편이 좋을 것이다.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내가 미친 듯이 화가 나면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해버릴 테니까.

저 비탄에 잠긴 여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포를리의 카테리나의 이야기를.

  • 16세기 초에 로마냐 지방에서 불린 「카테리나 스포르차의 애가」에서
  • 179쪽 – 2줄
    애가라고는 하지만, 꽤나 무서운 구석이 보입니다. 그 당시의 그녀에 대한 표현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자세한 서적 정보는 <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 | 르네상스 저작집 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서울 : (주)도서출판 한길사, 2005)>

    동생이 시집 간다는데..

    참.. 쓸쓸합니다. 그 동안 그 어떤 남매보다도 친근한 사이를 자랑하던 사이였는데, 막상 시집 간다니까 쓸쓸해집니다. 신학과가 있어서 고령의 학부생들이 많은 학교의 특성상 제 동생과 같은 학번인데도, 30대의 나이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제 동생이 그 동안 이런 저런 선자리들 중에서 만남이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같은 학번의 아저씨(!)에게 연락이 왔더랍니다. 자기 친구중에 여적 결혼하지 않은 솔로가 있노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언뜻 전에 결혼에 관련된 포스팅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부모님의 반려자 기준은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동생에게도 같이 적용되는 사항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항들이란 문화충돌에 대비한 기준들을 말합니다. 쨌든 그런 요건에 어느정도 부합되는 사람인데다가, 소개 받기 직전 남자가 공무원에 합격되어서인지 원래 인간이 그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선보는 자리에서 제 동생보고 다이어트 안 하시나봐요!라는 어이 상실하게 만드는 발언을 해서 동생의 마음에 난도질을 해 댄 사건이 있었기 때문인지 소개받은 사람과 첫 만남 이후 그 사람에 대해 꽤나 긍정적이더군요. 그 난도질 한 사람 누구인지 어디 소속인지 이름까지 물어봤지만, 쫓아가서 죽여버린다는 말에 대답을 않더군요.(오! 주여 용서하소서!)

    그렇게 2달 전에 만남을 가지기 시작해서 저번달 말에 본인의 부모님들께 인사드리는 것으로 내년 3월1일에 잠정적인 결혼일자를 정했습니다. 동생과 만난지 한달이 넘었는데, 이 사람이 부모님께 인사를 오지 않은 것이 괘씸하셔서 아버지께서 이달 안으로 인사 안 오면 결혼할 생각하지 말라는 경고덕분에 부랴부랴 일과 관련된 일정들을 조정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사실 그 사람이 동생과 같은 학번이었던 아저씨의 친구였기 때문에 대학 졸업후 3년 만에 소개받은것이니 올해 나이가 37살이랍니다. 동생 말로는 달수로 계산하면 2달 모자란 띠 동갑이라고 합니다.

    쨌든, 이렇게 급속도로 진전되는 가운데 동생과 절친한 관계로 지낼 수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하는 생각에 쓸쓸해집니다. 내일 당장 과제를 내야할 것이 있음에도 쉬이 붙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여담입니다만, 동생 남자친구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양주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해서 3년동안 살다 나와서 돈을 남겨먹겠다고 했습니다. 둘이 살기엔 넓다고 생각은 하지만 일단 남자쪽에서 그런 뜻을 내비춘것에 대해 그다지 반박하지는 않습니다. 동생도 뭔가 재테크에 관심이 생긴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개 링크 플러그인

    그동안 티스토리를 사용하면서 불편했던 점이 있었는데, 무지개 링크가 동작되지 않았던 것이다. 사용에 불편함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불편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쨌든 그것에 대해 그동안 찾아볼 생각은 안하고 뭔가 스킨에 문제가 있겠거니 싶어서 신경 안 썼는데, 오늘 필자와 같은 스킨임에도 무지개링크가 작동하는 블로그를 발견해서 구글링해본 결과 다음의 결과가 나왔다.

    아쉬운 1%, 귀찮은 버그, 복잡한 동선을 알려주세요 :: Tistory 업데이트 후기

    본문에서는 찾을 수가 없어 찾아보기 했더니..

    woong 2006/07/18 10:2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Firefox 1.5.0.4 사용시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1. 생략:이 글의 주제와 상관 없는 문제, 이미 해결됨

    2. Firefox에서 스킨을 수정하면 디자인이 깨지거나 Plug-in의 기능이 동작하지 않습니다. 스킨마다 증상이 다르긴 한데… 전혀 수정하지 않고 ‘저장하기’버튼만 눌러도 이상해집니다. 역시 IE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바로 저 부분, IE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내용을 보고, 바로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익스플로러로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를 접속하여 스킨 수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저장하기만 눌렀다.

    (털썩) 어이 없이 바로 되버린다.

    공인의 이미지?

    이효리와 옥주현이 원만한 대화를 통해 소속사를 떠났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이와 유사한 류의 기사들을 접할 때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잘된일이라는 것진정 원만한 대화를 통한것인가라는 것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대부분 어딘가를 떠난다는 것에 대한 것들은 그 당시에는 원만한 관계로 보이지만 실상 후에 재조명 되어졌을 때에는 원만하지 않은 트러블이 원인이 되어 그랬던 것으로 판명되었던 몇몇의 사례덕이다. 이효리와 옥주현의 소속사 이탈 경우도 그런 경우에 속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지 않다. 소속사와 이탈하는 공인의 입장에서 그 자신들의 이미지를 고려한 기사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굳이 소속사 이탈이나 변경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인들과 관련된 기사들은 그들의 이미지가 고려된 기사화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성격차이라는 모호한 이혼 사유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관련기사 : 이효리, 옥주현 8년간 몸담은 소속사 떠나>

    과일이라는게 씨가 있어야 하는데..

    요즘들어 모기불 통신에 자주 가는 편이다. 이슈화 되는 것들에 대해 이런 저런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그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더라도 검색을 통해 학습하고 그것을 토대로 글을 작성해 나간다.
    쨌든 오늘은 수입 바나나는 위험한가? 라는 글을 읽었는데, 그 트랙백으로 달려 있는 미국 바나나? 라는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원래 바나나는 씨가 많지만 현재 주로 재배되는 것은 씨없는 바나나라고.

    사실 어떤 식물이든지 그것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씨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아왔다. 이건 어쩌면 나중에 우리의 아이들에게서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씨 많은 바나나를 먹기 힘들기 때문에 씨를 없앤 종을 재배하여 먹고 있듯이 수박 역시 씨없는 수박의 개량종이 맛이 탁월하고 기타 등등의 이유로 바나나만큼 흔히 먹게 된다면, 수박은 원래 씨가 없는 것이라고 인식해버리거나 씨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 쓸데 없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익숙함이라는 것이 줄 수 있는 위험성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그것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안전 불감증도 그런 익숙함에서 안전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고에 대해 둔감하고 그로인해서 발생되어질 사고들에 피해를 입는 것은 둔감한 그 자신이다. 또한 익숙함이란 자만함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해서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는 자만함은 사고를 부르기도 한다.

    리더의 눈을 가리우는 검열!

    <관련 기사 : 신도시 투기 잡은 나라가 어딨나 – 홍종학 교수 기고>

    사실 리더의 자리는 소규모 집단에서조차도 아랫것들의 사정을 완전히 알 수 없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규모가 작은 그들 가운데서도 그러한데 나라의 리더인 대통령은 어떠할까.

    홍종학 교수의 기고문에서 언급되었던 사전 검열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가장 크게 생각된 것이 군대의 문화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기업에 대한 것이다.

    군대의 머리되시는 분들이 끝 없이 그들의 군에 대한 변화 노력을 내비추고 있음에도 쉬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사악함을 보여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다만 그들에게 가리워진 진실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그 아래의 하급자들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부분에 대해 왜곡된 보고를 받는다. 점차 올라갈 수록 그것은 더욱 심하리라고 생각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지만 고쳐지지 않으면 안될 것에 대해 희생하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에 의해 제제된다. 이 말들은 자신이 희생되지 않기 위해 숨기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죽지 않기 위해 방치 묵과 은닉해 버리고 나면 그것은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사 진행에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면 은닉하기는 군대와 매 한가지다. 친구들로부터 들려오는 기업 내부의 비리들을 듣고있노라면 적잖이 씁쓸할 뿐이다.

    쨌든 이 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리더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래 상황에 대해 어두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잭 웰치의 경영 비법

    

    잭 웰치의 경영 비법되시겠다. 제네럴 일렉트릭(GE)의 CEO이며, ‘경영의 귀재’라고 불리운답니다.

    줄여봅시다

    잭 웰치의 경영 비법
    ·10% 실적 미달성자들을 위해 사서 고생 말라
    ·협상할 때는 자신의 카드를 전부 꺼내고 시작하라
    ·젊을 때 찾아오는 위기는 두려워 말고, 즐겨라
    ·경제 잡지는 비즈니스에서 언어와도 같은 존재다
    ·모두가 어느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의사결정 땐 생각은 길게 하고 관리는 짧게 하라
    ·기업은 가치가 있어야, 도덕성을 실추시키지 말라
    ·리더십을 키우려면 대중 연설을 많이 하라

    -당신의 책을 보면 슬로언경영대학원에서 쓰는 경영 교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슬로언경영대학원의 교재에서는 whatto do strategy, analysis, mechanism, system 을 중요시 하는데비해, 잭 웰치는 에서 howto make it, connected to people를 강조했던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GE같은 큰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CEO가 모든 직원들의 업무를 전부 파악할 수 없다. 큰 회사일수록 그런것보다는 사람을관리하는 게중요하게 된다. 인재는 CEO가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전세계에 있는 종업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효율적으로 일할수 있도록 하는것이 CEO의 역할이다. 물론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에 대한 평가 방식이 중요하다. 하지만상당수 사람들이 평가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나, 실제로 (인력 평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뛰어난 사람을 찾아서최상의 팀을 꾸린 후 새로운 일을 그들에게 줘서 즐겁게 일을 하고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CEO가 할일이다.

    – CEO가 되기를 원하는 비즈니스 스쿨의 학생들이 지금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금 CEO가 되고자 하는 자신이 전세계의 뛰어난 인재들과 경쟁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의 현재 위치에 대한정확한평가를 내리고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그러기위해선 생각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을 기르고, 일과 사람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인간적인요소가 충분히 갖춰져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GE가 택한 혁신적인 급여 체계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급 여, 보상 등은 회사와 종업원 사이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급여를 책정하는 기준을 선정하는 것은매우어렵다. GE 같은 경우 얼마나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의 예년 실적을 토대로 급여를 책정한다.예산에의해서 급여의 상한선을 제한하여 놓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급여, 보상 등의 지급은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모두가어느정도의 급여와 상여를 받는지 알아야 한다.

    – 당신은 상위 20%는 인상을, 중위 70%와는 협상을, 하위 10%는 회사를 떠나라고 통고했다. 혹시 이로 인해 발생했던 부작용은 없었나.

    모든 시스템이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직에서 일할 때 구성원들에게는 절대 변하지 않는 의무가 있다. 그건 남들처럼열심히일하고 남들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경기를 보면 한 번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들이 (아무리 슬럼프에빠져도)매년 어느 정도 수준의 성적은 내주는 것을 볼 수 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다. 조직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필요없는 직원은)과감히 자를 수 있어야 한다. 10%를 차지하는 실적 미달성자의 실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사서 고생하지 말라는얘기다. 그리고 상위20%의 급여를 인상해 줄 때는 객관적으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근거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투명성이 훼손되어선 안 된다.

    – 중위 70%와 협상할 때는 어떻게 임했나.

    협상을 할 때는 테이블에앉는 순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전부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협상이 한결 빨리 끝나게된다. 자기가 갖고 있는 카드를협상 테이블에 전부 올려놓음으로써 상대방을 완전히 무장해제 시킬 수 있어야 한다.

    – 기업의 CEO로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시간 배분은 어떻게 했나.

    아마도 가장 골똘히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그것일 것이다. ‘5년이나 10년 후에 (지금 추진하는 일들이) 어떤모습일까’를예측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생각은 길게 하고 관리는 짧게 하라는 다소 모순되는 원칙이 바로 리더가 가져야할덕목이다. 이런힘든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한 것이다.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는정기적으로 오랜시간을 가지고 고민한다. 때로는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수집하기도 했다.

    – CEO 재임 시 당신의 역할모델이 있었나?

    (역 할모델이 있었다기보다는) 멘토들이 많았다. (지금 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후 지금 여러분 주변에 있는모든사람들이 멘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자신의 부하나 후배가 멘토가 될 수도 있다.

    – 당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내가 처음 CEO가 되었을 때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CFO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가 열정적으로 일하는모습과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당시 나로선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포천 지와 같은 경제잡지도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다.경제지는비즈니스에 있어 언어와도 같다. 이런 매체를 통해 다양한 상황 케이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내가 현재처한) 상황을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른 유사한 사례들을 통해 비즈니스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변하고 있다.형식에 구애받기 보다는 성과를 향한 빠른 실천이 중요하다.

    – 기업 내 팀장급의 젊은 매니저가 위기의 상황을 맞았다.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지 조언해 달라.

    당 신이 젊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리스크에 부딪치라고 말할 거다. 위기라는건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 나중을 위해서도 리스크에 많이 도전해 보고, 실수도 많이 해봐야 하는 것이다. 위기를 즐길 수있어야한다는 얘기다. 무엇이 두려워서 주저한단 말인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고, 즐겨라.

    – 요새 일주일 단위로 업무 평가를 하고, 주급을 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일이 성과로 나타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일하는사람 스스로잘 생각하고,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Work flexibility(업무 유연성)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회사매뉴얼이나브로셔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자기가 일을 하면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경영자가) ‘일에 유연성을가미하고 싶으면,그 유연성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지만, 이건 아니다. 결국일이란 것은 성과에따라 평가되는 것이다. 추후 성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

    – 기업 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떻게 하면 기업의 도덕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기업이란 것은 가치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더 앤더슨과 엘런 같은 대기업들이 도덕성을 잃어버렸을 때 그 기업의 가치가현격히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CEO들은 기업 가치가 상실되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기업의가치가 토대가 되어 기업 문화가 자리잡아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 당신은 어떻게 CEO가 될 수 있었나.

    레그 존스 전임 회장은 매우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회사를 성장시킨 주역 중 한 명이지만 회사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선변화가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회사 분위기를 혁신하기 위해 선택한 사람이 당시 45살이던 나였다. 그로서는 큰결단이었다.

    – 세계적으로 중국, 인도 등이 급부상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국 경제, 특히 제조업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재 미국의 제조업은 꾸준히 하락세에 놓여져 있다. 이젠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발달에 힘써야 할 때이다. 어느 나라나 만들 수 있는 평범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 리더십도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나.

    물론이 다. 유전적으로 리더십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리더십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감이 있다면 누구나 발휘할 수있는것이다. 때문에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자신감을 기르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건 자신감을키우는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다. 나 역시 큰 도움이 됐다. 수백 번도 더 연설을 했던 것 같다.

    – 당신은 리더십이 뛰어난 CEO로 평가받는다. 리더십을 기를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내가 CEO에 올라서고, 전임 회장이 어딘가로 떠나버렸다. 갑자기 나에게 많은 일이 주어지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많은일을 하게됐고, 이런 저런 일들을 수행해 가면서 자연스레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런 게 바탕이 되어 리더십을 기를 수있었던 것같다.

    – 능력 있는 사람이 승진을 못 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위로해 주나.

    난 직접 그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가서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승진한 이유를 알고 있다면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주는 게 가장 좋다.

    – 당신은 그 동안 많은 것들을 일궈낸 성공한 CEO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여성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내가 살았던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점이 지금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금 보면(CEO는아니더라도) 중요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는 나보다 훌륭한 여성CEO들도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출처 : <Economic Review>

    줄여봅시다

    젊을 때 찾아오는 위기는 두려워 말고, 즐겨라는 말이 어쩐지 제게 하는말 같아서 공감이 갔습니다. 웬지 나이 들어서 이 자리를 빼앗기면 어쩌나하고 전전긍긍하는 사람처럼 계산적인 사람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위험부담은 없는게 낫겠다는 생각을 종종하곤 하거든요. 물론 위기가 닥쳐오면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은 합니다만, 쉽지가 않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리스크에 부딪히라는 그의 말은 제게 어떤 제게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잭 웰치가 대답한 그가 CEO가 된 경위(?)에 대한 답변도 참 마음에 듭니다. 보수적인 전임 회장이 자신의 보수적인 성향을 바꾸기보다는 그 자리에 걸맞는 잭 웰치를 후임자로 정했다는 것에서 전 회장의 그 회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도하고, 소속된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라고 생각되어지도 합니다. 상반된 모습으로 어떤 경영자들은 자신의 가족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그들이 있지요.

    마지막으로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에서 자신의 살았던 시대에는 불가능하지만 현 세대에서는 가능하다는 말에 대한 것인데, 아직도 수 많은 곳에서 여성을 자신의 우위에 두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생각을 조금 더 개선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꽤나 개방적인데, 사실 능력에 따라 사람이 사람의 상관인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성을 상급자로 둔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더 키워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뭐.. 이것도 적지 않이 남성우월성향의 발언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 or 비경험

    순대국밥 님의 블로그에 갔더니 이런 동일한 제목의 포스팅이 있기에 재미있어 보여 긁어왔습니다. 물론 글 내용은 같지만 표기 된 것은 제가 다시 한 것이지요. 철 없을 때 했던 일들도 솔직하게 표기했으니 대략 정떨어지거나 욕할 거리를 발견하실 수도 있음을 사전에 알려드립니다.

    경험 ━ 비경험 ━

    가출


    야동
    장난전화
    알바

    살인

    컨닝

    배신을 함

    배신을 당함

    유체이탈

    봉사
    폭력을 휘두룸

    야구

    축구
    피구
    연애
    원조교제

    게임

    해외여행

    도둑질
    입원
    설거지
    청소
    요리
    책읽기
    외국어회화를 함
    사전찾기
    싸움
    눈물
    발야구

    공중부양

    자동차운전

    오토바이운전

    음주운전

    협박

    왕따

    선물을 함
    선물을 받음
    외상

    발레

    피아노

    상을 받다

    연예인을 보기 위해 공방을 뜀

    마술

    키스
    헌혈
    취직
    안경

    렌즈

    음악감상
    티비출연
    몸무게10kg감량
    실연

    애완동물을 키움
    나이트에 감

    가정교사를 함

    양다리를 걸침
    도박
    시험 0점을 맞음
    혼자 노래방을 감
    바둑
    장기
    벌에 쏘이다
    사격

    번지점프

    1만원 이상 복권당첨

    사랑니

    전학

    사기를 침

    사기를 당함

    의사놀이

    잡기놀이
    숨바꼭질

    부모를 때림

    식중독
    컴퓨터 바이러스
    해킹

    감옥살이

    유령을 봄

    외계인을 봄

    UFO를 봄

    선생님을 때림

    범인을 잡음

    동거

    선생님에게 맞음
    부모님에게 맞음

    벌로 복도에 서있음

    새뱃돈을 받음
    새뱃돈을 줌
    교통사고

    결혼

    과일깎기

    모델일을 함

    고백을 함
    고백을 받음

    지금껏 10명 이상과 사귐

    채팅
    화상채팅
    돈을 뜯음

    돈을 뺏김

    억울한 일을 당함

    전국노래자랑에 출연

    아이를 돌봄

    별 100개 이상을 접음

    낮잠
    노래

    국적이동

    국내여행
    바람 핌
    폭식
    부모님께 안마를 함
    컴퓨터 10시간 이상
    하루동안 세수를 안함
    불륜

    이혼

    불꽃놀이
    문답을 함

    운동 시작!

    앞 글에서도 밝혔듯이, 체중의 과다 증가, 체력의 부족으로 인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작하기에 앞서 체중을 확인했는데, 앞 글에서는 5Kg부족한 100Kg이라고 했는데, 무려 96.1Kg이더군요.
    전자체중계라서 평균치를 구하는 것이니만큼 몇 번을 해 봐도 똑같습니다.
    일단 체중을 확인했으니 운동하러 가겠습니다.

    운동후…

    와~ 정말 제 체력이 이 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 싶습니다. 전에도 운동했다가 꽤나 힘들었다는 포스팅을 했었는데, 점차 더 심해지는군요. 20분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5분도 안되어 지치게 되는 현상까지 겪게 됩니다. 역시나 나이 때문이 아니라 운동 부족입니다. 운동을 쉬었던 기간과 정확히 비례해서 체력이 떨어집니다.

    쨌든 시간은 다 채웠습니다. 오랫만에 운동을 하는데, 그 동안 안 좋은게 아닐까 싶었던 부분들이 아파옵니다. 병원에 한번 들려봐야겠습니다.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나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듯합니다.

    체중 뿐만 아니라..

    요즘들어 부쩍 듣는 소리가 몸이 좋아졌다거나 살이 쪘다는 소리입니다. 확실히 전보다 몸이 둔해 진 것을 느끼고 있는데다가 체력도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어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절대 필요가 생겼습니다.
    고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처럼 또 흐지부지 되고 말아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운동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사랑 ▶ 운동 카테고리 쯤에 운동으로 인한 체중 변화 등이 기록 될 예정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홀딱 벗은 몸의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여 첨부하고 싶지만, 사실 혐오감이 드는 사진 일 수도 있을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건 보류하기로 합니다.
    운동은 아무래도 지금 체중에 5kg 부족한 100kg 이기때문에 장시간 뛴다거나 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듯하기 때문에 짧은 줄넘기 정도가 괜찮을 듯 싶습니다. 체중이 많이 불어 있는 상태라서 이것도 사실 좀 불안하기는 합니다만, 지나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체중 감량 기한이 없기 때문에 하루에 5천번 정도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20분 정도니까 2천여번 정도가 괜찮아보입니다.

    쨌든 이제 다시 부지런해져야겠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하고, 운동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비가 올 일은 좀 드물기를 바라면서…

    아! 해방이다~

    시험이 끝났습니다.
    일주일간 몇 과목 보지 않았지만, 그동안 콩글리쉬 생활을 해 왔던 제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99년도에 입학해서 영어 I, II에 해당하는 과목은 이미 이수했기 때문에 영어 회화 I, II를 이수해야되었기 때문에 2학기에 편성되어있는 영어회화 II를 신청해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1학기 영어회화 I에 이어서 계속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이치이겠습니다만, 코스모스로 복학해버린 저에게는 불리한겁니다. 쨌든 저 하나때문에 교육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홀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인겁니다.
    어린 시절부터 언어에 관심이 많았었고, 그로 인해서 영어로 외국인과 간단한 대화는 쉽게 해 왔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학기를 시작했습니다만, 수업시간을 한 시간 한 시간 거치면서 그 동안 대단히 심한 콩글리쉬를 해 왔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수업이 진행되면서 심각성을 느끼고 시작하려는 의지가 생겼을 땐 이미 중간고사가 코 앞에 다가와 있는 상태였습니다. 쨌든 지금 당장의 시험만 바라보고 공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기본 문법부터 다시 공부했습니다. 다행히 시험 전날까지 공부해서 필요한만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독해하고 간단히 문장 만드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죠. 하지만, 그것도 익숙하지 않은 상태라서 이전의 자신감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구술 시험에서는 버벅거렸습니다.

    이번 깨달음을 계기로 문법 공부를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몇 번인가 필요성을 느끼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절실하지가 않았던 모양인지 몇일인가 하고 말곤 했는데, 이번엔 정말 문법이 기반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었습니다.

    문법에 대해 여러곳을 찾아봤는데, 나름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관심있으시면 들려보시길 권합니다.

    괴물군의 여러가지

    왜 내가 군대에 가지 않으면 안되지?

    왜 난 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그런 생각을 가질 수 없도록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군에 대한 애착을 물려받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내게 있어서 군에 대한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전쟁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이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군인으로서 복무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들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군대에 가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군에 가기 싫은 사람은 돈 열심히 벌어서 어떤 비겁한 인간들처럼 외국국적을 획득해서 이민가도 된다. 자신의 결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니까 상관할 바 아니다.

    나라라는 집단은 가족이 모여서 구성되었고, 가족은 국민이라는 인간개체들이 모여서 구성되었다. 그 구성원들은 누구인가? 바로 내 가족이며 친지이고, 부모들이자 형제들이다. 이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자리에 왜 가기 싫어하는가.

    그건 그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폐해들 때문이리라. 초등고등학교를 압력 속에서 지내오다가는 겨우 자유를 얻은 듯했는데, 그 자유를 구속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군에서 전역한 사람들을 통해서 적지 않은 루머들이 흘러나왔고, 그런 것들은 루머가 아닌 현실로서 그들에게 접근한다.

    또 하나의 원인은 연인이었던 여인들과 이별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여자들만 탓할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공감대도 없는 그들과 2년이라는 적지 않은 세월을 사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되니까.

    그러면 이런 악순환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것인가. 군을 개혁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군을 개혁한다고 하는 소리는 수 없이 있어왔고, 지금도 개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보상심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찾으려는, 보상 받으려는 심리쯤으로 정의해두자. 지금까지 악순환이 계속되어져 온 것은 상급기관에서만 그 노력이 그쳤기 때문이다. 그것이 점차 하급기관으로 내려와 점차 교육수준이 높이진 병사, 간부들에 의해서 일부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부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이미 강제력으로 인한 편함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 때문이리라고 생각된다.

    입대해서 교육을 받고, 근무할 곳에 배정 받은 간부(하사 이상)들을 이등병 취급하는 병사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한 노력이 행해진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의 발생이다. 초임 시절의 괴로움은 그 간부의 남은 군생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초임 시절에 강제력으로 하지 않으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그것은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그렇게 부하를 이해하고 통솔하려는 마음보다 강제력을 쓰는 것이 더 쉽다고 느껴버린 간부는 자신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한 이후의 병사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강제력을 행사한다.

    강제력이라는 건 일을 쉽게 만든다. 그래.. 쉬운것.. .인간이 끝없이 요구하는 욕구 가운데 하나는 쉽고 편한것이다. 점차 기술은 생활을 쉽고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 대한 행동에 적용되고 있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잠시 생각한 것을 끄적거리고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쉽게 길어져버린다.
    쓸데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어주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오해를 통해 가진 악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면 군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내 나라, 내 가족, 내 형제, 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광고와 홍보의 관계

    광고와 홍보는 기업이나 제품이 외부(공중1)에 알려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알리는 데 필요한 비용의 지불 여부와 알리는 행위를 하는 주체를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기업에서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매체에 알리는 행위들은 광고에 해당한다. 홍보는 알리는 주체가 달라지는데,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 교육기관 등에서 특정 기업이나 제품을 알리는 목적이 아닌 그들이 목적하고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기업에게 요청하는 자료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이다. 홍보효과를 위해 기업은 홈페이지 등에 자사에 대한 정보 또는 관련 자료들을 정보로 제공한다.

    참고한 글 ::

    홍보(Publicity)는 기업, 정부, 단체, 조합, 정당 등이 언론사로 하여금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게끔 보도자료 및 기타 편의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광고와 달리 판매가 아닌 정보제공이나 교육이 목적을 이루고, 기사화됨으로써 매체의 일부를 무료로 사용하는 것이고, 기사화되는내용을 홍보 주체가 직접 통제할 수 없고, 그 내용이 기사화 됐을 때 독자나 시청자는 홍보 주체를 확인할 수 없다.

    출처 : 네이버 용어사전

    퍼블리시티[publicity]
    신문 ·잡지 등의 기사나 라디오 ·방송 등을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광고 ·선전하는 것을 말한다. 광고는 광고주가 매체를 통하여 자기의 기업이나 신제품에 대하여 유료로 광고 ·선전하는 방법인 데 비하여, 퍼블리시티는 광고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무료로 매체측의 계획에 의하여 내용의 표현 등이 자유롭게 기사화되는 선전 방법이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광고를 광고하는 것, 바로 광고의 퍼블리시티 전략입니다. 광고가 방영되기도 전에 광고가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시청자,소비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죠.

    출처 : <20> 북한 무용수 조명애 효과는?

    광고의 기본개념-1
    광고의 기본개념-2
    저작권… 그런데 퍼블리시티권은?

    1. 공중 : 기업목적 달성을 위해 실질적 또는 잠재적으로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영향을 미치는 집단을 말한다.이것은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나 분야에 따라 금융공중(financial publics), 매체공중(media publics),정부공중(government publics), 시민운동공중(citizen action publics), 지역공중(loclapublics), 일반공중(general publics), 내부공중(internal publics)으로 분류될 수 있다.[]

    디마케팅(Demarketing)

    기업이 일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마케팅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이것은 목적에 따라 공익을 목적의 디마케팅, 수급조절을 위한 디마케팅, 이미지 향상을 위한 디마케팅, 규제회피를 위한 디마케팅, 수익제고를 위한 디마케팅의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마케팅의 의도와 달리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억제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어 법력 아래 경영이 이루어지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경우의 초과수요 상태를 말하며, 여름철 피서지 인파와 같이 갑자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일시적 마케팅활동이나 현상을 의미한다. 마케팅 관리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촉진활동의 축소나 가격인상, 모델 변경 등으로 일시적 도는 영구적으로 수요를 저지하는 마케팅활동을 펼칠 수 있다.
    출처 : 마케팅, 하대용, (서울 : 貿易經營社, 2006), p. 20.

    기업들이 소비자에게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들의 상품을 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모두 디마케팅이다. 될 수 있으면 많이 사도록소비자를 유도해야 하는 것이 기업인데 오히려 사지 말라고 하다니 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이런 마케팅을 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하는 바가 있다.

    출처 : 한국 네슬레가 디마케팅(Demarketing)에 실패한 이유에서 재인용

    기업들이 자사의 상품을 많이 판매하기보다는 오히려 고객들의 구매를 의도적으로 줄임으로써 적절한 수요를 창출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는 마케팅전략이다. 수요를 줄인다는 점에서 이윤의 극대화를 꾀하는 기업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나 간암을 일으킨다’와 같은 담배·술의 경고문구 등이 바로 디마케팅 기법에 해당하는데, 소비자보호나 환경보호 등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려 하는 경우이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고객을 밀어내는 마케팅, 즉 돈이 안 되는 고객과는 거래를 끊고 우량고객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인력과 비용을 절감하고, 수익은 극대화하려는 모든 유형의 마케팅 기법으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① 금융기관이 거래실적이 별로 없는 휴면계좌를 정리하거나 채무 규모가 적정 수준을 넘은 고객의 거래 및 대출한도를 제한하는 마케팅 ② 온라인 게임업체가 청소년 회원에게 부모의 동의를 얻은 시간에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③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유료 회원제로 전환하거나 휴면계정을 삭제하는 경우 ④ 백화점이 우량고객에게 별도 제작한 선물을 하거나 감사 서비스를 실시하는 경우 ⑤ 맥주 회사가 고급 브랜드를 일정한 업소에만 선택적으로 공급하는 경우 등이 모두 디마케팅 기법의 예(例)에 속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디마케팅>

    우리는 자기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안정을 제공해 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기업 수익의 80%를 올린다는 ’80/20 법칙’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고객들을 좀더 세분화해 보면 의외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만들어내며, 그 바로 아래 40%의 고객은 수익의 30%를 창출한다. 반면 하위 40%의 고객은 이익은커녕 오히려 수익의 10%를 까먹는다. 따라서 VIP들을 관리하는 귀족마케팅과 함께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전략이 바로 하위 고객들을 잘라내는 디마케팅이다. ‘디마케팅(Demarketing)’은 필립 코틀러가 1971년에 처음 사용한 개념으로, 정기적으로 고객과 건실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기업이 수요를 의도적으로 줄이려는 마케팅 활동을 말한다.

    출처 : 개인 블로그 <디마케팅> 소개

     

    파레토 법칙(분석)

    이탈리아 80%의 자산이 20%의 인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는 이탈리아 경제학자 Vilfredo Pareto의 연구 결과로서, 이를 경영학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Josept M. Juran이다. Juran 박사는 양적 경영보다는 질적 경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많은 고객을 붙잡아두기 보다는 매출에 도움이 되는 적은 수의 고객을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가리킨다. 예를 들어, 20%의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에 해당하는 만큼 쇼핑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이 용어를사용한다. 2대 8 법칙라고도 한다.

    출처 : 위키 대백과 <파레토 법칙>

    관리력이 일정한 경우에 가급적 효과가 높은 부분에 중점적으로 투입하기 위한 분석방법. 관리력의 대상을 A·B·C 등의 존(zone)으로 나누어서 분석하고, 그중에 서 결과의 90%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되는 A존에 중점적으로 손을 쓴다. 예를 들면 100개의 거래선 중에서 자사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곳은 10개(A존)에 불과하다고 할 경우, 관리력을 이 A존에 가중해서 배분하는 것이다. 이 기법의 개발자인 V.파레토의 이름을 따서 파레토 분석이라고 한다.


    출처 : 야후 용어사전 <파레토 분석>

    이태리 경제학자 Vilfredo Pareto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은 80-20 법칙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이탈리아 80%의 자산이 20%의 인구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이를 경영학에 최초 적용한 사람은 Joseph M. Juran이었다고 한다. Juran박사는 이른바 중요한 소수, 대수롭지 않은 다수(vital few and trivial many)라는 이론을 통해 소수의 20%가 80%의 결과를 만들어 내기때문에 이른바 질적 경영(quality management)이 필요함을 주창했다. 물론 이는 20%가 긍정적인 80%를 만들어낸다는 쪽으로도 설명이 가능하지만, 20%의 불량품이 80%의 문제를 야기시킨다는 부정적인 측면의 80-20에 적용시켜볼 수도 있다.

    출처 : 블로그 방문자수의 파레토 법칙

    남자의 재력은 차키에서부터?

    구영운영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야마토나데시코 Ep – 01의 줄거리를 소개해 주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내용을 주욱 훑어보는 중에 다음과 같은 문구 박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너희들은 남자의 어디를 보는거지?  
    제일 첫번째로 체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

    자동차 키

    거기서부터 연수입, 부동산, 주식보유량 등
    남자의 재력이 점점 모습을 드러낸다구
    그때야말로 난 이사람한테 걸어볼까 하고 생각한다구.  그렇습니까?!!



    이 문구(“자동차 키”)를 확인한 순간들었던 생각은, 강남의 월세 할부인생 젊은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강남쪽에서 외제차 끌고 다니는 사람들 젊은이들 중에 재력이 있어서 가지고다니는 사람들보다는 과시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적인 조사를 해 본것이 아니기 때문에 근거의 정확도는 떨어진다. 그런 생각을 하자 웃음이 났다.

    만약 미팅에 나간 남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겠는가? 그 여자(사쿠라)처럼 이 남자, 저 남자 동시다발적인 미팅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 사람 잡아 시집 잘 가자는 목적으로 – 사실 이런 여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만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 간다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본다면, 진정한 낭패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함께 그 부채들을 감당해야할테니까요. (추가) 물론 요즘엔 합리적 사고라는 면의 접근을 통해 그런 문제들도 함께 갚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부채는 각자가 알아서 갚는 식의 부부들도 생겨나고 있다는군요. 그런 합의조차도 되지 않는 부부들은 이혼에 이르기도 하구요.

    사실 여자고 남자고 반려자를 맞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지요. 급하게 만나 결혼하고 급하게 이혼해버리는 세태를 따라가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인내할 수 있는 미덕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봐야겠습니다.

    뽐뿌질 하지 말아라!

    광고는 그것이 표현되어질 수 있는 모든곳에 존재 한다. 어떤 분야든지 기업들은 수익을 높이고 자신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 광고를 하게 마련이다. 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부터 시작해서, 기업 자신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광고까지 광고의 목적이 다양하다. 그 목적이 수익 증가를 위한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의 목적이 그렇다는 것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노선의 차량에는 광고가 엄청나다. 사람이 봐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생각에서일 것이다. 어떤 매체의 광고든지 사람은 그 광고를 통해 자신의 생각에 영향이 미쳐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지를 가지고 부인하려 해 봐도 잘 되지 않는다.

    다행히 필자는 뽐뿌를 받지 않는 타입이라서 광고들을 보면서 어떤 점이 괜찮고 어떤 광고는 지나치다 등의 평가만하지만, 영향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광고를 뿌리쳐야만 하는 자신의 분수를 탓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뽐뿌질 하지 말아라!”며 분노를 터트리는 사람도 있다.

    지하철 내의 광고들이 그만큼의 효과를 거두는가? 점차 줄어드는 광고 수입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고 있다. 광고라는 것은 독창성이나 완성도를 떠나서 덕지 덕지 붙어있다면, 단지 벽지의 무늬정도로밖에 인지가 안될 것이 아닌가. 그런 이유로 인해서 줄어들어가는 것이다.


    <관련기사 : 지하철 승객에게 광고 안볼 권리를 허하라>

    구라 문답

    이라네요..
    올블에서 같은제목으로 글이 올라온걸 봤더니 모기한테 물린사람 몽땅 이라는군요.
    ㅋㅋ

    쨌든… 갑니다…

    [Rei]의 5대 거짓말

    1. 살빼자.. 다이어트 해야지

    요즘들어 운동할 생각을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실제로 한건 저번주 어느날인가 저녁에 잠시 나가서 줄넘기 하고 온게 전부라는거… 

    2. 저 순진해요 

    뭐… 어떻게 보면 순진한건지도 모릅니다만, 사실 초등학교때부터 순진하지 않았습니다.
    문명을 일찍 접한 부정적 측면이라고 할까요…?

    3. 귀찮으니까 블로그 때려쳐야지

    그런 생각은 아직 들지 않았습니다. 시작한지는 꽤 오래됐지만, 뭐든 시작하는게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시작하면 어떤 절대적인 이유가 아닌이상 그만두거나 하지 않습니다.

    4. 공부 잘되고 있어요

    ㅋㅋ… 잘 되고 있습니다.(자기 최면) 사실 영어때문에 다른 과목들을 포기한 상태이지만, 이번시험.. 그래도 영어만큼은 어떻게 해 보려고 합니다.

    5. 남자전화는 무조건 걸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뭐… 걸기도하고 받기도 잘 합니다. 이거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질문인건 아니겠죠?

    http://www.allblog.net/GoPage/1463073.html?orignalUrl=http://www.blogin.com/blog/?datX=00668122&keyX=numr&keyY=00652484

    이거 그다지 길지도 않고, 재미삼아 적어볼 만 합니다.
    바톤 받을 다음 사람은 제 블로그에 들리셔서 이 글을 보시는 바로 당신!

    LG 파워콤 100만 돌파

    파워콤은 지난 2000년 설립되어 운영되어오는 초고속 인터넷 회사이다. 그들은 하나로 등의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경쟁 대열에 들어 최근 1년 여만(2005년 9월 1일부터)에 100만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외국 관광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빨리 빨리”라는 말을 가장 먼저 배우게 했을만큼 속도에 민감한 민족이다. 이런 민족적 속성이 인터넷 사업분야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빠르게했겠지만 이것으로 인한 문제는 관련 기업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예외의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 이용시 페이지 로딩이 느리면 기다리기보다는 당장 서비스 회사에 전화해 따지고 최근의 초고속 서비스 회사들을 전전하며 경쟁기업들간에 제 살 파먹기를 지속시켰다.

    긍정적인 현상 – 사용자 입장 – 으로는 파워콤의 속도 품질을 따라잡기 위해 하나로의 속도 기준이 기존 라이트 4Mbps, 프로 8Mbps에서 라이트 10Mbps, 프로 20Mbps로 배이상 증가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전에 얻은 수익을 통해 장비 투자를 해 나갔지만 사용자들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한가한 파워콤망과는 달리 야간 체증현상이 벌어져 그로 인한 전향이 잦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속도 기준의 증가는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 가입자들을 타사 서비스로 전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금년 초 필자가 H 통신사의 기사로 일할 때의 경험을 들어보자면, 실제로 일주일만에 하나로에서 파워콤으로, 파워콤에서 다시 하나로로 변경한 사람들도 적지 않이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파워콤과 하나로는 장기가입의 조건을 들어 상대 회사의 서비스를 해지하고 자사의 서비스를 가입해주는 사람들에게 상품 공세를 펼쳤으며, 후에는 상품이 아닌 현금으로 돌려주는 방식의 마케팅을 펼쳐왔고, 관련 사실은 기사화되기도하였다. 이런 마케팅은 직원으로서도 사용자의 입장에도 제 살 파먹기 경쟁으로 비춰졌다. 결국 이런 경쟁 모델은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전장에서의 혈투를 연상하게 한다.

    과연 어느 기업이 승리할지는 좀 더 두고봐야겠지만, 제 살 파먹기 경쟁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은 각기 회사에서 누구에게 돌려질지 궁금증으로 남는다.

    <관련기사 : LG파워콤, ‘엑스피드’ 가입자 100만 돌파>

    코난 6기 극장판 – 베이커가의 망령

    베이커가의 망령은 대강 천재 소년이 개발한 인공 두뇌 프로그램인 Noah’s Ark를 뜻한다. 천재 소년은 히로키라는 이름의 캐릭터인데,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헤어지고 어머니와도 헤어지게 되어 개발자로서 IT계열 최고봉 기업주에게 소속된다. 그리고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일들이 있게 된다.

    히로키는 어린 시절 일본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일본의 개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 교육 분위기로 인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는 개발자로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기업주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그가 프로그래밍이 완료된 후에 자신을 죽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굉장히 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지난 역사들에 의해 그럴 수 밖에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는 적지 않이 닮은 꼴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그들의 작품들이 스토리가 탄탄하다거나 작화의 세련미라는 이유 외에도 설명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쨌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Noah’s Ark가 정, 재계 2, 3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상 게임 프로그램에 침투하여 통제하는데, 그런 내용 중에 게임에 들어가 경험하는 2,3세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 있기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단지 애니메이션의 가상 상황(픽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것이 조금은 우습게 여겨지지만 그 내용을 통해 필자 고모님의 아들인 S군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본인의 조모님은 그 분의 둘 째 따님의 아들 – 말하자면 외손자 – 인 S군에게 별다른 정이 없으셨다고 한다. 본인과 동생, 그리고 셋째 고모님의 자녀들처럼 직접 키우시거나 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모님께서 고모님댁을 방문하셨을 때 고모님께서 보이신 행동에 대해 S군은 실로 감동스러운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고모님꼐서는 상체의 비만으로 인해 가지게 되신 지병의 치료 목적으로 수영장에 가신다고 했던 것으로부터 사건은 시작된다.

    조모님은 81세(2년전)의 고령의 몸을 이끄시고, 부천에서 고모님께서 계신 의정부까지 친히 방문하셨다고 한다. 방문하신 집은 둘째 고모님댁이며 그 고모님은 하체에 문제가 있으셔서 거동에 적잖은 불편을 겪고 계셨고 그 때문에  치료 목적의 수영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님께서 고모님댁에 도착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고모님은 조모님께 수영장에 가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 상황에서 S군은 아래와 같은 발언을 한다.

    “엄마, 할머니께서 자주 오시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만에 힘들게 오셨는데 그거 나중에 가도 되는거잖아요. 나중에 내가 커서 엄마 오셨는데 일보러 나간다고 하면 어떠시겠어요?

    이런 별것 아닌듯한 말에 희망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것에 의아해하시는 분을 위해 추가 설명들어가겠다. 둘째 고모님은 S군을 재혼을 통해 얻으셨다. 둘째 고모부님은 사업을 하시던 분이셨고, 첫째 부인과 사별하시어서 혼자인 상태이셨다고 한다. 그런 중에 고모님과 결혼을 하셨는데 이 고모부님 성격이 정말 대단하시다. 필자와 동생의 어린시절 이 고모부님의 포악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몰인정한 행동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모님의 친정, 즉 우리 친족들과의 왕래를 극히 꺼려하셨고 굉장히 거친 언사로 고모님을 공포로 몰아넣으셨던 분이시다. 물론 이 묘사에는 한치의 과장도 섞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묘사를 제하였다.

    그런 고모부님의 아래에서 자라난 S군에게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 됨됨이가 하한가를 치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옳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에 따라 발언했다는 점에서 가능성은 발견된다. 물론 악한 부모 자손들이 무조건 악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들의 행동이나 사고를 여과없이 배우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에서 유사한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S군의 입에서 위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는 것에 감동했고, 그런 발언을 통해 가능성은 발견된 것이다.

    어떠신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버릇없고, 인간미 떨어지는 사람을 방치하기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성향을 옳바르게 잡아줘야 하는게 도리가 아닐까?
    내 자식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해 줄 필요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

    기독교의 배타성?!

    아래의 답변은 기독교 전체의 답변이 아니며, 본인의 짧은 지식과 생각을 비춘 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어주시기 바란다. 또한 추가적인 답변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주변 교회의 목사님을 방문하시거나 권위있는 학자들의 글들에서 답변을 얻으시기를 권하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하나님께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전부터 기독교의 배타성에 대한 안티 기독인들에 대한 글들을 많이 접해오면서 스스로도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명쾌한 답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거듭 확인하게 되었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음을 한탄하며 더욱 공부하고 알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문제는 기독교의 배타주의라는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어제는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글을 통해서 다시한번 배타성과 관련하여 적은글에서 외부의 사람이 느끼는 배타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는데,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적어놓은 글에 navman님이 질문을 해 오셨다. 그것은 기독교 배타주의에 관한 것이었고, 성경 상의 하나님의 죄인들에 대한 심판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들였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만큼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짧게 반문을 적어두었었다. 그런 후에 이런 저런 일들을 하는데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생각이 나서 뭔가 확실한 답변이 될 만한 것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명쾌한 답변을 내려주기에는 지식적 경험적 한계를 가졌다. 그렇더라도 일단 알고 있는 한에서는 답변을 해야 하는게 도리라고 생각하기에 일단 답변을 해 본다. 그러나 질문하신 분에게 기타 신학적인 이론들을 설명함으로써 혼란이 생길 수 있어 심도 있는 언급은 제하기로 한다. 일단 navman님을 포함한 기독교적 지식과 이해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 그 사랑이라는 것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문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라는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들이 죄를 지어 잉태하여 후예들을 낳았다. 그런데 그들이 세월이 흐르고 흘러서 점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과 동행했던 인간들은 스스로 자만하여 죄악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의인이었던 노아를 선택하여 그의 가족들과 한 쌍씩의 동물들만 남겨두고 물로 심판하신다. 여기에서 문제는 제기된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았다고 다 쓸어버리는 것이 기독교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navman님의 질문 덧글에 답변으로 달아놓은 반문은 그것에 대한 간단한 답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신 분이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으로써 인간을 없애는 것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하나님께 있어서 소모품 정도의 비중밖에 안되는 존재들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하셨을 당시의 상대적 의인인 노아의 가족들을 통해 죄로부터 최대한 멀어진 삶을 살도록 허락하셨다. 그리고 계속되는 인간의 죄악을 예수님의 부활 사건으로 인해 용서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이런 설명에 대해 믿든지 그렇지 않든지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진리라는것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가 가지 않아도 그것은 진리인것이다. 해가 이동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고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덧붙여 말하자면 죄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추가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킨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따지면 기독교의 배타성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죄들을 정당화되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기독교와 관련된 죄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그 뜻을 충분히 여쭙지 않고 인간의 욕심을 더 앞세워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문제는 발생되는 것이다. 위의 문제에 대해 검색을 하면서 기독교의 자기싸움이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욕심인 자본주의적 방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문제들은 발생되는 것이라는 그 포럼에서 논의 되었던 내용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 한 사람이라도 생명의 길에 인도하려는 – 에 대한 욕심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규모를 늘리기 위한 교회사역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에 더하여 한 가지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같이 완전한 성인(聖人)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 역시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제쳐뒀었고 자만하고, 욕심부려 기독교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발언, 행동들을 가졌었고 그런것들을 고치고 인내해 가는 과정에 있는데 그 동안 습관적이었던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고 있기에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은 또 다른 것과 연관지어 말할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는 있지만, 죄된 습관을 오랜동안 가지고 살다가 회개하여 믿게 되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습관 때문에 죄를 짓게 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젊은 시절에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습관이라는 것은 오랜 것일수록 고치는데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부활이나 인간의 종말에 대한 말씀들을 믿고 믿지 않고는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권하는 것은 안타깝기 때문이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함께 영원한생명을 얻어 함께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것이다(영원한 생명에 대해 뱀파이어나 기타 죽지 않는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모레 수렁에 빠져서 점차 몸을 침식당해가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것은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감정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언제 데려가실지 모를 상황에서 그 긴박함은 강제성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권유하고 물가에서 위험하게 놀 때에는 혼내는 것과 같은 이치로 생각해야 한다.

    기독교를 보는 시각

    올블 메인 페이지에 들렸을 때 불교인이 본 기독교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그 글을 직접 발견한 것은 아니고 다른 페이지에서 였다. 그 글에 대해 불교인뿐 아니라 무교인이 본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표현했었기 때문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반면 또 달리 드는 생각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였다.

    신학도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미래는 목회자이다. 목사라고 불리우는 신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제성은 없지만, 선교사로서 일하든지 신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지식의 획득만을 위해서이든지 그들은 기독교인이라는 공통된 분모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그 말씀에 의해 전도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의무를 언젠가는 행해야 하기 때문에 본인과 같은 의미로써 위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한다.

    글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어떤 부분에서 자기 편이 아닐 때는 배척하고 증오하고 복수했다.고 느꼈을까하는 것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그런 행동을 보이셨던가? 증오하고 복수까지 했다는 것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는추측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떤 부분이 그들을 증오했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에게 복수했다고 묘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외에도 여러 의문점들이 있었지만, 그 글의 필자가 토론을 위한 글이 아니라고 전제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가 몇가지를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인으로서 기독교를 바라보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길게 쓴다고 좋은 글은 아니다.

    본인은 단 몇 줄이라도 그 의미를 충분히 전달했다면 그것을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에게 꽤나 고민거리였던 것 중에 하나는 글의 길이였다. 블로깅할 때 뿐 아니라 활동하는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조차도 글을 길게 써야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글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글이 길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의 지난 포스팅들을 살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 동안 작성했던 글들을 생각해봤을 때 글의 내용들이 전달하려고 했던 주제와 관련된 것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과연 그동안 뭘 썼던 것일까? 단지 주저리 주저리 문자들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마저 들게하는 글이 눈에 띄기도 한다. 블로깅을 단순히 기록활동으로 생각한다면 허용될만한 글들이지만, 이 블로그를 시작했던 목적과 그 글을 작성했을 때의 목적에 비춰생각한다면 허용될 수 없는 글들인것이다. 물론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블로그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본인의 글을 쓰는 습관을 다시 한번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강하는 과목 중에 성경본문을 연구하는 과목이 있는데 그 과목의 발표를 – 겁도 없이 – 처음으로 하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표를 하는 중에 발생됐다. 교수님께서는 끊임없이 딴지를 거셨다. 물론 속으로는 조금씩 화가 나고 있었지만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계속 인내했다. 논리적 개연성의 연결고리가 부족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의 말씀인 즉슨 지금 열심히 떠들고는 있는데 무슨말을 했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하게 교수님께 논리적인 사고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것에 대해서 배움을 얻고싶다고 고백적인 말을 드렸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상대방의 말을 완전히 다 듣고 나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답변을 하셨다. 그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봤을 때 “나”라는 존재는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우선하는 인간이어서 그런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다른 블로거들의 글을 살펴보면서 생각하게 되는것은 그들의 생각을 조리있게 잘 정리해 낸다는 것인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선천적이어야만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살짝 든다. 많은 사람들이 잘 쓰고 있다는 생각은 본인의 글 작성을 소극적이게 만든다. 웬지 모를 자괴감 – 또는 그런 유사한 감정 – 이 들어서 포스팅할 생각에 압력을 가한다.

    쨌든 이 블로그가 쉬지않고 운영되어지는 것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은 극소수이며, 그들의그외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력은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는 없겠지만 자신을 단련하는데 있어서 노력은 그 목적에 가깝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힌바 있지만 이전의 본인과 현재의 본인은 확실하게 발전된 형태로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들이 허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런 변화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 글의 작성은 학문적인 것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 모두가 논리적 글작성이 필요하다. 고로 본인은 이런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갈 것이다.

    난 변태인가?

    남자라면 누구나 머리속에 응큼한 생각 한 둘씩은 하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응큼한 생각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는 어떤 죄를 더 짓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머리속 상상으로 머리를 분쇄시켜버린다. 온갖 알고 보고 들었던 절단할 수 있는 도구들이 머리 속에서 본인의 머리를 잘게 부숴버리는 상상으로 그런 응큼한 상상을 마무리 시키는데, 참 그 때의 기분이란 참 묘하다.

    꽤나 잔인한 장면으로 연출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변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뭔가 자신을 분쇄시키면서 응큼한 생각을 없앤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잔인한 장면으로 쾌감을 얻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흠…

    상처를 주는 것은 쉽지.

    파랑새를 찾아서 – 용기를 주는 말이라는 포스팅을 읽는 중에 ‘이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네’ 라는 부분에서 김제동씨와 관련된 사건(?)이 생각났다.

    야심만만에서 여러가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는 건 다들 아실겁니다. 그 중에서 회사 면접과 관련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데 그 때 김제동씨가 자신이 당했던 얘기를 했고, 강호동씨가 그 사람에게 한 마디 해 달라고 하여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제동씨는 섭섭하다는 정도를 넘어서 울분에 섞인 목소리와 붉어진 얼굴로 화면을 노려보면서

    “그 때 그 인사 담당자분 진짜 실수하신겁니다!”


    라는 식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거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얼마나 심하게 말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많고, 그렇게 주고나서 알게 된다면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용기를 줄 수 있는 말을 하는걸 어색해 한다. 특히나 한국사람들이 더 그런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람은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한 습득력이나 익숙함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 상에 방언에 관련한 구절들이 적지 않게 있다. 물론 전체적인 비중으로보자면 보잘 것 없는 정도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린도전서 14장 23절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언급했지만 부모님들께서는 부교역자로 사역중이셨다. 부모님들이 사역하시던 교회는 방언이나 성령의 역사가 활발했던 교회였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따라 산기도를 다니고, 성령의 역사와 함께 하던 교회에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방언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친구들을 교회에 전도하였을 때 친구들의 반응이 기억난다. 친구들은 전혀 예수님을 알지 못하거나 교회라는 집단의 문화를 접해보지 않았었는데, 그 친구들은 보기에는 노래도 하고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했던 모습만으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부흥회 기간이 되어서는 적지 않은 친구들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흔히들 부흥회 기간에는 서슴없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무서워했다고 한다. 성경말씀 본문에서 나와있는 것처럼 미친 사람들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금도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방언은 성경상에 기록되어 있는 극히 정상적인 은사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당부를 해보지만 생각을 바꾸기란 적지 않이 쉽지 않다. 물론 본인은 머리가 굵어지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이미 그런 문화에 적응해 있었기 때문에 별 달리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친구들이 이상하게 여겨졌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중에 교회에 가게 되신다면, 이상한 말로 눈감고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히 여기지 마시라. 그건 방언이라는 기도의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늙은거?

    본인보다 연로하신 적지 않은 독자에게 먼저 사과의 말씀 전한다.

    오늘 오랫만에 줄넘기를 해 보았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이전에 했던 방식의 무식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실로 몇개월이나 걸린것이다. 그리고 인정 후에도 결심하기까지 몇 개월이 흘렀다.

    2006년 이전의 포스팅들을 살펴보시면 아시겠지만 진정 아무나 믿을 수 없을만큼의 수치인 5천번은 젊었을 때나 가능한 줄넘기 횟수인것이다. 지금에와서는 그럴 정도의 체력은 있지 않은것이다.

    나이를 먹었다는 자각과 결심을 오늘에서야 실행해 옮겼다. 그런데 이거 웬일인가 다시한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20분씩만 하자고 마음먹고는 줄을 들고 집 뒤쪽 공원으로 향했다. 물론 무릎의 무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콘크리트나 블럭이 아닌 흙이 밟히는 땅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저녁에 먹은 튀김닭이 무리를 가져왔다. 조금 많이 먹었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것이 이렇게나 힘들게 하다니.. 줄넘기를 시작하고 노래가 한곡 반이 흘렀을 때 신호가 왔다. 토악질이 올라왔다. 꿋꿋이 버텨내려 했으나 무리가 된다는 신체적인 신호가 더욱 심화되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했던 과식 후의 운동은 전혀 그런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렇게 위험하다는 음주상태에서의 줄넘기도 무리가 되지 않았던 몸이 이제는 몇 년 지났다고 무리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아… 이런걸 나이먹는다고 하는 것인가…
    (털썩..)

    매직스트레이트 까잇거 일주일이면..

    오해라는 글을 보고는 취업후 첫 월급의 씀씀이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인문계 학생들과는 달리 취업전선에 나가야 할 시기인것이었다.
    당시의 본인은 반곱슬의 머리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펴려고 온갖 방법을 다 해보던 시절이었다.

    젤이라든가 헤어 스프레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밀크로션을 머리에 발라 머리 모양을 바꾸려고도 시도해 본 적도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곱슬머리라는 걸 이용해서 꽤나 긴 머리를 자랑하던 때도 있었다.

    쨌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취업을 했었던, 본인은 첫 월급을 타는날 내의 점에 가지 않았다. 흔히들 부모님의 빨간 내의를 사드리는 것으로 효를 시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겠지만, 그런 압박마저도 날려버릴만큼 간절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매직스트레이트(이하 매직)였다. 당시의 매직는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분야이기 때문에 꽤나 고가의 상품이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고되게 하지 않은 고등학생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만큼의 가격이었다. 물론 집안 형편도 그에 못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열망해 마지 않던 매직이었다.

    첫 월급을 들고 부천역에 있는 미용실을 향했다. 사실 그 동안은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5천원이면 이발할 수 있는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손질했기 때문에 미용실이라는 공간에 간다는 것도 적잖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다듬고 미용실에 들어갔다. 참…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뭐가 그렇게도 부끄럽게 여겨졌는지, 3~4시간의 시술 시간동안 시술하시는 미용사 누나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짜잔~ 멋지게 스트레이트 되었다. 미용사는 시술후 2,3일 동안은 머리에 샴푸하지 말라는 당부를 건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집에 왔건만 사람들의 반응은 영 시원치 않았다. 지금 회상해보건데 당시의 머리 모양은 꽤나 우스꽝스럽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로 인해서 부풀어 있다가 매직 후 가라앉는 상태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일주일이 흘렀다.

    털! 썩!

    정말 저런 모양새로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나 고가를 들여 했던 머리카락들 가운데, 휘어있는 머리카락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사건 전에도 같은 반 여자친구들을 집에 초청(!)해서 일반 스트레이트를 했었던 때에도 2,3일 정도 밖에 못 버텨냈던 머리라는것을 기억해 내는데에는 많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휴우..

    이 저주받은 곱슬머리라고 수 없이 생각했다.

    논술은 사고를 글로 옮겨놓은 것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무지 논술전문가랍시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선생들이 도무지 학생들과 눈높이가 맞질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방향과 수준이 선생과 너무 다르다. 그러니 위의 글은 당연히 낙제인 것이다. 만약 위의 글을 학급의 동급생들과돌려보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문제가 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판단하지 못하는 선생님들의 문제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진로에 관계없이 논술 교육은 필요하다 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이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는 본인의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이렇다.

    초등학교 4학년 PC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 이후 중고등학교시절까지 PC와 결혼했다고도 할 수 있을만큼의 높은 관심과 애착을 통해 대학진학은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대학교라는 곳에 진학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나타내기 힘들다. 고등학교 시절 논술이라는 과목을 듣도 보고 못했기 때문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떤 오류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기본교육으로써 교육받았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를 PC와 관련된 학교로써 정보산업고등학교로 진학했고, 그곳에는 전산관련과목과 기본 과목 – 국영수과사국 등 – 들만을 가르치고 있었다.

    논술 교육은 학교에서 기본과목으로써 교육해야 한다.
    평생 대학을 목표로 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의견을 충분하고 명확하게 전달해야할 필요가 있다.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과업을 설명해야하고 일상 생활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에서 문제들이 발생되고, 대부분의 법률적인 문제에서도 살펴본다면 의사전달의 오류들로부터 발생된다고 생각한다. 고로 자신의 의견을 적절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논술 교육을 기본 교육으로 해야 한다. 물론 개인의 성격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논술 교육을 통해 논리적인 사고를 갖추게 한다면 시기 적절하게는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자신의 입장을 표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이라는 것은 피교육자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경험을 비추어보건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수업시간, 즉 교육의 현장에 참여한다는 것만으로도 꽤나 적지 않은 교육 효과를 가졌다. 인생을 살면서 이전에 중고등학교때 배웠던 기억들이 토막 토막이나마 새로운 것을 공부하려고 할 때 기억이 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은 그것들을 완벽하게 외워내는 것이 아니라 –  추후에 여러 분야의 교육이나 삶에 있어 – 이해가 필요한 부분들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글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오류, 본인의 무식함이 표출되는 문구들에 대한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skt가 27위?

    이 관계자는

    “한국의 인구규모가 작은 탓이 크다

    “며 “가입자수가 많은 해외 이동통신사들이 생각보다 다수여서 새삼 놀랐다”고 말했다.

    가입자수가 큰 업체로는 중국의 차이나모바일(2억8000만명), 차이나유니콤(1억4000만명), 유럽의 보다폰(1억9000만명), 일본의 NTT도코모(5200만명) 등이 있다. 남미 멕시코나 인도네시아 1위 사업자도 모두 2000만명을 넘은 지 오래다.

    한국이 인구가 많지 않은건 사실이다. 국내에서는 독점이다 뭐다 해서 굉장히 많은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skt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따져봤을 때 27위라는 좋지 않은 순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skt는 그 동안 여러 다른 사업자들의 공격에도 끄떡하지도 않고, 버텨왔지만 국내시장에서 배 두드리고 있는 동안 해외에서는 꽤나 밀려버리는 형세를 만들고 말았다.

    위의 인용문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겠지만, 인구규모가 크지 않은 국내시장에서만 안주하고 있는 기업들에게는 결코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kt가 조금만 더 일찍이 해외시장을 공략했다면 지금의 모습과 어떤 차이를 가질까 생각해본다. 물론 skt는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지금의 이런 위치가 그들의 노력과는 무관할 수도 있을 가능성은 있다.

    1996년 1월에 세계최초로 cdma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되어있다. 이 시점에서 조금 더 신경쓰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같은해 6월과 7월에 꽤나 권위있는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좋은 결과를 받아들고서 세계시장에 파고들었다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의 세계적인 대세가 CDMA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업실패의 위험을 고려했다고는 하지만, 어설프더라도 해외 시장에서 CDMA 분야에서 세계 최초라는 점을 확실하게 이용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사실 96년에 사업에 뛰어들었다고해도 늦은감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입자를 위한 로밍서비스 역시 중요한 기능이 되겠지만, 사실상 사업상 이유로 해외에 가는 사람들이나 일부 부유층이 아니면 초기 로밍서비스를 이용할 만한 사람이 있었겠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존의 가입자들에게 꽤나 좋은 기능이기는 하지만, 과연 그것을 이용할 가입자가 얼마나 될 것이며, 그것에 의해 얻어지는 수익은 얼마나 되냐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한국의 인구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업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화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 왔어야 할 만큼 세계적인 순위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 시장은 세계적인 시장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는 것은 아니다. skt가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그 외의 분야에서 얻고 있는 수익들은 진정 돈은 저렇게 벌어야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만을 위한 글이 되지 않도록 나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두고 싶다. 또한 본인이 간과하고 있다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적나라한 지적, 환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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